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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에 표현되어 있는 동물이나 인물에 대한 내용은 다음 동영상(국립부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올려놓은 것임) / 연구 참여자들의 고정 관념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
http://www.youtube.com/watch?v=NLN19K_Pxs8&feature=player_embedded
백제금동대향로는 크게 뚜껑과 노신으로 구분된다. 향로의 뚜껑에는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동물과 봉황새를 비롯한 상상의 동물 그리고 열대지방의 코끼리, 사자, 원숭이까지 조각되었으며 산수와 자연물, 신선, 5인의 악사 등 무려 74가지의 조각이 아주 정교하게 새김. 노신에는 26마리의 동물과 신선으로 보이는 18인의 인물 등 65종류의 조소가 있다. 이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5인의 악사는 상단 봉황새 바로 밑, 다섯 기러기 사이사이에 약간 감추어지듯 안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합주를 하듯 균형 있고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다섯 악사의 조각은 각각 약 4-5cm 정도의 크기이며, 인체균형과 악기의 모양 그리고 비례가 매우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악기의 외형과 연주 자세 그리고 음향원리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로 충분함.
백제금동대향로에 새겨진 여러 가지 조각과 문양들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의 열대지방은 물론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진귀한 생명체와 사물을 새겨 넣었고, 출토 이전의 백제 유물에서 찾기 어려웠던 예술적 조형성마저 갖고 있다. 아울러 천상천하를 넘나드는 백제인들의 우주적 서사성 마저 또한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이 금동대향로가 과연 백제에서 만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관되게 백제에서 제작되었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지금 그런 논란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악사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도 역시 외국의 것이 아닌 백제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백제의 악기는 북사(北史), 수서(隋書), 통전(通典) 등의 기록에 나타난 고(鼓), 각(角), 공후(箜篌), 쟁(箏), 우(竽), 지(篪), 적(笛) 정도가 알려졌었다. 하지만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됨으로써 5종의 악기를 추가하여야 하며, 이를 자료로 백제 음악에 대한 인식 또한 새롭게 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백제금동대향로는 궁중의 신물로 밝혀졌기 때문에 백제궁중음악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도 또한 크다. 고대 국가들은 대체로 음악을 정치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던 것만큼,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악사도 단순한 음악의 차원을 넘어 음악의 화(和)를 통한 정치체계의 통합을 이루려는 백제의 정치적 사상을 단면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백제금동대향로 다섯 악사가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비하여, 학술적 연구는 발견된 지 15년이나 흐른 지금에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직후 2인의 음악학자가 이들 악기의 이름과 기능을 발표한 이후 사실상 아무런 연구도 없는 상황이며, 더욱이 처음 발표된 내용이 지금까지 해당 박물관 안내 게시물에서부터 각종 교과서와 전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자료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답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고를 통하여 백제금동대향로 다섯 악사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필자(이종구 교수)의 연구를 제시하고 이로써 지금까지 알려졌던 내용에 전면적인 수정이 있기를 기대한다.
<표 1> 백제금동대향로 악기 명칭 비교(1993년 12월말)
악기 발표 | 왼쪽 2 | 왼쪽 1 | 중앙 | 오른쪽 1 | 오른쪽 2 |
송 방 송 | 배소 | 장소 | 완함 | 북 | 거문고 |
전 인 평 | 소 | 퉁소 | 완함 | 북 | 쟁 |
이 영 희 | 소 | 피리 | 월금 | 북 | 거문고 |
서울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 소 | 피리 | 비파 | 북 | 현금 |
악기의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능과 연주, 음악표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옛 악기의 경우 그 악기가 존재하던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음악적 쓰임새 등을 이해하며 추정하는 자료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백제금동대향로 다섯 악사가 들고 있는 악기에 대하여, 향로가 공개된 직후 국립박물관 측의 자료를 근거로 2명의 음악학자와 여러 언론사가 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였다. <표 1>의 배치는 정면의 줄울림악기 중 류트(Lute) 종류의 악기를 중심으로 왼쪽 1, 왼쪽 2, 오른쪽 1, 오른쪽 2 등의 번호로 주악 조소상의 악기를 정리하였다.
