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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단편소설]
구달서의 꿈
김 익 하
계명축시(鷄鳴丑時). 닭은 홰를 치며 울었다.
예로부터 일러오는 말에, 새벽에 맨 처음으로 홰를 치며 우는 닭소리는 모든 잡귀를 몰아낸다고 했다. 잡귀란 무엇인가. 마(魔)를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그 마가 끼면 행보는 또한 어떠한가. 행보란 바로 나아감이 근원인데, 마가 끼면 나랏일이건, 개인사건 모두 뒤틀어지고 뒤꼬여 될 일도 뻥뻥 터져나가 오히려 퇴영(退嬰)하기 십상이다. 숨차게 달려가도 앞선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고, 네 발로 뛰어가도 상류사회로 진입하기는 요원한 판국인데, 마가 끼면 뒤끝은 불 보듯 자명하지 아니한가.
한데, 누대를 거쳐 마를 축원하는 무리가 있었다. 곧 미욱한 자들을 이름이다. 막말과 욕지거리로 인간의 품격을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떨어뜨리고, 간특한 이간질로 미혹(迷惑)한 자를 더욱 미혹하게 만드는 위인들을 말함이다. 그런 무리들은 기회만 닿으면 나랏돈을 뭉텅 베어 먹고,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아무데서나 내 배 째라 드러누우며……, 또 똥 찌기가 낀 엉덩이를 까발리며, ‘내 모양이 좋지?’ 고런 개망나니 짓을 저질러놓고, 그것이 실시간 1위로 온라인에 머릿글로 떠오르면 승천한 듯 기고만장하는- 그런 쓰레기와 같은 위인들의 귀문에도 닭 울음소리가 어찌 들리지 않았겠는가.
그랬다. 사람들이 닭대가리라고 폄하(貶下)했지만, 닭은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 분명 개성이 넘치게 울었기 때문이다. 그도 신년벽두 제 시간에. 그래서 그런가. 계사년(癸巳年)이 열리자, 뒤틀려 배배꼬였던 일들이 서서히 풀려가기 시작했다. 물을 보낸 비닐호스가 접혔던 부분이 쫙 펴졌다. 그때 호스 끝에서 터지는 물줄기를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고 느낀 감정을 바르게 표현할 능력은 있는가. 물길이 제 갈 곳으로 흘러가 기갈을 풀었다든가, 아니면 가뭄의 한 곳을 해갈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가슴에 통증이 올만큼 짜릿한 쾌감으로 신음을 뱉어내야 제대로 된 인간의 정서일 게다. 그런 반응이 있어야 닭울음소리가 때맞춰 제대로 퍼져나간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결과를 미리 알고, 그곳으로 가라면 한 사람도 갈 희망자가 없다는 데에, 구달서(具達瑞)도 동의하는 바다. 회상하기조차 끔찍했던 2012년 지망년(至亡年), 삶의 바닥까지 내리박혀 소태맛처럼 쓴맛을 단단히 맛본 그에게 대운이 열리는 조짐이 분명 보였다. 일생에 세 번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그 행년(幸年)이 몹쓸 삼재년(三災年)을 몰아내고, 비로소 찾아온다는 게 아닌가. 그런 반문이 가능하다면 이제 행복에 겨워 뛸 일만 남았다.
작년만 해도 구달서는 그랬다. 매사에 될 성싶었던 일이 성사직전에서 흐지부지 틀어져나갔기만 했었지 않았는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일을 그렇게 그르치는 줄 알았다. 이를테면 분명 마가 끼었던 게다. 그럴 때마다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마치 그 허탈함을 채우기라도 하듯, 아내의 짜증에 귀까지 틀어막고,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마신 술은 얼마나 되며, 또 폭풍처럼 터져 나올 울음을 명치끝자리에 묻고, 어금니 아래에서 삼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구달서는 이따금 답답함을 털어내고자, 주변 야산에 오르기도 했다. 생업전선에서 물러난 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 야산으로 산책을 하다보면, 찢어진 채 흩뿌려진 로또복권의 조각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 45개 숫자의 연결고리와 파지(破紙)가 된 꿈 조각을 서로 꿰맞추며 조합했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구달서는 그 종잇조각들을 볼 때면 사행심(射倖心)이 찢어진 게 아니라 희망이 찢긴 거라고 단정했다.
