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모데전서5장
남편을 잃은 여 성도, 목사와 장로에 대한 의무
(찬송 1장)
2023-10-13, 금
맥락과 의미
디모데전서 5장은 목사가, 교회의 여러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또한, 참 과부와 목사와 장로를 교회가 어떻게 영적으로 도와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1. 성도를 가족같이 대하라(1-2절)
2. 홀로 된 여성도를 경제적 지원, 그들이 교회를 섬기도록 함(3-16절)
3. 목사와 장로: 존경하고 목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라(17-18절)
4. 목사와 장로의 잘못을 올바로 평가하여 대응하라(19-25절)
1. 성도를 가족같이 대하라(1-2절)
디모데는 목사로서 교회를 섬길 때, 나이가 든 성도는 꾸짖지 말고 권면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목사는 협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함으로 변화시킵니다. 젊은 사람은 형제를 대하듯이 합니다. 젊은 여성도는 자매를 대하듯이 하되 깨끗하게 대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2. 홀로 된 여성도를 경제적 지원, 그들이 교회를 섬기도록 함(3-16절)
1) 홀로 된 여성도의 생계는 가족이 책임져야 함(4-5절, 7-8절, 16절)
남편을 먼저 보낸 여성도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으면 그들이 여성도를 모셔야 합니다. 효를 행하고 어머니, 혹은 할머니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키우느라 수고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효를 행한다”(4절)는 하나님 앞에 “경건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늘의 아버지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 결과로써 이 땅의 부모를 공경합니다. 이 땅의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섬기는 법을 훈련해갑니다.
4절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은 구약의 제사 제물과 신약 시대의 헌금을 말합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래서 8절, 부모를 잘 돌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입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불신자도 부모님께 효도하여 은혜 갚을 줄 알지 않습니까? 효도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돌보지 않아서 교회에게 부모를 구제하는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16절). 우리는 부모님, 친정 부모와 장인 장모님도 섬겨야 합니다. 물론 어릴 때 나에게 많은 상처를 준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로서 부모를 봉양하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2) “참 과부”를 교회가 돌봄(3, 5-7절)
3절에서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합니다. 부양할 가족이 없는 과부가 된 여성도는 교회가 부양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교회에게 하는 말입니다. “존대하라”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와 같은 말입니다. 교회는 그 나이 든 여성도를 교회의 어머니로서 공경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참 과부”만 교회가 돌보아야 합니다. 참 과부는 첫째, 부양할 사람이 없는 과부입니다. 자기 스스로 일하여 자기를 부양할 수 없는, 그렇게 나이가 든 여성입니다.
둘째, 경건한 과부입니다(5절). 남편이 없는 외로움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바랍니다.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합니다.” 잠도 자지 않고 기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도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6절, “향락을 좋아하는 여성”은 참 과부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쾌락에 빠진 사람을 말합니다(야고보서 5:5). 그런 사람은 살아서 숨은 쉬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외로운 여성도에게 영적인 위로뿐 아니라 물질적인 것도 공급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노인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늙은 과부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등록금이 힘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실직을 당해서 힘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의 실패로 생활이 힘든 성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가 생긴 성도도 있습니다. 그때 교회는 가족으로서 무엇이든지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나오지만 경건으로는 나오지 않는 사람은 돕지 않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3) 과부 명부에 올리는 과부: 경건한 사역자(9-15절)
바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참 과부”와는 별도로 “명부에 올릴” 과부를 임명하라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권사님과 같습니다. 사역자 과부의 자격은
첫째, 나이가 60 이상이어야 합니다(9절).
둘째, 한 남편의 아내, 즉 아내로서 역할을 잘 한 여성이어야 합니다(10절).
셋째, 선하게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경건하게 잘 양육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그네 대접, 곧 손님 대접을 잘 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당시에 순회 전도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섬긴 것을 말합니다.
평생 성도들의 발을 씻긴 사람입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성도를 섬긴 여성이어야 합니다. 고난당한 자를 돕는 사람입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과부가 된 뒤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격이 있는 나이 든 여성에게 교회의 영적 지도적 임무를 맡겼습니다. 디도서 2:4에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를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여성 지도자는 젊은 여성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섬김의 일을 하는 “명부에 올릴” 과부 중에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참된 과부”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교회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과부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 신분을 섞지 않았습니다. 가난하여 구제를 받는다고 해서, 젊은 여성을 가르치는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아닙니다.
