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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UBF 2016년 5월 8일 주일메시지
ubf 일어나 잡아 먹으라
말씀 / 사도행전 9:32-11:18
요절 / 사도행전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현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도전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로써 깊은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이 고정관념은 세계적인 생명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ubf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어떻게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허물어 주셨는가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 Asan UBF도 말씀을 통하여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눈과 마인드를 세계로 넓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변방을 다니는 베드로(9:32-43)
3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이 서울, 욥바가 인천이라면 룻다는 부평 쯤 되는 도시입니다. 욥바에서 내륙으로 17킬로 지점에 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곳에 애니아 라는 사람이 중풍병에 걸려 8년이나 누워있었습니다. 베드로는 8년간 중풍병에 걸려 누워 지내는 애니아에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베드로는 애니야가 예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신다 말합니다. 애니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에게 두신 뜻을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고칠 수 없었던 질병이 금새 떠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 이름을 영접 하였을 때 예수님의 이름 권세가 그를 질병으로부터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은 이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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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절을 보십시오.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욥바는 예루살렘 서쪽으로 60킬로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어 이름이고 도르가는 헬라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영양’이란 의미입니다. 도르가의 삶은 이름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왔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욥바에 오도록 청하였습니다.ubf
39,4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하여 도르가의 장례식이 치루어지는 곳에 도착하니 도르가의 섬김을 받았던 과부들이 도르가가 생전에 만들어주고 준 옷들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죽어 시체로 누워 있는 다비다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죽은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죽은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41,42). 4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욥바에 며칠 더 있었습니다. 이 때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유하였습니다. 룻다와 욥바로 베드로를 인도하신 성령의 뜻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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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를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욥바는 유다의 입출구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입니다. 룻다는 그 배후 도시입니다. 성령께서 베드로를 예루살렘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이방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항구 욥바로 인도하셨습니다. 욥바가 복음의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방 땅으로 나가는 크리스천들과 이방에서 들어오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욥바에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유다의 입출구 항구인 욥바에 예수 믿는 교회가 있을 때, 나가는 선교사들이 교통편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들어오는 선교사들이 도착했을 때, 영접하고 안전하게 섬기고 모셔들일 수 있습니다.
위치만 예루살렘에서 변방으로 다니게 하셨을 뿐 아니라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거하게 하심으로써 율법의 벽을 허물게 하셨습니다. 시몬의 직업은 죽은 동물의 가죽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죽은 짐승의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짐승을 키우거나 도살하는 일도 해야 했는데, 그중에는 율법에 부정하다고 규정된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두장이 시몬은 율법으로 본다면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변방에 가서 피장의 집에 유하게 하신 성령은 베드로를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율법의 벽을 뛰어넘도록 미리 준비시키셨습니다.ubf
또 한가지 배울 점은 룻다와 욥바가 복음화 되기 위하여 한 사람의 변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대규모 군중집회나 부흥회가 욥바를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룻다에서는 애니야 한 사람, 욥바에서는 도르가 한 사람을 살렸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났을 때 온 도시가 살아났습니다. 한 캠퍼스, 한 나라도 한 사람의 변화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Asan UBF가 항상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역사를 이루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2. 일어나 잡아먹으라(10:1-48)ubf
10장 1,2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군 장교가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도 욥바처럼 해변 항구입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하여 65키로 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군 장교입니다. 휘하에 약 100여명의 부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경건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로 개종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참 주인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백성들을 섬겨주었으며,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ubf
3-6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고넬료가 기도하는데 환상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환상 중에 고넬료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자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오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은 놀라운 사실을 기록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록을 읽을 때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환상이 임하는가? 어떻게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계시를 주시는가? 당시 유대인들의 상식과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자 누가는 베드로에게 환상이 임하기 전에 먼저 고넬료에게 환상이 임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의 이름을 부르며 구체적인 계시 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세 번 더! 네 번 반복하여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방인은 구원의 대상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영혼이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으며, 하늘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전면 부정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심판의 대상이라 규정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은 개종하고 유대교에 들어오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유대인으로 귀화하지 않고는 영적인 교제도, 계시도 환상도 하나님의 음성도 받을 수 없으며 주어지지도 않는다고 확신하였습니다.ubf
