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아버지』(고요아침)
성배순(시인)
존재와 부재가 고봉을 이루는 절대의 고요
-이상호시집
가을에 피는 꽃은 가을이 봄이다
스스로, 인생에 가을이 다가왔다고 말하는 이상호시인의 최근 시집 『아니에요 아버지』를 읽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과 만나게 된다. 우물, 풀피리, 숨바꼭질, 깜부기, 황금들판……, 그런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향, 그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함께 늙어 가는 아버지 어머니, “한겨울 추위에도 봄꽃을” 피우고 있는 시인의 생의 고독과 허무, 존재의 성찰, 유년과 고향의 추억 등, 어둡고 진한 파토스가,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분장을 마친 배우가/……남들 다 자는 밤중에 홀로 깨어”(「꽃이 피는 아침」)치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는 이 시는,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성경 속 신부를 연상시킨다. “시들 때를 생각 않고”(「꽃이 피는 아침」), “온도만 맞으면 꽃을 피우는 어리석은 놈”(「되로 주고 말로 받다」)이라고 “해마다 새롭게 그리건만/한 번도 뜻대로 완성된 적 없는/희디 흰 그리움의 꽃 본”「눈꽃」)이라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다시 겨울이 오고/나는 얼지 않으려고/맨손체조를 하였다”(「내가 모르는 사이에」)고, “사는 일이/그리움 짓는 일만 같아/스스로 온 몸 결박하고/마음에도 빗장 지르고/겨울 언덕을”(「인동초」)넘어간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또, “호박들이 밤낮으로 제 몸을 키우며/어엿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에/주변의 풀들을 주저앉히고”(「호박을 따다」)그들의 목줄을 죄기도 했을 테고, “가을에 잘 익은 감들은/제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감나무」)약한 것들의 희생덕분이라고, 자신이 “슬그머니 꽃대를 밀어 올리는”(「난과 인간」)것도 실은 주변, 혹은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 게다. 분명 시인은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에 피어나던/희망 한송이”(「동백꽃을 보면」)였을 테니까. 이처럼 오늘의 시인이 있게 만든 아버지의 그늘은, 현존하는 것이면서 부재하는 그 그늘이란 것은, 시인이 한 때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은 어두움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빳빳이 고개를 쳐들고”(「깜부기」)반항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버지”(「아니에요 아버지」)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지금은, 소통불량의 긴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지금은, 고향의 옛우물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인의 현재와 유년의 추억을, 고향을, 둥글게 연결해 주고 있다.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슬픔 한 바가지
식물은 생명의 위기감을 느낄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간혹 영리한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해 많은 과실을 얻기 위해 일부러 나무에게 상처를 내기도 한다. 바퀴벌레도 자신에게 죽음이 닥치면 뱃속의 투명한 새끼들을 왈칵, 쏟아낸다. 그
때 스프레이 바퀴 약을 들고 순간 멈칫했던 기억들이 있으리라.
집에서 난을 길러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간해서 꽃을 보기 어렵다는 것을,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슬그머니 꽃대를 밀어 올리는
난의 생리를 알 것이다.
-「난과 인간」부분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어떤 초월적인 대상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시인을 다분 페시미즘으로 몰고 간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두려움은 인간의 원초적 공포다. 성경의 마태복음에도 “너의 아버지는 너를 비밀리에 본다”라는 구절이 있다. 도로 위, 쓰레기장 전봇대 위, 주택가 골목, 백화점……등에 있는 폐쇄회로(CCTV)는 제러미벤덤의 현대판 판옵티콘(반지 모양의 원형건물 전체를 1명의 교도관이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든 감옥)이다. e-메일, 문자 메시지, 휴대폰, 카드 사용 내역 등은 어쩌면 언젠가는 나를 옭아맬 증거자료들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조심해도, 지금 당장 CCTV카메라 렌즈를 피했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거대한 판옵티콘의 수감자들인 것이다.
