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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6권
11.4. 빈아연(貧兒緣)
『변의장자자경(辯意長者子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변의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합장하고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나니 세존이시여, 가난한 저의 마음을 지나실 때 여러 대중들과 함께 내일 집에서 차린 식사 대접[舍食]에 왕림하여 주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 잠자코 계시다가 허락하셨다.
장자의 아들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음식을 장만하였다.
다을날 세존께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그 집에 가셔서 엄연(儼然)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으셨다.
변의(辯意)가 부모와 여러 권속들에게 아뢰었다.
‘우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각자 공양을 올리십시오.‘
변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씻을 물을 돌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올렸다.
공양이 아직 끝나기 전인데 어떤 거지 아이가 사람들 앞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밥을 빌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아직 축원하기 전이라서 아무도 감히 주려고 하지 않았다.
두루 돌아다녔으나 음식을 얻지 못하자 성을 내면서 떠나갔다.
그는 곧 악한 마음이 생겼다.
〈이 모든 사문(沙門)들은 방일(放逸)하고 어리석고 미혹한데 무슨 도가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이 음식을 빌어도 줄 마음이 전혀 없다. 장자는 미혹하여 저렇게 자비한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있구나.
내가 만일 왕이 되면 쇠수레 바퀴로 저들의 머리를 갈아 부수어버리리라.〉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곧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셨을 때 또 어떤 거지 아이가 들어와서 음식을 빌었다.
앉아 있던 대중들은 저마다 그에게 음식을 주었다.
그 아이는 많은 음식을 얻어가지고 기뻐하며 떠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사문들은 모두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 같이 가난한 사람을 어여삐 여겨 음식을 주어 배부르게 먹었으니, 이제 며칠은 견딜 수 있겠구나.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저 장자는 이런 여러 대사들께 공양할 수 있었으니 그 복이 한량없이 많으리라.
내가 만약 왕이 되면 마땅히 부처님과 그 대중 제자들을 공양하라라.
이렇게 이레가 될 때까지 공양하더라도 오히려 오늘 배고프고 목마름을 구제해 준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곳을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공양이 끝난 뒤에 법을 설하시고 곧 정사(精舍)로 돌아와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공양 보시를 받을 때에는 늘 오늘 행한 법대로 하라.’
그 때 두 거지 아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다가 다른 나라에 가서 길가의 우거진 숲 속에 누워 있었다.
그 때 그 나라 왕이 갑자기 죽었는데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그 나라에는 관상보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관상쟁이가 있었다.
그는 말하였다.
‘『참서기(讖書記)』에 이르기를 〈마땅히 어떤 천한 사람이 꼭 왕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대신과 백관(百官)들은 천 수레와 만 마리 말을 타고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누가 왕이 될 만한가 하고 찾다가 길가 우거진 숲 속을 돌아보니 그 위에 구름이 덮혀 있었다.
관상쟁이는 점을 쳐보고 말하였다.
‘저 속에 신인(神人)이 있습니다.’
곧바로 그곳으로 가서 거지 아이의 상을 보니 과연 마땅히 왕이 될 만한 상이 있다.
그래서 여러 대신들은 저마다 배알(拜謁)하고 신하가 되겠다고 자처하였다.
거지 아이는 놀라고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저는 하천(下賤)한 사람입니다. 저는 왕의 종족이 아닙니다.’
모두들 말하였다.
‘관상을 따랐을 뿐, 강한 세력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데리고 가서 향수물에 목욕을 시키고 왕의 옷을 입히니, 빛나는 상호가 엄연하였다. 모두들 한량없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면서 앞뒤로 호위하고 수레를 돌려 도성으로 들어갔다.
그 때 나쁜 생각을 한 거지 아이는 우거진 숲 속에서 누워 자다가 부지불식간에 수레에 치어 그 머리가 박살이 났다.
왕이 성 안에 들어가자 음양(陰陽)이 고루어졌고 사기(四氣:四季節)가 융성하고 빛났으며 백성들은 안락(安樂)하여 모두들 왕의 덕을 칭송하였다.