고넬료는 하나님의 사자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의 방향에 적극 순종했습니다. 욥바로 베드로를 청하도록 경건한 사람을 뽑아서 보냈습니다. 문제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땅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반석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도요 사도들 중에서도 대표입니다. 초대교회의 안타까움은 사도들 조차 유대인의 한계 안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부족했던 한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복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대상을 유대인으로만 한정한 것입니다. 사도들 조차 이방인에게 관심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로마 백부장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하인을 낫게 하셨습니다. 그가 가진 믿음을 축복해주시고 이스라엘에도 이만한 믿음은 없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지만,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려는 뜻이 없는 것이었습니다.ubf
성령께서는 유대세계에서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는 초대교회를 움직이기 위하여 직접 역사하십니다. 베드로에게 특별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가고 있을 때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환상이 임하였습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에게는 짐승들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시는 방향은 이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향은 베드로에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잡아먹으라 한 짐승들이 문제가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돼지, 낙타, 두더지, 거북이, 도마뱀, 지네, 독수리, 까마귀... 구약성경에서 먹지 말도록 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11:1-47과 신명기14:4-20에는 먹지 말아야 하는 짐승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기초로 먹는 것에 대하여 철저히 정결예법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와 신명기에서의 부정한 짐승을 잡아서 먹을 경우 죄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도 이런 생각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니라” 이 방향은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의 개념이 매우 견고하였기 때문에 같은 말씀, 같은 계시가 세 번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보자기와 그릇은 하늘로 올리워 갔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환상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유대인 베드로의 내면에는 이런 꺼림찍하고 부담스러운 환상이 왜 임하셨는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고한 베드로에게 성령께서는 환상과 계시의 의미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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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절을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들이 성령께서 보낸 사람들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이지만 영접하고 따라가라고 지시 하셨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의 초청을 받아 들여 함께 가이사랴로 길을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환상은 유대인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유대인들과 유대인 혈통을 받은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이 뿌리 깊었습니다. 하나님도 유대인만의 하나님, 예수님도 유대인만의 예수님이며, 성령도 유대인만의 성령, 복음도 유대인을 위한 복음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만민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주시는 반복적인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영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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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일행들은 다음날 가이사랴에 들어갔습니다. 고넬료가 정중하게 베드로를 영접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불결한 교제를 금하신 것은 맞습니다. 이방인들과 분별없는 교제를 금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써 순수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의 우상숭배의 죄악, 가나안 족의 나쁜 풍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변질되어 이방인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조차 전해주지 않는 것은 이방인 배타의식의 불필요한 확장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초대교회는 진정한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신 것입니다.
30-33절을 보십시오. 고넬료도 자신에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와 구체적인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방향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고넬료에게 임한 환상과 계시, 베드로에게 임한 환상과 계시를 서로 확인하고 나니, 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은 없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야 함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집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36-43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합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먼저 와서 예비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분입니다.
39-42절을 보십시오.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병든 자와 연약한 자들을 섬기고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사역중에서 핵심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서 고귀한 피를 십자가에 아낌없이 뿌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부활 하심으로써 능력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인생을 사로잡은 죄와 사망은 더 이상 예수 믿는 자들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장으로 오십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역사에 자신과 사도들이 분명한 증인임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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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죄 사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떤 죄인이라도 어떤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죄를 사함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전한 예수님입니다.
