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역잡아함경_31. 마왕 파순, 마왕과 세 딸이 세존께 따지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우루비라(優樓比螺) 마을 니련선하(尼連禪河) 보리수 나무 밑에 계시면서 성불(成佛)할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
그때 마왕이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이 우루비라 마을 니련선하 보리수 나무 밑에서 얼마 안 가 성불할 것이니, 나는 마땅히 그곳에 가서 기회를 엿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마왕은 부처님 처소에 와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눈 감고 말없이 늘 고요하며
빛나는 얼굴은 신령한 바탕을 드러내고
모든 감관은 다 기뻐하고 있으니
비유컨대 재물을 잃은 이가
나중에 재물을 다시 얻듯이
당신이 지금 선정을 즐기면서
환희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네
이미 나라의 영화를 버리고
또한 명예와 이익도 바라지 않는데
어찌하여 여러 사람과 더불어
친한 벗이 되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는 선정을 얻은 지 오래되어서
그 마음이 항상 고요하기에
너의 애욕 군사를 깨뜨리고서
위없는 재물을 얻었노라.
나의 감관은 늘 흡족하고
마음은 적멸(寂滅)을 얻었으며
너의 애욕 군사 깨트림으로써
도를 닦아 마음이 기쁘다네.
그리하여 한결같이 시끄러움 떠났나니
친한 벗이 어찌 필요하겠는가?
그러자 마왕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당신은 이미 바른 도를 얻어서
편안히 열반으로 향하였으며
이미 미묘한 법도 얻어서
항상 가슴에 거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혼자만 알고 계시지
어찌하여 사람들을 가르칩니까?
세존께서 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악마에 속하지 않은 자가
나에게 피안(彼岸)의 법을 물으면
나는 바르게 분별하여 주어서
실답게 멸진(滅盡)을 얻게 하고
마음을 그쳐서 방일하지 않게 하니
악마는 그 기회를 노리지 못하리라.
그러자 마왕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흰 돌의 산은
그 색깔이 기름과 같기 때문에
뭇 새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날아 와서 먹어 보려 하다가
그 맛을 맛보지 못한 채
부리만 상해서 돌아가듯이
나도 이제 그와 같아서
쓸데없이 와서 소용없게 되었네.
마왕은 이 게송을 말하고는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몹시 뉘우치고 한탄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공터를 향하여 혼자 걸터앉아서 화살로 땅을 그으며 방법과 꾀를 생각하였다.
당시 마왕에게는 딸이 세 명 있었는데, 첫째의 이름은 극애(極愛)요, 둘째의 이름은 열피(悅彼)요, 셋째의 이름은 적의(適意)였다.
이 마왕의 세 딸이 마왕 곁에 와서 아버지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이름난 장부신데
어찌하여 근심 걱정을 하십니까?
저희들이 마땅히 애욕의 그물로써
그를 새 잡듯이 잡아다가
아버지의 처소에 데리고 와서
아버지로 하여금 자유를 얻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마왕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애욕을 잘 끊었으니
애욕으로는 유혹할 수 없노라.
그는 이미 마의 경계를 벗어났으니
이 때문에 나는 근심하노라.
마왕의 세 딸은 얼굴을 아주 단정하고 곱게 바꾸고 부처님 처소에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다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일부러 와서 공양을 올리면서 부처님 심부름 노릇이나 할까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애욕을 끊으셨기 때문에 끝내 돌아보지 않으셨는데, 두 번 세 번 똑같은 말을 하여도 부처님께서는 보시지 아니하셨다.
그러자 마왕의 세 딸은 한쪽으로 물러가서 함께 의논하였다.
“남자들의 법은 좋아하는 바가 각각 달라서 혹은 작은 것을 사랑하기도 하며, 혹은 중간 것을 사랑하기도 하며, 혹은 큰 것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즉시 하나하나의 딸마다 6백 명의 여인으로 변화해서 소녀가 되기도 하고, 동녀가 되기도 하고, 아직 시집가지 않은 여자가 되기도 하고, 이미 시집간 여자가 되기도 하고, 이미 해산한 여자가 되기도 하고, 아직 해산하지 않은 여자가 되기도 하였으니,
이처럼 많은 여자로 변화하여 함께 부처님 처소에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세존께 공양을 올리고 시자(侍者) 노릇을 하면서 곁에서 시중하는 수족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지 않으셨으며, 두 번 세 번 똑같은 말을 했지만 부처님께선 전혀 돌아보시지 않으셨다.
