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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8.9. 사랑 받는 사람 (17P)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현대인의성경
골로새서 3:12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친절과 겸손과 부드러움과 인내로...
새번역
신명기 21:15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는데, 한 사람은 사랑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사랑받는 아내와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가 다 같이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의 아들일 경우에, 16남편이 자기의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 주는 날에,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에게서 난 맏아들을 제쳐 놓고 사랑 받는 아내의 아들에게 장자권을 줄 수는 없습니다.
🔥 2024.6.20.목. 다시 쓰는 ‘殉命의 사람’
🔥 ‘殉命의 사람’ 100
001.예수의 사람 002.聖靈의 사람 003.믿음의 사람 004.生水의 사람 005.아내의 사람
006.子女의 사람 007.아비의 사람 008.貯蓄의 사람 009.禮拜의 사람 010.感謝의 사람
011.康健의 사람 012.散策의 사람 013.運動의 사람 014.登山의 사람 015.聖軍의 사람
016.經營의 사람 017.事業의 사람 018. 55,500,312 019.侍從의 사람 020.神癒의 사람
021.祝福의 사람 022.智慧의 사람 023.知識의 사람 024.家庭의 사람 025.祈禱의 사람
026.말씀의 사람 027.說敎의 사람 028.부흥사 사람 029.集會의 사람 030.禁食의 사람
031.恩惠의 사람 032.復興의 사람 033.비전의 사람 034.寫眞의 사람 035.自由의 사람
036.牧養의 사람 037.殉敎의 사람 038.산殉敎 사람 039.殉長의 사람 040.順命의 사람
041.逐邪의 사람 042.사랑의 사람 043.溫柔의 사람 044.기쁨의 사람 045.肯定의 사람
046.십자가 사람 047.復活의 사람 048.靈權의 사람 049.人權의 사람 050.物權의 사람
051.敎會의 사람 052.使命의 사람 053.宣敎의 사람 054.傳導의 사람 055.黙想의 사람
056.黙靜의 사람 057.靈眼의 사람 058.讚頌의 사람 059.밝음의 사람 060.泰山의 사람
061.이웃의 사람 062.弟子의 사람 063.五能의 사람 064.悔心의 사람 065.方言의 사람
066.亨通의 사람 067.聖潔의 사람 068.正言의 사람 069.讀書의 사람 070.節制의 사람
071.熱情의 사람 072.섬김의 사람 073.努力의 사람 074.禮儀의 사람 075.分別의 사람
076.微笑의 사람 077.寸刻의 사람 078.稱讚의 사람 079.包容의 사람 080.電話의 사람
081.便紙의 사람 082.自然의 사람 083.執中의 사람 084.길선주 사람 085.김익두 사람
086.이용도 사람 087.이성봉 사람 088.한경직 사람 089.조용기 사람 090.김준곤 사람
091.이천석 사람 092.김삼환 사람 093.옥한흠 사람 094.하용조 사람 095.이중표 사람
096.나겸일 사람 097.김홍도 사람 098.김진홍 사람 099.윤석전 사람 100.장경동 사람
🔥 ‘殉命의 사람’ 200
101.貞節의 사람 102.정성의 사람 103.충성의 사람 104.대접의 사람 105.定時의 사람
106.용서의 사람 107.人情의 사람 108.認定의 사람 109.必言의 사람 110.理性의 사람
111.내일의 사람 112.熟眠의 사람 113.안식의 사람 114.인도의 사람 115.친절의 사람
116.유머의 사람 117.여행의 사람 118.보혈의 사람 119.공부의 사람 120.열심의 사람
121.分手의 사람 122.능력의 사람 123.예언의 사람 124.새벽의 사람 125.쉬움의 사람
126.챙김의 사람 127.행복의 사람 128.목적의 사람 129.忍耐의 사람 130.실력의 사람
131.하루의 사람 132.최선의 사람 133.공평의 사람 134.중보의 사람 135.平康의 사람
136.평화의 사람 137.헌금의 사람 138.겸손의 사람 139.소망의 사람 140.계획의 사람
141.성실의 사람 142.진실의 사람 143.순수의 사람 144.대화의 사람 145.敬聽의 사람
146.약속의 사람 147.향기의 사람 148.결단의 사람 149.광명의 사람 150.얼굴의 사람
151.거울의 사람 152.반성의 사람 153.홀로의 사람 154.근면의 사람 155.慈祥의 사람