그렇게 난마(亂麻)처럼 얽히고설킨 매듭에 이제 실마리가 잡힐 모양이다. 이미 몸으로 와 닿는 느낌부터 예전과 사뭇 다르다. 그건 인생살이 경험의 감각에서 오는 예감이다. 옆으로 스쳐 지나치는 자장면 철가방청년의 오토바이 엔진소리부터 느낌이 다르지 않는가. 걸음새가 빠르고 얼굴빛이 불다리미가 지나간 듯 활짝 펴진 채, 그늘마저 없이 밝다.
그런데 구달서에게 가장 희망적인 사건이 터졌다. 연말에 제출해두었던 빌딩건물의 종합인테리어 시설에 대한 공사견적을 검토한 건물주로부터,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도 동시에 터진 2건의 공사비가 개략 6억 8천만 원은 넘어설 듯했다. 작년의 실적에 비하면 신년벽두에 벌써 30%를 달성한 셈이다. 이런 추세로 유지된다면, 연말이면 개업한 지 15년 이래로 최대의 성과를 낼 게 분명해 보인다.
아예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는 발주처의 연락을 받고, 구달서는 그동안 감원시켰던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회사가 어려워 내보낼 때, 퇴직금도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했다. 당연 서로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붉혔었다.
“사장님! 밀린 상여금은?”
추석 때 밀린 한 번의 상여금마저 정리하자는 소리다. 직원들 가운데 제일 꼬마도 ‘사장님 지금 우리들의 판단에서는, 저희들이 기다릴 수밖에 없네요.’ 그렇게 위로의 말을 던졌는데, 그 말이 채 식기도 전에, 명색이 과장이란 놈이 그런 투로 구달서를 압박해왔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준비되면 통장에다 넣어 주마.”
“언제쯤인지, 확답을 주셔야 저희들이 기다릴 게 아닙니까?”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되었다는 불만이, 사장에 대한 불신으로 바로 이어져 말투가 불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딴은 피해자라 여겨서 여차하면 맞보기라도 할 기세다.
“한 달 안으로 해주마.”
확신이 서지 않아 어려운 일이지만, 끝끝내 대답을 듣고 일어서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내는 놈에게는 생략할 수 없었던 언질이다. 뒤끝을 그렇게 사정하듯 끝냈던 게다.
이제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데, 그 일이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옛 직원들의 소재를 수소문하는 한편, 직원모집을 병행키로 했다. 벼룩신문에다 모집공고까지 냈다. 미끼의 비밀을 알아차린 떡붕어처럼 구직자가 예전처럼 모여들지 않았다. 며칠 동안 참다못한 구달서는 벼룩신문의 영업담당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떻게 한 사람도 연락이 없습니까? 끄트머리에다 올려서 그런 게 아닙니까?”
그렇다. 조금 따지듯, 조금 사세(社勢)를 빈정거리듯 정곡을 찌르려 했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연락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요?”
알아차렸단 말인가. 인사성도 밝고, 뒷말이 솔직하면서도 나직했다.
“예, 어찌된 겁니까?”
승복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공세수위를 유지해야 했다.
“구직자가 없는가 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사장님. 요즘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광고를 의뢰하는 게 구직자보다 구인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그것이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해외노동력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해외노동력?! 허어 컥!)
광고의 의뢰를 받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데에 민망한지, 아예 큰 판을 벌려 말 보시(布施)하려 들었다. 자기주장을 펴기 위해선 상대방이 파고들어올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를 터득한 듯하다. 구달서는 뽑으려던 칼을 칼집에다 감춰 둘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연장광고하기로 의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예전 임금(賃金)에서 더 올려주더라도 퇴직했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오는 게 대책 가운데 상책이라 여겼다.
같은 나이, 같은 처지로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있었다. 농담은 잘하지만 술 한 잔 걸쳤다하면 아무데나 곯아떨어져 코고는 강주태(姜柱泰) 사장이다. 사업시작 전까지 병무(兵務)관련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터라, 사업에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인 입장이기도 했다.
