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장미' 일본서 출판 한국추리소설의 아버자- 방인근과 쌍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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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출판된 김내성의 '사상의 장미'표지
935년에 처음으로 추리소설'타원형 거울'을 발표하여 한국 현대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내성의 대표적 장편 추리소설 '사상의 장미'(思想)의 薔薇)가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발간한 일본의 론소샤(論創社)는 초기의 한국 추리소설을 발굴하여 계속하여 출판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내성의 '사상의 장미'는 원래 1936년 김내성이 동경 유학시절 일본어로 창작했으나 출판하지 못하고 있다가 해방후 한국에서 한글로 다시 써서 발표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그의 대표작인 '마인'(魔人)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된 소설이다. 한국 추리문단에서는 김내성 이전에 추리소설을 쓴 채만식도 있으나 추리소설창작이 계속되지 못했기 때문에 김내성을 현대 한국추리소설의 아버지로 꼽는다. 김내성을 기념하여 1990년대에 김내성 문학상이 제정 되어 권경희(저린손끝) 등 중견 작가를 배출하기도했다. 한국 추리문학사에서는 김내성의 명탐정 유불란과 함께 장비호 탐정을 창조한 방인근을 빼 놓을 수 없다. 김내성과 방인근의 추리문학에 대한 애정은 높이 평가를 받는다 두사람의 추리소설에 대한 지론을 여기 비교 소개한다.
탐정소설을 보는 김내성과 방인근의 눈
김내성과 방인근은 한국 추리문학의 두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성향이나 색깔은 전혀 다르지만 오히려 개성을 잘 살린 점이 돋보인다. 이 두 작가는 작품 뿐 아니라 추리소설에 대한 문학관 자체도 약간 차이가 있다. 김내성이 1939년에 경성방송국을 통해 방송한 ‘탐정소설 소론’과 그후 발표된 방인근의 ‘탐정소설 작법’을 비교하면서 두 작가의 추리소설에 대한 문학관을 비교해 본다.
‘탐정소설은 위선 모험성을 기르는데 좋다. 바다로 산 속으로 무인지경으로 동굴로 지하로 총탄속으로 용기있게 돌진하는 것이다. 범인을 잡기위해서는 탐정은 생명을 내놓고 추격한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모험을 용감스럽게 해나가는데 탐정소설의 가치가 있다. 거기에는 피가 뛰고 살이 떨리며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또는 정의를 위해서 또는 혹은 애인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자아를 버리고 용진하는데 특색이 있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의분을 일으키게 하고 범인을 증오하는 감정에 불탄다. 기여히 그 범인을 잡아서 처벌해야 독자는 안심하고 양해하는 것이다. (방인근 <탐정소설 작법> 중략)’
여기서 보는 것과 같이 탐정은 정의의 투사로 사명감에 넘칠 뿐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무쌍하게 돌진해야한다. 두뇌보다는 액션이다. 굳이 말한다면 하드 보일드 스타일 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김내성은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일견 불가능한 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가능사로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탐정 작가로서의 제일로 고심하는 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출입구가 하나도 없는 밀폐된 방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것도 역시 불가능의 사실의 하나이며, 커다란 흥미 있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실상한 탐정작가가 안출한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파리 몽마르뜨의 어떤 아파트에서 생긴 실례인데, 이 실례 암시를 얻어 지금까지의 수다한 탐정 작가가 이 불가능을 어떻게 해결지울 것인가를 작품으로서 제시하였습니다만, 하여튼 내부로부터 자물쇠가 잠긴 방안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면 거기는 필연적으로 범인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 의문의 초점은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독자의 이지적 작용을 자극하는 의문의 제출이 탐정소설에 있어서의 중요한 하나의 요소인 것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읽은 탐정소설을 아무것이라도 하나 연상해보면 수긍될 것이며, 탐정소설의 태반은 맨 첫 페이지에 이와 같은 의문이 제출 될 것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요소는 <논리적 추리>-소위 탐정입니다. 먼저 제출 된 수수께끼를 탐정이 나와서 그 치밀하고 명석한 두뇌로서 안전에 던져진 수수께끼를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탐정하고 추리합니다.‘ (김내성 <탐정소설 소론> 중략)
여기서 탐정은 권총을 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두뇌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딕슨 카의 밀실 트릭을 푸는 것과 같은 비유를 하고 있다. 또한 크리스티의 포아르 같은 명석한 두뇌를 앞세우는 클래식형 탐정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두 사람의 주장을 보면 일견 한사람은 하드보일드 작가이고 한 사람은 고전파 작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품은 그렇지 않다. 김내성의 대표작인 <마인>의 유불란 탐정은 불가사의한 사건을 천재적으로 풀어나가는 구성이기도 하지만 탐정 자신이 무기를 휘두르기도하고 기막힌 변장술로 절체절명의 현장을 탈출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하는 액션이 수두룩하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도 불가사의한 사건을 두뇌로 풀어나가는 장면이 없는 것이아니다. 물론 장비호 탐정이 두뇌형이기 보다는 액션형이라고 보는 것은 옳은 견해이다.