156.격려의 사람 157.침착의 사람 158.정의의 사람 159.용기의 사람 160.遵法의 사람
161.소박의 사람 162.정직의 사람 163.음악의 사람 164.미술의 사람 165.주앞의 사람
166.삼위의 사람 167.최고의 사람 168.위탁의 사람 169.배움의 사람 170.교육의 사람
171.魂神의 사람 172.淸算의 사람 173.극복의 사람 174.성장의 사람 175.성숙의 사람
176.순수의 사람 177.安靜의 사람 178.安心의 사람 179.존대의 사람 180.헌신의 사람
181.영광의 사람 182.눈물의 사람 183.양보의 사람 184.승리의 사람 185.성공의 사람
186.신중의 사람 187.豫備의 사람 188.救援의 사람 189.善待의 사람 190.처음의 사람
191.책임의 사람 192.指導의 사람 193.놀이의 사람 194.경건의 사람 195.친근의 사람
196.自願의 사람 197.知覺의 사람 198.감동의 사람 199.동행의 사람 200.동참의 사람
🔥 ‘殉命의 사람’ 300
201.도구의 사람 202.통로의 사람 203.일념의 사람 204.유능의 사람 205.총명의 사람
206.짧음의 사람 207.영원의 사람 208.再起의 사람 209.종말의 사람 210.등불의 사람
211.소금의 사람 212.하늘의 사람 213.의리의 사람 214.비밀의 사람 215.보답의 사람
216.인연의 사람 217.화목의 사람 218.양선의 사람 219.회복의 사람 220.수용의 사람
221.자상의 사람 222.상대의 사람 223.이해의 사람 224.열림의 사람 225.여유의 사람
226.자비의 사람 227.긍휼의 사람 228.인사의 사람 229.상냥의 사람 230.미안의 사람
231.동정의 사람 232.面前의 사람 233.神靈의 사람 234.거룩의 사람 235.능률의 사람
236.문화의 사람 237.대범의 사람 238.넓음의 사람 239.깊음의 사람 240.근신의 사람
241.端正의 사람 242.풍요의 사람 243.불변의 사람 244.나눔의 사람 245.구제의 사람
246.청빈의 사람 247.청렴의 사람 248.무욕의 사람 249.검소의 사람 250.기적의 사람
251.재치의 사람 252.효도의 사람 253.우애의 사람 254.누림의 사람 255.즐김의 사람
256.敎正의 사람 257.선물의 사람 258.돌봄의 사람 259.정확의 사람 260.취미의 사람
261.소신의 사람 262.미덕의 사람 263.센스의 사람 264.신선의 사람 265.창조의 사람
266.유일의 사람 267.해결의 사람 268.필요의 사람 269.애국의 사람 270.과정의 사람
271.비움의 사람 272.숙고의 사람 273.도전의 사람 274.신사의 사람 275.예술의 사람
276.신비의 사람 277.부요의 사람 278.부자의 사람 279.맑음의 사람 280.하나의 사람
281.풍경의 사람 282.만꽃의 사람 283.호수의 사람 284.바다의 사람 285.구름의 사람
286.햇살의 사람 287.바람의 사람 288.푸름의 사람 289.노을의 사람 290.이슬의 사람
291.풀잎의 사람 292.흰눈의 사람 293.작음의 사람 294.보람의 사람 295.우리의 사람
296.환영의 사람 297.매력의 사람 298.소중의 사람 299.지킴의 사람 300.신호의 사람
🔥 ‘殉命의 사람’ 400
301.正速의 사람 302.映畫의 사람 303.飛行의 사람 304.창조의 사람 305.纖細의 사람
306.높음의 사람 307.영광의 사람 308.닮음의 사람 309.보답의 사람 310.빚짐의 사람
311.견고의 사람 312.열림의 사람 313.화평의 사람 314.悔改의 사람 315.행정의 사람
316.컴퓨터 사람 317.무릎의 사람 318.안음의 사람 319.비움의 사람 320.감동의 사람
321.구령의 사람 322.영혼의 사람 323.증인의 사람 324.은사의 사람 325.영분별 사람
326.선포의 사람 327.환상의 사람 328.투시의 사람 329.골방의 사람 330.주목의 사람
331.소멸의 사람 332.중심의 사람 333.회심의 사람 334.주목의 사람 335.계시록 사람
336.탕감의 사람 337.염광의 사람 338.어머니 사람 339.수고의 사람 340.3 6 5 사람
341.津液의 사람 342.쓰임의 사람 343.안위의 사람 344.무욕의 사람 345.청렴의 사람
346.결백의 사람 347.교육의 사람 348.교양의 사람 349.합당의 사람 350.총명의 사람
351.슬기의 사람 352.청지기 사람 353.전문의 사람 354.기술의 사람 355.유명의 사람
356.견책의 사람 357.새로움 사람 358.偉人의 사람 359.권세의 사람 360.약속의 사람
361.행함의 사람 362.正金의 사람 363.존귀의 사람 364.저명의 사람 365.신용의 사람
366.공의의 사람 367.厚德의 사람 368.공평의 사람 369.찾음의 사람 370.
🔥 1990.8.9. 사랑 받는 사람
서울 새성교회 담임목사,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010-2940-1717