IMF경제대란 때, 연쇄부도를 맞아 죽느니 사느니 갖은 홍역을 치러내다, 겨우 소생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수술대에 눕혀 속을 들여다보면, 그곳에서 검정덩이처럼 탄 냄새가 났을 거라고 제 입으로 뱉어낸 사내다. 모두들 재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유약하게 보이기만 했던 강주태는, 처참한 포연(砲煙)의 참호에서 일어서는 소대장처럼, 부도로 만신창난 그의 사업장에서 툭툭 털고 거연히 일어섰다. 바둑 아마 2급답게 대마(大馬)를 기사회생 시킨 거였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구달서가 한마디 했다.
“참나무가 강하다 해도, 가벼운 오동나무나 휘청거리는 버드나무보다 못한 거야. 이번 일은 자네가 부도를 맞고도 일어선 것은, 버드나무와 같은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나에게 유연성이라?”
“본인은 모를 일이지. 부도를 낸 사람에게는 과격하게 대하기보다, 위로를 하면서 해결을 촉구했고, 물품대금을 받으러 온 업체에게는, 피하거나 숨지 않고 반드시 갚겠다고, 신뢰를 보여 오히려 재기하도록 도와주게끔 동정심을 유발케 하는, 그 유연성 말이야.”
“내가, 그렇게 보였었나?”
“암, 내가 이번 기회에 강 사장한테 한 수 배웠어…….”
한 때 그렇게 부도로 안은 빚 때문에 공장 문을 닫고 세상사람 이목이 닿지 않은 곳까지 도망가고 싶다던 강주태도, 요즘 툭하면 한다는 소리가, 잠 좀 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전화를 걸어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어이, 구 사장도 그렇게 바쁘나? 난 미칠 지경이야. 며칠째 직원들이 철야를 하고 있어. 그런 형편이니 나도 출퇴근을 못하고 있어. 사무실에다 아무래도 간이침대라도 놓아야지 이거 안 되겠어.”
“간이침대를 놓겠다고? 좋은 생각이야. 접이식 라쿠라쿠침대가 사무실에는 제격일 거야. 그런데 바쁜 게, 정말 그 정도야?”
“정신없어. 어떨 땐, 돈도 귀찮아. 잠 좀 푹 잤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아직 나는 준비 중이니까, 그렇게 바쁘지 않아. 그런데 풀려가는 조짐이 예사조짐이 아닌 것만 틀림이 없어. 언제 한 번 만나 한잔하자고. 아무리 바빠도 술집의 술도 팔아줘야지.”
“그래, 그렇게 하자고. 내가 내일 창원으로 내려갔다가 3일 후에 올라오는데, 와서 전화를 하지. 그때 보든가?”
“오케이! 그러자구.”
전해지는 뉴스대로 침체되었던 시장이 가파르게 활황을 타기 시작했다. 마른 장작더미에 불붙은 기름이 옮겨 타는 격이었다. 창고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재고상품들이 바닥을 드러내며 매진됐다고 중소기업 사장이 입을 대구입만큼 벌려 인터뷰에 응했다. 너도나도 먹고 살겠다고 식당을 차렸던 사람들에게도, 돌아서며 놓았던 ‘도움의 손’이 다시 잡자고 뻗어왔다고 신명이 나 있었다.
우리들이 잘 가던 신천동 먹자골목 안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던 털보아저씨는, 그곳을 한 번 스쳐지나간 사람들에게 괴짜라고 잘 알려진 사람이다. 경제 불황으로 손님이 줄어들자, 선거를 잘못했다면서 D데이를 잡아 솥을 뽑아 해머로 내리쳐 구멍을 내면서 단언을 했다.
“이제 밥장사를 안 할 거다. 내 더러워서……. 장사를 잘되게 해준다 해서 표를 주었더니, 제 뱃속을 채우느라 굶어죽는 지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지. 세상이 온통 사기꾼들뿐이야. 그런데 밥도 안 팔리니 똥구멍을 꿰매겠다는 게 아니야? 낸장맞을…….”
잘 나갈 땐, 제 능력이라고 뽐냈던 모습과는 생뚱맞았다. 그런 심보로 독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토요일이면 중뿔나게 낚시터로 달려가곤 하던, 그 털보아저씨도 밥장사를 다시 하겠다면서 멋쩍은 웃음을 달고 먹자골목에 며칠 전에 나타났다. 새로 솥을 사서 걸었는가 하면, 손님 맞을 채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풀어 광고전단지를 몇 차례 뿌렸다. 그러고 새 솥에다 쌀을 안치고 물을 부어 따끈한 밥을 본격적으로 지어내기 시작하자, 먹자골목에 다시 불빛이 번쩍거리고 인파가 미어터지게 북적였다.
