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淸沙) [주석547]김상(金相)이 암행어사로서 영남에 나갔는데, 때는 오뉴월이었는지라 날씨가 몹시 더웠다.
행차가 태백산(太白山) 안에 이르자 목이 몹시 말랐으나 산골짜기에 인가가 없을뿐더러 샘물 또한 없었다.
겸종(傔從)과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며 봤지만 길가에서 해갈할 방법이라곤 만무하였다.
마침 한 고개를 지나자 길가에 오이밭이 있었는데, 오이밭을 지키는 원두막은 없었다. 푸른 오이가 잘 익은 것을 보자 갈증이 더욱 절박해졌으니 어찌 [주석548]납리의 혐의(納履之嫌)를 돌아보겠는가? 겸종으로 하여금 두 푼의 돈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밭 안에 있는 콩잎에 걸어놓고 오이밭에 들어가 오이를 따오게 하였다.
겸종은 발을 들어 밭두둑으로 들어갔는데 겨우 몇 발자국 들여놓자마자 혼절하여 밭 가운데 쓰러졌다.
입속으로 겨우 '나으리!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한마디 하더니 이후로는 다시 아무 소리도 없었다.
김상은 몹시 이상하게 여겼으나, 감히 조금도 들어가지 못하고 밭두둑을 방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홀연히 어떤 농사꾼 노인네가 머리에 대삿갓을 쓴 채 산 위에서 내려오며 소리쳐 말하였다.
“어찌 당돌하게 훔치러 들어갈 수 있는 것이오?” 김상이 보니 노인네의 걸음걸이는 편안하고 느렸으며 말은 화락하고 조용하여 조금도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모습이라곤 없었다.
김상은 갈증이 심했던 까닭에 돈을 걸어놓고 오이밭에 사람을 들여 보냈던 연유를 말하자 농사꾼 노인네가 말하였다.
"이 밭에는 비록 원두막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지만, 밭가에 [주석549]백마(白麻)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소? 그것은 훔치려는 사람의 행보를 족히 막을 수 있소." 웃으면서 밭으로 들어가더니 겸종의 손을 잡고 모 방향으로 나왔다.
조금 전에는 혼절하여 쓰러져 의식이 없던 겸종이 지금은 평상시처럼 아무 이상이 없었고 또 서너개의 오이를 얻어먹었다.
김상이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오이밭의 사면에는 백마가 빙 돌아가며 심어져 있었고, 그 마를 심은 법이 혹 성글기도 하다 혹은 빽빽하기도 하여 완연히 [주석550]8문(八門)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으니 이는 곧 [주석551]8진법(八陣法)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겸인에게 조금 전의 광경을 물어보았더니 겸인이 말하였다.
"겨우 몇걸음 옮겨놓자마자 오장(五臟)이 요란하고 [주석552]칠정(七情)이 혼미한지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으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조금 전 노인이 손을 끌어 길을 안내해 주었을 때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 있고 정신도 맑게 깨어났습니다."
김상은 몹시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산마루를 향해 표연히 가버렸다.
김상은 이인(異人)이라고 여겨 겸인을 근처 촌사(村舍)에 보내고 김상 자신은 몰래 그 노인 뒤를 쫒아갔다.
몇 개의 언덕을 넘은 뒤 노인네를 따라 그가 거처하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은 몇 간 초가집이었고, 방이라곤 한칸 방밖에 없었다. 이에 김상은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재워주기를 애걸하니 노인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김상은 노옹과 더불어 조용하게 담화하였다. 담화 후 노옹은 손수 기장과 조가 섞인 밥 한 주발을 가지고 김상을 부엌으로 맞아들여 그것을 먹게 한 뒤 짚으로 만든 자리를 펼치더니 그 위에 앉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산에 거처하는 사람인지라 인사가 지나치게 무례하니 허물하지는 마시오."
김상은 노옹과 더불어 동숙(同宿)하였다.
김상이 바야흐로 그의 평생을 물어보고자 하였더니 그 노옹은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며 코를 골고 자므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조금 후 동방이 밝아오려 하자 김상은 늙은이를 깨우며 말하였다.
“주인장! 어찌 그리 곤하게 주무시오?” 노인은 눈을 부비며 일어나더니 앉으며 말하였다.
“늙은 소치입지요. 손님을 접대하는 인사가 이같이 소홀하였으니 내 죄를 알겠소이다.” 김상이 말하였다.
“나는 바야흐로 경영할 일이 있어 지금 모(某) 지방으로 향하고 있소만 그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 지 모르겠소이다.” 노옹이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미 어사또가 우리 집에 왕림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서로 속이지 맙시다.”
김상이 놀라 말하였다.
“허! 이 무슨 말이오? 시골의 궁벽한 선비를 어찌 암행어사로 보시오? 주인장이 정말로 망령이구려!” 노옹은 손으로 처마 꼭대기에 걸린 별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별은 바로 암행어사를 주관하는 별인지라 그 때문에 안 것이오. 무엇 때문에 종적을 감추려 하시오?”
김상은 이 말을 듣자, 더 이상 숨길 수 없는지라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평생 벼슬살이는 어떠할지, 자손은 어떠할지를 상세히 물었다. 노옹은 일일히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모년에는 모관이 되고 모년에는 모 자품(資品)에 오를 것이며, 모년에는 관찰사가 될 것이고 모년에는 의정부에 올랐다가 필경에는 영의정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오. 신하된 자로서의 귀함이 극에 달할 것이고 [주석553]묘향(廟享)에서 제사를 지내게 될 것이오. 아들 셋을 둘 것인데, 둘째 아들이 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될 것이오.”