<표 2> 백제금동대향로 악기 명칭 및 분류(2007년 이종구 교수 주장)
배치 | 왼쪽 | 왼쪽 2 | 중앙 | 오른쪽 1 | 오른쪽 2 |
이름 | 장소 | 배소 | 백제삼현 | 무명백제악기 | 금 |
분류 | 공기울림악기 | 공기울림악기 | 줄울림악기 | 떨청울림악기 | 줄울림악기 |
지역성 | 동남아 | 중앙아시아 | 동남아, 중원 | 찾을 수 없음 | 중원 |
1. 중앙 악사의 악기
백제금동대향로는 상단에 태양(太陽) 또는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봉황이 조각되어있어 그 새의 방향에 따라 정면이 설정되고 있다. 그 봉황 아래 단에 다섯 악사들이 돌아가며 새겨져 있으며, 정 중앙의 악사는 류트 계열 악기의 울림통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줄의 하단(下段), 즉 줄받침 부근을 연주하고 있다. 왼손은 3줄로 묘사된 악기의 셋째 줄을 새끼손가락으로 짚고 있다. 왼손의 위치가 악기의 목 아래 부분에 있어 악기의 크기에 대한 비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그 줄의 중음(中音), 즉 개방현의 옥타브 위 소리쯤을 연주하고 있어 그 소리가 지금 들릴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림 1> 백제금동대향로 중앙 악사
3줄을 얹는 류트 종류의 악기는 일본악기로 중요한 삼현(三絃=사미셍)도 있으며, 지금 북경지방의 옛 악기였던 전체 길이 114mm의 가현삼현(加弦三絃)도 있다. 중국 광동지방지역의 민족 악기인 조주소삼현(潮州小三絃)이나 복건성에서 홍콩지역에 퍼져있는 남음삼현(南音三絃), 산서 중부에서 내몽고에까지 퍼져있는 판면삼현(板面三絃), 운남성 백족(白族)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용두삼현(龍斗三絃), 운남성 이족(彛族)의 악기인 이족삼현(彛族三絃), 광서자치구의 장족삼현, 율속족(傈僳族)의 율속삼현(傈僳三絃), 중국 운남성 지역의 태족(傣族)이 쓰는 목정(穆玎) 등은 물론 베트남의 난쨍, 단땀 등이 모두 3줄 류트집안 악기이다.
이러한 악기들은 공통적으로 삼현(三絃)이라는 이름을 붙여 4줄인 완함이나 월금 종류와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명 방법에 따라 백제금동대향로의 중앙 악사 악기는 3줄 악기이기에 백제삼현(百濟三絃)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타당함.
2. 왼쪽 1과 왼쪽 2 악사의 악기
왼쪽 1과 왼쪽 2 악사는 둘 다 세로피리 종류의 악기를 입술 아래에 대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이 악기는 입술과 악기가 떨어져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입술이 발음체가 되는 금관악기도 아니고, 이와 혀를 조정하며 부는 네이(ney) 계통의 악기도 아니며, 떨청을 사용하는 생(笙)이나 황(簧) 계통의 악기도 아니다. 모두 목관악기로서 공기울림악기[氣柱振動樂器] 계열이다.