그런 바람이 서울에만 부는 게 아니었다. 지역개발 현안에 외부세력의 충동질에 의해 ‘도끼상소[持釜上疏]’까지 서슴지 않았던 지역이기주의 님비들이, 하루아침에 주의주장을 180도로 바꿔서 이제는 쓰레기 매립장과 화장터를 유치하겠다고, 쇠스랑까지 꼬나들고 연일 앞 다퉈 길거리로 배짱 좋게 나섰다. 아니 한 발작 더 내디뎌 지역 차별화하여 불이익을 준다고 둘러대며, 말과 처신을 바꾼 처사는 남의 일이듯 여겼다. 어른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처신하니, 그들의 품새를 배워 익혀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거칠게 마주 삿대질하는 풍조도 한 이유가 될 만했다.
다른 지역의 그런 소식을 접한 원전예정지 군수(郡守) 나리는 이제는 단안을 내릴 때가 왔다고 작심했다. 그동안 원전유치에 찬·반 양론을 저울질해오며, 차기의 재출마에 대한 계산을 치밀하게 해왔던 군수다. 주민들의 여론도 주변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했다. 정부안을 수용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원금에 솔깃했던 여론도 이웃나라 원전사고에 하루아침에 적극 반대로 냉혹하게 돌아섰다. 민심이란 언제나 아주 하찮은 흐름을 타고 소용돌이 형국으로 돌변할 만큼 그렇게 유동적이다.
군수 자신의 입장도 산업국장(産業局長)이 물을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유치해야 공약했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재원이 확보되지 않겠어, 남 국장?”
“원전사고가 보도되기 전까지는 분위기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지금은 반대로 돌아섰겠지? 내가 어느 쪽에 서는 게 유리한 것 같아, 남 국장?”
“글쎄. 그게 말입니다.”
“남 국장! 여론조사를 다시 한 번 해보자구.”
“예,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십시오. 군수님.”
여론조사만 벌써 여섯 번째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60대 40의 비율로 매번 바꿨다. 바뀔 때마다 군수는, 그 40이란 추종자들을 버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수‧진보세가 뚜렷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세 명이 비등한 인물로 경쟁할 때는 당선을 만들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군수는 며칠 이런저런 여론을 살피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차차 이웃나라 원전사고가 국내 휘몰아치는 이념정쟁으로 묻혀가고 있는 듯했다.
자고 나면 활황의 뉴스에 기대어 지방마다 성장 동력으로 무엇을 한다, 어떻게 한다고, 언론플레이를 보기 좋게 하고 있었다. 인터넷과 방송이 여론을 주도하는 구도에서는 그런 언론플레이가 기대치 이상의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군수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때에 한 방 터뜨리지 않으면 주민들의 무서운 시선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언제나 앞에서 손을 내밀며 늘 웃고 있는 주민의 환대, 그것은 보기와 달리 소매 안에다 매서운 칼날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군수 자신도 잘 숙지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차점낙선(次點落選)한 조직에서 늘 그물을 치고, 이쪽이 걸려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는가. 드디어 군수는 결심을 굳히고, 산업국장을 불러 주민대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지시했다. 군수는 여론몰이를 할 작정이었다.
「군의 재도약을 위한 합동토론회」, 명분은 그러했지만, 원전유치를 위한 바람을 장만하려고 펼친 마당이다. 불땀을 좋게 하자면 풍구질을 잘 해야 하는 법, 풍구잡이인 주제발제자와 토론자에 원전유치 찬성자를 압도적으로 많이 배치했고, 사회자로 하여금 반대자의 말이 길어질 경우, 말허리를 자르라고 똑똑히 일러두었다. 토론회는 군수의 의도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원전유치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군수 입장에서는 잘 데워진 음식, 식을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군수는 이튿날, 지역방송시간에 출연하여 기어이 한 방 보기 좋게 터뜨렸다. 원전반대론자들이 펀치를 내밀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군수를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란 걸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군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군민 여러분의 압도적인 원전유치 찬성에 저는 어제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를 그렇게 도와주려고 애쓰시니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맡기신 군수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그렇게 서두를 떼면서 자신만만하게 연설을 했는데, 자신의 임기 내에 남은 임기를 걸고 원전을 유치하겠으며, 조건부로 지급되는 지원금으로 공약으로 내건, 주민 편의시설과 군립 유아원을 짓고, 또 숙원사업인 종합병원을 유치하여 복지에 힘쓸 것이며, 공공공익사업을 늘려 일거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鶴翼陣)처럼 물샐 틈도 없이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제 승리를 거둬오는 일만 남았다.
