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며칠 전 부대장님으로부터 공포(?)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 산행기는 써니씨가 써보라는....ㅋㅋㅋ 몇 번 꼬리를 내리다가 결국엔 쓰겠노라 대답를 했다.
지난번 산행 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바쁜 핑계로 구간별 산행지식없이 그저 마음 편하게 따라가는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구간은 막중한(?) 임무수행에 따른 부담감을 안고 가야하는 입장이라 짬짬이 틈을 내어 자료를 입수했다. 서너편의 산행기를 찾아보기도 하고 포스트별 산행시간 시간 및 구간명칭부터 익히기로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백두대간 초기부터 홍대장님으로부터 대야산 구간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특히 동절기 대야산 구간은 직벽 구간 등 어려움이 많은 구간인데다 몇 년 전 불미의 사고도 있던 구간이라며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구간을 내년 4~5월쯤으로 조절하자는 제의도 있었던 구간이라 한다.
이번 구간의 특이사항은 출발장소부터 실내체육간 주차장이 아닌 따뚜 공연장 주차장이라는 것이다.
여느 때는 내가 산행을 하는지 언제 출발을 하는지 관심조차 없던 남편이 어쩐 일로 따뚜 공연장까지 태워다 주웠다. 11시 35분경에 도착했는데 빨간 버스도 등산복 차림의 일행도 눈에 띄지 않았다.
12시가 가까워짐에 어느새 참석할 일행은 모두 온 모양이다. 12시 정각에 어김없이 대야산 구간을 향해 힘찬 출발을 한다.
02:13분 늘재! 지난번 산행을 마쳤던 그 자리에 버스가 도착했다.
모두들 산행 준비에 분주해진다.
밤하늘에 별은 총총히 빛나고 음력 11월 5일 초승달도 저멀리 보인다. 지난번 산행 때 보다 덜 춥다. 다행이다. 이번 구간 날씨마다 추우면 고생은 두 배가 될 텐데... 일단 출발 컨디션은 "Good"이다.
산행기를 쓰는데 시간 체크가 기본인데 몬 정신에 시계도 없이 왔으니 ㅊㅊㅊ 할 수 없이 부대장님이 시계를 빌려준다. 큼직한 시계가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없다. 02:29분 가벼운 첫걸음을 내 딪었다.
시작부터 급경사 구간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언제나 처음 1시간 시작구간은 힘이 든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겨우 워밍업을 해서 속도가 붙으려는 지점에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진다. 분명히 출발할 때의 컨디션은 좋았는데 왜 그럴까? 나로 인해 선두그룹과는 꽤 차이가 벌어졌다. 뒤 따르던 수정이 언니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이를 어쩌지 점점 힘이 빠지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얼만큼 지났을까 03시 5분경에 출발한지 30분 지난 어느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멀쩡하던 내가 갑자기 힘들어진 이유가 힘에 버겁게 바리바리 챙겨온 배낭 무게 때문이었다. 얼른 전승주대원에게 1리터짜리 보온병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사양도 못하고 짐을 떠안은 전승주 대원께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한결 가벼워진 배양 탓일까? 아니면 잠깐 취한 휴식 때문일까? 다행이 어지럽고 기운 빠지던 증세는 사라졌다. 03시 50분경에 청화산 헬기장에서 5분간 휴식을 취한 일행은 어둠속에 청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헬기장 바로 위가 청화산 정상이다. 이곳을 먼저 다녀간 대원들 얘기가 청화산에서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이구간도 조망이 굉장히 멋진 곳인데 어둠속에 통과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아쉬워한다. 조항산으로 가는 암릉구간 어느지점에서 갑자기 선두로 가던 홍대장님이 험난한 직벽구간에 눈까지 쌓여 있어 위험하니 돌아갈 길이 있는지 찾아 봐야 한다며 되돌아 오셨다. 약 10여분간을 돌아갈 길이 있나 찾아 보았지만 마땅히 길이 없어 결국엔 시야 확보가 안되는 그 위험한 구간을 통과할 수 밖에 없기에 대원 한사람 한사람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홍대장님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반상혁 샘이 그만 그 구간에서 한두바퀴 구르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순발력을 발휘해 손에 있던 스틱을 놓아 가까스로 뭔가를 잡고 멈추어서 생사의 기로해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우리 일행 모두는 안도의 숨을 내시며 더 조심스럽게 그 구간을 통과했다.
