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面舞蹈會
─가면무도회─
중국학부 2010260536 박준태
장자(莊子: B.C369?~B.C288?)는 이름이 주(周)이며,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蒙: 지금의 河南省 商邱市 동북쪽으로 추정)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칠원(漆園: 지금의 山東省 河澤縣 북쪽 또는 지금의 河南省 商邱市 동북쪽이라고도 함)의 하급관리를 지냈으며, 초나라 위왕(威王) 시대에 활동했다고 알려졌을 뿐이며, 언제 나고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맹자와 비슷한 시대로 조금 뒤에 활동하였다고 추측할 따름이다. 현재 통용되는 『장자』는 모두 33편으로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내편만 장자가 직접 썼고, 나머지는 4세기의 진(秦)나라 곽상(郭象)이 지금처럼 3편으로 나누어 정리했다고 한다. 장자가 살던 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거듭되는 전쟁과 그 속에서 제자백가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돌아다니는 어수선하고 무차별적인 시대였다. 게다가 장자가 살았던 때의 송나라 임금은 소문난 폭군인 강왕(康王)으로 걸왕과 비교될 정도로 나쁜 짓만 골라 했다. 결국 주변의 제후국들의 연합으로 강왕은 살해되고 송나라는 멸망되었다. 자기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장자는 얼마나 험난한 시대를 살았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짬을 내어 서점에 들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항상 유가사상으로 대표되는 『논어(論語)』와 『맹자(孟子)』, 그리고 『삼국지(三國志)』를 복잡하고 바빠진 사회에서 인간관계 및 처세술에 접목시킨 수많은 책을 볼 수 있었다ー지금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ー정확히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ー‘노자(老子)’와 장자의 노장사상을 통해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서적들의 비중이 높아졌다. 책을 쓰고 찍어내는 사람들이 그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왜 시간이 지나면서 후자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는지 장자를 읽어보며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시대가 전국시대와 닮아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장자는 동물과 식물을 등장시켜 비유한 우화를 통하거나, 유명 인사나 훌륭한 사람을 직접 언급함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이야기해 오고 있다는 것은 수업을 통해 배웠다. 내편에서는 모두 7개의 세션을 통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소요유(逍遙遊)’니 ‘인간세(人間世)’니 각 제목 별로 뜻하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읽었다. 그 중 특히 6번째 <대종사(大宗師)>편에 와서야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아는 ‘지인’이야 말로 ‘크게 으뜸으로 본받아야 할 스승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편을 통해 특별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내 부모님, 친척들, 주위 친구들, 모두들 전부 건강하고 죽지 않으며 영원히 살 것처럼, 아니 언젠간 죽을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장자는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해준 이치로, 조물자는 나를 만들고 살아가는 수고로움을 겪게 하고, 늙어서 편안해지도록 해준다. 죽어서는 나를 쉬게 한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것도 좋고, 죽어 있는 것도 좋은 것이다. 죽음이란 변화 중 하나에 불가하다. 큰 스승인 진인이야 말로 죽음에 대해 달관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희위씨(狶韋氏), 복희(伏羲), 서왕모(西王母), 팽조(彭祖) 등 모두 이런 ‘도(道)’를 터득하여 신(神)이나 신선이 되었고, 장수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 주변의, 더 가까이는 내 손에서 무엇인가 사라진 그 공허함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은 확실하다. 도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장자의 사상을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답 없이 질문에 질문만 거듭할 뿐이었다. 옛날 그 시대의 제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천하를 통일할 것이 분명할 것이고, 부귀영화도 영원할 것이라고. ‘좌망(坐忘)’을 통해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서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장자를 포함한 도가사상이 현 시대에 주목 받는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바로 3번째 <양생주(養生主)>의 내용이다.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形─착한 일을 해도 이름 날 정도까지 하지 말고, 나쁜 일을 해도 벌 받을 만큼은 하지마라” 지금은 교사의 길을 두고 교직이수에 집중하고 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역을 하고 아직 남은 군인정신으로 학점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또 남들보다는 비교적 빨리 취업준비를 한 편이라 자기소개서에서는 항상 ‘…능력을 인정받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이런 단어를 주로 썼고, 첨삭을 받을 때에도 좋게 넘어가진 않았다. 지금 사회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남을 제치고 올라서 정상에 올라가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이자 유교에서 말하는 입신양명(立身揚名)해야 하는 사회다ー물론, 이름을 드높여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 지금은 출세주의로 변질되었지만. 이런 지금 사회는 이름이 나면 질투를 하거나, 깎아 내리려 앞이건 뒤에서건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다.
