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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종일 엄청 비바람.
*걷기- 열사흘 날
*부르고스(Burgos)에서 온타나스(Hontanas)까지.
*이동거리 : 32km.
*누적거리 : 324km.
아침에 약을 먹고 출발한다. 소염진통제에 근육 이완제까지 먹고 발에는 물집이 생기지 말라고 니베아 크림을 바른다. 발가락 양말까지 신었다. 대부분 몸이 아프면 쉬던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까지 가는데, 걷기로 했다. 숙소 주방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먹고 간다.
1.9유로다. 부르고스 도심을 벗어나도록 날이 어둡다. 아침 6시 45분에 출발한다. 출발부터 비가 내린다. 우비와 추위를 대비해 단단히 무장을 하고 간다. 얌전히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아침, 부르고스 대성당도 비에 젖어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성당 위 길로 걸어간다.
카미노 표시를 찾으며 걸어가는데 코끝에 느껴지는 공기는 신선하다. 비를 맞으며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기분이 신난다. 문 같지도 않은 산 마르틴 문(Arco de San Martin)을 지나간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부르고스를 떠나게 된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주변의 경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새벽 푸르름에 먼저 출발한 순례자들이 보인다. 왼쪽에 산 호세 교회를 지나간다. 아를란손 강 위에 있는 말라토스 다리를 건너간다. 왼편 들판 언덕에 우엘가스 수도원이 있다는 간판이 보인다. 알폰소 8세와 다른 몇 명의 귀족들에 의해 1187년 지어졌다.
알폰소는 이곳에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역시 이곳에 묻혔다. 시토회의 수도원으로 설립되었다. 시토회(Citeaux會)란 1098년 베네딕트회의 성 로베르가 프랑스 시토에 창설한 수도회다. 시토 수도회의 수도자들은 하얀색 수도복 위에 검은색 스카풀라레를 걸치는데, 이 때문에 이따금씩 ‘백의(白衣) 수도자들’이라고도 일컬어졌다.
시토회 생활의 역점은 수작업과 자급자족이며, 많은 시토회 소속 수도원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이나 맥주 제조 등의 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경제를 부양하고 있다. 주로 귀족들의 수련원으로 사랑받는 수도원이었고 현재는 박물관이란다. 아름다운 보물들이 많이 소장되어있다.
산티아고 기사단이 서품을 내릴 때 사용했던, 움직이는 팔이 달린 성 야고보 상도 있다는데 비가 내리니 방문하기가 싫다. 파랄 공원을 지나간다.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앞서서 걸어가는 컬러풀한 우비가 그나마 살아있는 생동감을 주는데, 날리는 바람에 심하기 펄럭임에도 무거워 보인다.
산토 아마로 페레그리노 예배당(Ermita S. Amaro Peregrino)을 지나간다. 작은 예배당이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정착한, 겸손한 프랑스 순례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치유의 기적이라는 유산을 찾아 떠나는 순례자들의 복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고 한다.
잘 생긴 순례자 동상도 보인다. 계속 걸어가니 평화로운 농촌 지역이다. 메세타 지역이란다. 메타 세콰이어 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인 줄 알았는데 나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메세타(Meseta) 지역은 유럽 대륙 서부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부에 있는 건조하고 거대한 고원 지대를 의미한단다. 자연적인 환경으로 그늘이 없는 황무지다. 해발 610~760m의 평균 고도를 유지한다. 절반 이상은 끝없이 농경지가 펼쳐지는
평화롭고 조용한 지역을 가로지르는 흙길이다. 비를 저항하며 한참을 걷다보니 옆에 N-120 도로가 함께 간다. 마을이 보인다. 마을 뒤편에 풍력 발전기가가 몇 개 보인다. 하늘은 회색이고 무겁다. 거의 10km 정도를 걸어간 것 같다. 타르다호스(Tardajos) 마을에 도착했다.