🔥 나는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되기 보다는,
남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사랑 받기 보다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제일 먼저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왜 믿음이 좋은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야 합니까?
나의 신앙이 율법적이어서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모습이기 보다는,
널리 이해하고 받아주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포근하게 감싸 주는,
사랑 받고, 사랑을 주는 모습이기를 원합니다.
나의 생긴 모습이,
나의 주는 인상이,
나의 사용하는 언어가,
나의 행동 거지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사랑 받을 만한 모습이기를 원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기를 소원합니다.
너무 까탈스럽지 않은,
좀 바보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이 나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너무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기 보다는,
때로는 파격적인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에게 이러한 파격적인 자유를
때로는 한번씩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예배를 언제나 변함없이 정해진 룰에 따라
찬송, 기도, 성경 읽기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녀와 함께 즐거운 일상의 대화를 나눈 후에,
간단히 기도할 수 있는 형태로도 진행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언제나 근엄하고, 답답하고, 침침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밝고 맑은,
일상 속에서의 즐거움이 있는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간이기에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때로는 원색적인 내 모습을 드러내긴 해도,
그래서 평소의 내 모습이 좀 망가지기도 해도,
사람들이 나를 본래의 모습 그대로
진지하게 대해 주었으면, 합니다.
기도할 때에 감고 있던 눈을 좀 떴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 사람이
나는 더 좋습니다.
그 믿음이
율법적이지 않은 사람이 나는 좋습니다.
조그마한 범죄 하나에도
보복하는 하나님을 연상하는 신앙이
나는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정죄하지 아니하고 살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나는 너무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없는 신앙인이 되기 싫습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이 참으로 좋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는
더욱 되기 싫습니다.
남에게 당하고 또 당해도,
그래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하고,
또 대하는 마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눈에 힘을 주고 남을 쳐다 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신앙이 너무 강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으면서도,
그의 일상 가운데서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신앙의 깊이를 쉬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영성의 사람이 되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겸손, 겸비, 겸허의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간구합니다.