나라 안의 여러 곳에서 일거리가 늘어나자, 사회 흐름의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늘 북적였던 노숙자의 집이 텅 비어 무료 급식하던 부부가 직종변경을 하기 위하여 사회복지과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소에 입소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다른 일을 하려니 머리부터 북북 긁혔다.
“유일무이하게 밥 짓는 게 배워 익힌 기술인데, 밥 짓는 대신 다른 일을 배우려니 골머리부터 아프구먼.”
“그래도 노숙자가 없는 세상이 됐으니, 얼마나 좋아.”
영등포역장이 오랜만에 환히 웃었다.
영등포 역사에 길게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펴진 박스조각도 보이지 않으니, 할 일이 반으로 줄어들은 듯했다. 사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아니 퇴근해서도 항상 신경이 쓰였던 일이었다. 그런데, 역사 주변에 넘쳐나던 노숙자들은 구인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임시직으로 취업한 역사 안전요원이 하릴없이 빈둥대다가 대우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 갔지만, 말리려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역장은 그들의 이직을 위하여 외상까지 그어가며 술을 사주며 좋은 세상이 왔다고, 핸 소리를 하고 또 하여서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웠다.
또 새벽 인력시장에서 인력을 구했던 건설업의 하도급업체들은 승합차로 동대문역, 영등포역, 남구로역으로 돌았지만, 열을 구하려다 다섯 밖에 구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넘쳐났던 게 인력이었다. 기능을 갖춘 형틀공이나 철근, 조적(組積), 미장[泥匠], 타일, 용접(鎔接)뿐아니라, 철거, 이삿짐, 준공청소, 등 잡부들까지 필요한 인원을 채울 수 없었다. 달라는 대로 노임을 준다 해도 인원은 불어나지 않았다. 사람도 구하지 못한다고 감독으로부터 불벼락이 떨어져도 형성된 인력시장의 사정이 딱히 그러하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아니나다르랴, 출산정책이 비판의 핵으로 떠올랐다. 국력을 길러내는 원동력 가운데 주요한 요소의 하나는 인구인데, 선진국으로 진입하자면 자국의 인구가 1억을 넘어서야 하지 않느냐는 게다. 자녀의 훈육에 부담을 느껴 저출산(低出産)으로 이어지다보니 당장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토론회마다 출연자들이 핏대를 세우며 떠들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아동에 대한 교육정책의 로드맵 부재로 자녀의 훈육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저출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라고, 입에 거품을 내뿜으며 단언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이론을 수정한 것이다. 세태의 흐름에 야합하기 위하여 서둘러서 자신의 학위논문 골간까지 뒤집은 게다.
그러나 그것이 부족하다해서 인력이란 당장 토용(土俑)처럼 만들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없는 지도자를 우두머리로 하는 민족의 역사는 늘 그런 전철을 밟아왔던 것이다. 국민이 10년을 걱정할 적에 지도자는 100년 뒤를 걱정해야 명실상부한 선진국대열에 오를 수 있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기에 역사의 우(愚)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변고인가. 그동안 종묘 앞 공원에 넘쳐났던 노인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특히 6·70 대 노인들까지 솎아낸 듯했다. 할 일이 없어 장기알을 팔이 아프도록 두들기던 사람들이고, 늘 취기에 몽롱하니 혼쭐을 놓았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는데, 그런 사람조차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인들만 간혹 다문다문 눈에 띌 뿐이다.
