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중허마하제경 제13권
[곡반왕의 아들 마하나마]
이때에 곡반왕은 두 아들이 있어서 첫째가 아니로타(阿儞嚕駄)요, 둘째가 마하나마(摩賀曩摩)였는데, 저 마하나마는 왕의 사무를 잘 다스렸으나 재물의 이익을 탐냈으며, 아니로타는 언제난 궁중에 있으면서 뜻대로 쾌락을 누렸다.
곡반왕은 칙명의 뜻이 널리 내려지자 마하나마를 불러서 말하였다.
“네가 출가하여 왕명을 받들어야 하리라.”
그러자 아들은 말하였다.
“저는 출가하지 않겠나이다. 저 아니로타는 언제나 궁중에 있으면서 쾌락이나 누리니, 출가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 아들의 복(福)과 덕(德)을 너로서는 지적하여 진술하지 말라.”
아들은 말하였다.
“이는 바로 부모로서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서 그러하시온데, 만약 참으로 복과 덕이 있다면 시험을 하시옵소서.”
아버지는 말하였다.
“무엇으로 시험을 해야겠느냐?”
아들은 말하였다.
“통상의 방식대로 음식을 보내되 이번에는 빈 쟁반을 보내시옵소서. 만약 그가 복이 있다면 음식이 저절로 나오게 되리다.”
아버지는 곧 그의 보는 앞에서 빈 쟁반을 봉하고 궁빈을 시켜 보내면서 경계하였다.
“만약 어떠한 음식이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가 안에 있다고만 대답하여라.”
이때에 하늘 제석(帝釋)이 이 일을 자세히 살펴 알고서 말하였다.
“아니로타는 옛날 일찍이 음식을 벽지불에게 공양하였거늘,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음식이 없게 하겠느냐.”
그리고는 변화로 갖가지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그 빈 쟁반에 채워 넣었다.
심부름한 궁녀가 거기 이르자 아니로타가 물었다.
“무슨 물건이냐?”
궁빈은 마음에 성을 내어서 신칙에 따르지 않고 대답하였다.
“물건이 없습니다.”
아니로타는 생각하기를,
‘부모님께서 어찌하여 빈 쟁반을 보내셨단 말이냐’하고,
봉함을 열어 보았더니 기이한 음식이 속에 가득 차서 인간에게는 드물게 보는 것이어서 향기가 자오록하여 동산에 온통 가득하였다.
아니로타의 뜻에도 매우 괴이히 여기며 그 궁녀에게 물었다.
“본래 음식이 있었더냐, 본래 빈 소반이었더냐?”
궁녀는 말하였다.
“빈 소반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음식을 물리쳐서 부모에게 받들어 올리었다.
부모 역시 음식을 보고 크게 놀라며 괴이히 여기어 또 이 음식을 마하나마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네가 이 음식을 보아라. 바로 거기에서 변화로 나온 것이다.
저 아니로타는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좋아한다. 내가 말한 큰 복이란 너희들의 힘으로는 안 되느니라. 네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미 시험하여 알았으리라.”
마하나마는 부모에게 아뢰었다.
“그는 이미 큰 복이 있으니 출가하게 하시옵소서. 저는 이제 복이 없으니 출가할 자가 아니옵니다.”
[곡반왕의 아들 아니로타]
부모는 곧 아니로타에게 말하였다.
“왕이 이제 칙명이 계셨는데, 너는 출가하겠느냐?”
대답하였다.
“출가하면 어떠한 이익이 있사오며, 집에 있으면 어떠한 과실이 있나이까?”
부모는 말하였다.
“출가한 사람은 열반을 증득하게 되며, 천상과 인간에서 첫째가는 공양을 받을 수 있고,
만약 사람이 집에 있거나 출가하거나 간에 진실로 욕심을 여의면 역시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느니라.
만약 집에 있으면서 망령되어 출가하였다고 일컬으며, 당연히 3악도(惡道)의 과보를 받아야 하느니라.”
대답하였다.
“출가하거나 집에 있으면서 이익을 얻고 이익을 잃는 것을 제가 이미 분명히 알았사오니, 이제 출가하여 위로 왕명을 도우려 하나이다.”
부모는 말하였다.
“너의 말이 대단히 장하구나.”
[현왕]
이때에 아니로타에게는 나이가 같은 현왕(賢王)이라는 이가 있어서 가장 서로가 잘 아는 사이인지라 그곳에 가서 말을 하려고 하여 현왕의 문에 이르렀더니, 바야흐로 거문고를 들으면서 고르고 있었는데 또 줄이 끊어지며 다섯 가지 음이 완전하지 않는지라,
아니로타는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날 때까지 서서 나아가지 않고 그것을 고르게 한 뒤에야 사람을 시켜 들어가 알리었다.