7시 정각에 조항산에 도착했다. 아마도 대부분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탓에 정상 표지석 뒷편에 있는 글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白頭大幹을 힘차게 걸어 땀 속에서 꿈과 희망을 ... 아 아! 우리들 山河..."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조항산을 내려 오면서 동쪽 하늘에 붉게 물든 여명을 보며 7시 42분경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지만 지난번 속리산 천황봉 근처에서 정말 멋진 일출을 본 탓인지 별 감흥이 나질 않는다. 참 사람마음이 간사함을 느낀다. 날이 밝아오면서 우리가 통과한 구간을 뒤돌아 보았다. 풍광이 멋있게 펼쳐지는 것도 잠시 인간의 욕심일까 여기 저기 파헤쳐진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 요소요소에 무참히 훼손한 흔적이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온다. 7시 48분경 고모치를 통과했다. 전설에 의하면 부모 없는 질녀를 고모가 데리고 살았는데 어느 날 질녀가 돌연사 하자 고모는 슬픔을 못이겨 식음을 전폐하고 재에 올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을 하다 슬픔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로 이 애처로운 넋을 달래기 위해 고모치(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8시 10분경 고모치를 지나 편안한 지점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지난번 속리산 천황봉 아래 헬기장에서 눈 밭에서 얼어붙은 도시락을 먹던 일이 생각나 이번엔 아주 간단하게 행동식으로나 먹음 직한 주먹밥을 싸왔다. 다른 대원들도 밥과 반찬을 펼쳐 놓고 먹는 대원은 별로 없다. 떡이며 빵이며 그저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9시 52분에 밀재에 도착했다. 이 구간에서 수정언니 내외는 개인사정으로 부득이하게 탈출을 했다. 이제 30명의 일행이 오늘 목적지인 버리미기재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반복되는 암릉 구간을 통과하는데 가파른 오르막을 보상이라도 하 듯 거북등과 같은 바위도 나타나고 그 위로 시원한 조망도 펼쳐진다. 다시 능선을 따라 오르니 바위 사이 길로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되고 얼마를 지나 대문바위가 나타나고 암릉길로 10여분 오르니 코끼리 바위가 나온다.
힘은 들지만 사방에 펼쳐지는 조망은 끝내준다. 11시 03분 대야산 (930.7m) 정상에 도착했다. 몇 컷 기념촬영을 하곤 바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앞을 가던 이종우샘을 따라가는데 저쪽에서 길을 잘 못 들었다는 민정원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종우샘과 나는 계곡쪽으로 50m쯤 내려갔다. 얼마 안되는 알바 구간이지만 되돌아오는 발길은 왜 이리 무거운지... 지난번 1박 2일 덕유산 구간에서 무박 종주팀과 이중희교감(?)샘의 1시간 넘게 알바로 고생한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11시 35분경 그 유명한 직벽구간에 도착했다. 선두그룹은 11시에 와서 로프를 설치하고 한두명씩 내려가고 있었다. 직벽 아래를 쳐다 보니 현기증이 난다. 아찔하다. 지난번 속리산 구간에서 하강기로 내려오는 연습을 한 터라 그다지 겁은 나지 않는다. 내려가는 사람마다 강원장님이 기념촬영을 해주더니 민정원샘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찍사를 못하겠다며 먼저 내려가신다. 그 다음이 내 차례인데.... 좀 섭섭하긴 했지만 사실은 사진 찍는 것에 별 흥미가 없는 나라 오히려 다행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앞서 내려가던 민샘이 지난번 보다 어렵게 통과하는 모양이다 위에서 부대장님이 제대로 못내려간다며 언성을 높인다. 어떻게 하라며 갖가지 하강요령을 일러주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되냐고요!!!! 민샘이 가까스로 내려가서야 다음 사람 통과하라는 사인을 한다. 난 의외로 겁이 나지 않았다. 담담하게 요령을 생각하며 엉덩이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서 오른손을 허리춤에 대고 물론 로프를 잡고 말이다. 왼손은 위쪽에서 로프를 조금씩 살살 조절하며 내려가니 짜릿한 기분마저 감돈다. 마치 상급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의 그 짜릿함 스릴 만점!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50m 직벽구간이 끝이 났다.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바로 이어지는 구간이 오히려 긴장된다. 급경사에 로프도 없고 조심스럽게 그 구간을 통과했다.