나의 이름이 사무적인 필요 때문에
남의 핸드폰의 중간이나 끝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그의 핸드폰의 중요 부분에 올려져 있기를 소원합니다.
일 년만 지나면 버려지는 옛 수첩과 함께 잊혀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애에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의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을 제 곁에 두고 싶습니다.
밥을 굶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비를 남편의 용돈으로 선뜻 내놓을 수 있는
바가지 긁지 아니하는 아내와 살고 싶습니다.
참! 나는 그러한 사랑스런 아내와 살고 있네요.
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겨 주고,
일일이 다 채워 주는 최고의 사랑스런 아내와 함께...
삶의 매사에서
나를 늘 인정해 주고,
언제나 깊이 깊이 사랑해 주고,
나와 나의 삶과 일을 진정으로 인정해 주어 격려하는
그런 아내와 살고 있네요.
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아니할 그러한 사람보다는,
믿음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아니해도,
참 인간으로 사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신적인...’ 이런 정말 정떨어지는 단어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단어가
훨씬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마땅히 꾸중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지 아니하는 윗 분을 나는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 분의 말씀으로 나타나는 꾸중보다
더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나이 상으로 그 자리에 섰으니,
진정 까탈스럽지 않고,
압박하지 않는
넉넉한 어른이요 아비요 인생의 스승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나의 지시와 지도를 받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인내하는 용기를 갖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넉넉하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진심을 읽어 주기를 염원합니다.
절대로 남을 꾸중하거나,
비난하거나,
씹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것이 나의 성숙이니까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살벌함이나 치열한 경쟁의식이 사라지는 사람의 인상을 보면서,
나는 너무 너무 부러움을 느낍니다.
그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일 것입니다.
그 얼굴에 내게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당당함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0여 년의 세월의 강을 건너 오는 사이에,
이제는 어느덧
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모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늘 갖고
살기를 소원합니다.
설사 그들 중에 나를 해치는 사람이 섞여 있을지라도,
내 마음의 문을 끝까지 열어 놓기를 사모합니다.
사랑하다가, 섬기다가, 나누다가, 베풀다가...
그만 상처 받은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이 강퍅해지거나, 닫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루 중 낭비되는 시간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늘 생산적인 시간 만이 나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넉넉히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일을 줄여야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잣대로 사람을 재지 말고,
하나님의 잣대로도 사람을 재지 않는
그러한 참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사람이...
1990.8.9일에,
이제 30년의 세월의 강을 지나, 2020.10.28.수요일에,
다시 병상에서 나의 삶과 사역을 리모델링 하면서, 2024.7.6. 토요 <성령사관학교>에서...
2024.10.13.주일에 설교하다.
🔥 내 삶에 가장 필요한 것 20가지
1.나의 건강을 위하여...2 P
2.내 가정...21 P
3.나의 돈...28 P
4.내 소유(가진 것)...33 P
5.나의 현재 나아 갈 길...36 P
6.나의 할 일(직업, 직장)...42 P
7.내가 사랑하는 사람...58 P
8.나의 신앙(주님 위해 할 일, 나의 교회 나의 목사 나의 사명, 내가 천국에 쌓을 보물)...65 P
* 요약본...72 P
9.나의 실력...97 P
10.내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일...113 P
11.나의 꿈 - 다시 꿈꾸는 삶...125 P
12.내 인생의 정점...135 P
13.내 인생의 바닥...148 P
14.내 인생의 위치...152 P
15.내가 가 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
나는 이제 내 치즈를 찾아 떠난다..156 P
미래 쇼크...177 P
16.내 취미와 여가, 쉼과 안식...181 P
17.국내여행...195 P
18.세계여행...196 P
19.나의 고난과 시련, 연단, 모험, 알 수 없는 내일의 길,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197 P
20.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203 P
🔥 내가 사랑하는 사람 (9P)
요일 4:7-21절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1>. 남편과 아내,
2>. 아들 딸 자녀,
3>. 부모,
4>. 형제자매,
5>. 목사님,
6>. 한 교회 교우들,
7>. 친구,
8>. 친지,
9>. 일가 친척들,
10>. 내 이웃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
11>. 대적들, 원수들...