‘- 탐정소설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이다. 비과학적이면 그것은 탐정소설로서 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범죄나 탐정에 부자연이나 무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보통 소설 이상으로 독자의 예민한 관찰과 비판에서 어그러지지 아니하고 납득할 만치 과학적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조리가 분명하고 앞뒤가 맞고 일사불란의 정연한 과학적인 것이어야 한다. 미국의 반다인이 과학적인 탐정소설을 시험해서 성공하였지만 그것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결(缺陷)이지만 앞으로는 이 과학적인 탐정소설이라야 할 것이다. 과학을 소재로 해서 과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넣어 줄 것은 탐정소설의 형식이 가장 적당하다고 할 수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고학을 발명시키는 데에도 탐정소설의 역할이 크다. 탐정소설은 가끔 황당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창작해서 쓴다. 사람이 하늘로 날아간다 사람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여러 가지의 모험을 해서 그것이 비행기나 잠수함을 만들게 한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러한 과학을 창조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고 여기에 탐정소설이 가진 임무의 하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탐정소설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탐정소설을 어느 정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방인근 <탐정소설 작법> 중략)
방인근은 탐정이 모험가라야하고 액션의 달인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배경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탐정소설이 과학의 발달에 기여해야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수사의 필요성은 김내성도 강조하고 있다.
‘- 중요한 요소는 <논리적 추리>-소위 탐정입니다. 먼저 제출 된 수수께끼를 탐정이 나와서 그 치밀하고 명석한 두뇌로서 안전에 던져진 수수께끼를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탐정하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세 번째 요소가 즉 <이외의 해결>입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전연 상상하지 못한 실로 이외의 인물이 범인이었다는 사, 혹은 의외의 방법으로 범죄가 실현되었다는 사실, 또는 의외의 동기가 범죄를 수행했다는 사실 등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수께끼의 제출로서 독자에게 의문을 먼저 주고 명석한 논리적 과학적 추리로서 독자의 이지적 활동을 자극하고 맨 나중에 이르러 의외의 해결로서 독자의 온갖 의문을 만족하게 풀어주는 것이 정통적 탐정소설에 있어서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김내성 <탐정소설 소론> 중략)
김내성이 고전파 작법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방인근은 스릴과 흥미 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두뇌 플레이 보다는 육체적 간접 체험의 전달과 자극을 강조하고 있다.
‘- 탐정소설은 무엇보다 스릴이 있어여 한다. 이것은 탐정소설의 불가결한 요소이며 스릴이 없으면 탐정소설로서의 생명을 잃는 것이다. 그 스릴도 적당히 배치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가지고 나가야한다. 원래 인간은 자극을 좋아한다. 자극 없는 생활은 권태를 느끼고 싫어한다. 그래서 그 자극을 날마다 요구한다. 그 자극을 주는 것의 하나가 탐정소설이다. 물론 자극이라는 것이 해독을 주는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간생활에 있어서 자극이 있으므로서 진보하고 향상 발전하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악마성이 있고 잔인성이 있다. 불구경을 좋아하고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것도 그 일단의 발로이다. 권투구경, 닭싸움, 투우 경기, 권투 구경, 개싸움, 모두 좋아하고 종국엔 전쟁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면 탐정소설은 이런 종류의 악마성을 해부하고 비판해서 어느 정도로 지도하는 것이 탐정소설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악마성이 범죄를 구성하고 부부싸움, 민족싸움, 국제전쟁, 가지가지의 비극을 연출한다. 그러면 탐정작가는 이 악마성을 요리하는데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으로 설교하는 것 보다 탐정소설로 하는 것이 가장 첩경이요 가장 효과적이다. 탐정소설이 범죄를 조장시키고 악마성을 선동시킨다는 것은 속단이요 오해다. 그 반면에 능동적이요, 발전적인 것을 알아야한다. 마치 청춘 남녀에게 성교육을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소설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다.(중략) 마치 성교육을 반대하면서 자기는 성생활에 탐닉하는 것과 비슷하다.‘ (방인근 <탐정소설 작법>)
이상에서 두 거장의 추리소설관의 편모를 살펴보았다.1930년에 발표된 내용이니까 현대 추리소설의 본질에 비교하면 미흡한 점이 많지만 추리소설의 기본에는 확고한 문학관이 있었던 것 같다. (끝) <홈즈네 집에서-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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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홈즈네 집 원문보기 글쓴이: 신의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