아파트나 빌딩의 주차장에서 경비일을 하던 젊은이들이 산업현장으로 더 비싼 급여를 받으러 몰려가자, 그 자리로 6·70대 노인들이 진군해 들어갔다. 진군이 아니라 쳐들어갔기에 진격이 맞다. 예전에 홀대를 받았던 처지에서는 당당한 진격이었던 탓이다. 불황이어서 인력이 남아돌던 시절에는 노인병의 부담 때문에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한 채 내침을 당했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지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모셔가는 판세가 됐다.
“나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여. 그러니 젊은이들이 내는 세금을 축내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 안심을 하라고 해야겠지. 노인들에게 무료로 지급되는 전철교통비, 위락시설의 입장권, 보험혜택을 없애고, 공평하게 세금을 내자고 소릴 칠 때 무안까지 했는데, 이제 부담감이 조금 덜하네.”
“떼돈이야 벌진 못하겠지만, 몸에 힘이 남았는데, 그냥 논다는 게 얼마나 국력의 낭비인가? 지레 그런 게 보람이 있는 게지.”
“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네. 아직 복지에만 의존하기는 일러.”
“누가 아니래. 선거 때 표 얻자고 뻥 한 번 쳐본 소리인데, 속아도 단단히 속았지. 사람들은 일류국가나 된 듯 정부에서 베풀어 줄 것에만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게 만든 것도 책임져야 하는데, 끝난 뒷면 언제 그런 소리를 했느냐고 뻔뻔해지지.”
“그런데, 요즘 같은 추세라면 10년 이내로 일류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 것이네.”
“그게, 그저 꿈만 같았던 일인데, 이제야…….”
죽어 있던 사회의 심장이 투약을 한 듯 펄떡펄떡 뛰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칼바람소리가 났고, 경계를 풀어낸 얼굴들에는 넉넉함이 가득했다. 천혜의 환경을 갖춘 나라에, 최고의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회-그런 이상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구달서도 확신했다. 그것을 이루어내는 세대는 선택받은 세대임이 분명했다.
정작 지난해는 구달서에게는 살림을 꾸린 이후 가장 어렵고 힘든 한 해였다. 경기침체에 따른 불황에서 회사조직을 줄이고 경비를 최소화했다. 당연히 지출을 줄이다보니 생계보장형 보험과 저축도 정리해야 했고, 여러 개였던 신용카드도 한 개로 줄였다.
아내도 나름대로 외식을 금하고 반찬도 일탕삼찬(一湯三饌) 이내로 할 만큼 식비도 아꼈다. 자동차는 10부제에 묶어 놓고, 어지간한 이동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회사나 가계(家計)를 줄이는 일이란, 늘리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던 한 해였다.
그런데 올해는 어떤가. 구달서의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혼기를 훨씬 넘긴 딸에게도 햇볕은 밝고 따뜻하게 쪼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내애가 따라붙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딸에게 곱지 않는 시선을 던져가며 한마디를 내던지려 하면, 그의 아내인 안성댁이 눈짓으로 말리면서 귀엣말을 했다.
“이런 눈치도 없는 양반 보소. 이제 남자애가 있는가 봐요. 분위기가 팍 익을 때까지 당신은 잠자코 계세요. 설혹 80점짜리라도 100점으로 쳐드리세요. 너무 고를 생각일랑 아예 말고. 알았죠? 결혼은 딸애가 하는 거예요.”
그런 지 얼마 전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르랴 아침에 딸애가 출근하면서 구달서에게 주저 없이 말문을 열었다. 얼굴에서 고민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 이번 주말 시간을 비워 놓으세요. 그날은 술도 금하시고요. 알았죠?”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을 던지고 나가는 딸을 바라보는 구달서는 눈 밑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사실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딸과 마주 서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 오던 구달서다.
딸애는 안팎으로 속을 태웠었다. 특히나 병적으로 외모에 연연해서 입을 열었다 하면, 성형수술을 한다고 사단을 달았다. 마치 혼기가 늦어짐이 외모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는 눈치였다.
구달서가 보기에는 문제될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키가 조금 작고 살집이 다소 넉넉할 뿐 사지, 아니 몸 안팎으로 멀쩡하기만 했다. 그런데 딸애는 늙어지면, 으레 그리될 눈까풀의 주름을 한줄 더 만들고, 콧마루를 거두어 올리며, 턱뼈를 깎아 내야 시집을 제대로 갈 수 있다고 생트집을 부렸다. 또 끝내는 허벅지살도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고 눈물을 짜냈다. 그러다 종래는 눈까풀수술은 했다. 그만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슴을 돋워야한다고 버텼다.