4) 젊은 과부는 사역자가 되지 말고 결혼하라(11-15절):
젊어서 혼자된 여성도는 “명부에 올릴” 과부로 등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도자로서의 과부의 신분을 버리고 다시 결혼하여 그 결과 믿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12절,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젊은 과부 중에서 교회를 위해 특별히 헌신하여 섬기기로 결심했다가 재혼한다면 자신의 맹세를 어기는 것입니다.
혼자된 다음에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주님과 결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맹세해 놓고 재혼하면 주님을 향한 사랑을 배반하게 됩니다.
자기가 결심한 것을 어기는 과정에서 그의 양심이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양심이 둔감해지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버리는 데까지 나갑니다. 그 결과 불신자가 되어 심판을 당합니다. 에베소에서는 주님을 배반하고 사단에게 돌아간 자가 실제로 있었습니다(15절).
젊은 과부를 지도자로 세우는 것을 금하는 둘째 이유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3절,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며 게으를 뿐 아니라.” 그냥 이집 저집 다니며 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의 열매를 내지 못합니다.
더 큰 문제는 “쓸데없는 말을” 합니다. 유익한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일거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문제거리만 만듭니다. “쓸데없는 말”, “마땅히 아니할 말”은 헛된 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자기가 선생이 되기를 원해서 성경에도 없는 헛된 말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과 비슷하게 합니다(헛된 말, 1:6-7, 4:7, 6:3-4).
14절의 “젊은이”는 젊어서 과부가 된 여성도를 말합니다. 그들은 시집가서 아기를 낳아 양육하고 집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명부에 올릴” 과부는 젊은 때에 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기를 낳는다”는 2:15의 “해산함”과 같은 말입니다. 아기를 키운다는 뜻입니다. 아기를 키우고 가정의 여주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비방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단의 비방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젊어서 혼자된 여성도는 스스로 일해서 자신의 부모님, 특히 혼자된 어머니를 부양해야 합니다. 16절,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성도는 모두 과부 친척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도 “믿는 여자”만 말한 것은, 에베소의 젊은 과부를 말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젊은 과부인 여성도는 교회의 다른 성도를 섬긴다고 하면서 과부인 자기 어머니나 시어머니를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3. 목사와 장로: 존경하고 목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라(17-18절)
17절, “잘 다스리는” 장로는 가정을 이끌고 돌보는 데 쓴 말입니다(3:4, 12). 여기서 장로는 지금의 목사와 장로를 말합니다. 모든 성도는 서로 존중해야 하지만, 목사와 장로는 더 존경해야 합니다.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는 지금의 목사를 말합니다. 성도가 장로를 존경하고, 특히 목사를 존경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들로부터 오는 말씀의 은혜가 영혼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18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명기 25:4). 들에서 추수하는 일을 하는 동물에게도 양식을 주라고 합니다. 동물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구약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신약 성도는 더 그렇게 해야 합니다. 특히 목사에게 생활비를 잘 지급하라는 말입니다(고린도전서 9:9).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7).
사단은 목사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어서 복음 말씀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성도는 목사의 생활 지원을 잘 해서 말씀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무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원을 받는 목사는 검소하게 생활함으로써 교회에 불필요한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4. 목사와 장로의 잘못을 올바로 평가하여 대응하라(19-25절)
1)목사의 잘못에 대한 의심과 판단(19,20절)
목사와 장로가 문제 있다고 말할 때는 엄격한 요건을 요구합니다. 두세 명의 증인이 있을 때만 권징을 해야 합니다. 모든 권징에 대해서 두 세명의 증인이 있을 때 권징해야 합니다.
특히 목사와 장로의 문제를 밝힐 때는 더 신중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성도의 잘못을 권면하고 교정하고 책망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이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목사와 장로에 대해 성도들 쪽에서 쉽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목사와 장로가 문제 있다는 소문이 났을 때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렇게 믿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단이 그렇게 유혹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부당하게 비난을 받으면 복음의 권위가 흔들립니다. 목사와 장로를 비난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가 잘못을 한 것이 확실하면, 더 엄중히 공적으로 징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에게 경고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20절).