그 때 국왕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옛날에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었는데 무슨 연연 때문에 국왕이 될 수 있었을까?
옛날 걸식을 행할 때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많은 음식을 얻고 문득 선(善)한 생각을 내어 만약 내가 왕이 되면 이레 동안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덕을 갚으리라 했더니 이제 정말 그렇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신하들을 불러 멀리 사위국(舍衛國)을 향하여 향을 사르고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자(師子)를 보내 부처님을 초청하면서 말하게 하였다.
‘세존의 은혜를 입어 사람의 왕이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존신(尊神)께서는 부디 이 나라에 오셔서 교화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매한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초청을 받아 주리라.’
부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데리고 무앙수(無央數)의 대중들과 함께 그 나라에 가셨다.
그 때 왕은 마중나와 환영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그리고 궁중으로 모시고 들어가서 공양을 마친 뒤에 왕은 세존께 청하여 왕이 된 인연을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그 인연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앞에서 지은 인연대로 된 것입니다.
착한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 왕이 된 것입니다.
그 때 악한 생각을 했던 사람은 비단 수레에 치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지옥에 들어가서 불수레에 깔려 억 겁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왕은 지금 부처를 초청하여 맹세했턴 대로 매우 후하게 은혜를 갚았으니 대대로 그지없는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바로 독(毒)의 뿌리요
입은 재앙의 문이 되나니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면
몸이 곧 그 재앙과 죄를 받게 펀다.
사람이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고
몸이 지어 몸이 근심을 받네.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레에 머리 치이리.
마을은 감로(甘露)의 법이 되어
사람들을 천상(天上)에 나게 하나니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입으로 말하면
몸으로 그 복과 덕을 받는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편안하게 한 근본 지으며
마음으로 일체의 선행만을 생각하면
대왕과 같은 하늘 자리[天位]얻으리.
이 때 왕은 이 경을 듣고 기뻐하였고 온 나라 신하와 백성들은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증득하였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서 여러 제자들 일천이백오십 사람과 함께 계셨다.
그 나라에는 오백 명의 거지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늘 여래에게 의지하여 대중 스님늘을 따라다니면서 음식을 얻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세상 번뇌를 싫어하여 출가를 구하기 위하여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기는 너무도 어렵사온데 하천(下賤)한 저희들은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출가를 탐내고 있사오니 허락해 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지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법은 청정(淸淨)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이 모든 더러운 것을 씻는 것과 같아서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이 물에 씻기는 자는 깨끗해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또한 큰 불과 같아 이르는 곳마다 이 불에 태워지는 것은 무엇이든 타지 않는 것이 없다.
또 저 허공과 같아 빈부(貧富)와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 여기에 들어오고 싶은 자는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거지 아이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믿는 마음이 배나 더 높아져서 정성을 쏟아 출가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왔구나.’
그러자 저들의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法衣)가 몸에 입혀져서 곧바로 사문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자 저들은 다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 그 나라의 귀족과 장자들은 부처님께서 거지 아이들을 제도하셨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교만한 마음이 생겨 수군거렸다.
‘왜 여래께서는 이렇게 하천한 사람들이 스님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셨을까?
우리들이 복을 닦기 위해 부처님과 대중들을 청하여 공양을 할 때에 저 하천한 무리들로 하여금 우리 자리에 함께 앉아 우리 밥그릇에 손을 대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때 태자인 기타(祇陀)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기 위하여 심부름꾼을 보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저의 초청을 받아 주십시오.
다만 제도하신 거지 아이들은 저희들이 초청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데리고 오지 마십시오.’
다을 날 공양할 때가 되자 부처님께서 거지 아이들께 말씀하셨다.
‘나는 저들에게 초청을 받았으나 너희들은 그 반열에 들지 못했다.
너희들은 지금 북쪽에 있는 울단윌[北單越]에 가서 저절로 잘 삶아진 멥쌀을 가지고 그 집에 돌아와서 차례에 따라 마음대로 앉아서 그것을 먹도록 하라.’