<그림 4> 왼쪽 2 악사 <그림 5> 왼쪽 1 악사
왼쪽 1 악사의 악기를 발견 직후 음악학자들이 장소(長簫), 또는 퉁소(洞簫)라고 이름은 서로 다르게 사용하였지만 각각 단소(短簫)에 대칭하는 용어이기에 둘 다 적절하다. 다만 퉁소는 용어가 통소라는 한자어 용어로부터 변이된 것이어서 토속적인 느낌이지만 보다 근대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백제 궁중의 신물(神物)이고, 백제의 정치적 이념을 나타낸 것이니 굳이 토속적인 용어가 어울린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필자도 퉁소라는 용어를 버리고 장소(長簫)라는 용어를 따르도록 하겠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장소는 연주자의 무릎에까지 닿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중국의 남방과 베트남 지역에 장소라 할 만한 악기가 퍼져있다.
<그림 6> 중국산서성 당이수묘에서 발견된 배소와 세로피리
플루트의 조상악기는 리코더이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가 제작된 6-7세기쯤의 리코더 모습은 오늘날의 발전한 악기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진한 것이었다.
물론 장소로 배음주법(over blowing)을 사용하면 고음을 연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악기로 고음만을 연주하는 것은 기교에서 까다롭고 비실용적인 일이다. 고음음악에 맞추려면 단소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무릎에까지 미치는 크기의 이 저음악기를 제작하였다는 백제인들이 놀랄만한 저음악기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또한 저음음악을 사용하였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왼쪽 2 악사는 배소(排簫)를 연주하고 있다. 배소는 팬플루트의 하나로 여러개의 세로피리를 가로로 나열한 공기울림악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소(簫)라 불렀으며 그 모양이 봉황의 날개에 비기어 봉소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 소는 취구 쪽만 직선형으로 나란히 돌출해있고 취구 반대쪽은 나무상자 속에 감추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2율4청성 즉 반음계로 조율하였기에 관대의 끝은 비교적 완만한 곡선형으로 배열되었다. 여기에 비하여 백제금동대향로의 왼쪽 2 악사는 관의 길이가 확연하게 다른 12개의 관대로 제작한 배소(排簫)를 들고 있다. 배소는 하나의 관에서 하나의 음을 낸다는 것이 원칙이다. 왼쪽 1 악사의 장소는 하나의 관에 지공을 뚫어 여러 소리를 내는 악기를 갖고 있지만 왼쪽 2 악사는 하나의 소리만 내는 관을 여러 개 나열하여 여러 소리를 구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악기를 갖고 있다. 악기의 발달과정에서 배소의 음률산출 방법이 퉁소의 그것보다 더 오래된 방식이다.
3. 오른쪽 1 악사의 악기
오른쪽 1 악사에 대해 <표 1>에서 모든 학자와 언론인들은 북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직후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해당 박물관 안내 게시물과 각종 교과서는 물론 전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자료에 이르기까지 의심 없이 이를 북으로 혹은 타악기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악기를 어찌 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분명 북이 아니고 연주 모습도 또한 북 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림 7> 오른쪽 1 악사
오른쪽 1번 악사의 악기가 북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채를 잡고 있는 오른손의 모습이 채를 바깥쪽으로 거꾸로 잡고 있어 인체공학 상 타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는 볼 수 없다. 인간이 오른손으로 기구를 이용할 때 그것이 북채든 칼이든 혹은 숟가락이든 모두 엄지와 검지를 주로 이용하고 또 그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오른쪽 1 악사는 오른손의 엄지, 검지를 몸 쪽으로 두고 있어 그것이 알려진 대로 북치는 모습이라면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몸울림[體鳴] 타악기의 일반적인 연주 방법과 특성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둘째, 북을 친다면 북통의 가운데 부분을 치는 것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 악사는 북의 가운데도 변죽도 아닌 모서리 부분으로부터 이어진 손잡이 같은 것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북채가 아니라 악기의 일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셋째, 왼손을 악기의 본체에 대고 있는 모습인데, 고정되지 않은 타악기를 왼손으로 밀듯이 파지(把持)하는 타악기는 없다. 또 오른팔의 팔꿈치 부분으로 같이 파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경우 오른손으로 악기를 타격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연주할 수 없다. 그러나 조소상의 악사는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흥에 겨워 노래라도 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꽹과리처럼 왼손으로 댐핑(Damping, 弱音)을 하는 모습도 역시 아니다. 댐핑이 일어나는 부분은 울림이 많은 부분, 즉 타악기의 앞면이든지 아니면 뒷면의 복판에서 하는 것이 음향적으로 합당한데 백제금동대향로의 이 부분 조각은 악기의 변두리라는 점에서 그런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이 악사가 연주하는 것은 타악기가 아니다.