12>. 악을 행하는 구원해야 할 자들
🔥 1.누구든지 사랑 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재미있고, 행복하고, 편안하고, 여유가 생기고, 자연스럽고, 건강미가 넘친다.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거북스럽고, 긴장이 되고, 시간이 지겨워지고, 빨리 헤어지고 싶고, 호흡이 가빠지고, 기분이 나빠진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남으로부터 사랑 받고, 좋아함을 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도 그만한 사랑과 친절을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잘 보이고 싶고,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애정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호감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 받으려면 소박해야 한다. 꾸민다고, 의식적으로 잘해 보려 한다고, 사랑 받고 신뢰 받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진실, 성실, 순수한 면모가 나타날 때, 비로소 사랑 받고 존경 받는 것이다.
🔥 2.모든 사람의 호감을 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 의로운 사람, 바른 사람, 착한 사랑, 사랑의 사람, 섬김과 나눔의 사람, 진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 순수한 사람... 이 나를 좋아해야, 비로소 내가 바른 사람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의 호감을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목회 비화에, “악마처럼 목회해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천사처럼 목회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생긴 모양이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듯이, 마음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람처럼 이상한 동물이 없고, 사람의 성품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 없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얼굴과 성품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야말로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옥스포드 대학의 벽에 이런 낙서가 있다고 한다.
저는 당신이 싫어요 펠 박사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 만은 잘 알고 있어요
저는 당신이 싫어요 펠 박사
이유없이 천성적으로 싫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성장 배경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당신과 내가 살아 온 환경이 틀리고, 보고 들은 것이 틀리기 때문에, 갈등과 다툼이 일어난다.
화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는 많은 경우에, 그 사람을 몰라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잘 알고 나면, 미워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싫어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요즘 우리 교회에 부임해 와서, 한 가지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까마득한 예전의 부산 수정교회)
중진 급에 해당하는 성도들의 신앙 기초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교단에 속한 교회이다. 어느 교회든지 중진급에 해당되는 분들은 그 교단과 그 신앙 노선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교리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떠한 잘못된 신앙이 몰려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게 없다.
요즈음은 이런 혼동이 온다.
“내가 이거 잘못 배웠나? 왜 이렇게 신앙 관점의 차이가 나지?”
성도들의 신앙 기초가 없는 것은 첫째로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둘째로 신앙의 기초 교리 서적들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르치는 교역자들의 책임이요, 배우려고 하지 않는 성도들의 안일한 자세이다.
넷째는 교회의 교육 행정의 부재이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신앙의 체험도 있고, 기본 자질들과 성품은 참 좋은데, 이 살아가는 현실속에서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는 비결을 잘 모른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만 늘 한다. 자꾸 뜬구름 잡는 신앙만 추구한다. 도무지 기초가 없는 신앙들을 갖고 이리 저리 흔들린다. 자꾸 사람만 바라보고 있다.
사도 바울이 베뢰아에 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그랬더니 그 곳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날마다 모여, 참말로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행전17:11절)
탄탄한 기초를 놓는 신앙은 듣는 신앙이 아니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몸으로 부딪쳐 보고, 나의 현실로 검증해 본 후에 확실히 맞아야 참 신앙이다. 아무리 귀가 즐겁고, 은혜스럽고, 내 감정이 끓어 넘쳐도 거짓일 수가 있다.
무지개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무지개는 손으로 잡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무지개라 할지라도 그것은 손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반드시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집 갈 나이가 된 아가씨가 기도할 때 “주님! 백마를 탄 기사를 보내 주세요. 나는 기도만 하면 주님이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한다.