타르다호스 부근에는, 과거에 습지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타르다호스에는 이런 말이 전해 온다. “라베부터 타르다호스까지 가는 길, 고생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타르다호스부터 라베까지 가는 길엔, 하느님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17세기의 교차로를 통해 타르다호스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거리와 광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타르다호스는 오래 전부터 켈트 인이 정착해서 살았던 곳으로, 바로 옆 부르고스의 수많은 유적들과 새로운 정보, 생생한 느낌을 찬찬히 맛보고 소화해내기에 좋다. 돌 판에 스페인 지도가 만들어져 있다. 산티아고 카미노 표시가 선명하다. 마을 중심가 로터리에는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마을 이름도 조형물로 만들어 세워져 있다. 인물 사진과 기계가 그려진 조각상이 보인다. Escultura en honor al P. Mariano Díez(1868~1926) 라는 인물이다. 기계 발명가인 것 같다. 카페(Restaurante Pececitos)에 들어갔다. 커피와 빵을 주문해서 먹는다.
먹는 것 보다는 비와 추위를 잠시 피하기 위해 들어갔다. 훈훈하고 온기가 있어 좋다. 마을은 조용한데 성당(Iglesia de la Asunción)을 중심으로 오래된 집들이 비바람에 조용하다. 시청 앞 광장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벤치도 있는데 비만 가득하다. 담배 가게도 보인다.
신발 모양의 알베르게 표지판이 귀엽다. 성당에는 부엔 까미노라는 글귀가 있다. 오래된 돌담집이 예쁘다. 포장도로와 헤어져 시골길을 걷는다. 작은 우르벨 강을 건넌다.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마을이다. 아를란손 평야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시내가 흐르는 곡창지대이면서도 중세의 분위기가 가득한 작은 마을이다.
성당 옆 오래된 나무들은 지친 순례자들에게 잠시나마 쉴 자리를 선사해주고, 마을의 주요도로는 산책하기에 좋다.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가 언제 지어졌는지에 관하여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라베(Rabe)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하기 전, 이곳에 유대인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랍비(Rabi; 유대교 스승)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 포지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리베로(Ribero; 둑)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당과 집들이 모여 있다. 순례자 철판 조형물도 있다. 벤치가 그대로 비를 맞고 있다. 십자가가 있는 묘지도 보인다. 산타 마리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na)을 넘어간다.
13세기에 만들어져서 여러 번 개축되었으나 아직까지 고딕 양식 현관 등이 남아있다. 현대 스타일의 깨끗한 정원 주택이 보인다. 담장 조경이 깔끔하다. 화살표를 잘 살펴가며 걸어간다.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Ermita de Nuestra Senora Monasterio)은 작다.
모나스테리오 성모상을 보존하고 있는 성당이다. 신부님께서 순례자들 1명씩 모두에게 축복해 주시고, 각 나라별 언어로 된 기도문과 설명문도 비치해 놓았다는데 비 내리는 날이라 조용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여기서 더 진행하지 않고 바로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 순례자들도 보인다.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한적한 야외 쉼터가 나타난다. 샘은 말랐다. 나무 그늘이 있으나 비가 내린다. 순례자는 해발 950m 되는 메세타 봉을 넘어간다. 다시 가파르게 나려간다. 이 내리막길의 이름이 노새도 죽이는 내리막(Cuesta Matamulos)이다. 벽화가 있는 담벼락이다.
아인슈타인,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순례자 부부의 커다란 그림도 있다. 누가복음 18장 16절 말씀도 있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작은 교회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또 벽화가 나타난다. 목자이신 예수님, 달밤 풍경은 시퍼런 색깔로 그려져 있다. 여러 가지 벽화가 길을 따라 그려져 있어 심심하지 않다. 철탑이 세워진 길을 따라 간다. 언덕을 올라간다.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비바람이 강하다. 시골길을 걷는다.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비가 심하게 내리니 몸도 춥다. 순례자들이 하나 둘 마을 로 들어간다. 택시를 타고 나머지 길을 가는 이들도 보인다. 인적이 없고 빈 길에는 비바람만 가득하다. 아마도 20km 정도는 걸어온 것 같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이다.
