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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morning 36!
가을산과 들을 바라보느라면 뭔가 깊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한주 한주는 참 빨리도 가고 그러면서 10월도 중순을 넘었습니다. 가을은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기도합니다. 사랑이야기에는 항상 가슴 절이는 애절함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날의 사랑이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주는 험프리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그렇고 사랑하는 남자가 전장에서 죽은줄 알고 밤의 여인이 됐는데 남자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고 비비안리는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상대남자배우는 로봇테일러인 [애수]가 그렇습니다. 두 영화 모두 참 슬픈 영화지요.
그래서 아주 바람직하고 모범적인(?)사랑이야기인 유명한 프랑스화가 어거스트 르누와르와 그의 부인 알린 샤리고의 이야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1841년 도자기로 유명한 프랑스 중부지역 리모즈에서 태어난 르누와르는 도자기에 밑그림을 그려주는 화공이었습니다. 그런 르누와르가 마흔이 다 됐을 때 사랑이 찾아옵니다. 바로 19년 연하인 스무 살 알린 샤리고였습니다. 샤리고는 파리 몽마르뜨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르누와르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모델 요청을 혼 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도 순탄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샤리고의 집안에서 반대를 한 것이지요. 그들은 헤어졌고 르누와르는 징집되어 전장에 나갔습니다. 르누와르가 전장에서 돌아오는 날, 마을에 기차가 섰고 터벅터벅 역을 빠져나가는 그에게 샤리고는 달려와 안깁니다. 그들은 헤어질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셋째인가를 낳고서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르누아르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 그림 속 왼쪽 앞줄(고양이 만지는 여인)이 아내 샤리고
말년의 르누와르 부부
르누와르에게 아내와 아이는 기적이자 그의 존재이유였고 삶의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샤리고는 아이들을 정성껏 보살폈고 남편을 지혜롭게 보필한 말 그대로 현모양처였습니다. “고통은 지나간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남는다.” 삶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던 화가, 르누아르의 말입니다.
1916년 샤리고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 아내의 뒤를 따를 때까지 르누와르는 아내의 초상화를 간직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한 결정적 존재는 바로 아내 알린 샤리고였습니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살면서 이렇고 저렇고 한 많은 사랑에 빠지지만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산 경우가 드믑니다. 르누와르는 다른 모델들과의 스캔들이 없었고 그의 아내가 모델로 등장하는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Have a good time!
스페인 동부 배낭여행 2부)
10월12일(월)맑음. 마드리드 ▶바르쎌로나(Barcelona) 로 이동
아침식사(우유, 시리얼, 빵, 주스)는 호스텔에서 제공하지만 나는 그게 성이 안차서 가외로 사과 한 알, 토마토 한 알을 더 먹는 유난을 떤다. 호스텔 체크 아웃(Check Out)은 10시 반이다. 산띠아고 순례 길을 끝내고 마드리드에 와서 세탁기로 빨고 건조기로 말려서 방안에 계속 널어 놓았던 옷가지와 등산화를 차곡차곡 개어서 다시 배낭에 넣는다. 지난번 피니스떼레에서 찾은 300?가 간당간당 하다. 바로쎌로나행 기차표, 신발 그리고 책자 등 큰돈은 다 신용카드로 샀고 현금 쓴 것은 아 꼬루냐에서 마드리드로 오는 기차요금 50?뿐인데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체크 아웃하고 전철역으로 가는 중간의 에이 티 엠(ATM/Automatic Teller Machine)에서 또 300?를 찾았다.
뿌에르따 데 아또차(Puerta de Atocha)전철역은 렌페(RENFE/스페인 국영철도)역과 잘 연결되어있다. 열차 출발 층에 들어가면서는 비행기 탈 때처럼 짐 검사(X-ray)를 거친다. 출발 대기층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1시 반 바로쎌로나행 열차에 올랐다. 아베(AVE)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고속열차다. 스페인말로 아베(ave)는 새를 뜻하기도 한다. 열차는 독일 지멘스(Siemens)에서 제작되었으며 바드리드-바로쎌로나를 3시간 반 만에 대준다. 초특급은 2시간 50분 걸리는데 요금이 좀 더 비싸다. 정확히 오후 4시50분에 바르쎌로나 산츠(Sants)역에 도착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헬로 비씨엔(Hellow BCN)호스텔로 가기 위해 산츠역에 연계되어있는 전철3호선을 타고 빠랄렐(Paral-lel)역으로 갔다. 빠랄렐 전철역에서 헬로 비씨엔은 그리 멀지 않았다. 207호(6인승)에 들어서니 전부 아주 젊은 영국청년들이다. 1992년 바로쎌로나 올림픽이 열린 아름다운 도시 바르쎌로나에 왔다. 내일을 기대하며 일단 자자. 영국청년들은 그날 밤 8시쯤 외출했다가 새벽2시 넘어서 아주 조용조용히 들 들어왔다.