오른쪽 1 악사의 악기는 참으로 규명하기 어렵다. 이와 유사한 악기가 주변 국가는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 악기의 실체를 찾기 위해 필자는 2002년과 2007년 두 차례 실크로드와 동남아 그리고 알타이 산맥 등을 답사한 바 있으나 소득이 없었다. 또한 필자가 소장으로 있는 한양대학교 전자음악연구소와 제휴하고 있는 여러 국가의 민족 악기 관련 연구소에도 이 악기에 대한 문의를 한 바 있으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 놓은 곳이 없다.
<그림 8> 여러 가지 원기둥형 막울림악기의 채를 잡은 모습.
따라서 이 악기는 조소상 자체의 모양과 구조로서 발음원리를 추정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악기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몸체가 하나의 공기통을 이루면서 외부로부터 공기를 흡입하여 내부(보이지 않는)의 관을 통과하는 연주하는 공기울림악기[氣柱振動樂器]의 한가지로 보는 것이다. 공기통의 상단에 손잡이가 있고 이를 통하여 풀무질을 하는 악기로 해석한다면 오른쪽 1 악사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이 주조상의 정면에 주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풍구(風具)의 주름(bellow)으로 보기에 충분하여 이런 가능성을 뒤받침 하게 한다. 따라서 이 악기는 백파이프(bagpipe)나 콘체르티나(concertina)와 같은 음향발생 원리를 갖는 관악기 계통의 악기이며 오른손으로 악기의 몸체에 뚜껑처럼 붙어있는 손잡이를 잡고 풀무질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 9> 오늘날의 콘체르티나
하지만 이 오른쪽 1 악사의 악기는 관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백파이프보다는 콘체르티나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이 조주상의 악사는 특히 왼손으로 악기의 측면을 잡고 있어 이 방향에 지공(指孔)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를 조정하여 음정을 맞춰 음악을 연주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소상을 볼 때 악기의 파지(把持)가 매우 안정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악기를 지탱하기 위해 왼손으로 잡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음악적인 기능의 요소가 있으리라는 심중에서 이다.
그러나 외관상 이 악기를 콘체르티나 계열의 악기로 볼 수 있다 해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이런 종류의 악기가 없기 때문에 생경한 주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더욱이 19세기 유럽에서 개발한 악기인 콘체르티나와 비교한다는 것은 상상의 비약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콘체르티나 종류의 조상 악기가 아시아에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잘 보관되어있는 18세기 말, 티푸 술탄(Tippoo Sultan)이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져온 티푸 타이거가 그런 예의 하나이다. 이 악기는 돌출한 꼬리부분을 잡고 상하 운동을 하여 바람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연주하는 오르간의 일종이다. 생황 계열의 악기도 공기 주입을 입으로 한다는 방법이 다를 뿐 오르간 종류의 하나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오른쪽 1 악사의 악기도 티푸 타이거의 방법처럼 바람을 주입하고 이를 파이프에 연결하여 소리를 내는 공기울림악기[氣柱振動樂器]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추정하는 데에 그 자체로는 무리가 없다.
<그림 10> 티푸의 타이거(Tippoo’s Tiger)
둘째, 이 악기는 분리된 공명통과 뚜껑을 주름잡힌 물체로 고정 연결하여 상하 동작으로 때려 소리 내는 몸울림악기[體鳴樂器]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콘체르티나의 한 종류로 보기에는 지공이나 파이프 또는 떨청 등의 요소를 이 조소상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악기는 이런 요소들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런 추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악기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어 하나의 가설 이상 진전하기 어렵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악기의 이름은 무명백제악기(無名百濟樂器)라 함이 타당할 것이다.
