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방 _ 신경숙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여기는 섬이다.
밤이고, 밤바다에 떠 있는 어선의 불빛이 열어 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느닷없이,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이 곳에 와서, 나는 열여섯의 나를 생각한다. 열여섯의 내가 있다. 우리 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별 특징 없는 통통한 얼굴 모양을 가진 소녀. 78년, 유신 말기, 미국의 새로 취임한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무차관 크리스토퍼는 미국은 북한 등과 외교 관계의 수립을 원하고 있다고 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던 때, 열여섯, 소녀였던 나는 역시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 농가의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라디오에선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그룹의 황무지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건 안 돼, 정말 안 돼, 가지 말아.
세상을 바꿔 보려는 다른 바람이 도시를 휩쓸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는, 아니 나의 시골집에서는, 고등 학교 진학을 못 한 열여섯의 소녀가 나, 어떡해를 듣고 있다. 무르익던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생략 부분 줄거리| ‘나’가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하고, 동창 하계숙의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라는 전화를 받는다. 70년대 말, ‘나’는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구로 공단 지역의 단칸방에서 방위이면서 새벽과 야간에는 가발을 쓰고 학원 강사를 하는 큰오빠와 생활하게 된다. 낮에는 공장에서 스테레오 부품을 만들었고, 밤에는 영등포 여고의 산업체 특별 학급에 다니던 ‘나’의 꿈은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해 작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노동 착취와 노동 운동을 경험하고 광주 사태와 시위 등 암울한 당시대의 사건들을 목격하는데, 서른일곱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닭장집에서 희재 언니를 만나고, 희재 언니는 ‘나’에게 큰 의지가 된다.
열아홉의 나, 그녀를 흔든다.
“언니, 언니?”
처음에는 가만히 나중에는 거칠게 그녀를 흔들어 대는 내가 있다. 그녀는 콧소리를 내며 몸을 뒤집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나는 그녀의 빰을 찰싹 때리며 소리를 치고 있다.
“정신 차려.”
그녀가 눈을 뜬다. 희미한 눈동자. 그녀가 일어나 앉는다.
“왜 그러니……?”
겁이 실린 내 눈동자를 그녀가 들여다본다. 그리 오래 잠을 잔 사람 같지가 않다.
“……왜 그래? 응?”
“……아니, 그냥.”
차마 언니가 꼭 죽은 것 같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애두, 싱겁긴.”
그녀는 방문을 열어 보며, 어머, 밤이야, 깜짝 놀란다. 주먹을 불끈 쥐고서 오후 내내 잔 것도, 내가 놀라 흔들어 댄 것도, 내게 뺨을 얻어맞은 것도 모르는지…… 다만 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놀랍고 계면쩍은지 손바닥을 허리에 갖다 댄다. 다시 그녀는 희미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희재 언닌 더 이상 의상실에 나가지 않는 듯했다.
이제 그녀는 이중 취직자가 아니다. 내가 여름 방학 중인 학교에 나가 도서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돌아온 저물녘이면 희재 언니도 퇴근을 해서 그녀의 외딴 방에서 잠을 잔다.
|생략 부분 줄거리| 시골 친구인 대학생 창이 여자애와 함께 와서 입대를 할 거라며 서울 구경을 시켜 달라고 한다. ‘나’는 남산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고, 창이 여자애와 그 날 밤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여자애 언니에게 거짓 전화를 해 준다. 다음 날 터미널에 나간 ‘나’는 혼자서 창을 보낸다.
큰오빠가 충무에서 돈을 부쳐 온다. 나의 큰오빠. 그는 마치 나를 돌봐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편지에 쓰고 있다. 이 돈으로 방세 내고 돈을 너무 아끼지 말고 날이 더우니까 참외도 사다 먹어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가을과 겨울, 봄이 지나갔고 이제 여름이다. 나는 이 여름에 이 글을 끝낼 것이다.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서 끝났으면 싶었는데 지금은 이 글의 끝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처럼 나는 허둥지둥이다. 수화기를 빼놓은 지도 열흘은 넘었다. 그러나 이제야 나는 겨우 책상에 앉았다. 수화기를 빼놓은 나날을 그저 밤낮으로 책상 주위에서 몸을 눕혔다가 일어섰다가만 했다. 연일 비가 내리는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불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신문을 읽었다. 텔레비전을 봤다. 태풍이 지나갔고 유조선이 남해안 앞바다에서 암초와 부딪쳤다. 유출된 기름이 남해 바다에 형성한 검은 기름띠가 텔레비전 화면에 잡혔다. 양식장의 굴이며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떠다녔다. 헬기가 떠서 검은 기름띠의 바다에 유포제를 살포했다. 어느 날은 내가 신문과 텔레비전을 외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갯벌에는 더 이상 생물이 살지 못할 것이다.
