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전다형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2002년『국제신문』신춘문예에 「수선집 근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시인의 말
제1부
연필에 대하여
용비어천가 제Ⅱ장 ─ 뿌리
청어를 굽다 1
청어를 굽다 2
청어를 굽다 3
청어를 굽다 4 ─ Y에게
다시 청어를 굽다
청어를 굽다 5
각 잡다
괄호에 대하여
채송화 우체국
지우개밥
바퀴
개망초꽃
제2부
그늘에 대하여
나팔꽃 씨 하나가
어쩔 뻔 했을까요
소리 ─ 부화
풍선의 자궁
봄비
밝은 안과
그리움은 입이 크다
낡은 피아노
537번지
중교 종묘사
아버지의 잔
불의 문장
달팽이
제3부
노을
흑진주
사람 책 ─ 난독증
별의별 꽃 축제
그늘을 팔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 반대편에 있다
계명암 가는 길
무덤에 갔는데요
끈 타령
소문
일웅도,
애벌레
짐
폐선
제4부
다림질
수선집 근처
88부동산
땅거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차이
사과를 깎다
이식
콩나물
파업
내 사랑 월내,
비를 따라가다
구서동 신(新) 서동요
국화의 향변
해설 명랑한 슬픔-구모룡
전다형 시는 어둠과 상처와 고통의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생성과 신생의 가능 세계로 나아가는 자아를 이야기한다. 생성과 화해의 지평을 찾아 나서는 도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반성과 신생이라는 두 가지 행위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반성 없이 신생은 불가능하며 진리의 광휘를 구하지 않는 반성은 단지 존재를 눈멀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생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의지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과 연관된다. 여기서 전다형 시인은 삶의 기억 속으로 회귀하지 않고 가능성의 지평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삶에 내재한 상처와 고통을 수락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생성과 화해의 공간을 열고자 하는 일이다.
청어살을 발라먹으며 용서를 생각한다
살보다 가시가 많은 청어
가시 속에 숨은 푸른 속살을 더듬어 나가면
내 혀끝에 풀리는 바다
어제 그대의 말에 가시가 많았다
오늘 하루 종일 가시가 걸려 목이 아팠다
그러나 저녁 젖가락으로 집어내는 청어의 가시
가시 속에 감추어진
부드러운 속살을 찾아가다 만나는 바다의 선물
어쩌면 가시 속에 숨은
그대 말의 속살을 듣지 못했는지 몰라
가시 속에 숨은 사랑을 발라내지 못했는지 몰라
오늘 밤 이불 속에서 그대에게
화해의 따뜻한 긴 편지를 써야겠다
가시 속에서 빛나는 청어 한 마리
어느새 마음의 지느러미 달고 바다로 달아난다
―「청어를 굽다 1」 전문
「청어를 굽다」는 전체 여섯 편으로 된 연작시다.「청어를 굽다」연작에 기울인 시인의 집중을 알 수 있다. 청어는 “살보다 가시가 많은” 등 푸른 고기이다. 시인은 먼저 청어의 “가시”에 주목한다. 가시는 타자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에게 상처로 남는 상징이다. 그런데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죽은 은유가 아니라 “가시 속에 숨은 푸른 속살”이다. 상처와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생성의 장소를 찾으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시 속에 숨은 사랑”을 깨우치는 일이 중요하다. 화해의 바다가 기적처럼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타자에 내재한 상처와 고통을 함께 인식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내 말 속에 가시를 걷어내고/그대 가시 속에 숨은 말을 찾아” “용서와 화해”(「청어를 굽다 2」)의 길을 연다. “세파를 거스르는 일은 상처투성이/그러나 상처도 무늬로 남아/...전다형 시는 어둠과 상처와 고통의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생성과 신생의 가능 세계로 나아가는 자아를 이야기한다. 생성과 화해의 지평을 찾아 나서는 도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반성과 신생이라는 두 가지 행위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반성 없이 신생은 불가능하며 진리의 광휘를 구하지 않는 반성은 단지 존재를 눈멀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생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의지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과 연관된다. 여기서 전다형 시인은 삶의 기억 속으로 회귀하지 않고 가능성의 지평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삶에 내재한 상처와 고통을 수락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생성과 화해의 공간을 열고자 하는 일이다.