이러한 기도는 굉장한 믿음의 기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올바른 기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기도가 이렇게 무모하면, 우리는 믿음 좋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아니다. 이러한 기도속에는 몇 가지의 함정이 있다.
첫째로, 이 기도를 한 아가씨는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백마를 탄 기사를 신랑으로 맞으려면 자기도 공주 쯤은 되어야 한다.
둘째로 눈에 보이는 사람 중에서 신랑감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속에서 신랑감을 찾기 때문에 노처녀로 늙어 가는 것이다.
예전에 23살 때, 부산 명륜제일교회에 처음 교육전도사로 부임을 했다. 가 보니 한쪽 구석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한 호박 같은 아가씨가 한 사람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두어 살 많은 것 같았다.
남자란 원래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 반주자 아가씨는 못생긴 것 외에는 눈에 쏙 들어 오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하하하! 오호라... 그런데 그 사람이 평생의 인연이 될 줄이야...
사람이란 다 이런 것이다. 언제나 자기 관점에서 생각한다. 자기 유익하도록, 자기 좋도록 생각한다.
우리 신앙은 철저히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뜬구름잡는 신앙은 손끝 만큼도 우리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다. 축복 받기 싫으면 마음대로 믿어도 좋다. 그러나 정말 축복 받고 싶으면 성경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
이 현실 속에 굳게 발을 딛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땅 위에 살게 하셨지, 하늘에 살게 하시지 않았다. 우리의 이상은 하늘이지만, 이 땅 위에서 충실히 살고 난 이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
신앙은 현실이다. 현실을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가, 이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나와 신앙관이 같으니까 좋다, 저 사람은 나와 마음이 맞아서 좋다,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니까 나도 좋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단계는 유치원 아이의 좋아하는 단계이다.
아기들은 사탕을 주면, 무조건 좋아한다. 이빨이 썩거나 당뇨병이 걸리거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어른은 사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숙한 우리의 대인관계는 보다 차원 깊은 것이어야 한다.
신앙관이 나와 달라도, 성격이 나와 달라도,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상이해도,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심이 필요하다. 이해심이 크고 깊으면 깊을수록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갖게 된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절)”
“이 사람은 못생겼으니까 함께 놀 수 없고, 저 사람은 가난하니까 상관 못하겠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성격이 나와 틀리니까 안되겠고, 왼쪽 사람은 나를 싫어하니까 그렇고...”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나 혼자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은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든지,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평화하며 살아야 한다. 이 험하고 괴로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살 것이라고... 평화하며 살아야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3.호감을 주는 사람이 사람이 되려면, 노력해야 한다.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다.
저는 우리 교회에 와서 햄버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도 더블 햄버거를 특별히 좋아한다. 그 이유는 틈만 나면 저기 앉아 있는 홍성은 선생이 제게 더블햄버거를 사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에 어디 가든지 <더블 햄버거와 홍성은>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홍선생은 어린 처녀가 너무 아름다운 꿈이 있다.
“결혼하면 꼭 심방하는 일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로 하겠다. 심방으로 주님의 일을 돕겠다.” 하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거기다가 내 욕심을 하나 더 보탠다면, “훗날에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홍선생을 보내 주셔서, 꼭 함께 다니며 심방하게 해 주십시오.”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도 햄버거 먹고 싶으면, 홍선생님 부르면 된다. 홍선생을 얻었으니, 햄버거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모르겠다. 나는 홍선생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홍선생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인간관계는 없다.
성도님들을 한 분 한 분 접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삶의 아주 사소한 일 하나 하나에서 우리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라” 고 누누히 말씀하신 것 이다.
담임목사님이 휴가를 가신 기간에, 새벽기도를 한 열흘 인도한 적이 있다.
처음 며칠 간은 은혜스럽게 잘 강해를 해 나가다가, 5일째인가부터 정치와 시국에 연관된 본문이 나왔기에, 평소에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울분이 폭발하여 감정이 약간 격앙되어 말씀을 전했다.