4. 오른쪽 2 악사의 악기
백제금동대향로의 중앙 정면에서 오른쪽 2번째 악기에 대하여 <표 1>에 나타난 것처럼 거문고 또는 이의 한자 이름인 현금(玄琴)이라 하였고 전인평만 쟁(箏)이라 하였다. 거문고는 괘로 음높이를 조정하고 술대로 연주한다는 특징이 있다. 고구려 무용총 천장 벽의 거문고 그림의 경우는 괘의 모습이 선명하고 술대로 연주하는 손의 모습이 명료하여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의 오른쪽 두 번째 악기에는 이러한 흔적이 전혀 없다.
<그림 11> 오른쪽 2악사
거문고 계열의 악기라면 왼손의 위치가 악기의 앞판에서 괘의 높이만큼 높게 묘사되어야 할 것이나 이 국보의 조각상에는 손이 악기에 붙어 있어 거문고가 아님을 반증한다.
한편 쟁이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다. 쟁의 특징은 안족(雁足)에 있다. 쟁의 대표적인 악기는 중국의 쟁(箏), 한국의 대쟁(大箏), 일본의 고도(箏)인데 모두 안족 즉 주(柱)가 있는 악기들이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의 악기는 왼손바닥이 악기의 앞판에 붙어 있다는 점에서 이 악기에 안족이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한다.
이 악기는 금(琴)이다. 금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악기의 길이에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 악기는 거문고나 쟁에 비하여 적고 고대 금의 크기와 비슷하다. 중국 호북성 증후을묘에서 출토된 전국시대의 금은 전체의 길이가 67cm에 불과하였고, 장사마왕퇴3호묘에서 나온 금은 82.4cm였다. 이에 비하여 거문고는 156cm 내외(정악 거문고)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 악기는 악사의 몸과 악기의 비례로 보아 성인 여자 키와 비슷한 거문고의 길이라기보다는 금의 길이에 가깝다.
<그림 12> 장사마왕퇴3호묘(長沙馬王推3号墓) 서한칠현금(西漢七絃琴)
금은 보편적으로 7줄을 사용한다. 그러나 10줄짜리도 있고 5줄짜리도 있다.금은 당나라 때 우리나라로 들어온 악기라고 알려졌다. 지금은 금이 거의 연주가 안 되고 있지만, 줄이 7개여서 7현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였던 악기이다. 이 악기는 괘가 없고 줄을 손가락으로 앞판에 붙여서 서로 다른 음정을 내게 한다. 중국에는 지터(zither) 종류의 모든 악기를 금(琴)이라하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고금(古琴)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당나라 시대의 고금(古琴)도 손상되지 않은 채 4개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당나라 때 악기로 비천(飛泉)이 가장 작지만 121.6cm이고, 가장 큰 것은 당구소배패금(唐九소霄环佩琴)이 124.5cm로 전국시대보다 커졌다. 이후의 악기도 120cm 내외이며, 가장 큰 것은 명나라 때 제작한 설강도(雪江濤)인데 그 길이는 128.6cm이다. 따라서 금은 아무리 크다 해도 129cm 이하이기 때문에 150cm가 넘는 거문고에 비교할
<그림 13> 당나라 때 만든 금은평문금(金銀平文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백제금동대향로의 악기는 금이 확실하며 넓이가 좁은 것으로 미루어 5줄짜리 금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 악기에는 괘(棵)나 안족(雁足)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괘나 안족이 없는 악기로는 지터류의 악기로 금이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셋째,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 악기는 외관상 미단 부분과 좌단 부분이 잘록하게 좁다는 점이 있다. 이 역시 금의 특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번째 악사는 거문고나 쟁이 아닌 금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중원 전체에서 사용하였던 악기 금이 백제금동대향로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백제가 이른바 백가제해(百家濟海)의 국호만큼이나 외국과의 교역이 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또 하나의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백제금동대향로의 악기들은 일찍이 고문헌에 나타난 백제악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2종류의 현악기와 2종류의 목관악기가 새롭게 나타났는데, 현악기로는 류트 종류의 백제삼현과 이와 다른 지터 종류의 금(琴)이였고, 장소와 배소는 각각 음원 축소형(音源 縮小形)관악기와 나열형 공기울림악기여서 또한 다채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1번의 무명백제악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악기였다. 