세월의 난간을 잡고 아슬아슬 걸어가는 이 길을 누군가 처음부터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까치집-1」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 -「까치집-2」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계시는 그대-「말씀의 힘)
그 피와 땀을 그 분은 오직 기쁨으로만 수납했을까? -「성베드로 성당」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때로는 두려워하며, 때로는 미리 체념해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의문을 제기해보기도 한다.『아니에요 아버지』시집에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힘의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일수도 있고, 유한한 인간으로써 시간에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일수도 있다. “이 봄 지나가면/이제 아버지와 함께 몇 봄을/더 맞이할 수 있을까?”(「아니에요 아버지」)하고 슬픔에 잠기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에게 있어 유한한 인생은 “두부처럼 심심한 생”(「두부를 먹는다」)이면서 “참을 수 없이 무거운/슬픔 한 바가지”(「홍수」)인 것이다. “마지막 전차는 다시/새벽 첫차가 되어”(「막차」)묵묵히 순환궤도를 돌고 돌 것이라는 윤회적 시간관을 비치기도 하는 그는, 죽음에 대한 사유를 작품 곳곳에 흩뜨려 놓는다. (「양들의 침묵」,「연어잡기축제」,「애완견천지」,「막차」,「홍수」,「정점」,「수석」,「연잎」,「눈 오는 날」,「붕어」,「불개미」,「감나무」등)
존재와 부재가 함께 어우러진 세계
아버지는
뿌리를 찾아 가신다면서
줄곧 위로만 올라 가셨다
……존재와 부재가 함께 어우러진 세계를
올 설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보여주셨다
-「아버지와 족보」부분
보통 어머니가 무의식을 상징한다면 아버지는 의식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능력이 지배력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의 세계는 도덕적이며 본능과 파괴의 세력을 억압한다. “내 마음의 밭고랑으로/희미하게 들어서는/그리움 한 사발”(「동백꽃을 보면」), “떠날 수 없는 들판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함께 만들어낸 저 황금들판”(「황금들판」), “소처럼 일을 하고 돌아와서/갱식이 한 그릇/단숨에 뚝딱”(「갱식이」)에서 보듯 아버지와 함께 늙어 가는 시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는, 영웅주의나 전통적 힘이 사라진 연민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연의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때론, 공포의 어머니로써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머니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며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원리가 성립한다. 혈연관계나 자연현상의 수용을 강조하는 모계사회에 비해 부계사회는 법칙과 예술과 기술의 세계를 숭배하고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오늘날 모계사회는 존재하지 않지만(중국 운남성, 루구호일대의 ‘모소족’이나, 베트남의 에데족등 아직도 모계사회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도 있고, 현대에는 ‘신 모계사회’라는 용어도 생겼지만)남성들은 본질적으로 모계사회의 단계를 통과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에요 아버지』에서는, 시인이 현재 잊어버린 것, 혹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모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연못으로 썰매를 타러 갈 때/……얘야, 숨구멍 조심해라
-「숨구멍」
가끔 어머니가 나에게 면회를 오셨다가 가실 때에는 얼른 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불효일기-어머니마음」
새벽,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태풍피해가 심하다는데 다들 괜찮으냐?
-「불효일기-핑계」
질기다 질기다 해도 사람 목숨보다 더……모질다 모질다 해도 사람보다 더 모진게
-「질경이」
이 작품들에서 어머니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자애의 어머니이면서 또한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넌센스 시 (詩, nonsense verse)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버지』에는 두 편의 희시(戲詩 comic verse)가 실려 있다. 시인이 분류해 놓은 것은 두 편이지만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넌센스는 많다. 베르그송은 웃음의 원인이 “살아 있는 어떤 것 위에 덮여 있는 껍데기”라고 했다.
개와는 경주를 하지 말라 ……개에게 지면 개만도 못한 놈, 비기면 개 같은 놈,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
-「애완견 천지」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개 엄마 개 아빠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추운 날, 양들은/서로 가까이 다가서면/제 체온이 다른 놈에게 전달되어/따뜻해지는 꼴을 보기 싫어서/각각 홀로 서 있다가
-「양들의 죽음」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평소보다 훨씬 많은 콘돔이 팔렸다는 얘기
-「난과 인간」
눈싸움 하듯 해를 빤히 쳐다보며/어서 눈이 나빠지기를
-「돋보기」
네 잎 클로버를 찾은 아이나 눈이 어두워 못 찾은 아이나 아무 일도 없었다
-「어린 시절」
장님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야기인 「희시戲詩-1」
우리나라 청년의 외국에서의 자존심 이야기인「희시戲詩-2」
등을 말하며 시인은 분명 웃었으리라. 인간적인 것 위에 비인간적인 문화의 껍데기를 덮어놓고 혼자서 냉소를 지었으리라.
귀여니가 시집 ‘아프리카’를 냈다는 소식에, 일찍부터 그의 작가적 역량과 창작력을 우습게 봤던 네티즌들이 “이게 시라면 나도 쓰겠다”며 아름다운(?) 댓글을 통해 가공할 창작력을 드러내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시인의 시집 속 「희시」를 보고 많은 젊은 독자들이, 유머와 패러디가 짬뽕된, 퓨전 아포리즘의 갱식이를 들고 시인을 찾아 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시인은 시를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찾아가는 시”의 방편으로써 이 시를 미끼로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 누가 알겠는가? 대중가요와 신문기사, 인터넷 댓글이나 메일 등을 섞어 몇 명의 시인들이 해체시라는 새 지평을 열었듯(지금은 소강상태인 것 같지만), 이 시인의 이 희시(戲詩)가 새로운 형식의 물꼬가 될지.
(2008년 문학과 창작 봄호)
첫댓글 어린시절~~저 어린 시절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전문화되고 다양화 되어 갈수록 동질성이 없으면 배척만 하는 우리아이들의 어린시절이 아프지 않을까? 먹구름 시가 지어지지않을까 염려 되면서 행복한 어린시절 추억에 감사해 봅니다^^
천안 포근이 김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