백기를 흔드는 주민들을 왜 쏘았지? 검찰은 5·18 광주 민중 항쟁 관련 피고소 고발인 58명 전원에 불기소 처분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법원에 형사 재판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의 5·18 문제에 대한 해법은 공소권 없음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음. 틈이 있을 적마다 문민 정부를 말해 왔던 그는, 야당의 길을 버리고 삼당을 합칠 적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던 그는, 이제 5·18의 문제를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했다.
왜 호랑이를 잡지 않을까요, 묻는 내 앞에서 그는 그게 무슨 새로운 일이냐는 듯 웃었다. 왜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을까요, 그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우리 나라 최고 지도자들의 의식 속엔 국민이란 졸개로 인식되어 있는 거지요. 졸개가 뭐 무섭겠습니까. 상관의 말에 불복종하는 졸개는 군법 회의에 넘기고 싶겠지요. 제5공화국이란 라디오 연속극이 있는데…….”
5공화국이란 그의 말에 내 귀가 솔깃해졌다.
“5공화국 집권 초에 흉년이 들어서 82년에 상당량의 쌀을 수입했다고 그러더군요. 5공화국 통치권자가 나와서 그 때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말을 멈추고 목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선 5공화국 통치권자의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나는 그 때 심리전을 폈어요. 나라에 흉년이 들어 국민들이 양식 걱정으로 불안할 때였습니다. 나는 광주역에 쌀을 하역하기 전에 트럭에 쌀을 가득 싣고 광주 시내를 대여섯 바퀴 돌라고 했습니다. 대구역에도 쌀을 하역하기 전에 대구 시내를 몇 바퀴 돌라고 했습니다. 심리전을 편 것이지요.”
그가 갑자기 코미디언이 된 것 같아 내가 픽, 웃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흉년이 들어서 쌀을 수입해 왔는데 웬 심리전을 폅니까? 80년 5월 광주 대첩으로 정권을 잡은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민을 상대로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거지요. 전시에 군대 내부에서 군량미가 떨어져 병사들의 사기가 걱정되어 그랬다면 또 모르지만, 평시에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치르는 대통령…… 백 번을 양보해도 나라를 병영으로 국민들을 제 지휘하의 졸병들로 본 것이지요.”
어느 날은 이 글을 처음 시작했던 장소인 제주도로 다시 갈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정을 하니 떠나지지가 않았다. 이 글을 책으로 내기 전에 다시 탈고할 시간이 주어지면 그 땐 어쩌면 제주도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그러고 싶다.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 방 안에서 땀을 흘리며 뜨거운 커피를 끊임없이 마셔 댔다.
얼굴과 마음이 다 퉁퉁 붓는 느낌이다.
이제 이렇게 책상에 앉았으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글은 끝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글을 완성시킬 것이다. 곧 더는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밤에,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창으로 숲이 내다보였다. 바람이 불 적이면 소나무가 수수수 흔들렸다. 비가 내릴 적이면 잣나무 끝에서 까치들이 까탈을 부렸다. 비바람에 수런거리는 숲을 오래 내다본 적이 있는가? 소나무며 잣나무며 국수나무며 배롱나무들이 수런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밤이면 나무들은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잃어버린 사람을 데려다 주는 것도 같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손가락이나 목덜미나 눈 밑의 점이나 그런 것까지도. 나무들 사이로 조그맣게 난 산길을 타고 이젠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이, 말을 잃은 그 사람이 내게로 걸어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비바람에 수런거리는 밤 숲을 보고서 단 한 번도 가슴이 서늘해진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나는 무섭다. 무서운데도 밤마다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의자 위에 앉아 숲을 바라다보았다. 무서울 때마다 몸을 반듯하게 하며 팔을 창틀에 얹어 놓고 중얼거렸다. 돌봐 달라고. 이제 마지막이라고. 때때로 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 때마다 내 주인공들은 그들의 내면이 원하지 않는 다른 거울과 타협해 본 적이 없는, 외려 지나치게 자기가 강한 인물들이라며 내 주인공들의 침묵을 옹호해 왔지만, 나는 내 마음이 어려울 때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향해서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몸을 뒤척였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돌봐 달라고, 나를 지켜 달라고.