현왕은 청하여 들여서 아니로타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언제 왔던가?”
대답하였다.
“거문고 줄이 처음 끊어질 적에 나는 문에 도착했었으나 그것을 고르게 한 뒤에야 들어갈 것을 알렸네.”
현왕은 잘했네 하면서 손을 잡고 청하여 앉히며,
“자네는 이제 어떻게 왔는가?” 하므로,
대답하였다.
“정반왕께서 칙명이 있으신데, 석씨 성바지에서 출가하게 하는 뜻은 권속들에게 부처님을 좌우를 모시게 하려는 것이라네. 자네가 그립고 좋기 때문에 일부러 와서 알리는 것일세.”
현왕은 말하였다.
“칙명하신 뜻은 내리신 즉시 역시 알았었네. 자네가 출가한다면 나도 같이 가겠네. 자네는 오늘 밤에 우리 집에서 묵게.”
아니로타는 말을 따라서 곧 머무르자,
현왕은 사람을 시켜서 그를 위하여 누울 자리를 깔게 하였는데, 밤이 되어서 잠을 잤으나 조금도 편안하거나 즐겁지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서로 만나서 현왕이 물었다.
“편히 잠을 잤는가?”
대답하였다.
“편히 잘 수가 없었네.”
또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대답하였다.
“평상에 깔았던 것이 병든 이가 댔던 옷이 있네. 그 때문에 나를 편히 잘 수 없게 하였었네.”
현왕은 맡았던 수종을 불러서 그 까닭을 물었다.
“어디서 얻은 것이냐?”
대답하였다.
“왕께서 처음 태어나실 적에 펴시고 남은 것을 뒷날 병든 이 때문에 일찍이 받아 썼던 일이 있었나이다.”
현왕은 감탄하며 말하였다.
“장하도다. 석씨 성바지에서 이런 기이한 자손이 태어났으니 말이다.”
또 말하였다.
“내가 출가하면, 제바달다가 다음에 왕위(王位)를 차지하리라.”
[제바달다]
이에 좌우에게 제바달다를 부르게 하였는데 도착하자 물었다.
“우리들은 칙명을 받들어 함께 가서 출가하겠다. 몰라서 그러는데 너는 장차 어떻게 하겠느냐?”
이때에 제바달다는 혼자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출가하지 않겠다 하면, 곧 현왕 역시 출가하지 않게 되리라’ 하고,
곧 거짓말로써,
“저도 출가하겠습니다” 하였다.
그 현왕은 급히 공문으로써 정반왕에게 아뢰더니, 왕은 칙명을 내리어 안팎에 고시(告示)하였다.
“이제 현왕과 아니로타며 제바달다 등, 석씨 성바지 5백 사람이 출가하는 것이니, 모두는 알지니라.”
칙명이 나간 뒤에 안팎이 기뻐하였으나 제바달다 혼자만은 괴로워하면서 뜻으로 말하기를,
‘본래 방편을 지어서 현왕을 출가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이제 혹시 말을 어기거나 하면 거짓말의 허물이 있게 되리라. 나는 장래에 왕위를 얻을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이에 억지로 참으며 대중을 따라서 출가하였다.
이때에 정반왕은 후대(後代)에게 겨레붙이의 존귀함을 알게 하려 하여 안팎에 널리 알렸다.
“무릇 거리와 서낭에 미치기까지 모두를 잘 꾸미고 다 아주 훌륭하게 할 것이며, 깨끗한 흙을 깔고 향수를 뿌리며 다시 당기ㆍ번기ㆍ일산을 배열하고 꽃을 흩으며 향을 사르라.”
현왕 등 5백의 석씨 성바지가 출가하여 지나가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그 석씨 성바지들의 부모들이 길가와 성문의 머리에 자리를 깔아 놓고 살펴보고 있었으며,
또 관상하는 이에게 명하여 저마다 아들을 관상하면서,
‘누가 출가하면 좋고, 누구는 좋지 않을까’ 하였다.
현왕이 먼저 나가자 관상쟁이는 칭찬을 하였다.
“이 분이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성인의 도를 증득하리라.”
아니로타가 다음에 성을 나가자, 관상쟁이는 또 말하였다.
“오래지 않아서 성인이 되시리라.”
제바달다가 나가며 성문에 이르자, 머리 위의 보배관이 갑자기 땅에 떨어지는지라,
관상쟁이가 보고서 말하였다.
“이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地獄)에 들어가리라.”
