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남도행 [寒中 南道行] - 2005.03.01
乙酉年 2월21일 토요일
오래 전부터 渴望해 오던 땅 끝에 가 보기로 했다.
아침 9시.....
대충 순천, 보성, 강진, 해남 땅끝의 코스를 잡고 큰 계획도, 별 旅裝과 준비도 없이 그렇게 南道 千里로 향했다.
하늘은 초가을의 淸明함이나 귓불과 손끝의 시림은 그야말로 嚴冬이다.
순천 IC를 빠져 낙안 邑城에 거쳐 보성 장흥을 지나 강진에 닿았을 때는 벌써 12시가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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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풍경
강진 군청 바로 뒤편의 永郞 金允植(1903-1950)의 生家부터 찾았다.(靑沙와 같은 金海金氏)
北에 素月이라면 南엔 永郞이라...
원래의 모습이 일부 바뀌기도 했다지만 10여년 전에 강진군청에서 그 집을 사들이고 다시 復元하여 대문 옆 좌우측의 행랑과 곳간 그리고 별채 등이 전부 草家로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으며 抒情性 넘치는 永郞의 대표적 詩가 碑로 刻印되어 수 채의 草家 사이사이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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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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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중 하나
곳곳에 보이는 영랑과 모란이 들어있는 商號들..
이 곳 사람들의 永郞 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도착하여 주차할 즈음 바로 옆에 부산차가 있어 내심 반가워 旅心이란 이런가 하였으나 돌아 나오니 가고 없다.
짧고 무의미한 반가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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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딸과
서둘러 茶山 草堂으로 향하려하나 廷이와 賢이가 두고 가기 아까운 듯 카메라에 담느라고 구석구석 살피며 렌즈 안으로 챙겨 넣고 있어 나도 약간 餘裕를 가졌다.
강진읍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마을 뒤의 만덕산 기슭에는 茶山 丁若鏞의 流配地이고 茶山思想의 産室인 茶山草堂이 있다.
입구에서 대략 300m 촘촘히 들어선 푸른 왕대 밭이 펼쳐진 산기슭으로 오르는데 이건 숫제 散策이 아니고 登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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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 들어가는 길목
다산초당 길목의 아람드리 나무
草堂은 중앙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고 그 양 옆으로 역시 기와집인 東庵과 西庵이 있으며 좀 떨어진 동쪽 산마루에 조그마한 亭子 天一閣이 있다.
원래는 草堂 이었는데 近來에 復原하면서 기와를 얹었다고 한다.
草堂과 東庵에는 秋史 金正喜가 쓴 茶山艸堂, 寶丁山房이라는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그 오른쪽 뒤편에 溪谷 물을 대통으로 끌어서 약 2m 정도 높이에서 연못으로 떨어지게 하여 손수 만든 자그만 연못이 있으며 집 뒤쪽으로 가면 先生이 직접 쓰고 새겼다는 丁石 두 글자가 남아 있는 바위가 있어 訪問客의 발길을 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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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앞에서
2시가 넘었으나 점심을 뒤로하고 명문 海南 尹氏 宗家인 해남읍 연동리의 綠雨堂을 찾았다.
綠雨堂은 孝宗께서 下賜하셨다고 한다.
樹齡 500년 가량 된 비자나무 숲으로 꽉 들어찬 덕음산 아래 孤山의 이 대 저택은 원래 사랑채 이름이 綠雨堂 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海南 尹氏 宗家 전체를 綠雨堂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孤山의 曾孫이자 茶山의 外曾祖父 이기도 한 畵家 恭齋 尹斗緖가 "尹氏家譜"를 남기어 전해 오는 집이다.
녹우당에서
지금도 孤山의 14대손이 살고 있으며 遺物展示館을 별도로 지어서 공개하고 있는데, 遺物中에는 孤山이 직접 쓴 歌帖과 恭齋의 작품들을 모은 古畵帖등 寶物로 지정된 것들이 다수 있으나 그 중 恭齋 自畵像[주1]과 지금 보아도 오늘날의 지도와 흡사한, 大東輿地圖보다 약 150년 앞서 恭齋가 직접 그렸다는 東國輿地圖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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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40호 공재 자화상
3시 반쯤...
허기가 지나치니 이젠 구경은 뒷전이다.
車窓 밖 스쳐 지나가는 風景보다는 음식점 찾기에 血眼이 되어 있는데 이 閑寂한 동네는 도무지 토종닭집 뿐이라 서둘러 시내로 향했다.
가까스로 바지락 칼국수 집을 찾아내어 자리를 하니 4인분 한 솥을 끓여내 오는데 이건 아예 칼국수 반 바지락 반이다.
호박과 각종 푸성귀를 넣고 자극적인 양념을 하지 않은 갯조개 내음 가득한 바지락 국물의 담백함은 꿀맛이 따로 없는데
그 양 또한 4명을 배불리고도 남으니 오호 南道의 厚德한 人心이여...
애초 1박을 하려 하였으나 보길도와 완도를 제외하곤 거의 다 둘러보고 우항리 공룡지대와 땅끝 마을만 남은 터라 당일 귀가를 작정하고 서두르기로 하였다.
차창 밖 南道 風景이 참으로 푸근하고 편안해 잠시 정겨움을 느끼는데 우항리에 내리자마자 웬 颱風....
칼바람 海風의 매서움을 정면에서 받으려니 발걸음 떼기도 예사일이 아니다.