그래 그 날 아침 이야기를 하자, 해 버리자.
그 날 아침 골목에서 그녀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같이 골목을 걸어 나와 헤어지려던 참에, 그녀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낸 듯이 말했다. 내일부터 휴가라고, 오후에 시골에 가려고 하는데, 문을 안 잠그고 나왔다고. 시골에 가면 며칠 걸릴 것이니까, 나보고 저녁에 돌아오면 문을 잠가 달라고. 열쇠통은 문고리에 걸려 있다고.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아니다. 낮 동안은 어떻게 하려느냐고, 지금 돌아가서 잠그고 나오는 게 안심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것도 같다. 그녀는 안 잠가도 가져갈 것도 없다, 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린 남들이 훔쳐 가고 싶은 살림살이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밤에 학교에서 돌아와 나는 우리들의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1층의 그녀의 문에 걸려 있는 열쇠통을 채웠다. 열쇠통은 열린 채로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문고리 사이에 열쇠통을 맞추면서 얼핏 부엌을 들여다봤던 것도 같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세숫대야며 비누갑이며가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빨아서 꾹 짠 행주엔 그녀의 손자국이 배어 있었고, 쇠솔로 박박 문질러 닦은 것이 분명했을 냄비가 반짝반짝 윤을 내며 곤로 위에 얌전히 얹어져 있었다. 선반 위에 그녀가 잠깐 신었던 학생화를 본 것도 같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부탁한 대로 문에 매달려 있는 열쇠통을 문고리 사이에 맞춰 채웠을 뿐이다.
책상 앞을 떠나지 말자. 지금 떠나면 못 돌아온다.
……떠나지 말자, 떠나지 말자, 떠나지 말자……
여러 날이 흐른다. 그녀의 방문은 열쇠통이 채워진 채 꿈쩍하지 않는다. 잠긴 문을 아래층에 두고 열아홉의 나는 아침마다 밥을 지어 내 도시락을 싸서 전철역을 넘어간다. 3공단에서 109번을 타고 학교에 간다. 도서실에서 교복 치마를 무릎 위까지 걷고 가정 문제를 외우다 돌아온다. 큰오빠 말처럼 영어와 수학은 아예 공부하지도 않는다. 가끔 체력장을 위해 혼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빈 운동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해 본다. 철봉대로 가서 매달리기를 해 본다.
어두워질 때 교문을 나서며 다시 외딴 방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 앉아 열아홉의 나, 그녀를 생각한다. 이젠 돌아왔으면. 외사촌은 용산으로 셋째 오빠는 농장으로 큰오빠는 충무로 다들 떠났으므로, 나는 그녀를 간절히 기다린다. 모두들 떠났으므로, 나 혼자 있으므로.
3공단에서 내려 전철역을 넘어 공터를 지나 그 골목의 대문을 들어서면서 열아홉의 나, 버릇처럼 그녀의 방문을 본다. 잠겨 있다, 잠겨만 있다. 휴가가 그렇게 길까, 고개가 갸웃거려질 무렵 그 남자가 온다. 꾸벅, 인사를 하는 열아홉의 나에게 그이는 어색하게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휴가 갔어요.”
“휴가라구요? 어디로요?”
“시골로 간다던데요, 시골집으루요.”
“집이라구요? 갈 만한 시골집이 없는데.”
열 아홉의 나, 그 때야 이상해진다. 그녀와 함께 사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시골집에 간다고 한 적이 없었다. 명절 때조차 그녀는 그 방에서 혼자 있었다. 그런데 휴가를 시골집으로 가다니? 그이는 잠긴 문 밖에 앉아 있다가 돌아간다.
밤에, 초인종이 길게 울렸다. 누구인지 초인종에서 아예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멈추지도 않고 길게 이어지는 벨 소리. 누구세요, 짜증이 붙은 문 안의 내 목소리를 나야, 되받는 문 밖의 목소리는 여동생이었다. 저애가 이 밤중에 웬일이지? 문을 열자, 아기를 안은 채 서 있던 여동생이 와락 성을 냈다.
“아휴,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를 안 받아?”
전화? 전화벨이 울린 적이 없었는데? 아아, 전화선을 뽑아 놓았었다는 말에 동생은 더 화가 나는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전화선을 꼽곤 탁탁탁 전화 번호를 눌러 대곤 통화를 하라며 수화기를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누군데?”