구달서는 완강히 반대를 했다. 제어미도 시집 올 때는 숫제 빈대가슴이었다. 그러더니 임신을 하자 유선(乳腺)이 살아올라 빵빵해지는가 싶더니 아이를 둘 낳아 길러낸 지금, 여름철이면 땀띠가 돋는다며, 곧잘 선풍기 앞에서 거북스럽게 걷어 올리면서
“에이고 이 웬수 같은 거. 익는 과일처럼 뚝 떨어지기나 하지.”
그리 푸념하면서 근린공원의 도보트랙을 다섯 번 돌자면, 그것도 이제 짐이 된다고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지 않는가. 딸은 필시 제 어미를 닮을 터, 가슴께에 그리 애한을 품을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딸이 외모에 대한 푸념을 접고, 이제 출가해 여자의 본연의 길로 나가기를 결심한 게, 딸 둔 부모에게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또 있으랴. 웃고 또 웃어도 웃음은 바닥이 나지 않았다.
또 아들아이.
이놈 또한 올해 들어 출발이 좋다. 믿을 수 있는 소리인지 몰라도 신년이 되자, 쌀값 보다 더 비싼 담배를 끊겠다고 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는 놈이다. 오죽 열심히 태워댔으면 제 어미가 ‘숯궂이’ 라 명명했겠는가. 그 금연결심이 가상하다 싶었는데, 이력서를 보낸 곳에서 채용할 의사가 있으니, 사람을 한 번 보자는 전화가 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버지를 부양하느라 숨 돌릴 사이도 없을 나이인데도, 구달서의 부양을 받아오던, 시쳇말로 <캥거루족>의 주제인데도, 담배연기만 자욱한 제 방에 틀어박혀 버전-업 되어 출시된 휴대폰에 열광하는 게, 이놈의 유일무이한 일과고 취미다. 제 말마따나 백방으로 보낸 이력서를 모으면, 제 방에 도배를 해도 남을 만큼 할 짓을 다했다고, 취업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고 있었던 터다. 그런데 이제 취직이 될 가능이 있으니, 이 또한 신명이 절로 나는 일이지 않는가.
세상에는 이변도 간혹 있는가 보다. 어젯밤, 눈이 내려야 할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로는 하늘이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지, 천둥이 치는가싶더니 무섭게 벼락이 내리쳤다. 죄 진 자가 똥줄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 강렬했다.
아침 뉴스시간에 막말과 욕설로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렸던 전국구 국회의원이 원인모를 병으로 급사했다는 뉴스가, 일기뉴스보다 앞섰다. 사인(死因)은 돌연사라고 했으며, 사후에 남긴 것 가운데, 유족에 대한 기사보다 남긴 수억 원의 유산의 성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해설했다. 다른 채널에서는 세상만사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사회자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전한다면서 기사를 전했다. 손이 퇴화하고 입이 비례적으로 커진 시인(詩人)의 희귀병에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거센 찬반의 논란이 일고 있었다고 해외토픽으로 뽑았다.
참, 그러고 보니 지금 진행하고 있는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조금 늦어진 연두기자회견이기도 했다. 올해는 국회에서 간단히 연설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경제 활황에 따라 전반적으로 국운이 되살아나자, 서둘러 마련된 것이다.
대통령은 모두연설(冒頭演說)에서 분명 그랬다. 우선 만난(萬難)의 한 해를 보내게 해서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했다. 신충(宸衷)을 말한 것일 게다. 국민을 괴롭히는 두정(蠹政)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여러 대목에서 언급했으며, 난의포식(暖衣飽食)이란 사자성어를 선택하면서 국민이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도록 하는 게 위정자의 몫이라 했는가 하면, 또 국치민욕(國恥民辱)이라는 용어도 채용하여 나라를 수치스럽게 하고 국민을 욕되게 하는 게 대통령의 길이 아니라고 언급할 땐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되어 위민(爲民)하겠노라고, 외친 사람도 막상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대통령이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는 데만, 급급하여 민의(民意)를 외면하는 일에 항상 부당함을 토로해 온 구달서에게, 그런 말은 충격적이기 보다 마음을 저리게 하여 눈물이 나오게 했다.
