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이란 단어의 뜻으로는 “궁극적인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유신론이나 무신론을 모두 배격해야 하는 입장이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실재의 참모습은 인간의 경험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불가지론에 대한 정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궁극적인 존재(실재)는 알 수 없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가지론이라는 말은 본래 헉슬리((T. H. Huxley)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말로서 ‘영지주의’라는 ‘gnosticism’에 대한 부정어인 'a'를 붙여서 ‘agnosticism’인데, 이는 “영적인 지식만이 절대적인 지식이다”라는 영지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의 단어이다. 불가지론에에 대한 몇몇 주장을 고찰해 볼 수 있다.
불가지론자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입장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데이빗 흄’이라는 철학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불이 난다고 해서 반드시 연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보편적으로는 불이 날 경우 반드시 연기가 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라는 동양의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불과 연기의 관계를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추측해 마치 진리처럼 인식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정제된 숯불에서는 결코 연기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보편적인 상식 모두를 뒤엎어버린다. “오늘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다고 내일 아침에도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에 대재앙이라도 닥친다면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말은 절대적인 진리로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는 불완전한 인간 경험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모든 판단을 중지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므로 ‘회의주의’에 빠졌다.
불가지론에 대한 다른 인물은 데이빗 흄에 의해 “철학적 독단의 잠에서 깨어난” 칸트를 들 수 있다. 이런 칸트의 주장을 소위 ‘칸트의 불가지론’이라고 말한다. 칸트는 세계를 두 부분으로 구분한다. “경험 가능한 세계”와 “경험할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 세계”이다. 경험 가능한 세계를 ‘현상(phenomena)’, 경험 불가능한 세계를 ‘본체(nomena)’라고 한다. 칸트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이 세계는 경험의 세계로서 오성을 통해서 지각할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는 경험적 영역이다. 그러나 본체계, 즉 물자체의 세계는 경험 영역 밖에 존재함으로 인식능력이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철저히 현상계에만 국한시킨다. 하나님, 천사, 마귀 등 영적존재의 인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므로 칸트의 철학은 철저하게 윤리적인 면을 지향한다. 칸트의 불가지론적 결론이 하르낙, 리츨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차용되어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전락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