비구들은 그 명령대로 곧 신족(神足)으로 그 세계에 가서 각각 마음대로 취하여 발우에 가득 담아가지고 돌아올 때에 위의를 바로 하고 허공을 타고 기러기가 날 듯이 기타의 집에 와서 차례대로 앉아서 그것을 먹고 있었다.
그 때 태자는 그 비구들의 위의와 의젓한 행동과 신통력과 복덕을 보고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이 모든 현성(賢聖)들은 어느 곳에서 오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기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알고 싶은가? 이들은 바로 어제 그대가 청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니라.’
그리고 태자를 향하여 그 인연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 때 기타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어리석고 가리워져 명암(明暗)을 가리지 못했습니다. 알 수 없사옵니다.
이 분들은 어떤 선행(善行)을 지었기에 지금 세존을 만나 특별한 은혜를 입었사오며 또 무슨 잘못을 지었기에 밥을 빌어먹으면서 살아왔습니까?’
부처님께서 기타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아주 오래 전 어느 때에 큰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이름은 바라내(波羅奈)였다. 그 나라에 산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산의 이름은 이사(利師)였느니라.
그 산에는 옛날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살고 계셨었다.
만약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는 이천 명의 벽지불(辟支佛)이 항상 그 산에 머무르곤 하였다.
그 때 그 나라에 어떤 장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산타녕(散陀寧)이었다.
때마침 세상에는 가뭄과 흉년이 들었으니, 그는 집안이 큰 부자였기에 곧 창고 관리인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창고에는 쌀이 얼마나 있는가?
내가 대사(大士)들을 초청하려 하는데 공양을 올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창고 관리인이 대답하였다.
‘넉넉합니다. 충분히 공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천 명의 벽지불을 초청하여 음식을 공양하기 위하여 오백 명의 요리사를 시켜 공양할 음식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 때 그 요리사들은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다 저 거지 아이들 때문이다.”
그 때 장자는 늘 어떤 사람을 시켜 공양할 시간이 되었을을 아뢰게 하였는데 기르고 있던 개 한 마리가 날마다 따라다녔었다.
그 때 그 심부름꾼은 어느날 깜빡 잊고 그 사람들에게 가서 공양시간을 알리지 못하였는데, 개가 혼자 그곳에 가서 여러 대사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짖있다.
벽지불들은 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곧 때가 이르렀을을 알고 와서 자리에 앉아 법대로 공양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장자에게 말하였다.
‘하늘에서 지금 곧 비를 내리려고 하니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자는 그 말대로 씨앗을 뿌렸는데 뿌린 씨앗이 모두 싹이 터 자라나서 큰 박으로 변하였으므로 장자는 그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수시로 물을 주곤 하였다.
훗날 그 박이 다 자라서 익자 장자는 곧 그것을 쪼개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곳에 따라 갖가지 물건들이 아주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 또 그 안에는 보리가 가득하였다.
장자는 매우 기뻐 그것들이 집에 가득 차자 다시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어 온 나라가 모두 그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이 때 오백 명의 요리사들은 생각하였다.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실로 다 저 대사들의 은혜이다.
우리들이 어짜다가 그들에게 나쁜 말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곧 그곳에 가서 참회하고 다시 서원하는 말을 하였다.
‘바라옵건대 우리들로 하여금 미래 세상에 저 성현들을 만나 해탈을 얻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백 세 동안 항상 거지 아이가 되었으며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서원을 세우는 말을 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세상을 만나 제도를 받게 되었다.
태자는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그 때의 큰 부자였던 산타녕(散陀寧)은 바로 지금의 나이고 창고 관리인은 지금의 수달(須達)이 바로 그 사람이며, 날마다 공양 때를 알려주던 사람은 지금의 우전왕(優塡王)이요, 오백 명의 요리사는 지금의 이 오백 아라한이 바로 그들이었느니라.’
그 때 기타와 모임에 있었던 대중들은 그 신통 변화를 보고 다 네 과위를 증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