10월13일(화)맑음. 바로쎌로나(제 1일차(기온: 22℃))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스페인 최대의 항구이며 지중해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바르셀로나는 기원전 카르타고인들이 세운 도시이다.
평소 습관대로 아침 5시에 일어나 휴식 공간에서 한 시간 동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인터넷으로 다음 여행지 정보를 웹 서핑 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길을 나섰다. 마드리드 때와 마찬가지로 2층 버스 투어를 하기로 하고 호스텔에서 멀지 않은 콜룸부스기념관 앞으로 갔다. 바르쎌로나는 해변 관광 루트가 있어서 버스투어는 현대물, 고전물 그리고 해변을 도는 세 가지 루트가 있는데 10월 들어서 해변관광루트를 중단해서 관광루트는 현대물과 고전 물을 둘러보는 두 노선이고 요금은 15?다. 먼저 근 대물을 도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크루저유람선과 범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항구를 돌기 시작한다. 포트 올림픽(Port Olympic)건물, 월드 트레이드 센터, 스페인 국영 가스 네츄럴사옥 등 고층건물을 빙 들른다. 재미있는 것은 가스 네이츄럴(Gas Natural)사옥 맨 꼭대기 층 유리 창문에 큰 나비가 한 마리 앉아있다. 한국의 SK그룹의 나비 로고가 잠깐 생각나며 분야도 비슷한 두 회사는 왜 나비로고를 쓰고 있을까? 하는 의문과 어느 회사가 먼저 였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길이가 5km나 되는 백사장이 깨끗하다. 시내 온도 탑의 온도계는 22℃를 나타내고 있는데 철모르는 사람들이 바닷물 속에서 첨벙댄다. 올림픽 스타디움도 보인다. 바르쎌로나는 1992년도에 올림픽을 치렀으니 바로 88서울 올림픽다음 개최지였다.
바르쎌로나 라는 도시는 한 마디로 아름답다. 구획정리도 잘 돼있고 건물 하나 하나마다 특색이 있다. 서울의 남산 같은 몬주익공원 맨 위에 있는 몬주익성(城)에 올라 내려다 본 바르쎌로나는 정말 멋 있다. 건물들과 공원은 세계 어느 도시 보다 잘 배치되고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인간이 사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바르쎌로나는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라는 건축가가 이 도시를 꾸며 놨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그는 시내 곳곳에 멋있는 건물과 공원을 설계했다. 바르쎌로나를 얘기 할 때 가우디를 떼어놓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도시에서 가우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대단하다. 현재 바르쎌로나에는 가우디의 작품이 열 개 정도 있는데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까사 바뜰요(Casa Batllo), 까사 비쎈스(Casa Vicens), 빠베론스 데 라 핀까 구엘(Pavelons de la Finca Guell), 꼴-레기 데 레스 떼레시아네스(Col-legi de les Teresianes), 까사 깔베뜨(Casa Calvet), 또르레 벨레스가아르드(Torre Bellesguard), 까사 밀라(Casa Mila), 빨라우 겔(Palau Guell), 사그라다 파밀리아(Temple Expiatori de Sagrada Familia), 빠르끄 구엘( Parc Guell).
가우디의 작품 중 까사 바뜰요(1910년 준공), 까사 비쎈스, 까사 밀라(1912준공), 빨라우 구엘(1890년 준공),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빠르끄(께) 구엘(1904준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은 1883년에 착공하여 현재(2009년)까지 126년 동안 건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설계하여 1926년 타계하기까지 그의 생애 만년에 심혈을 기울여 공사를 추진했으며 그 사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우디의 설계대로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2010년에는 내부장식 작업이 완료되어 미사를 드릴 수 있고 최종 건축공사 완료 예상은 2030년으로 잡고 있다 한다.