또 착하지 못한 사람 해수(海壽)라는 이가 문 끝에 이르자마자 당나귀가 악한 소리를 내는지라,
관상쟁이가 알아 채고서 말하였다.
“이 분은 입의 업(業)이 있구나. 일찍이 성문을 헐뜯었으니, 미래에 과보가 성숙되면 결정코 나쁜 길에 떨어지리라.”
오파난타(烏波難陀)가 다음에 나가며 코끼리를 타고 막 문머리에 닿자 영락이 땅에 떨어지므로 몸소 코끼리에서 내리어 제 손으로 주워 가지니,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이 비루하고 인색한 사람은 장차 지옥에 들어가리라.”
이렇게 하여 5백을 석씨 성바지들이 저마다 나가면 관상하는 이는 모두를 보고서 다 좋다, 나쁘다 함을 자세히 그 부모에게 알렸다.
이때에 석씨 대중들은 가비라성을 나가서 다시 동산을 유람한 다음에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저마다 부처님께 아뢰어 출가하기를 구하였으므로,
세존께서는 생각하시기를,
‘이제 이 석씨 대중들이 비록 출가하기를 구한다 하더라도 뜻에 즐거워하는 이도 있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도 있구나’ 하시고,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법으로써 제도하여 비구를 삼으셨다.
[오파리]
이때에 정반왕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파리(烏波梨)라는 이가 있어 머리를 잘 깎았으므로 왕은 곧 보내어 석씨 대중들의 머리를 깎아 주게 하였는데, 그 곳에 이르러서는 깎아 주려 하지 않고 괴로운 빛을 띨뿐더러 슬피 울었다.
현왕은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오파리는 말하였다.
“나는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일꾼이 아닙니다.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머리는 깎을 수가 없습니다.”
현왕은 타일렀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 너는 왕명을 받드는 것이지 여러 사람이 부리는 것은 아니니라. 여기에는 좋은 이끗이 있으리니, 괴로워하지 말아라.”
현왕은 다시 방편을 써서 석씨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출가하는 것이니 보배 관과 아름다운 옷과 꾸미개 등은 오늘 버릴 것이다.
모두가 소용이 없으니, 다 한 군데에 놓았다가 오파리에게 주자. 그가 얻을 것을 들으면 혹시 기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자 옷과 관이 모여져서 큰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지라 오파리는 곧 머리를 깎아 주었는데, 석씨 대중들이 저마다 나이가 어린데도 그의 부귀를 버렸음을 보고서,
‘나야말로 지금 낮은 족속이거늘 무엇을 그리워하겠느냐. 모든 은혜와 사람을 버리고 번뇌를 떠나서 그 바퀴 돌듯하는 나고 없어짐의 환난을 면하여야겠도다’ 하고
이에 턱을 괴고 두 번 세 번을 생각하였다.
존자 사리불이 보고서 물었다.
“너는 어째서 턱을 괴고서 언짢음이 있는 것같이 하느냐?”
대답하였다.
“바로 언짢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 바가 있어서입니다.”
자세히 사실을 사리불에게 말하자, 사리불은 말하였다.
“세존께서 제도 해탈(解脫)시키심은 높고 낮음을 물으심이 아니니, 지금이 바로 때이로다. 용맹심을 내어야 하리라.”
세존께서는 미리 아셨으면서도 오로지 근기의 성숙되기를 기다리셨다.
사리불이 오파리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와 닿아서 온 몸을 땅에 대고 예배하고 공경하며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오파리가 바른 법에 출가하려 하오니, 부처님께서는 가엾이 여기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오파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맑은 행을 얻었도다.”
세존께서 말씀하여 마치시니,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는데, 이후 7일 동안에 수염과 머리칼이 다시 나자 위의가 차분하여 마치 백살 된 비구와 같아졌으므로, 스스로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이제 여래의 바른 법에
출가하기를 구하였는데
부처님께서 맑은 행을 얻었도다 하시니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졌고
가사 또한 몸에 입혀졌는데
이는 곧 선한 근본을 따랐던 것이
오늘에야 비로소 성숙된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필추가 되었도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출가한 이는 하랍(夏臘)에 의지하여 차례로 그 높고 낮음을 지켜야 할 것이며, 미래에 이르기까지 예절에 잘못됨이 없을지니라.”
이에 오파리는 모든 석씨로 평등하게 보았다.
이때에 저 현왕이 차례대로 대중에게 절을 하다가 오파리 앞에 이르러서는 예배하려 하지 않고 와서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의 오파리는 바로 일 하던 사람이었나이다. 이제 제가 예배하는 것은 바로 순리가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출가하였으니, 나라는 고집을 버릴지니라. 저 분은 바로 상랍(上臘)이니, 예배하고 공경하여야 하리라.”