마치 고호의 해바라기를 聯想케 하는 진노랑으로 彩色된 갈대밭이 뒤덮인 이 곳!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海岸一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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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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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 갈대 디테일
이 곳은 中生代 白堊期(약 9천만년 전)시대 湖水 地域으로 다량의 龍脚類, 鳥脚類[주2], 등의 恐龍발자국 化石이 발견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 발자국 化石의 집산지로 밝혀져 國際 學界의 注目을 받고있다.
泥板岩 , 砂岩, 등으로 形成된 堆積岩層은 海蝕으로 絶壁을 이루고 있으며 層離가 뚜렷이 나타나 세계적인 堆積學 名勝地로 天然記念物 394호로 지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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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 지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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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 지층
層離는 그높이가 1~4m로 海岸을 따라 3km정도 이어지고 있는데 중간 중간 3곳에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한 展示館(保護閣)이 세워져 있다.
제 1館은 肉食 恐龍과 翼龍의 발자국 展示館이며 제 2館은 翼龍과 물갈퀴 달린 鳥類 발자국, 마지막으로 제 3展示館은 주로 大形恐龍 발자국 展示館이다.
여기저기 움푹 패인 大形 草食 恐龍의 발자국은 흡사 금방 밀가루 반죽에 도장을 찍어 놓았듯 세세한 주름까지의 鮮明함을 보이는데 驚異롭다는 修飾語가 오히려 사용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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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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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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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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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화석
다음은 文化財廳에서 國寶로 지정한 文化財名 說明 중의 一部分이다.
『우항리 고생물 화석지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수행된 발굴 및 종합학술연구 (연구책임자 : 전남대 허 민 교수)에 의해 노출된 대규모 화석지인 것이다.
과거 우항리 지역은 상부와 하부 퇴적층의 수평 노출이 평균 약 30㎝ 정도에 불과하였고 지층의 경사가 해안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어(평균 20˚SW) 발굴 및 복원연구에 의하지 않고는 오늘날 같이 세계적 규모의 고생물 화석산출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발굴 및 연구수행결과 용각류, 수각류, 조각류 등의 다양한 공룡발자국 화석 514점, 익룡 발자국화석 443점, 새발자국 화석 약 천여점, 규화목 및 탄화목 화석 수십점, 개형충 미화석 수만점, 생흔화석 수십점 및 새로운 발굴이 요구된 익룡 및 공룡뼈 화석 수십점 등이 발견 및 발굴된 곳이다.
여기에 이들의 세계적 학술가치를 살펴보면 세계 유일의 매우 정교한 대형 용각류 공룡발자국 화석의 산출, 세계 최대 발크기와 발자국 개수(이전 세계 최대 30여점, 우항리 443점)를 가지고 있는 테로닥틸로이드 종류(Pterodactyloid)의 익룡발자국 화석,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물갈퀴새발자국 화석(Hwangsanipes Choughi, Uhangrichnus chuni), 아시아 최초발견인 절지동물 보행흔을 가진 생흔화석에 공룡, 익룡, 새 발자국이 한 층준에서 발견된 세계 유일의 화석지인 것이다.
이러한 화석들은 아직도 퇴적층 속에 대규모로 내재되어 있어 이들의 산출 규모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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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들어가는 길목에서.... 주작산
땅끝[주3]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해질녘이라 다소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아 加速페달을 더 깊이 밟으면서도 눈은 연신 차창 밖에서 뗄 수가 없다.
남도의 旅情을 두루 느끼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송지면으로 들어서서 한참을 가니 우측 松林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바닷물이 노을을 받아 무르익은 홍시 빛깔로 反射되어 흩어지는데 마악 日沒직전이다.
다시 와서 보기 힘든 아까운 장면이라 마치 날개옷을 걸치고 하늘로 차오르는 선녀를 잡는 나무꾼 마음인양 바삐 차를 세운 후 황급히 이리 저리 구도를 잡아 몇 컷 담았다.
땅끝 일몰의 몇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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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石碑가 있는 고갯마루에 다다르니 송호리 방파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질 무렵인데도 인파와 차량은 왜 그렇게 자꾸 몰려드는지......
차량들에 밀려 전망대는 포기하고 그냥 한바퀴 눈 관광으로 돌기만 하였으니 예까지 와서 한점의 회, 한방울의 飮酒도 못하였던 바, 스스로 美食家이며 酒黨을 자처하던 영감 가슴의 쓰림은 어떻게 달랠꼬
혼잡스러움에 찬찬히 둘러볼 여유도 없이 대충 수박 겉 핥기로 흔적만 남기기 위해 주변의 몇 군데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앵글을 맞추고 포즈를 취하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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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뷰 포인트'에서 내려다 본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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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방파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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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석비 옆에서
해는 넘어가 버렸다.
아쉬워라
전망대, 갈두산 봉수대, 자연사 박물관, 허준 촬영지, 미황사......그리고 보길도, 완도...
모두들 뒤로 할 수밖에 없다.
부산서 6시 정도에 출발이 되면 완도에 入島하지 않을 시 땅끝 까지는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있을 것 같다.
많이 피곤하다.
[주1] 恭齋 自畵像
국보 제240호
탕건 끝이 잘렸으며 배경처리가 없고 수염 털이 매우 정교하다.
[주2] 龍脚類는 도마뱀형 骨盤, 鳥脚類는 鳥類形 骨盤을 가진 恐龍
(1887년 해리 고비어 실리)
[주3] 땅끝의 유래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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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안내도 - 해남 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