버스투어는 네 시간 반(근대 두 시간, 고대 두 시간)이 소요됐다. 버스투어를 끝내고 몬주익(Montjuic)에있는 국립 까딸룬야 미술관(MNAC/Montjuic Nacional d'Art de Catalunya)을 관람했다. 이 MNAC에는 시대별 또는 장르별로 구분 지어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로마네스크 소장품(The Romanesque Collection), 고딕 소장품(The Gothic Collection), 르네상스, 바로크 소장품(The Renaissance and Baroque Collection) 그리고 모던 아트 소장품(The Modern Art Collection) 등 이렇게 네 개로 전시실을 구분했는데 이번 방문은 미술작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준 내게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실 미술작품감상엔 기초적인 상식도 없던 나였는데 이번에 여러 가지를 느꼈다. 우선 작가마다의 독특한 개성이랄까 아무튼 각각의 기풍이 다르게 있음을 알게 됐다. 어떤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색상이 어둡다. 또 다른 어떤 작가의 그림은 원색을 많이 썼고 밝다. 그리고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도 사실적이고 섬세할 수 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이 국립 까딸룬야 미술관에는 피카소와 달리의 그림도 전시되고 있었는데 역시 피카소 그림은 내겐 많이 난해했다. 거의 7시가 다 돼서 MNAC를 나왔다.
호스텔로 돌아와 보니 우리 방이 텅텅 비어있다. 나와 같은 방에 묵고 있던 영국청년 다섯 명의 자리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초저녁잠이 많기도 하지만 어제는 기차여행 끝에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영국 젊은이들이 내 이른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아마 방을 옮긴 모양이다.
10월14일(수)맑음. 바르쎌로나(제2일차)
몬주익(Montjuic)성(城)을 가려고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섰다. 지하철 3호선 빠랄-렐(Paral-Lel)역에서는 몬주익 공원으로 가는 특별 전철이 운행된다(셔틀노선으로 약 3분 정도 걸림). 빠랄-렐역에서 몬주익행 전동차로 갈아타면 느낌이 지하에서 산꼭대기로 자꾸만 올라가는 것 같다. 몬주익역에서는 몬주익 성 꼭대기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케이블카는 노선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몬주익성으로 올라가는 루트이고 다른 하나는 내항을 가로질러 바다위로 가는 케이블카(The cross-harbour cable car/왕복12.5?)가있다. 사실 명물은 바다 위를 나르는 케이블카 이겠지만 탈 자신이 없어서 나는 몬주익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왕복8?)만 탔다.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서울시내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바로쎌로나 시가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몬주익공원 맨 꼭대기에 있는 몬주익성에서 내렸다. 이곳은 한 때 감옥으로 사용 되기 도 했던 곳이며 현재는 식당, 기념품가계 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성 주위에는 함상 포 모양의 구경이 큰 구식 자주 포가 곳곳에 기념비처럼 배치되어있고 성 동쪽에는 지중해바다가 펼쳐 저 있는데 바다에는 대형 쿠루즈선박들과 높게 돛을 올린 범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해있다. 몬주익성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산츠 바로쎌로나(Sants Barcelona)기차역으로 갔다.
내일 12시에 발렌씨아(Valencia)로 출발하는 기차표와 18일 날 발렌씨아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예매했다. 사실 발렌씨아를 거쳐서 남쪽도시인 그라나다(Granada)와 세빌야(Sevilla)까지 갔다가 마드리드로 해서 귀국할 계획이었으나 몇 일 사이 집 생각이 간절해지기에 이번 여행은 발렌씨아 까지만 하기로 했다. 바르쎌로나와 발렌씨아는 둘 다 지중해안에 있으며 마드리드와 함께 스페인의 3대 도시를 이루고 있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바르쎌로나에서 발렌씨아가는 기차편이나 발렌씨아에서 마드리드가는 기차는 고속철도인 아베(AVE)가 아니어서 요금이 저렴하다(바르쎌로나-발렌씨아=37?, 발렌씨아-마드리드=45?).
기차표를 예매한 후 어제 버스투어로 그냥 지나가면서 만 보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으로 갔다. 건축공사가 126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이 성당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입장료11?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높이가 288m나 되는 이 성당의 실내공사는 각종 조형물과 스테인드그라스(Stainedglass)등의 설치가 거의 완료되어 있었고 전반적인 공정 율은 밖에서 볼 때보다는 많이 진척된 편이었다. 일부 실내 공사는 그물망을 울타리 삼아 둘러 처 놓은 안에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관람객들은 그 밖을 돌아가면서 내부 조형물과 작업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부와 상층부 작업을 위해서는 타워크레인 네 대가 연신 물건을 올리고 내리며 가동되고 있었다. 성당 꼭대기까지는 리프트카가 운행되며 관람객은 2.5?를 지불하고 탈 수가 있지만 차례를 기다리는 줄을 보니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될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나는 포기했다.