심지어는 [주석554]황후의 난(黃猴之亂)까지도 낱낱이 다 말해주었고 김상은 이를 묵묵히 가슴 속에 기억해 두었다. 그 뒤로 김상이 관직에 제수되고, 품계에 오른 것들이 모두 그 노옹의 말과 부합하였다고 한다.
[淸沙金相 以繡衣 出嶺南時 當五六月 天氣甚熱 行到太白山中 喉渴甚急 峽中無人家 亦無井泉 與從傔彷徨路次 萬無解渴之道 適過一峴 則路邊有瓜田而無幕 見靑瓜爛熟 渴症甚緊 豈顧納履之嫌 使其從傔 持二分錢 掛于田中豆葉入送摘來 傔人擧足入苗 纔擧數步 仍卽昏窒 仆于田中 口裏纔出一聲曰 「進賜主活我」 仍又無聲 金相大怪之 不敢造次入去 彷徨田隴 方甚罔措 忽有一田翁 頭戴箬笠 自山上下來 呼謂之曰 「豈可唐突偸入耶」 觀其行步徐緩 言辭雍容 少無驚怪之樣 金相告以喉渴之故 懸錢入送之意 田翁曰 「此田 雖無幕無人 君不見田邊白麻之種乎 此足禦偸人之行矣」 笑而入田 抱傔人之手 從某方而出 俄者昏仆不省之人 今則如常無恙 又得食數瓜 金相更爲詳看 則瓜田四面 環植白麻 其種之〃法 或踈或密 宛成八門貌樣 意以爲此是八陣法也 仍問傔人 以俄者光景 傔人以爲 「纔移數步 五內撓亂 七情迷昏 目無所見 咫尺不辨 仍爲昏沈矣 俄者老人 携手指路 始目有所見 精神惺〃矣」金相大以爲異於是 田翁更無一言 飄然向山厓而去 金相以爲異人 傔人則送于近處村舍 而潛追其踪 踰越數崗 隨田翁 入其所居之室 乃是數間草屋 而房則一間房而已 金相乃萬端乞宿 田翁笑而入內 與老翁從容談話後 手持一椀桼粟飯 邀坐于廚中食之 布一立藁席 請坐曰 「山居人事 太無禮 休咎〃〃」 仍與同宿 金相方欲叩其平生 而田翁鼻息如雷 無以接話 少焉 東方欲曙金相攪田翁曰 「主翁何睡之困耶」 老翁拭眼起坐曰 「老昏所致 接客人事 如是泛忽 知罪〃〃」 金相曰 「吾方有所營事 今向某地 未知其事 可得諧乎」翁笑曰 「吾已知繡衣之臨吾門也 勿相欺也」 金相驚曰 「惡是何言也 鄕曲窮士 何視以繡衣也 主翁眞妄矣」 田翁手指檐角之星曰 「此星乃主繡衣者也 以是知之 何用藏踪爲也」金相聞此言 勢無以隱諱 告以實 細叩其平生 宦跡之如何 子孫之如何 田翁一〃詳告曰 「某年爲某官 某年陞某資 某年按節 某年登閣 畢竟位至上相 貴極人臣 廟享血食 有子三人 而仲子又當繼爲領相」 至於黃猴之亂 亦歷〃言之 金相黙記于中 後來除官陞資 無不符合云]
547)김재로(金在魯:1682-1759)청사는 그의 호. 문신. 신임사화로 문외출송(門外出送)되었다가 영조 즉위때 재등용. 관직생활의 절반을 모두 대신으로 있으면서 노론의 선봉자로 활약.
548)납리지혐(納履之嫌)과 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李下不整冠)에서 나온말. 오이밭에서 신이 벗겨져서 이를 다시 신기 위하여 몸을 굽히면 오이를 딴다는 혐의를 받는다는 뜻.
549)백마(白麻) 어저귀. 아욱과에 속하는 일년초. 줄기껍질은 섬유로 쓰며 씨는 경실(苘實)이라 하여 한약으로 씀.
550) 팔문(八門) : 술가(術家)가 구궁(九宮)에 맞추어서 길흉(吉凶)을 점하는 여덟 문. 곧 휴문(休門)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景門) 개문(開門) 등.
551)팔진법(八陣法) 종군을 가운데에 두고 여덟 가지 모양으로 진을 배치하는 법. 보통 천(天) 지(地) 풍(風) 운(雲) 용(龍) 호(虎) 조(鳥) 사(蛇)의 여덟가지로 나타내나 병가(兵家)에 따라 그 형상은 서로 같지 않았음.
552)칠정(七情) 노희애락오애욕(怒喜哀樂惡愛欲) 또는 희노우사비경공(喜怒憂思悲驚恐).
553)묘향(廟享) : 태묘(太廟)의 제사 곧 종묘의 제사.
554)황후지난(黃猴之亂) 1721년에 있었던 신축사화(辛丑士禍)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해 12월에 소론 과 격파 김일경(金一鏡)이 세자대리청정 문제에 관련된 노론대신을 공격하여 노론 사대신은 파직되어 섬 등지에 안치되었고 다른 노론들도 삭직되거나 유배당하였는데, 김재로도 화를 입었었다. (靑邱野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