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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입능가경(入楞伽經),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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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
조수동(대구한의대학교 관광레저학과 교수)
≪능가경(楞伽經)≫은 랑카바타라 수트라(Laṇkāravatāra-sūtra)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본의 원래 이름은 아리아 삿다르마 랑카바타라나마 마하야나수트라(Ārya-saddharma-laṅkāvatāranāma-mahāyanasutra)다.
그 뜻은 ‘불교의 성스러운 정통 교의를 간직한 능가아발다라(楞伽阿跋多羅)라고 불리는 대승 경전’이다.
‘능가아발다라(楞伽阿跋多羅)’는 능가(laṅka)에 들어간다[入楞伽]는 의미다.
이 경의 한역본으로는 유송(劉宋) 때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 4권,
북위(北魏) 시대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 10권,
당(唐)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7권이 있다.
그리고 2종의 티베트어 번역본이 있다.
구나발다라가 443년 금릉의 도량사에서 번역한 ≪능가아발다라보경≫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으로 알려져 있다.
≪입능가경≫은 보리류지가 513년에 북위(北魏)의 낙양에 있는 여남왕(汝南王)의 집과 업도(鄴都)의 금화사에서 번역했다.
≪대승입능가경≫은 700년에 실차난타가 번역했다.
≪대승입능가경≫의 번역에 참여했던 법장(法藏)의 기록에 의하면, 실차난타가 번역을 마치고 퇴고(推敲)하기 전에 칙명을 받아 우전국(于闐國)으로 돌아가게 되어 토화라(吐火羅)의 삼장 미타산(彌陀山)이 천자의 명으로 실차난타의 번역을 참고해 다시 번역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본과 한역된 3종의 경전을 비교해 보면,
≪능가아발다라보경≫은 팔식(八識)을 진식(眞識), 현식(現識), 분별사식(分別事識)의 세 종류로 나누고 있지만,
≪입능가경≫이나 ≪대승입능가경≫, 그리고 산스크리트본은 진식을 제외하고 현식, 분별사식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식에 전상(轉相), 업상(業相), 진상(眞相)의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은 모두 공통된다.
한역된 세 종류의 경전을 비교하면,
≪능가아발다라보경≫은 전체를 ‘일체불어심품(一切佛語心品)’이라 하여 세분하지 않고 있는데,
≪입능가경(入楞伽經)≫은 10권 18품,
≪대승입능가경≫은 7권 10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권과 품의 분류로 보면 ≪대승입능가경≫이 산스크리트본이나 티베트본과 일치한다.
≪능가아발다라보경≫은 달마가 혜가에게 전수한 경전이라고도 하는데, 달마 이후 혜능 이전까지 선불교에서 연구되었던 경전이다.
초기 선종의 일파였던 능가사(楞伽師)들이 그들의 소의경전(所依經傳)으로 삼은 경전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주석서도 가장 많다. 보리달마는 혜가에게 ≪능가아발다라보경≫을 전수하면서 이 경을 마음의 요체로 삼도록 하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한(漢)의 땅을 살펴보니 오직 이 경만이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대가 이 경전에 의지해 수행하면 스스로 해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혜가는 항상 ≪능가경≫의 현묘한 이치[玄理]에 따라 수행했다고 한다.
혜가는 북제의 도읍지였던 업도(鄴都)에서 ≪능가경≫의 현묘한 이치를 설법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혜가 때부터 이 경전에 대한 연구가 성행했고 전승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이후 ≪능가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능가사(楞伽師)라 했는데, 이들이 능가종을 형성했다.
이들은 보리달마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실천 불교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수행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져 북종선에서는 ≪능가경≫의 전수를 사자상승(師資相承) 인가의 증명으로 삼았다.
선종 사서인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는 ≪능가경≫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사자상승(師資相承)과 그들 각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를 통해서 ≪능가경≫이 초기 선불교에서 매우 중요시되었으며, 선종과 가장 오래된 관계를 갖고 있는 경전임을 알 수 있다.
남종선에서는 이에 대응해 가사의 전수[傳衣]나 전법게(傳法偈), 혹은 ≪금강경≫ 등의 전수를 인가의 증명으로 삼았다.
