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同炳相憐)으로 만난 우리는
김영관
중학교 재학 시절, 음악시간에 줄별로 노래를 시키던 음악 선생님께서는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도 내 줄 앞에 와서는 “이쪽 줄에 이상하게 음정을 틀리게 부르는 학생이 있는데…. 자 다시 한번 더 정신 차려 불러 봐요.”하면서 방금 불렀던 소절을 다시 불러보게 했답니다. 시험 삼아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나만 입을 다물고 있어 봤더니 선생님은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됐어요. 아주 잘했어요.”하시는 겁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내가 엄청난 음치라는 콤플렉스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는 별의 별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모면해 보려는 노력을 다해 봤지만…. 어떤 땐 내 노래를 다 듣고 난 다음에 “요사인 이런 음치 노래 듣기도 그리 흔하지 않답니다. 우리 그런 의미에서 박수를….” 하면서 사람들은 내 형편없는 노래 솜씨에 자신들의 우월감을 만끽하는 순간을 갖곤 했답니다.
이런 나에게도 행운은 있었는지 내 짝이다 싶은 여인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첫 눈에 그녀의 모든 게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요즘 보기 드물게 쌍꺼풀이 아닌 눈이더라구요. 쌍꺼풀 안한 자연 그대로의 눈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을 콤플렉스가 대단했으리라는, 그래서 내가 노래 때문에 겪는 콤플렉스로 인한 고통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녀와 결혼했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아주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노래방이 생긴 후에 나는 차츰 노래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 내가 노래를 못 불렀던 것은 첫 음정을 잘못 잡아서 시작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노래방에서는 마치 가수처럼 기교까지 부려가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답니다. 나에 대한 연민거리가 없어진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눈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집에 온 겁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연민거리 없이 살고 있어서 아주 행복할 것 같은데도 왠지 전 같지 않게 서로가 서먹서먹해 한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