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年代 初,
영등포역에서 여의도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전영선 사범(프로7단,작고)님과
양덕주 사범(아마7단)님이 재주가 있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던 ‘영기원’ 이
있었다.
전영선 사범님은 익히 알려진대로 어릴적 이창호 9단의 스승이다.
걸출한 이창호 9단 (당시는 초등 3학년 쯤)을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보낸 뒤여서
알려져 있던 터라, 많은 아동과 일부 성인들이 일주일에 몇 번씩 찾아와 지도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전영선 사범님이 지도대국을 둔 다음 복기까지 마치면, 양덕주 사범님이 실전
스파링으로 강철처럼 강건하게 다듬고 하는 식이었다.
그 중에 여류 최초로 아마 7단이 된 김혜순 아마 5단(당시)과 이지현 학생 (현,
여류 3단), 부산에서 개최한 ‘이붕배 바둑대회’를 우승한 홍맑은샘 (4학년 쯤)학생
등이 있었는데, 전사범님은 가끔 놀러가곤 하던 나에게 각각 2판씩의 대국을 두
어 보라고 기회를 주었다.
첫점부터 기세좋게 외목을 두던 홍맑은샘 학생은 유독 기재가 출중해 보였다.
그 후로 맑은샘 학생은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여 연
구생1조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는데, 연구생 만기 (만18세) 를 채우기도 전에
그만 연구생(16세 쯤)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아마추어 바둑대회’ 에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현장에는 늘상
아버지가 뒤따랐다.
내가 그 父子를 처음 마주친 건 부산에서 열린 ‘전국 롯데배 바둑대회’ 에서 였
는데, 나 역시 두 아이를 ‘롯데배 여류 최강전’에 출전 차 내려가 있던 참이었다.
그때 느낀 첫 인상은, 아버지로서 자식 생각하는 동병상린은 그렇다치고,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열정적이면서도 발상 자체가 새로움의 연속이엇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있어 ‘A7’ 이란 클럽을 결성하더니 종묘 (종로 3가) 앞에서 열린 ‘길거리
다면기’ 바둑 행사를 필두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봉사 활동에 앞장서기 시작
했다.
그 무렵 각종 바둑대회 진행을 맡아 한층 박차를 가하더니 급기야는, 참신하고
品格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는데,그가 바로 홍시범 (홍맑은샘 사범
의부친)씨다.
며칠 전 (2010.1.9 토)
새로 옮긴 사무실에서 「아마바둑 사랑회 신년회」가 열렸다.
바둑계 각계 각층이 참석했는데 얼만큼 다양하냐면, 인제군 바둑 협회장은 바빠
서 못오는 대신 신년회 술 안주감으로 어름 속에서 건져 낸 싱싱한 ‘氷漁빙어’를 당
일날 3시에 동서울 터미널로 보내기까지 했으니까.
『 아마바둑 사랑회 』가 점차 안정적 軌道궤도에 접어들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그 中心에 홍시범씨 같은 분의
역할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ㅡ 아마바둑사랑회 신년회 ㅡ 에 다녀와서
첫댓글 바둑황제 이창호..........17세 아마추어 한태희군에게 충격의 패배....또 바둑의 한시대가 저물어 가는것 같아요...
한태희군은 연구생 1조이며 은선이가 입단한 '양천대일도장'에서 공부 중이며 현재 부천에 살고 있습니다.
이창호가 져준거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