44-4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성령이 내려 오셨습니다. 말씀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 방언이 터졌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제자들은 이방인에게 임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놀랐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세례를 주었을 때, 성령이 임하는데 여기서는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11장 1-17절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에게 이루신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도록 하는 베드로의 역사보고입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은 베드로를 비난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역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이루신 모든 역사들을 세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성도들은 비난을 멈추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과 생명의 주님이심을 영접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볼 때, 유대인들에게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매우 견고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이 고정관념이 큰 장애물 역할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넘지 못하는 이 장벽을 성령께서 허물어주셨습니다.
인간사회에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세계에는 견고한 편견과 고정된 관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때때로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역동적인 새 역사를 방해합니다. 변화와 성장을 지연 시킵니다. 당사자에게도 손해를 끼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픔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은 있습니다. 성장과 생명역사에 장벽이 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서 나에게는 어떤 그릇된 고정관념이 있는지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넘기 어려운 고정관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캠퍼스 제자양성하는 아산 UBF가 분명하게 파악하여야 할 일입니다.
아산과 천안 캠퍼스를 지배 하는 고정관념은 ‘스펙’이 나를 취업난에서 구원해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기기사, 산업기사, 정보처리기사, 열관리기사, 환경기사, MCSE, CCNA, OCP 이공계열 자격증을 행정학과 경영학과 졸업생들도 취득합니다. 기업들이 자격증을 중시하는지 참고사항으로만 여기는지 상관없습니다. 자격증이 취업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따두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TOEIC, TEPS 영어점수를 보지 않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해외 어학연수에 가산점수를 주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습니다. 오로지 영어 점수에만 강렬하게 집착합니다. 기업은 영어점수나 어학연수보다, 영어로 일할 수 있는지 알고자 합니다. 영어로 돈 벌어 줄 수 있는지 관심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기업들의 요구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점수만 따놓고자 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철썩 같은 신념입니다.
기업에 취업하기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준비를 하지 않으므로 이런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취업 될 리가 없습니다. 언론은 젊은 청년들이 애써서 스펙을 준비하는데도 취업이 안된다며 시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며 어두운 면만 부각시킵니다.
그 다음 고정관념은 ‘공기업’과 ‘공무원’직장이 나의 인생을 편안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동안 많은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었습니다. 많은 공기업들이 사기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공기업들이 민영화된 후 비효율적인 경영을 개선하였습니다. 불필요한 인원들을 해고하고 정리하였습니다. 공기업은 영원히 직원들을 지켜주는 안전한 처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공기업 최고! 공기업에 집착합니다.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감원을 하는데, 금융기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고, 공기업이 민영화되는데, 공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이 집요한 집착, 이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이 21세기에 철옹성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UBF는 청년들의 이런 고집과 고정관념에 도전하여야 합니다.
겨울연가를 본 일본 아주머니들, 일본 여성들이 한국남자들은 모두가 배용준 같이 부드럽고 로맨틱 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태양의 후예’를 본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가면 송중기 같은 남자들과 송혜교 같은 여자들이 삼계탕 먹고 와인 마시고 아웅다웅 사랑스럽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에서 온 그대’를 따라 치맥을 먹고, ‘태후’를 따라 삼계탕 먹어봐야 한다고 하는데, 치맥먹고 삼계탕 먹는 우리는 이곳을 일컬어 지옥같은 코리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릇된 고정관념, 치우친 편견이 얼마나 허망한 것입니까! 우리는 그릇된 생각, 허망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런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집요한 집착과 견고하게 굳은 관념에서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올바른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과 영광,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배우고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관념을 깨우쳐 주실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 진취적이고 비전 넘치는 청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을 때 얻는 축복은 대단히 큽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을 뛰어 넘을 때 우리는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절망하고 낙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살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드러내는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 아산 UBF가 성령을 따라 고정관념과 여러 매이는 것들로부터 자유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뜻을 따라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온 마음으로 세계선교에 쓰임받는 Asan UBF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2016 / 05 / 08 Asan UBF
Asan UBF the 2nd Disciple Team
Asan UBF The 1st Disciple Team
Asan UBF in Kongju University
Asan UBF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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