“받아 보면 알 거 아냐!”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엄마다.
“왜 몇 날 며칠이고 전화를 안 받냐! 뭔 일이 생긴 줄 알고 내가 걔보고 가 보라고 했다!”
성이 가라앉았는지 여동생은 개수대에 수북이 쌓아 놓은 커피잔이며 공기들을 씻고 있다.
“밥은 해 먹고나 있는 거야?”
여동생은 밥통을 열어 보고 가스레인지에 얹어져 있는 국 끓이는 냄비를 열어 보고 있다. 텅텅 비어 있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동생의 아이가 설탕 그릇을 엎고 있다. 동생의 남편이 아이의 엉덩짝을 때리자, 아이가 엉, 투명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동생네 가족을 배웅하고 돌아와 전화선을 다시 뽑았다.
육 년 전에, 나는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을 이렇게 써 놓고 있다.
십 년 후…… 나는 전설처럼 그 며칠 후의 일들을 느닷없이 떠올렸다, 고. 무슨 일인가로 우연히 그 전철역을 지나가는데 통증이…… 날쌘 통증이 전철보다 먼저 앞질러갔다, 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자는 문을 부쉈다, 고. 냄새 때문에, 기다림 때문에.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고.
열아홉의 나, 파르르 떨며 외사촌에게 뛰어간다. 주머니 속에서 창이 준 야광 곰이 찰랑거린다. 하얗게 질려 문 밖에 서 있는 나에게 외사촌이 물을 떠다 준다.
“무슨 일이 있었니?”
말은 안 나오고 눈물만 줄줄 흐른다. 처음엔 나를 달래려고 했다가 나의 외사촌, 나의 또다른 보호자는 자신도 곧 울고 말 것 같은 눈동자로 내 이름을 부른다. 외사촌의 눈물 섞인 따뜻한 목소리에 열아홉의 나는 외사촌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운다. 영문도 모른 채 외사촌이 내 등을 한없이 쓸어 내린다.
나는 그렇게 그 골목과 그 외딴 방으로부터 뛰어나와 다시는 그 곳에 가지 않았다. 절대 다시 가려 하지 않는 내 대신 외사촌이 책가방과 소지품을 외사촌의 방으로 옮겨다 주었다. 외사촌은 괜찮다, 고 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떨고 있었다.
공터에 건물이 다 지어지기 전에 큰오빠는 충무에서 돌아왔고 그 방 다락문에 가발을 걸어 놓은 채 대림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 익명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녀의 방에서 유서가 나왔다 해도, 바깥에서 문이 잠겨 있었을 그 불가사의를.
나는 써 놓고 있다.
이후 오랫동안 다락방 천장이 무너지는 꿈을 꾸고…… 그 남자의 공포와 슬픔이 엇갈린 절망을 기억했다가…… 잊었다, 고. 아이를 떼라 했지요.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아직은…… 아직은…… 그러나 남자의 그 말이 그녀를 구더기밥이 되게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 그녀의 희미한 웃음이…… 한줌이나 될까 한 허리가…… 유품으로 나온 백몇십만 원의 저축액이…… 그 남자는 아이를 떼라, 했고……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어쩌면 그 때는 희미하게 울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녀를 안에 두고, 그 선반 위 육 개월도 채 못 신은 학생화를 안에 두고 열쇠통을 채웠다. 고.
|생략 부분 줄거리| 외딴 방을 떠나 살게 된 곳은 대림동의 우진 아파트였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낮에 ‘나’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학교에 나가는 저녁엔 말을 잃었다. ‘나’가 입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외사촌뿐이었지만, 학력 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날 뜻밖에도 셋째 오빠가 나타났다. 이렇게 오빠들은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않을 피붙이였고, 외딴 방을 떠나 온 후 일찍 늙어 버리려고 하는 ‘나’의 얼굴이며 손을 만져 주곤 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이따금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하며 뒤를 돌아다보곤 했다. 얼마 동안은 거의 일정한 어느 시각에 그 시선이 나를 방문하는 것도 같았다. 그 때면 여러 가지 것들이 불가능해지곤 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문단속을 할 수도 없었고 솔직해야 한다는 것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했으며 그에게 상냥할 수도 없었다.
지금 이 글에 마침표를 찍으려다 보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 자신에게 서먹서먹하게 얘기를 시키고 있었다는 생각.