이 무명백제악기는 백제 이외의 장소에서 유사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지만, 배소는 비단길의 쿠차나 막고 동굴 등 곳곳에서 발견된 것이며, 백제삼현은 일본에서 옛 티베트 지역까지의 만리장성 남쪽에 퍼져있는 삼현 종류의 악기와 유사성이 있었다. 한편 금은 중원의 악기이다. 장소는 베트남이나 타이완 등지의 남방지역에 아직도 긴 세로피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남방 계열의 악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백제금동대향로의 악기는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전반의 거대한 지역에서 백제가 직간접적인 문화교류를 하였음을 시사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5인의 악사는 상단에 마치 합주를 하듯 균형 있고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이 조소상은 비교적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체균형과 악기의 모양이 사실적인 비례로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어 연주 자세와 악기의 음향에 대한 정보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로 충분하다.
이에 대해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직후 2인의 음악 학자를 비롯하여 언론인들이 이들 악기의 이름을 고증하여 발표하였고 이것이 공인화하여 지금까지 해당 박물관 안내 게시물은 물론 각종 교과서와 전 세계의 모든 자료에 이르기까지 소개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는 지금까지의 악기이름이 적절하지 못하였다는 견해를 이 논문으로 제시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오른쪽 첫 번째 악사의 악기는 지금까지 타악기 또는 북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풀무로 연주하는 생황 종류의 악기로서 관악기로 해석하였다. 다만, 이런 악기의 유례가 없기 때문에 이름 붙이는 것을 당분간 보류하며 무명백제악기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하였다.
둘째, 오른쪽 두 번째 악기는 이미 거문고로 발표되었지만 필자는 고대이래로 중원의 주요 악기인 금(琴)으로 보았다.
셋째, 중앙악기는 완함이나 월금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진금(秦琴=진나라의 현악기로 지금도 사용함)에 가까운 악기로 백제삼현이라 하였다.
넷째, 백제금동대향로 왼쪽에는 오늘날의 팬플루트와 퉁소 종류의 악기가 있는데 팬플루트 계열의 악기는 북방 및 중앙아시아계열, 즉 실크로드 계열의 배소이고, 퉁소는 남방계열의 장소(長蕭)이다.
또한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들 악기의 종류와 음향 원리, 기능을 정리하였고, 상당한 기간 동안 국내외 학자들과 악기제작자와 협의하여 이들 악기들을 복원하였다. 참고로 이 사진을 아래에 게시한다. 이렇게 경험론적 방법으로 복원한 악기는 당시 음악의 재현 시도나 다른 목적의 실용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백제금동향로에 나타난 악사들에 관한 음악학, 음향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우리 전통 속에 숨어있는 독창성과 문화의 교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연구가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앞으로도 지속해서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하려하며 그 첫 단계로 이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에 배치된 금 연주장면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2에 배치된 금
백제금동대향로 중앙에 배치된 백제삼현 재현악기 연주장면
백제금동대향로 중앙에 배치된 백제삼현 재현악기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에 배치된 악기를 추정 제작한 백제무명악기 연주장면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에 배치된 악기를 추정 제작한 백제무명악기
첫댓글 사진이 안나옵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그래서 사진을 별도로 올렸습니다.첨부 파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