잘못이 있다고 당장 권징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할 때 징계해야 합니다. 권징할 때는 편견없이 해야 합니다(21절). 사람의 얼굴을 보아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택하신 천사들(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천사들, 선한 천사들) 앞에서 목사와 장로의 권징 문제를 말합니다. 이처럼 엄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땅의 교회의 판단은 하늘의 교회의 판단을 반영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실제로 거짓 교사처럼 잘못에 빠진 장로들이 있었는 듯합니다(1:6,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는 자들).
2) 목사 임직의 신중함(21절)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여 직분자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은사와 자질이 있는 사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경솔하게 안수하면 그들의 죄에 참여하는 셈이 됩니다. 잘못된 목사들이 지은 죄가 교회에 확산되도록 합니다.
교회는 교인 중에 신실한 사람을 목사 후보생으로 세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목사로 임직하기 전에도 잘 점검하여 준비된 사람만 임직해야 합니다.
3) 디모데의 건강과 음주(23절)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건강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 쓰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당시에 술 취하는 문화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술을 입에 대지 않은 듯합니다. 바울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건강을 위해 약으로 포도주를 쓰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많은 약이 없었고 포도주가 약으로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포도주를 필요할 때 쓰라고 한 것으로 보아 술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술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술을 마시며 즐기라는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절제하며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합니다.
앞 뒤에서 목사의 죄의 문제를 말하면서 술과 디모데의 건강 문제를 말한 것으로 보아, 목회자로서 술을 마시지 않는 디모데의 삶을 바울은 좋게 보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는 술에 취하여 시간을 낭비하고 사명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3:3).
4) 성도와 지도자들의 선과 악은 드러남(24,25절)
사람의 감추어진 죄는 드러납니다. 어떤 것은 바로 드러나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안수하는 일에 신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지 드러날 것입니다. 또 선행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악한 것도 결국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이 죄를 드러내고 심판하실 것을 알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 교회는 목사나 장로를 세울 때,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몇 년이고 시간을 두고 신앙이 검증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때로는 교회의 영적인 힘이 약해져서 권징을 잘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 집사는 그들이 교회를 위해 한 선한 일들이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행을 결국은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지금 오해의 어둠 가운데 처해 있더라도 평안한 마음으로 빛이 비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 성도 모두가 서로를 영적 가족으로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의 노후 경제 생활을 지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 자녀와 교회의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것을 잘 가르치도록 합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생계가 어려운 성도는 교회가 기쁨으로 지원합시다. 특히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된 여성도는 교회가 따뜻하게 품고 사랑을 베풉시다.
우리 교회에도 가정을 잘 세운 나이 든 지혜로운 여성도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시다. 그들이 젊은 여성도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합시다.
목사는 온유함으로 성도를 잘 가르치고, 성도들은 목사를 존경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이러한 자질을 잘 갖춘 목사들을 훈련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 목사 후보생을 위해 기도합시다.
모든 성도가 언어에 절제가 있고, 가정 내 직분에 충실하며, 성도의 필요를 잘 섬기는 자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우리의 선과 악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4절, 젊은 이(젊어서 남편을 잃은 사람)는 결혼하고 자녀를 두라
바울은 젊어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모두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독신으로 사는 것을 좋게 생각합니다. 또 남편이나 아내와 사별한 성도는 혼인하지 않을 수 있으면 혼인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고전 7:39-40). 그 이유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7:32-34).
각 사람이 독신으로 살 수 있는 성적인 통제력이 있고 은사가 있으면 독신으로 살기를 권합니다. 명령이 아니라 각 성도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합니다(고전 7:7-9). 만약 젊어서 과부가 된 여성이 이런 통제력뿐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성숙함이 있으면 독신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참고> 목사와 장로에 대한 권징
장로에 대한 권징은 교회 당회(목사와 장로가 모인 회의)가 결정합니다.
장로교에서는 목사에 대한 권징을 노회에서 결정합니다. 노회는 지역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 모임입니다. 모든 목사는 노회의 회원이 됩니다. 장로들 중에서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지역 교회가 파송한 장로만 노회원이 됩니다.
우리 관악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서울서부노회에 속해 있습니다. 서울서부노회는 관악, 동작, 금천, 영등포, 양천, 강서 등 6개 구에 있는 43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