성전 입구 한 쪽 벽면에는 요한복음 13장27절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줄여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 즉 성가족교회(聖家族敎會)라고 부르지만 전체 이름이 성가족 속죄교회(Temple Expiatori de Sagrada Familia)인 것을 어렴풋이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한13장27절 말씀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제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EL QUE ESTAS FENT FES-HO DE PRESSA)인데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이 가롯 유다가 당신을 팔리라는 것을 아시고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내 나름대로 우리 인간들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성당을 건축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래서 속죄교회(Temple Expiatori)라는 문구를 앞에 넣지 않았나 생각 해 보았다. 아무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축물이다. 1883년 가우디의 나이 30에 착공해서 1926년 가우디가 죽기까지 교회 일부만 완성했으나 그의 사후 1952년까지 26년 동안은 건축공사가 거의 중단되었다. 1953년부터 공사는 재개되었지만 건축비용을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 진척이 늦어서 2030까지 완공하겠다는 계획만 잡고 있는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을 나와서 가까운 곳에 있는 람브라스(The Ramblas)거리를 걸었다. 목로주점과 식당이 있는 역시 유명하다는 보께리아(La Boqueria)시장까지 이어지는 이 람브라스는 폭이 30m가 넘어 보이고 길이가 약2km정도 되는 차 없는 거리다. 길 양편에는 잡화에서부터 꽃집, 새, 물고기장수가 각각의 부스(Booth)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토끼, 병아리에 거북이까지 판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광경은 길거리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다수는 짙고 특이한 복장의 마네킹 모습에서부터 마녀, 천사복장 그리고 카우보이차림 등등 심지어 짙은 분장으로 좌변기에 걸터앉아있는 포즈도 있다. 관광객들은 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앞에 있는 돈 깡통에 동전을 넣어준다. 람브라스거리 끝에는 보께리아시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데 특히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많다. 보께리아 시장을 빠져나오면 포트 벨(Port Vell)항구와 맛 닿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돌아 온 항구이기 때문에 콜럼버스 기념관이 있고 그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콜럼버스 기념관에서 내가 묵고 있는 헬로 비씨엔(Hello BCN)호스텔은 가깝다. 이렇게 해서 내 바르쎌로나여행은 끝났다. 온전히 이틀을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관광을 하려면 적어도 5박6일 정도는 머물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쉬움을 다음으로 미루고 아름다운 도시 바르쎌로나와 작별을 나눈다.
가우디 설계 작품으로 1886년에 착공하여 지금도 건축공사가 진행 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모습. 가우디는 죽었지만 후손들이 그의 뜻과 기술을 이어가며
오늘도 성가족 속죄교회(Temple Expiatori de Sagrada Familia)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까사 바뜰요(Casa Batllo)는 바다를 주제로 독특한 형태를 지닌 건축물로 가우디의 작품이다.
벽면에는 초록, 황색, 청색 등의 유리 모자이크를 입혀놔서 아침 해가 비추면 아름답게 반사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사진 오른쪽 네이버백과)
(왼쪽 사진)까사밀라(Casa Mila)는 1910년에 완성됐으니 100년이 된 건물이다.
까사바뜰요(Casa Batllo)와 마주보고 서 있는 건물이다. 일종의 연립주택인데 안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엘리베이터도 있고 냉난방시스템 등 현대적인 설비를 모두 갖췄다고 한다.
(오른쪽사진)구엘공원(Parc Guell)은 내게 마치 판타지 월드(Fantasy world)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공원이다. 화려한 타일로 덮인 거대한 도마뱀조각도 그렇고
콜로네이드홀을 떠받치고 있는 원기둥들과 천장의 모자이크장식도 기억에 남는다
(오른쪽 사진/네이버백과).
람브라스 거리풍경
(왼쪽은)까딸룬야 미술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르쎄로나 시가지, 오른쪽은
몬주익성에서 찍은 사진, 등 뒤로 멀리 바르쎌로나 시 전경이 보인다.
왼쪽은 몬주익성 입구, 오른쪽은 몬주익성으로 올라오고 있는 케이블카모습 멀리 바로쎌로나시가 보인다.
(왼쪽사진)1889년에 창단된 FC바르쎌로나 홈 구장인 깜쁘 노우(Camp Nou)로
수용인원은 98,722명. 오른쪽은 스페인 가스 나츄랄회사 사옥으로 맨 위층 창문에
큰 나비가 한 마리 앉아있다. - 다음에 -
첫댓글 멋진 가을날~
즐거운 여행길을 함께합니다.
동수형, 범두 아들 결혼식 때 봅시다.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