그러자 마왕의 딸들은 다시 한쪽으로 물러가서 서로 의논하였다.
“이분이야말로 반드시 더할 나위 없이 애욕을 끊고 해탈하신 분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마땅히 우리들을 보고 광란하면서 피를 토하거나 심장이 찢어졌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곳에 가서 게송으로 묻고 따지자.”
마왕의 딸 극애가 게송으로 힐문하였다.
단정하게 나무 밑에 앉아서
고요히 혼자 사유만 하고 있으니
재물을 잃어서 그러합니까,
큰 재물을 구하고 싶어서 그러합니까?
성과 읍, 그리고 마을에서는
도무지 애착하는 마음이 없으니
어찌하여 여러 사람과 더불어
친한 벗이 되려고 아니합니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는 큰 재물을 얻었으니
마음속에 열반을 얻은 것이라네.
나는 애욕의 마군을 깨뜨렸으므로
아름다운 여색에는 전혀 집착하지 않노라.
홀로 있으면서 좌선을 하여
가장 제일가는 즐거움을 받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서
전혀 친한 벗을 구하지 않네.
마왕의 딸 적의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구가 어느 곳에 머물러야만
다섯 빠른 흐름[五駛流]을 벗어날 수 있고
여섯 빠른 흐름도 지나갈 수 있으며
어떤 선정에 들어가야만
커다란 애욕의 언덕을 건너서
영원히 속박을 벗어납니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으로는 부드러운 즐거움을 얻고
마음으로는 훌륭한 해탈 얻으며
마음이 모든 업을 여의고
뜻은 다시는 물러서지 않으며
각관(覺觀)의 법을 끊을 수 있고
성냄과 애착의 들뜸을 여읠 수 있어서
이러한 곳에 머무를 수 있다면
다섯 빠른 흐름을 잘 벗어나리라.
아울러 여섯 빠른 흐름까지 벗어나려면
이와 같은 좌선을 실천해야만
커다란 애욕의 결박을 벗어날 수 있고
속박의 흐름도 여읠 수 있으리라.
마왕의 딸 열피가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미 애욕의 결박을 끊었다면
온갖 집착하는 곳을 여의었으리.
많은 사람이 빠른 흐름을 건너고자 하고
많은 사람이 죽음의 언덕을 건너고자 하지만
오직 슬기로운 지혜 있는 자만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건널 수 있으리라.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큰 정진으로 제도해서 건질 수 있으니
여래는 바른 법으로 제도하여
법대로 벗어날 수 있게 하므로
슬기로운 이는 누구나 기뻐하네.
세 딸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아버지 처소로 다시 돌아오자,
마왕은 세 딸을 꾸짖고 나서 그로 인해 게송을 말하였다.
세 딸이 그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의 형용은 마치 번개와 같았네.
그의 대정진을 마주했으니
마치 도라(兜羅)가 바람에 날리는 것과 같네.
손톱으로 산을 무너뜨리려는 것과 같고
치아로 쇠뭉치를 무는 것과 같고
순진한 아이[嬰愚]가 연뿌리의 실을 가지고
태산을 매달려는 것과 같다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집착 이미 떠났거늘
어찌하여 그와 변론하려고 하느냐.
또 그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허공의 달을 떨어뜨리려는 것과 같고
손으로 큰 바닷물을 움켜쥐어서
다 말라 버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집착 이미 떠났거늘
어찌하여 그를 찾아가 변론하려 했느냐.
또 다리를 들고 수미산을 넘으려 하는 것과 같고
큰 바다 속에서 땅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집착 이미 벗어났거늘
어찌하여 그를 찾아가 변론하려 했느냐.
마왕은 근심하며 뉘우치면서 즉시 모습을 감춰 천궁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