현왕이 예배하자마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다음에 제바달다 역시 절을 하지 않고 또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나라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그 분은 바로 상랍이니, 발에 예배하여야 할지니라.”
이에 여러 석씨들은 예배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여러 비구들은 저마다 마음으로 의심하되,
‘이제 현왕이 예배하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는데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하고 말하였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모든 이의 의심 그물을 풀어 주시옵소서.”
[손나라마바나가와 창녀]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에 이 섬부제 바라나국에 왕이 있어서 통솔하였는데 이름은 범수(梵壽)였으며 나라는 풍성하고 인민들은 유쾌히 즐겼었느니라.
이때에 그 성중에는 발나라(跋捺囉)라는 한 창녀가 있어서 빛깔과 모습은 단정하고 엄숙하여 사람들의 사랑과 부러움을 받았었는데,
손나라마나바가(孫那囉摩拏嚩迦)라는 한 남자가 그 여인의 처소에 가서 뜻으로 사모한다는 말을 하자,
여인은 대답하되,
‘5백의 금전을 준비하여 오면 그대를 만날 수 있다’라고 하였으나,
이 사람은 가난하여서 말한 바를 따르지는 못하고 다른 방편(方便)을 써서 가까이 하다가 마침내 거처를 그의 이웃으로 옮겨서 때마다 꽃과 과일을 바쳤느니라.
뒤에 절서(節序)로 인하여 남녀가 풍악을 울리며 몸을 장식하여 꽃을 이고서 저마다 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는데
이때에 발나라는 생각하기를,
‘손나라마나바가 그 사람이 만약 오면 함께 기뻐하며 즐기리라’고 하자,
얼마 있지 않아서 와 닿았으므로 여인은 기뻐하며 말하였다.
‘꽃을 가지고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즐기리다.’
손나라마나바가는 이 날에 일이 있어서 마음이 몹시 괴롭고 밤 내내 잠도 자지 못하다가 새벽이 될 무렵에야 깊이 잠이 들어서 깨어나지 못하였는지라,
여러 사람이 꽃을 가지고 가서 좋은 것은 다한 뒤에야
비로소 시리사화(尸利沙花)를 얻어서 가져다 그 여인에게 주었더니,
그 여인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힘써 나아가지 못한 일을 경계하오.
게을러서 거푸 잠을 자다가
다른 이가 좋은 꽃을 따 가지고 갔기에
시리사화 꽃을 얻으셨구려.
또 다시 말하였느니라.
‘당신은 다른 꽃을 구해 오시오.’
이 때는 초가을이라 더운 기운이 오히려 한창이었는데 다시 가서 꽃을 찾으며 한낮이 되도록 꽃을 따면서 노래를 부르며 도무지 더운 줄도 몰랐느니라.
범수왕은 풀에 들고 숲에 나아가며 더위를 피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듣고 사람들에게 찾게 하였느니라.
그를 찾은 뒤에 불러서 오자 범수왕은 말하였느니라.
‘햇빛이 내려 쪼여서 마치 불이 뇌를 태우듯 하거늘, 어째서 노래를 부르면서 도무지 괴로워함이 없는가?’
그러자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저의 마음이 헷갈렸기 때문이요
해가 비추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조그마한 일을 하다가 보니
그 때문에 괴로운 줄 몰랐습니다.
이때에 왕은 생각하기를,
‘이 꽃을 따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구나. 붙잡고 함께 말을 하리라’ 하고서
왕은 말하였느니라.
‘나는 나왔다가 더위를 만나 여기에 와서 바람을 쐰다. 그대는 말로써 나의 더위[暑]의 괴로움을 풀어 주어야 하리라.’
손나라마나바가는 본래 지혜가 있었으므로, 말하는 바가 뜻에 꼭 맞도록 군사로써 적군 치는 이익을 설명하며 왕의 심기(心機)에 맞게 하였느니라.
왕은 듣고 감탄하면서 곧 더위의 괴로움을 잊고서는 대신에게 물었느니라.
‘찰제리며 정수리에 물 부은 왕에게 몸과 목숨의 어려움을 대신할 수 있는 이에게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하사하려면 나라에 어떠한 벼슬이 있소?’
그러자 대신은 대답하였느니라.
‘황태자를 주실 수 있나이다.’
곧 대신에게 칙명하여 그 지위를 책봉하게 하며 안팎에 알려서 법규대로 의식을 갖추고 동궁(東宮)으로 나아가서 높이 황태자로 있게 하였으므로, 무릇 날마다 수용하는 것이 값진 보배 아님이 없고 누워 자는 처소의 이부자리는 보통이 아니었느니라.