그 다음으로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로 포정이 문혜군(文惠君: 양 혜왕)앞에서 소를 잡는 이야기다. 포정은 칼로 자르지만 자르는 것 같지 않게,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듯이 움직여 소를 잡는다. 뛰어난 소 잡는 기술을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쳤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내용은 각설하고, 앞에서 이야기한 이름을 내어 유명해지지 않고 포정처럼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으로 포정을 비유한다면, 포정이 손에 잡은 칼, 소를 잡는 감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처세술은 하루 이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가사상에서는 그 노력이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만사(萬事)에 임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4장 <인간세>에 ‘지리소(支離疏)’라는 장애인이 나온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노역이나 강제징집당하는 시대 속에서 오히려 장애인인 척 살아가는 지리소가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애인인 척 하며 거짓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도 튈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말이다.
“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食, 不蘄畜乎樊中ー냇가의 꿩은 열 걸음 옮겨야 먹이를 한 번 쫄 수 있고, 백 걸음을 옮겨야 겨우 목을 축인다. 그런데도 새장에서 양육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육체적 자유보다 정신적 자유도 중요하다는 이 말은,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더미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로 힘든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위를 둘러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장자가 자신의 깊고 넓은 생각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오히려, 당시 바람직한 통치자의 이상형을 묘사한 7편의 <응제왕(應帝王)>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유명한 모 인물이 이야기 했다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고 본받아야겠다는 점들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비단 세상의 많은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조차 도가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지인(至人)이나 진인(眞人)이 아닐뿐더러, 그 경지에 이르지도 못하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에 많이 부족하며, 그 부족함을 깨닫고 채워 넣는 작업(修行)은 평생이 걸려도 못할지도 모른다. 노장사상으로 대표되는 장자를 짧은 시간 내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부터 지나가듯 궁금했던 이유를 중심으로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이해하고 느낀 부분을 위주로 짧게나마 감상문을 적었다.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ー모르겠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것인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다. 나와 장자의 첫 만남은 이 때부터다. 그로부터 잊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 동양철학 파트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대해 한 번 더 배웠다. 이 두 가지가 학창시절에 접한 장자에 대한 전부다. 과제라는 목적으로 읽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하여 장자를 읽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과제목록 중 많은 인물과 작품이 있었지만 그 중 『장자』를 선택한 내 후회 없는 나의 ‘용기’에 혼자 무릎을 탁 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이번 ‘오랜만’의 독서를 통하여, 본성을 잃지 말고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한 기분으로 변화에 순응하고 마음가짐에 따라 내 인생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리다리 학 다리 비유처럼 통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 좀 더 깊이 있게는 죽음도 삶도 모두 같이 흘러가는 강물일 뿐이란 것 또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했다.
글을 정리하려다 마지막으로 <대종사>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天之小人, 人之君子─하늘의 소인은 지상의 군자다.” 피비린내 사방에 진동하고 산을 쌓을 수 있을 정도의 시체가 나뒹구는 전국시대는 지금 21세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인 현대사회는 결국 무한경쟁 시대로 진입하였고, 그 흐름 속에 우리는 서 있다. 거기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있다. 주위를 둘러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나 자신만 돌아봐도 그렇다.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주위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모습으로 꾸미려고 유리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척, 성인군자인 척 가식적으로 언행(言行)하는 것이 그렇다. 두 번째 유리가면은 권위와 아부의 가면이다. 권위적이게 보이려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약한 자들 앞에서 자주 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인간성이 좋고, 마음씨가 좋고, 존경받기 위해 이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포장하기 바쁘다. 그 외에도 내가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쓰는 가면 등 더 많은 종류의 가면이 있을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고 순수하고 착하게 살아가면 왕따를 당하거나 자존심 상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부득이하다며 또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간다. 지금 이 세상은 무도회장이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에 자동으로 참석하고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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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 <장자>를 오늘의 문제와 지금의 자신의 상황 속에서 풀어내보였다. 이 글은 사실 일정한 통일적인 체계를 갖추지 않아 산만하다. 거기서 끝났다면 평범할 텐데, 대목대목을 이야기하며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나 현실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이러한 점이 어려운 <장자>를 어렵게 읽지 않고, 남의 말을 따라 하지 않고, 자기 대로 이해하려고 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산만한 형식이야말로 장자의 방식과 어울린다고 생각이 든다. 글쓴이가 이야기한 주제는 죽음, 출세, 처세, 스트레스와 자유, 통치자, 현실 긍정, 귄위와 허위 등이다. 이들 주제는 모두 무겁고 더 많은 사색이 필요하지만, <장자>가 띄워준 화두를 때로 가볍게 때로 쉽게 이해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컨대 죽음에 대해서 밑줄 친 부분을 보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서의 내용을 언제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점은 귀하다. 말미에서 인간사회를 가면무도회라 보고 장자가 주장한 순수성을 대비시킨 점도 흥미로운데, 비록 글이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드러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