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6.27자 제10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조차 일본식 번역이라면, 마땅히 재검토해야 합니다.
타당하면 널리 퍼뜨려주세요!!!
<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17〉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번역을 재검토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단군사화에는 교과서에서 단군의 건국이념이라고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나온다. 이는 민족정신으로서 교육이념으로 채택될 만큼 중요하다. 현재의 교과서와 대부분 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따라서 거의 모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천하를 내려다보니 삼위태백이 홍익인간 할 만하므로 환웅에게 천부삼인을 주면서 거기 가서 살도록 했다’는 앞뒤 문맥으로 볼 때 삼위태백이라는 지형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는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이 해석이 일본식 한자의미에 따른 일본식 해석을 이병도가 베낀 것인데도 지금까지 신중한 검토 없이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한자 의미에 따른 해석에 대해 보다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일본식 번역이라면 신중한 검토 필요
우리 교육기본법 제2조에 우리나라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이라 했고, 교육부의 교육과정에서도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으며(3쪽), 그 의미에 대해서는 초ㆍ중ㆍ고 모든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어사전, 백과사전 등도 모두 같이 설명하고 있으며, 국민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간 조소앙, 안재홍, 정영훈 등은 ‘대중공생 만민공동의 균등사회 이상’이라고 보았고, 박상림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서로 다툼이 없는 어울림을 통해 모두 하나 되는 이념으로 바로 화백제도가 그 실천’이라고 했으며, 류탁영은 ‘남을 해치지 않고 크게 돕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더구나 설종환이 『다시 읽는 단군신화』(정신세계사, 2009)에서 “사학자 이병도 교수의 번역을 따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다’라는 뜻으로 알려졌다”고 한 것처럼, 1920년대에 일본인이 먼저 해석했고, 1950년대에 이병도가 그대로 따라 해석한 것을 지금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김영돈은 『고조선과 홍익인간』(보경문화사, 2000)에서 ‘지금의 해석은 우리나라의 한자 뜻(語義)이 아니라 일본의 한자 뜻대로 해석한 것’이라면서 아래 표와 같이 구체적인 한일 간 어의의 차이를 지적했다.
홍익인간은 사람사이를 크게 더한다는 의미
이런 내용을 보다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중 한한(漢韓) 사전을 찾아보니, 『大漢韓辭典』(집문당, 1983), 『한한 최신대옥편』(쌍룡문화사, 1983), 『최신강희옥편』(창원출판사, 1987) 등과 네이버 한자사전 등에서 홍(弘)자는 ‘클 홍(大也)’이라고 하여 ‘넓다’보다는 ‘크다’는 의미가 앞서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익(益)자는 모두 ‘더할 익’이라 하여 ‘더한다’ ‘돕는다’는 의미가 앞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人間)은 모두 ‘사람 인(人), 사이 간(間)이다.
이와 같은 우리 식 한자의미로 ‘弘益人間’을 해석하면 ‘사람 사이를 크게 더 한다’가 된다.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앞뒤 문맥과 당시의 상황이나 우리 겨레의 특성과 연결시켜 살펴본다.
당시는 기후의 변화(기온 하강)와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때문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던 시기였으므로 새로운 농토 개척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음을 감안하면 앞 문장의 삼위태백이라는 지형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을 만큼 땅이 넓고 비옥하여 식량다툼이 적을 곳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부모로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새 천지를 개척하러 떠나는 아들에게 했을 법한 내용이라면 ‘서로 싸우지 말고 어울려 살아라’고 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덕성에 대한 중국인들의 느낌을 적은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仁而好生, 『후한서』).”, “양보하길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好讓不爭, 『산해경』).”, “서로 범하지 않고 서로 기리며 헐뜯지 않고, 환난에 빠진 사람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준다(不相犯相譽而不相毁 見人有患投死救之, 『신이경』).”는 기록도 바른 해석에 참고가 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사람 사이를 크게 더 한다’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너’와 ‘나’의 사이를 더 두텁게 하여 ‘우리’가 되라는 것과 씨족이나 부족의 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사람과 어우러져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무한경쟁을 내세우는 서구 물질문명의 생각 틀인 ‘경쟁’원리가 아니고 창세신화 속 우리 겨레 고유 ‘생각의 틀’과 같이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 되어야 한다는 어울림’을 강조하는 이념으로서, 경쟁 논리로 인한 양극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21세기 인류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념이 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들을 투입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의 교과서나 사전류에서는 이를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념이라고도 하는데, 단군왕검도 이런 이념에 따라 나라를 세우고 다스렸을 수는 있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이다. 단군사화대로라면 환인의 정치이념이고 환웅의 개천이념일 뿐이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부분도 바로잡아야 한다.
<보도 지면>
첫댓글 홍익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사이를 크게 더한다~~는 의미로 접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