그 뿐인가. 대통령은 또 그랬다.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벌어들여 낸 혈세(血稅)를 받는 집단 가운데 가장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종사자가 국희의원인데, 그 사람들을 뽑은 여러분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선거철만 되면, 어리석어지는 국민을 심히 나무랬다. 또 그랬다. 옛날보다 깊이 배워 문맹에서 벗어나 알고 느낌을 깨친 국민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점점 낮아지는 인성의 질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가벼워지는 국민의 자질에 대한 앞일을 진지하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가장 감격스럽게, 이런 말도 했다.
“국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의 손아귀는 작년 한 해 동안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대통령인 제가 그 빈 손아귀에다 일을 아니, 희망을 쥐어드리겠습니다. 기닉(饑溺)한 국민이 없도록 부찰(俯察)의 정치를 기필코 펼치겠습니다. 여러분! 저와 같이 양 손을 불끈 쥐어 봅시다.”
구달서도 그런 광경에 감격하여,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일할 힘과 의지가 있는데도, 빈손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가를, 작년 한 해 동안 뼈저리게 느껴왔던 탓이다. 이제 이 나라 국민이 된 게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다. 구달서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아귀를 거듭 불끈불끈 말아 쥐었다.
약장사 구경을 갔던 앞집 할머니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듣고 있다가, 구달서의 점심을 챙겨 주려 집으로 돌아온 안성댁은 부엌에서 음식을 챙기다 말고 안방으로 향했다. 집안이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밖으로 나간 게 분명한데, 집안에서 인기척을 내고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요즘 들어 부쩍 아침나절에도 소주를 마셔댔다. 인테리어사업에 불황이 닥친 처음에는 절대 낮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불황이 더 깊어진 요즘에는 수금을 미루고 있는 건축업자인 윤 사장과 언성을 높여 전화를 하다간 얼굴을 붉히고 나면, 시나 때에 상관없이 소주를 마셔대곤 하였다.
안성댁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구달서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은 왠지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낮잠이 너무 이를 뿐더러 잠 또한 깊은 듯싶었다. 구달서의 잠을 깨우려던 안성댁은 이내 생각을 달리 먹었다. 지레 낮잠을 깊이 자면, 진작 자야 할 밤 시간에 옆에서 부스대는가 하면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옆 사람의 잠자리까지 망치는지라 깊은 낮잠은 항상 말려왔었다. 그러나 안성댁은 구달서의 몸에 가려던 손을 거두어 들였다.
오늘따라 잠들어 있는 표정이 종전과는 판이했다. 술을 마셔 벌건 얼굴빛으로 코를 심하게 골거나, 신음을 킁킁 뱉어 내며 자는 잠이 아니라, 온화한 얼굴에 무엇이 그리 좋은 지 히쭉히쭉 웃기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분명 꿈을 꾸고 있음이 분명한데, 길몽인 듯 행복해 보였다. 꿈으로 꾸는 행복은 분명 정복(淨福)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웃다가 이불 밖으로 내놓은 두 손아귀를 불끈불끈 움켜쥐기까지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자주 비어 있던 손아귀였다. 결혼한 이후, 아니 성장하면서부터 쉴 사이도 없이 일을 움켜잡던 손, 살림을 꾸리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길러낸 손이었다. 종국에는 텅 비운 채 세상을 하직할 손이지만, 아직 아귀의 힘을 놓아서는 안 될 손이기도 했다.
안성댁은, 그리 행복에 겨워 주먹까지 불끈불끈 움켜쥐고 자는 구달서의 잠을 정말 깨우고 싶지 않았다. 아니 팍팍하게 사는 세상이라서 꿈이나마 행복하게, 더 길게 꾸도록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다. 구달서의 한 해를 옆에서 지켜볼 때,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또 그런 고통을 분담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이 더 한탄스러워 남편 몰래 눈물을 감추지 않았던가.
이 시간만큼은 행복하게 잠든 구달서를 푹 자게하고 싶었다. 안성댁은 마치 구달서의 행복한 꿈이 영원히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듯 이불귀를 꼭꼭 여며주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