손나라마바나가는 혼자 생각하기를,
‘황태자란 이와 같고 높음이 지극해서 알만 하구나’ 하다가,
문득 탐심을 일으키며 대보(大寶)를 도모하려 하였느니라.
이런 생각을 내다가 곧 스스로가 깨달아 알고,
‘내가 혹시 이렇게 하다가는 앙갚음이 돌아올 만하다’ 하며,
이로 말미암아 뉘우치기는 했지만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으므로, 거친 자리를 펴고서 땅 위에 누웠느니라.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왕은 곧 사신을 보내어 그의 거동을 자세히 살피게 하였는데
손나라마나바가 땅 위에 누웠음을 보고 급히 와서 왕에게 아뢰되,
‘이 분은 황태자가 아니었고 천한 사람이었나이다’ 하자,
왕은 말하기를,
‘어떻게 아느냐?’ 하므로,
자세한 일을 들려 드리자 왕은 말하였느니라.
‘이 큰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천한 선비가 아니리라.’
그리고는 불러 오게 하고서 그 까닭을 물었으니라.
왕은 말하였느니라.
‘밤에 평상에서 자지 않고 땅에서 누운 것은 무슨 뜻이었는가?’
그러자 대답하였느니라.
‘존귀함이 마지막[究竟]이 아닌지라, 그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나이다.’
왕은 말하였느니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 출가(出家)하기를 바라는가?’
왕은 다시 말하였느니라.
‘아직 이런 일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출가하며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대답하였느니라.
‘고요한 곳에서 괴로운 지경을 당하여도 굳은 절개로 수행하되, 거룩한 스승도 없이 또한 벗도 구하지 아니하고 인연을 살핌 이치를 궁구하다가 독각(獨覺)의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옵니다.’
왕은 곧 잘한 일이라 칭찬하고 놓아서 출가하게 하였느니라.
뒤에 도의 과위를 증득하여 왕의 앞에 와 닿아서는 공중에서 신통변화(神通變化)의 모습을 나타내었으므로,
왕은 이 일을 보고서 깊은 마음에서 귀의하며 믿고 온 몸을 땅에 던져 공경하면서 예배하고,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장하도다. 지혜로운 사람이시여,
나쁜 업에 능히 얽매이지 아니하고
고요함을 구하여 닦고 행해서
독각의 보리를 증득하셨습니다.
게송을 말한 뒤에,
또 다시 말하기를,
‘만약 여러 마나바가(摩拏嚩迦)가 있다면 출가하여 도를 구하시오. 나는 곧 따라 기뻐하겠습니다’ 하였느니라.
이때에 가까운 신하로서 긍아바라(殑誐波羅)라는 이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매우 기뻐하고 기억하여 마음에 두고서 탐심과 애욕을 경계하므로,
왕도 이로 말미암아 뒤에는 역시 스스로 힘써서 궁실(宮室)을 멀리하고 고요함을 즐김이 많았었는데,
긍아바라는 뒤에 왕의 기쁨에 접하여 마침내 출가하기를 구하자 왕이 허락하므로 절하고 작별하고 나와서 곧 깊숙한 산에 나아가 고행하는 신선을 만나서 따라 도를 배우며 부지런히 힘썼는지라 역시 다섯 가지 신통을 증득하였느니라.
왕의 앞에 곧장 와서 신통변화를 나타내자 왕은 물었느니라.
‘당신도 그와 같은 공덕을 얻었습니까?’
대답하였느니라.
‘나도 증득하였습니다.’
왕은 성도를 증득하였다고 여기면서 곧 그의 발에 예배하였는데,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땅이 곧 진동하였느니라.
이때에 왕의 어머니는 이를 살피어 진리가 아니라 긍아바라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만약 근본적으로 출가를 하셨다면
사문께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며
고요하고 잠잠하며 힘써 나아가
고행하여 연각(緣覺)을 이루는 것이니
온갖 죄들이 영원히 소멸하고
모든 복업(福業)이 생기게 되어
뒤에는 모든 세간에서 널리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범수왕은 바로 지금의 현왕이요, 긍아바라는 바로 지금의 오파리이니라.
옛날 예배할 때 땅이 이미 진동하였고, 오늘날 예배할 적에도 본래와 다름이 없었느니라.
비구들아, 이것이 지나간 세상과 지금 세상에서의 갖가지 일들인데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다시금 분별하여 말한 것이니, 너희들 듣는 이는 마땅히 진실로 믿어야 할지니라.”
이때에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기뻐 뛰놀며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