원래 말 조심이 없는 사람인데다가 감정이 곁들이면 막 내뱉는 사람이니까, 성도님들이 상처를 받는 것 같았다. 새벽기도는 그저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스럽게 말씀을 간단히 전하고, 인도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못된 성격에, 칼을 빼 들면 뿌리채 잘라 버려야 하니까, 내리 3일 간을 본문에 비추어 정치, 사회, 경제, 부패한 교회 이야기까지 다 해 버렸다. 나는 속이 시원한데, 성도님들은 기도문이 막혀 버렸다.
문제는 성도님들과 나 사이의 인간관계에 있다. 평소에 양자 사이에 조화를 잘 이루고 지내 왔느냐, 타인으로 지내 왔느냐가 문제이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으면, 아무리 거슬리는 설교를 해도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손상이 있으면, 모든 지적하는 설교는 자기를 보고 하는 것 같다.
설교자도 인간이기에 허물이 많고, 설교에 이용하는 자료 정보가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교의 한 부분이 잘 되었다, 잘못 되었다가 아니라, 그 전체 흐르는 내용이다.
듣기 싫은 소리도 약인 줄 알고, 성도님들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전하는 자는 성도님들의 영적인 상태를 잘 파악하고, 기도의 문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의 현실적인 감각을 좀 더 많이 배워서 나쁠 것 하나도 없다. 물론 나 자신도 이 모든 과정속에서 하나 하나 깨우치고, 배워 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 비결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들면 된다.
“저 전도사는 맨날 설교단에 서서 비성경적인 정치 이야기만 해.” 그렇게 말하지 말라.
“그래!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이 나라, 이 정치 현실속에서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지. 좀 지나친 듯해도 그 근본 취지는 옳아...”
제가 설교하는 내용 가운데 날카로운 것이 많고,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많지만, 그른 것이 어디 하나 있는가?
이렇게 이해하면, 절대 설교에서 은혜를 못 받는 경우는 없다.
제가 생각할 때는 절대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0년 전의 성경 이야기만 하고, 그것을 풀어 오늘날의 현실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현실 적용이 없는 설교는 엄밀히 말해서 설교가 아니다.
요즈음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설교를 은혜 위주로만 하면 참 잘 할 수 있는데, 아부하는 설교만 늘 해 볼까?”
모르겠다. 담임목사가 되면 몰라도, 지금 나는 성도님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으니까, 정말 교과서대로 해 볼 만도 한 것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이다.
🔥 4.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기뻐하라.
다른 사람이 나를 찾는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이 나를 찾아 와 상담을 하거나, 기도를 부탁하거나, 일을 부탁할 때,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기쁨으로 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게 온 사람을 절대 빈 손으로 돌려 보내지 말아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애써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나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 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는가?
친절을 베푸시기 바란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세상에 완전히 독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서로 돕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쓰러진다.
🔥 5.자신을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으면, 이것처럼 비참해지고,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없다.
실연을 당한 어떤 여청년이 있었다. 그 고통을 곁에서 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차라리 돈이 필요하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주면 되지만, 이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해결됩니다. 비록 이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의외로 빨리 자신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참 믿음이 있는 여청년이었다.
누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 때,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쓸모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개발해 가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갖추고, 모든 영역에서 다 남을 도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성이 있는 사람은 지성으로,
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그 넘치는 사랑으로...
히브리서 12:12절 말씀,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이 말씀을 내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깊이 명심하시기를 바란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있다.
🔥 6.기분 좋은 사람이 되라.
‘기분 좋은 사람’이란, 긴장감 없이 사귈 수 있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그 사람과는 도무지 친할 수가 없어!”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
‘기분 좋은 사람’이란 태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누구나 다 성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의 문만 열면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만나면 저절로 마음의 이야기를 툭툭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러한 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란다.
아픔을 가진 사람이 언제든지 찾아 올 수 있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항상 그 머리 속에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