≪능가사자기≫에서는 중국의 선종이 ≪능가경≫에 의한 것이라 하여 제1조를 ≪능가경≫을 번역한 구나발다라로 하고,
제2조 보리달마, 제3조 혜가, 제4조 승찬(僧璨), 제5조 도신(道信), 제6조 홍인(弘忍), 제7조 신수(神秀), 제8조 보적(普寂)의 순서로 법이 전등되었다고 한다.
≪속고승전≫에서도 많은 능가사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으며, 능가종의 입장을 남천축일승종(南天竺一乘宗)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능가사들이 반야(般若) 사상을 기본으로 해 ≪능가경≫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즉 달마의 대승벽관(大乘壁觀)의 사상이 반야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달마와 혜가의 법을 이었다고 자임하는 능가사들도 무득정관(無得正觀)을 종지로 했다.
이같이 능가종은 달마에서 혜가로 이어지는 대승선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당시 교학이나 공덕 위주의 불교에 대해 새로운 실천 불교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능가경≫은 그 내용상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승만경≫, ≪해심밀경≫ 등의 사상을 종합하고 있다.
따라서 ≪능가경≫은 이들 여러 대승 경전들이 등장한 이후, 즉 대승 중기 이후에 유포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능가경≫은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대승불교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중 핵심 주제는 유심 사상(唯心思想)이다.
≪능가경≫은 유식 사상인 팔식설과 삼자성설 등을 계승하고, 심(心), 의(意), 식(識)이 각자 독자적인 기능을 갖고 있지만, 온갖 식(識)에 다른 상(相)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식에는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 의(意, manas), 의식(意識)의 팔식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약설하면 진식(眞識), 현식(現識), 분별사식(分別事識)으로 나뉜다고 했다.
진식은 아뢰야식의 진(眞)의 면, 즉 식의 진상(眞相, jatilaksana)이다. 현식은 아뢰야식이 무시(無始) 이래로부터 근본 무명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업상(業相, karmalaksana)이다.
그리고 분별사식은 식의 전상(轉相, pravrttilaksana)으로서 의(意) 및 의식(意識)이며, 또한 전식(轉識)이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진(眞)과 망(妄)이 화합하고 있는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다.
또한 경에서는 법성(法性)의 무차별성을 강조해 만물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여래장(如來藏)이라 하고, 그것을 아뢰야식과 동일시하고 있다.
경에서는 아뢰야식과 여래장의 관계를 아뢰야식과 전식의 관계로 설명해 아뢰야식과 전식이 비일비이(非一非異)하다고 하여 그것을 “장식(藏識)의 바다 중의 칠전식(七轉識)의 파도”의 관계로 설명한다.
제7전식은 아뢰야식의 전변(轉變)에 지나지 않는다. 전식이라는 파도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아뢰야식이라는 바다는 불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뢰야식의 진상에 대한 규정은 바로 여래장설과 일치한다. 따라서 여래장과 아뢰야식은 동일한 여래의 경계다. 그것은 자성청정(自性淸淨)하지만, 객진번뇌에 덮여 있어 부정하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의 진상(眞相)은 여래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능가경≫은 유식설이 설명하는 팔식설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여래장 사상을 받아들여 아뢰야식과 여래장을 조화, 통일시키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능가경≫은 대승 경전 중 여래장 사상과 아뢰야식 사상을 종합, 통일시키려는 시도가 최초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경전이며, 여래장 사상과 아뢰야식 사상을 융합해 일불승설(一佛乘說)을 주장하는 사상의 선구가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그 후 ≪대승밀엄경≫이나 ≪대승기신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외에도 이 경에서는 붓다의 자내증(自內證)을 강조해 주체에 관한 문제의식을 부각한다.
그리고 나가르주나(용수)의 공 사상이 강조된다.
불가득(不可得), 불생(不生), 여환(如幻), 무자성(無自性)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생멸(生滅), 단상(斷常), 유무(有無)의 대립 개념을 떠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외도의 학설을 인용하고 그들의 이론과의 차이성을 강조한 점도 특징이다.
