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을 즈음하여, 나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속해있던 곳을 한꺼번에 떠났다.
부산, 부모님,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나를 오래오래 울게 했던 추억들.
툭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만큼이나 강한 두려움이 내 의식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서울행 기차를 타기 며칠전에 그애를 만났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지독한 감상에 사로잡혀
나는 여전히 냉정한 모습에 어쩔 줄 모르고 화를 내며 먼저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내 근간의 기억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그애와는
떠나기 전에 그렇게 헤어진게 마지막이었다.
떠나던 날, 어머니는 애써 내 눈을 피하셨지만
끝내 역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서로 울고 말았고
기차에서 배웅하는 아버지를 유리창 저편에 남겨둔 채
나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도 마음이 아프시리란 걸 그땐 몰랐다.
곁에서 언니가 별것 아닌걸로 운다며 놀렸지만 그때 내 슬픔은 필사적이었다.
도착한 서울집에서 며칠을 멍하게 보내면서
잠들기 위해 베게속에 머리를 묻을 때마다
집으로 건 전화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리쫓기고 저리쫓기는 낯선 일상에 부닥칠때마다
난 뜨거운 뭔가를 삼켰다. 혹은 삼키지 못하고 내뱉었다.
그러저러한 하루하루가 지나서, 그렇게 서럽던 1년전의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이를테면,
떨어져 지내도 어떤 친구들은 나를 잊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곳에도 명백한 나의 일상이 존재함을 깨달았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집의 소중함이나 혹은,
멀리서도 가끔 잊고 살아갈수 있는 나의 무심함을 깨달았고
심지어는 그렇게 강렬하던 그애와의 추억이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다는 것마저 깨달았다.
그렇게 힘들때마다 내가 띄우던 편지를 받은 녀석들은
이러한 나의 절망을 짐작이나 했었을까...
그러나 슬프게도, 나역시 점점 편지를 쓰지 않는 아이가 되어간다.
-최혜미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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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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