청어살을 발라먹으며 용서를 생각한다
살보다 가시가 많은 청어
가시 속에 숨은 푸른 속살을 더듬어 나가면
내 혀끝에 풀리는 바다
어제 그대의 말에 가시가 많았다
오늘 하루 종일 가시가 걸려 목이 아팠다
그러나 저녁 젖가락으로 집어내는 청어의 가시
가시 속에 감추어진
부드러운 속살을 찾아가다 만나는 바다의 선물
어쩌면 가시 속에 숨은
그대 말의 속살을 듣지 못했는지 몰라
가시 속에 숨은 사랑을 발라내지 못했는지 몰라
오늘 밤 이불 속에서 그대에게
화해의 따뜻한 긴 편지를 써야겠다
가시 속에서 빛나는 청어 한 마리
어느새 마음의 지느러미 달고 바다로 달아난다
―「청어를 굽다 1」 전문
「청어를 굽다」는 전체 여섯 편으로 된 연작시다.「청어를 굽다」연작에 기울인 시인의 집중을 알 수 있다. 청어는 “살보다 가시가 많은” 등 푸른 고기이다. 시인은 먼저 청어의 “가시”에 주목한다. 가시는 타자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에게 상처로 남는 상징이다. 그런데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죽은 은유가 아니라 “가시 속에 숨은 푸른 속살”이다. 상처와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생성의 장소를 찾으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시 속에 숨은 사랑”을 깨우치는 일이 중요하다. 화해의 바다가 기적처럼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타자에 내재한 상처와 고통을 함께 인식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내 말 속에 가시를 걷어내고/그대 가시 속에 숨은 말을 찾아” “용서와 화해”(「청어를 굽다 2」)의 길을 연다. “세파를 거스르는 일은 상처투성이/그러나 상처도 무늬로 남아/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청어를 굽다 3」)는 말은 시인이 지닌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해가 사적 원한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그것은 “울음의 뿌리”(「청어를 굽다 5」)를 지닌 채 “덧난 상처”(「다시 청어를 굽다」)를 다스리며 “깊고 넓고 마음의 바다”(「청어를 굽다 3」)로 나아가는 삶의 행로와 연관된다. 개인사적인 계기에서 발원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시인은 공통의 감각으로 상승시킨다. 전다형 시인이 시를 통하여 다시 쓰려는 “생의 역사”란 바로 이처럼 상처의 “뿌리”를 탐문하면서 화해라는 마음의 시학을 일구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네가 내게 건너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을 굴리며 왔을까
파도치는 슬픔을, 말랑한 눈물을, 까칠한 별빛을,
굽이굽이 애오라지 흘러온 강물의 비린내를,
밀물과 썰물 받아 쟁이며 건너왔을,
뜨거운 화엄의 길
수 억 겹 인연을 밀어내고 싸안다 철썩이었을 길
속살은 또 얼마나 저미고 베이었을까
모가 깎이고 둥글어지기까지
바다는 눈부신 어둠을 꽃피웠다
세속의 잣대로 읽는 흠집투성이
품어온 것이 다 길이 되는 흔적들,
고스란히 받아 안은 바다의 상처가 꽃이다
흠 많은 흑진주의 사랑이 나를 흠 잡는다
점…점…점, 숭숭 구멍 뚫린 내안의 길
사랑의 능선을 돌아온 비단길
어둠을 굴리고 굴려 찾아온 연금의 길
세상 바다를 다 품고 찾아온 상처의 길
뭍으로 통하는 어둠의 눈동자를,
나는 너를 바다의 사리라 부른다
―「흑진주」 전문
“흑진주”는 시인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존재의 표상이다. “흑진주”는 어둠, 슬픔, 눈물, 상처 등 자연과 인간이 부여하는 모든 형태의 고난들을 내부로 연단하여 “상처가 꽃이다”는 역설을 던진다. 여기서 역설은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다. 이것은 생의 여러 양상이나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이치를 통합하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역설은 단지 그렇게 표현하려 한 어법이 아니며 인식과 각성의 차원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숭숭 구멍 뚫린 내안의 길”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세상 바다를 다 품고 찾아온 상처의 길”로 격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폐선처럼 침몰하던 바다는 이제 시인에게 모든 생명을 품고 기르는 기적의 우유와 같다. 그녀가 그만큼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생성과 화해의 지평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의수족 아저씨는 십 수 년째
주일만 빼고 수선 일을 했네
나는 팔 부러진 우산을 들고 찾아갔네
허름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골집 돌아서다 어둠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입간판에게 물었네
수척한 얼굴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네
꺾어진 골목으로 어둠 몇 장 굴러다니고
영문을 모르는 바람이 틈새를 드나들고 있었네
맞은편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푸른 하늘을 박고 있었네
찾아준 은혜 잊지 못할 겁니다
헛걸음하게 해 죄송합니다
삐뚤한 글씨체가 손잡이 근처 붙어 있었네
나는 발길을 돌려 건널목에 섰네
의수족 아저씨가
손때 묻은 연장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네
누가 맡겼다 찾아가지 않은 낡은 가방에
망치, 칼, 가위, 쓰다 남은 실, 지퍼, 우산대 몇
땅으로 기우는 어깨 위에서 강물소리가 들렸네
아저씨가 자꾸만 되돌아보았네
신발 밑창에 친 못처럼 총총 박혀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헛기침을 했네
수선집 근처 굵은 주름살 떨어져
뒹굴고 있었네
―「수선집 근처」 전문
이 시는 전다형의 등단작이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타자에 대한 이해의 과정을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의수족 아저씨”가 하는 일은 “맞은편 산뜻한 수선집”이 하는 일과 다르다. 삶의 고통은 그것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이들만 나눌 수 있다. 고통을 모르는 이가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적 화자는 “의수족 아저씨”의 고난과 그의 노동이 지니는 의미를 알고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의 앎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구서동 신서동요」에서)이다. 사랑은 모든 경계를 허문다. 자아와 언어와 풍경과 세계의 벽을 허문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비애감과 모든 존재를 껴안는 사랑의 힘이 만날 때 명랑한 슬픔은 노래된다.
첫댓글 윤시인님 따뜻한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언제 우리 함께 한담 나누어요.^^
ㅎ 시화전 준비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