8월이 시작되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출판사에 이 글을 넘겨야만 하는데 내 속의 또다른 나는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다시…… 끈질기게 처음부터 다시, 를 속삭인다.
여기는 정읍이다. 몸은 피로하지만 점점 정신은 또렷해진다.
처음부터 다시……처음부터……처음부터……다시……처음부터……다시……처음부터 다시……라고.
어떤 일들을 글로 옮기다 보면 많은 부분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을 드러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 간략하게 축소되어 버리는가 하면 어렴풋했던 부분들이 방대해지고 길어진다. 내가 쓰는 글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가 않는다. 끊임없이 솟아오르거나 끊임없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들 때문에. 그래도 이제부터는 어떤 얘기를 하든 그 얘기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향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생략 부분 줄거리| ‘나’는 의도적으로 외딴 방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에 대한 꿈을 꾸기만 하면 다시 모든 일들은 생생해졌다. ‘나’는 입시 공부를 위해 퇴직을 했고, 최홍이 선생이 알려 준 서울 예술 전문 대학교에 응시를 하여 합격을 한다. 내가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큰오빠는 시골집에서 정해 준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 ‘나’는 산문집이 인쇄되기 직전에 쫓아가서 지우고 온 문장들을 하나씩 다시 읽는다.
걷기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해변에서 도로로 나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종일 걸어다녔다. 어느 해안 도로엔 바닷새들이 한 줄로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새들은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저만큼 앞서에 내려앉았다. 내가 다가가면 새들은 또 일제히 날아올랐다. 해변 쪽을 건너다보자 물가에도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있었다. 새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바라본 바다 끝, 그 위의 어린애 같은 하늘. 나의 갇혀 있던 옛일들이 흩어지는 구름 속에 섞이는 걸 느꼈다. 그 자유로운 기억의 끝에서 새로운 존재들이 새로운 체취를 풍기며 태어나고 있음을. 돌아오는 어느 해안가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물가의 바위 위에서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집으로 데려가려는 모양이었다. 저만큼 자동차 안에서 아이의 아빠가 자동차 클랙슨을 빵빵 ― 누르고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아이는 해안에서 멀어졌다. 기억할는지. 이 해안에서 울었다는 걸. 이 해안에서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걸.
몸은 말할 수 없이 피로한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진다…… 1995년 9월 13일에.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신경숙(申京淑, 1963~ )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 중앙>에 「겨울 우화」가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삶의 고통과 아픔을 특유의 긴 호흡과 감성적인 문체로 다루어 내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깊은 슬픔」, 「딸기밭」 등이 있다.
작품 투시도
포인트 과거의 고백을 통한 자아의 성장
작품 해설
소설가가 된 여공의 이야기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여공 생활을 했던 한 소녀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시기에 가졌던 고독과 절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제목인 ‘외딴 방’은 큰오빠와 함께 기거했던 가리봉동의 방을 가리키며, 이는 ‘나’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소재이다.
‘나’의 문학적 열망의 표현
‘나’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도 공장을 마친 뒤에 산업체 특별 학교인 영등포 여고로 달려갔다. 여러 부담을 감수하고 힘겹게 선택한 배움에 대한 열망은 문학적 열정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으로서의 산업화
이 작품은 역사적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산업화, 시골 출신들의 도시로의 이주, 고향인 농촌의 삶에 대한 향수, 노동 현장에서의 노사 갈등, 군사 정권의 폭압과 인간적 권리의 침탈, 그리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 등을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핵심 정리
갈래장편 소설, 성장 소설, 자전적 소설
배경시간 - 1970년대와 1990년대
공간 - 정읍, 서울 구로 공단, 제주도
시점일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소녀 시절에 겪었던 삶의 아픔과 글을 쓰는 작가의 자의식
작품 내용
열여섯에 오빠를 따라 상경하여 낮에는 전자 제품 생산 업체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 특별 학교에서 공부함. 의지했던 희재 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음. 성격이 내성적이고 예민하여 후에 작가가 되는 인물로, 자신의 삶을 소설의 자양분으로 삼음.
‘나’와 같은 공장, 학교에 다니는 여공. 가정 형편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힘겨운 노동자의 삶을 살아옴. 의상실 재단사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지만, 애인이 아이를 지우라 말하자 절망하여 자살함.
대학을 다니다가 방위로 군복무를 하는 중에 사설 학원 강사로 일함. 6남매의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가 굳지만, ‘나’는 큰오빠를 연민의 대상으로 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