≪능가경≫에서는, 본래 우리들의 마음은 여래의 경계와 같고,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보아야 됨을 강조한다. ≪능가경≫의 이러한 가르침이 바로 중국의 초기 선(禪) 수행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달마에게서 ≪능가경≫을 전수받아 법의 요체로 삼은 혜가의 선의 요지는 안심(安心)이다. 안심은 궁극적으로 안리심(安理心)인데, 마음이 평등한 것을 이(理)라 하고, 그것이 밝게 비추는 것을 심(心)이라 한다. 그러므로 심(心)이 곧 이(理)다. 이것은 곧 불심(佛心)이다. 그러므로 불심(佛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혜가의 제자들은 ≪능가경≫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해 두타행(頭陀行)을 행했다. 그들은 문장의 이치는 실속 없는 말을 극복해야 하고, 문맥과 내용은 서로 일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혜는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 언어보다 관상(觀想)을 더 중요시했다.
이와 같이 능가종(楞伽宗)의 선법의 종지(宗旨)는 말과 생각을 잊고 올바른 명상조차도 얻음이 없는 데 있다. 능가사들은 이러한 종지의 깊은 뜻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해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을 했다.
≪능가경≫의 3종의 한역본은 각기 권수와 품의 수, 제목이 다르지만, 내용의 서술이나 줄거리는 큰 차이가 없다.
이 중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것은 ≪능가아발다라보경≫이지만,
중국의 법장에 의하면 실차난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 7권본이 본래의 뜻에 가장 충실하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번역도 ≪대승입능가경≫을 주 텍스트로 했다.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ṣānanda, 652∼710)는 우전국(于闐國) 출신으로 중국에 ≪화엄경≫을 가지고 와서 보리류지, 의정 등과 함께 번역했다(669∼695, ≪80화엄경≫). 그가 번역할 때 측천무후가 번역장을 친히 방문해 서문을 사(賜)했다고 한다.
실차난타는 이 밖에도 ≪문수수기경(文殊授記經)≫ 19부도 한역했다. 그는 704년에 귀국했다가 708년 다시 중국으로 왔다고 한다.
7권본 ≪대승입능가경≫의 각 품의 제목은
<나바나왕 권청품(羅婆那王勸請品)>,<집일체품(集一切品)>, <무상품(無常品)>, <현증품(現證品)>, <여래상무상품(如來常無常品)>, <찰나품(刹那品)>, <변화품(變化品)>, <단식육품(斷食肉品)>, <다라니품(陀羅尼品)>, <게송품(偈頌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바나왕 권청품>에서는 부처님이 용궁에서 7일 동안 설법한 뒤에 마라야산 정상에 있는 능가성으로 가서 보살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을 때, 나바나왕이 대혜보살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부처님은 나바나왕을 위해 설법한다.
<집일체품>은 대혜보살의 140여 가지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뢰야식을 비롯한 식에 대한 논의, 일곱 가지 자성 등의 유심 사상, 5종 종성, 일천제, 삼자성, 불교의 가르침과 외도설과의 비교와 비판, 네 종류의 언어 분별상, 열반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상품>에서는 3종의 의성신(意成身), 오무간업, 여래의 언설법과 여실법(如實法), 불생불멸에 대한 불교와 외도의 차이점 등을 말한다.
<현증품>에서는 성문, 연각과 보살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보살과 부처님의 지위는 오직 마음일 뿐임을 말하고 있다.
<여래상무상품>에서는 여래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여래는 그 양자를 떠나 상(常)과 무상(無常)을 드러낸다고 한다.
<찰나품>에서는 여래장이 장식(藏識)임을 말하고, 여래장은 장식과 함께 일어나 생사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육바라밀의 설명에서는 세간, 출세간, 출세간상상의 세 가지 방법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변화품>에서는 삼신불에 대한 설명, 부처와 이승이 차별이 없는 해탈일미(解脫一味)임을 말한다. <단식육품>에서는 육식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다라니품>에서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능가경주(楞伽經呪)를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게송품>은 이 경의 내용을 게송으로 정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승입능가경 [-入楞伽經]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식을 만드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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