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는
바람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
계절이 안고 오는 풍경 속에서
사철 바람으로 일렁이는 사람
부드러운 봄 밤
뜨겁게 불타는 격정의 여름 한낮
외롭게 휘청이는 가을의 하루
드문드문 눈발 날리는 어느 겨울에도
그저
한 줌의 바람으로
그 곳의 풍경이 되는 사람
오늘 나는
바람같은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너무 그립다고
너무 보고싶다고
나도 바람이 되어
당신이 있는 풍경 속으로
날아들고 싶다고
그 풍경 속에 섞여
당신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나의 쓸쓸한 편지
서리맞은 채 담장 넘어 내릴 때
그의 그림자 바람처럼
나의 풍경이 되었다
# 내일
수줍게 수줍게 달려 온
너와 나
물이되어 흐르리라 약속하던
우리의 그날
천둥과 번개의 아우성 속
굵은 장대비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눈물로 심은 아픔 감춰지던 날
내 가슴에도 장대비 비수되어 꽂혔다
삶의 우기
녹슨 목소리
순간 속에 영원처럼 묻히고
서걱이는 모래밭에 내려 놓았던
그리움 한자락
다시 집어들다
가녀린 어깨
얇은 힘줄로 버티어 낸
우리의 내일은
다시
물이되어 흐른다
# 가을
부드럽게 휘청이며
한잎, 두잎
살랑살랑
뜨락에서 서성인다
숨 죽이고 속삭이더니
한걸음씩 촘촘히
마음 적시며 다가온다
알록달록 햇살이
천천히 들판을 닦고
노랗게 익으며
서녘으로 기운다
밭 둑
엄마의 늙은 호박도
뭉글뭉글 누렇게 끓는다
# 초승 낮달
한여름에도
시린 겨울 아침처럼
창백한 그림자
성큼 베어문 슬픔 한조각
꼬부라진 허리춤에 매달고
높다란 하늘 길 따라
흔들리며 떠다닌다
너를 따라 길 떠나는
나는
차가운 이방인이거나
외로운 방랑자
언제쯤이나 나는 네 안에 담길 수 있을까
너의 그림자 아래
서성이며 접는
길고 긴 하루
# 빗방울
빗방울이 주르륵 미끄럼 탄다
우리 집 꽃밭 지렁이 가족
고개 쏙 내밀고 나와
꾸불렁 꾸불렁
빗방울 따라 미끄럼 탄다
빗방울이 통통통 발끝 들고 춤춘다
우리 집 푸들 별이
길다란 다리 들고
펄쩍펄쩍
빗방울 따라 발레한다
빗방울은 신발을 신었을까?
지렁이도, 별이도
빗방울 따라 보들보들 맨발로
꾸불렁 꾸불렁
펄쩍펄쩍
빗방울 오선 위
신나는 하루
# 김경아
강원여성 문예경연대회 시, 수필 장원
현 한국가스공사 삼척 나래울어린이집 원장
카페 게시글
47집(2024)
김경아
김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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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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