12시 10분! 배꼽시계는 꽤나 힘든 모양이다. 긴장한 탓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먼저 온 일행이 급경사를 통과한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팔팔 끓여 놓은 라면을 몇 젓가락 얻어먹고 아침에 먹다 남은 주먹밥에 빵 몇조각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무겁게 챙겨온 보온도시락은 고스란히 배낭에 있다. 반찬 꺼내놓고 먹는 자체가 내키지 않아 나뿐만 아니라 대원들 대부분이 도시락 하나는 그냥 배낭속에 그대로 있다. 한참을 기다리니 홍대장님이 설치한 로프를 정리해서 내려오셨다.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 와는 반대로 대야산 직벽 구간을 오르는 일행이 많았다. 대간팀도 있고 그냥 대야산 정상을 온 일행도 있었다. 그 팀과 맞물려 마지막 정리를 하고 내려와야 할 부대장님과 차순헌대원이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았다.
12시 58분에 몇몇 대원을 남기고 나와 미자언니 민샘, 정선씨, 선희씨 여대원은 순덕이 언니빼고 다 모였다. 일행은 촛대재를 향해 출발 했다. 13시 15분 촛대재 통과 13시 36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오던 부대장님, 차순헌대원, 전승주대원(아님 이윤옥대원) 3명이 아직 안 오기에 걱정을 하며 촛대봉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우리의 걱정은 아랑곳 않고 촛대봉으로 오르는 중턱에 산허리로 통하는 샛길로 우리보다 먼저 불란치재에서 오히려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인이 왔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직벽구간에서 혹시나 뭔 사고나 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까지 한 것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곰넘이봉에 14:37분 도착했다. 약 한 시간을 더 가야 버리미기재에 도착한다는 홍대장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지막 일행은 목적지를 향해 내리막길을 가볍게 통과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 멀리 우리를 기다리는 빨간 버스가 눈에 띈다. 언제나 산행 때마다 10시간 넘는 산행에 지쳐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가도 빨간 버스와 영국이 오라버님 얼굴을 떠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발걸음에 생기가 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마지막 일행 11명이 버리미기재에 도착한 시각은 15시 30분! 총 산행시간 장장 13시간이다. 개인사정으로 한만주 대원과 이인호대원이 이 구간을 먼저 다녀갔는데 불과 10시간이 안 걸렸다는데... 허기야 일행도 많고 무시무시한 직벽구간 통과하는데만 무려 1시간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느니... 무사히 안전하게 공포의(?) 대야산 구간을 통과한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안산 즐산을 위해 애써주신 홍대장님과 부대장님, 무겁게 내 보온병을 챙겨주신 전승주 대원님, 죽을 고비를 2번이나 넘나든 반상혁 선생님 ... 모두들 기억이 생생하다.
2006년도 대간팀 송년회겸 뒷풀이 식사로 감나무집에서 먹은 꿩요리도 일품이다.
2007년 무사히 진부령에 안착하길 기원하며.... 이만 공포의 대야산(?) 구간 산행기를 마친다.
첫댓글 써니씨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사정이 있어 불참은 했지만 상상이 가네여... 대원님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용수 선생님 올해는 까페(컴맹) 빨리 탈출할께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희씨.... 산행기 잘 보고가요.... 공포의 대야산구간도 모두들 잘 통과해서 다행이고... 다음산행에서 봐요
가장 힘든 구간에서 산행기를 쓰라고 해서 정말 미안했어요! 수고하셨고...... 써니 박의 글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