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평화
사목정보지에 2년간 연재했던 '문지방에 선 신앙'이 경향잡지에 연재했던 글과 모아 지난 2014년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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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신앙이 문지방에 서 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의 신앙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분명한 시각으로 믿음과 삶의 영역을 조화롭게 보는 영적 식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림길에 선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저자의 말 - “너 어디에 있느냐?”(창세 3, 9)
문지방, 안과 밖을 구분하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출입구의 경계를 뜻한다. 같은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문의 경계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문지방은 한편으로는 서로의 차이와 간격을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안과 밖을 연결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문의 안쪽에서 바깥쪽을 보는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셈이지만, 문의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 안쪽을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호기심이자 관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있는 곳이 안쪽이라는 생각이 상대방에게는 밖이 될 수 있고, 나에게 밖이라고 여겨지는 곳이 상대방에게는 안쪽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고전적인 표현을 넘어서 오늘날에는 인간을 ‘공감적 존재’라고 표현한다. 공감共感이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전제한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 서로의 입장에서 서보면 이해할 수 없을 것도 없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체험이 일어나는 곳이 공감의 자리이다.
이 공감의 자리를 나는 ‘문지방’이라고 생각한다. 문지방 위에 서면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고,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 말이 흔히 말하듯 양다리를 걸치는 듯한 이중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과 밖이라는 오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의 요청인 대화와 소통, 통교와 친교라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공감하는 태도야 말로 문지방 위에 서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앙이 처해 있는 현실을 흔히 위기라고 부른다. 사회적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의 입장에서 담을 쌓으며 배타적인 삶의 자세를 더욱 견고히 하는 시대의 아픔을 교회 역시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담을 쌓고 세상 속에서 자신들의 방주에 머물고자 할 때 교회는 하느님 백성으로 세상에 파견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는다. 반대로 교회가 세상의 일에 묻혀 신앙의 참된 가치와 하느님과의 신비적 친교의 가치를 잃는다면 이 또한 신앙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은 문지방 위에서 안과 밖을 넓게 내려다볼 수 있는 ‘영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감각이 지각하는 세상은 어디까지나 인간 감각의 한계 안에서만 볼 수 있지만, 인간에게 선사된 하느님 영의 힘은 세상 넘어 인간의 참된 가치와 완성으로 이끌어주는 영의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영적 인간은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에 묻히지 않고, 세상 밖을 향하지만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문지방 위의 신앙을 가장 이상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분은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시고 둘을 하나로 이어주셨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심으로써 영원할 것 같았던 인간 고통과 죽음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빛으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야말로 세상의 안과 밖을 경계 짓는 문지방 위에서 어둠과 빛을 자신 안에 죽음과 삶으로 연결하시고, 세상의 미움과 갈등을 십자가 위에서 용서와 화해로 이끌어내셨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교회와 신앙의 자리는 바로 이렇게 예수가 서 있었던 문지방과 같은 경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에 발을 딛고 서서 하늘을 향한 인간의 전형典型. 세상과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완전한 사랑의 자리. 비움과 채움의 신비가 이루어진 자리에 예수가 우리를 걸으신 길을 함께 걷도록 초대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지난 2년간 월간『사목정보』에서 ‘문지방 신앙’이란 기고란에 연재한 글을 모아 출판한 것이다. 우리 시대 대화와 소통이라는 주제 속에서 여전히 경계의 모호함을 겪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글을 한 번 써보라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 신부님의 제안을 받고 평소에 생각하던 교회의 안팎의 문제들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간 글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월간 『경향잡지』에서도 ‘세상 속 신앙읽기’란 주제로 글을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비슷한 성격의 글을 써 내려가면서 한 권의 책에 이 글들을 적절하게 모아보기로 했다.
그런 탓인지 여기 실린 글들은 학술적인 꼼꼼함이 묻어나는 글도 아니고, 사목적인 깊이가 있는 글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성적인 매력이 솟아나는 글들은 더욱더 아니다. 단지 필자가 독일 유학 시절부터 고민해온 여러 가지 교회와 신앙의 문제들을 신학교 강단과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느끼고 겪었던 문제들을 중심으로 허심탄회하게 풀어간 에세이 형식의 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본당 사목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지만 대개 우리 시대 신앙인들이 겪는 문제들이 사제인 내가 겪는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짧은 생각을 글로 풀어내며 작은 ‘공감’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글들이다.
바쁜 본당 일정 속에서도 부족한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 신부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신학생으로서 낮선 독일 땅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공부하시던 차 신부님을 종종 뵙고 용기를 얻었던 시간들, 신부님의 논문 마무리를 도와드리며 함께 지냈던 시간들 속에서 아련하게 남아 있는 인연의 끈들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서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10년이 넘게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에서 위원과 총무로서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개신교의 목사님들과 이웃종교의 성직자들은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라는 우리 시대의 필요하고도 절실한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기회이기도 했다. 특별히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이라는 종교인 학술모임을 통해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다른 종교적 관점에서 가톨릭교회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준 이웃종교인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신앙과 삶의 문제를 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내게는 소중한 배움이자 체험임을 고백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문지방 위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교회 안팎의 현실들. 친교와 통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와 소통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교회의 가르침과 소통할지, 교회 밖의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서 대화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은 우리 자신이 문지방 위에 서 있음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을 올바로 보는 일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참된 신앙인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작은 여정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
2014. 6. 23.
강화성당 사제관에서
첫댓글 주옥같은 보석,출판 축하드립니다,소피아 남정희
신부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신부님 글 보면서 문지방에선 제자신을 돌아보며 바른길 찾겠습니다.
신부님의 강의를 통해서도 느꼈지만 다양한 관점을 아우르는, 그러면서도 가톨릭의 매력을 희석시키지 않는
참으로 필요한 불씨를 출판하셨군요. 축하드리며, 감사드립니다!
에공~~이 책은 이미 2014년에 출판된 책인데 너무 알려지지 않은듯 해서 올렸네요~뒤늦은 격려에도 감사드려요~^^
아, 그럼 저도 읽고 친구에게 전해 준 책 맞네요. 제 수중에 없어서 확인을 못했네요.
제가 요즈음 기억력이 이 정도인데 지극히 정상이랍니다. 제 연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