필자가 <춘천 한마음 교회>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년 이상 되었다. 한국의 제도 개신교회들은 <바른 복음 증거>에 있어서 거의 전멸 상태로 알고 있는 필자인데 "부활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는 엄청난 교회라는 광고 문구는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우선 필자는 한마음 교회 '김성로 목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한마음 교회 웹사이트 상에 목사 프로필이 별로 자세한 것이 없어서 외부에서 평하는 평가만 참고하여 말한다. 체육 교사 출신으로 전문 신학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며 어느날 "부활의 진리"를 벼락같이 계시받고 깨달아 신학원 나오고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가 되었다 한다. "전문 신학 훈련"이 한국 개신교에서 가지는 의미는 '철학과 과학'에 찌들어 배교자로 육성된다는 것을 주로 의미한다. 그렇기에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해서 필자는 그 목사를 평가 절하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목사 같은 경우에도 전문 신학 훈련은 지역 교회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경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신학 훈련은 거치지 않는다 해도 성경 66권 어느 부분을 펼치더라도 주제 설교, 강해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목사가 될 수 있다. 성경의 어느 한부분에만 꽂혀서 "이거 하나 깨달으면 만사 다 깨닫는다"고 가르치는 만사 형통의 비법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될것 같으면 럭크만 목사 같은 분은 그 기적의 비법을 몰라서 지금까지 미국을 복음화시키지 못하고 있겠는가? 이송오 목사님은 그런 기적의 비법을 몰라서 쉬운 "치트 키"(게임에서 편법으로 유리하게 되는 법)를 안 쓰고 거리설교와 구령을 하겠는가?
우리만의 originality라고 주장하는 데는 뭔가 비정상적인 게 있게 마련이다. 김성로 목사 개인이 자기 간증을 하는 영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거듭난 목사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그의 교인들의 '간증 토크 쇼'를 통해서 뿐이 없다. 정기적인 설교도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그 교회가 성경적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담임 목사의 가르침, 목사의 신조를 파악해야 빠르다. 소속 '교단'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한국의 교단 교회들은 초록이 동색으로서 오순절,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가 모두 칼빈주의 사고방식으로 위아더월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춘천 한마음 교회는 교단침례교회 소속이다. 진리와는 별로 상관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침례교는 성경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장로교 짝퉁'이다. 세례를 침례로 고친 성경을 쓰긴 하지만 그들도 개역성경을 수용한다. 종교개혁 성경과 침례교회는 필연적 관계가 있는데 한국 침례교는 전체적으로 짝퉁이란 뜻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 날이 이르리니 너는 나를 이쉬라 부르고, 다시는 나를 바알리라 부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녀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들을 제거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들의 이름으로 기억됨이 없으리라(호 2:16-17).
'이쉬'는 남편이란 뜻이요, '바알리'는 이스라엘이 음행한 이방의 남신인 '바일'을 부르는 이름인데 '바알'의 뜻은 마스터(master) 또는 주(lord)이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 바알의 이름은 응용된다.
예를 들면 바알세불(왕하1:2), 바알프올(민25:3), 바알브릿(판8:33) 등이다. 바알 숭배는 성(性)을 숭배하는 종교다. 농사를 짓는데 가뭄이 가장 큰 걱정이어서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던 대상의 신이 바알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바알이 내려주는 비가 결실케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그러한 의식이 있던 신전의 주위에는 매음하는 창녀와 창남까지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것은 사제들과 성창(聖娼)들 뿐 아니라 일반 평민들 가운데서도 흔히 행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현대에 이르러서 더욱 발전하여 섹스문화로 일컬어지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왜 그리 무자비하실 정도로 타민족들을 진멸케 하셨는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 바알 의식은 어느 유럽인이나 아시아 사람들이 로마 카톨릭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여기듯이 모든 이방인의 종교였던 셈이다.
이 글은 '바알'의 정의에 대해 규명하는 글이 아니다. 한가지 결론만 얻으면 된다. '주인'은 '바알'이고 바알은 master 혹은 lord(소문자 lord)를 뜻한다.
한마음 교회 '간증들'은 패스트푸드 코너에서 급히 제조된 '붕어빵' 스타일인데 한가지로 말하도록 훈련받은 인상을 준다. 보통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은 똑같지 않다. 럭크만 목사와 이송오 목사님의 간증은 같지 않다. 럭크만 목사님은 간음자에 알콜중독에 빠져 있었고 동양 종교에 심취한 우상숭배자에 카톨릭까지 믿었다. 이송오 목사님도 뒤늦게 회심했지만 럭크만 목사님만큼 험난한 여정을 걷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의 인생의 굴곡이 있고 어떤 역정을 거쳐 왔든간에 중요한 것은 거듭나기 전까지 얼마나 구질구질한 생을 살았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 어떻게 구주로 영접하고 그 보혈을 신뢰하고 죄를 처리했느냐 하는 것이다.
왜 한국 교인들의 간증에는 거듭남이 실종되어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한마음 교회의 붕어빵 간증에만 항의할 수도 없다.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형성되었고 어느 교회 간증을 보더라도 거듭남은 실종되어 있다. 그들은 '보혈'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김성로 목사는 '사영리'를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와서 '예수를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주인'을 구주나 주 정도로만 했어도 봐줄 만 했을텐데 왠지 '주인'으로 해 놓았다. '주'(Lord)와 주인(master)은 다르다는 것을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은 "모태신앙" 가진 자들이 예수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알리'를 믿는지 'Lord'를 믿는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한국 교회는 거짓 간증을 양산함으로써 더 많은 혼미한 붕어빵들을 양산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임을 믿어서 나는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다".
왜 그들의 간증에는 예수를 '구주로 믿은 거듭남의 간증'이 생략되고 없는가? 그 교인들의 간증에는 언제 거듭났다던지 예수님의 피를 언제 믿었다는 말이 없다.
그들은 모태신앙을 말하는데 모태신앙은 거듭난 크리스챤에게는 농담 같은 말이다. 한국 개신교가 원래 그런 허술한 간증이 용납되서 그렇지 모태신앙이라는 싱거운 말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필자는 한마음교회 간증의 100%가 거듭나지 못한 엉터리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교인들의 많은 간증들 중 몇개를 들어보았을 뿐이지만 패턴은 감이 잡혔다.
기본적인 구원 간증의 필수 요소들이 빠져서 '간증 토크 쇼'가 아닌가 판단했던 것이다.
이 글 독자들이 '앙꼬빠진 찐빵인 부실한 간증'을 반면교사 삼아 나의 간증은 어떤 간증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첫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믿으니까 예수님이 주인으로 고백해야 되는 데
여기서는 주인으로 믿어야 구원받는다라고 아예 낱말처럼 정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에게도 주인으로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강조를 합니다.
여기 교회에서 제가 느낀 것은 간증이 전부 부활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필자님 말씀대로 개인별로 간증이 틀린 것인 데 믿음이 생기고, 은혜를 받은 것, 어떻게 달라진 것을 부활의 주를 만나서 그렇게 됐다라고 거의 비슷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