오르마수엘라 평원에 위치해 있다. 아름다운 숲 사이로 중세의 다리 실루엣이 보이는데, 바로 까미노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평온한 산책을 즐기기의 최적의 장소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가 이곳 강변에서 오르노(Horno; 화덕)를 발견하고 군대가 먹을 빵을 구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이 화덕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민요에서도 나타난다. 9세기 이 마을에는 까스띠야 지방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탑이 만들어졌다. 당시 이 마을은 포르니에요스(Forniellos)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도자기 공장에 있는 작은 화덕을 의미한다.
작은 카페가 있어 일단 들어갔다. 난로가 피워져 있어 몸도 녹이고 젖은 옷과 장갑도 말린다. 메세타 지역을 곧장 걸어간다. 왼쪽에 산볼(San Bol) 마을이 보인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아로요(Arroyo; 시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로요 산 볼은, 수수께끼가 가득한 마을이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전염병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주민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곳이라서 유대인 추방 이후 남은 주민이 없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 아로요 산 볼에는 산 바우디요 수도원의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다.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한 곳 있는데 다른 곳과 같은 현대식 서비스는 적지만 호스피탈로가 너무나 친절하게 순례자를 대접해준다.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서 하늘에 떠있는 별빛을 바라보며 멀리 있는 산티아고 성인에 대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순례자 숙소는 10명이 머물기에도 벅찰 정도로 조그맣고 편의 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단다. 하룻밤의 영적인 순례도 나쁘지 않으나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다음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뗄라 까지는 아직도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순례자 숙소의 뒤에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돌집이 있다. 이것이 어떤 용도에 쓰이는지는 이곳에서 하루밤을 보낸 순례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데, 그냥 스쳐 간다.
어차피 남은 길 걷기로 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이다. 비바람이 거칠게 불어온다. 비바람의 저항을 막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기역자로 버티며 걸어간다. 빗물이 이마에서 떨어진다. 콧물과 함께 떨어진다. 사정없이 들이치는 비에 우비를 입었는데도 양말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다 젖었다.
거친 비바람소리에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빵”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어디서 언제 나타났는지 택시가 농로 길을 따라 온 것이다. 당황해서 옆으로 비켰다. 택시는 금세 직선으로 뻗은 길로 사라져 간다. 지형은 완만하고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마주쳐 오는 비바람에 속옷까지 다 젖으니 이제 춥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죽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앞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고 비바람치는 벌판에 오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걸음이다. 최악이다. 비바람과 추위에 온 힘을 다 소진하고 희망이 사라져 갈 즈음에 멀리 2시 방향에 카페가 하나 보이고 누군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인다.
용기를 내서 걷던 길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걸어가 카페에 들어섰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눈물이 다 난다. 같이 걷는 부부가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단다. 형광색 우비가 누군인지를 알게 되었단다. 이 카페는 목적지 2km를 남겨 놓은 지점이란다. 그런데 주변에는 우리 목적지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몸을 녹이고,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살 것 같다.
이 카페의 주인장은 한국어를 조금 했다. 몇 년전까지도 한국의 태권도를 배우고 선수로도 활동했단다. 맘에 여유가 생기니 밖에 비바람치는 보습이 눈에 들어온다. 낡은 스페인 국기가 심하게 기울어져 펄럭이고 있다. 곧 날아갈 것 같다. 내가 걸어오던 길에는 붉은색 우비를 휘날리며 비바람을 뚫고 가는 순례자가 보인다.
그 뒤로 검은 우비를 입고 걷는 2명이 보여 반갑다. 머물수만 없어 다시 우비를 정돈하고 카페를 나섰다. 걸어가 본 길로 들어서서 다시 고개 숙이고 힘들게 걸어간다. 그렇게 걷기를 10여분 가니 갑자기 마을이 나타난다. 우리의 목적지 온타나스다. 고맙게도 우리 숙소(Albergue Santa Brígida)는 마을 초입에 있어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마을이 언덕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도착해 있다. 대부분 택시를 타고 왔단다. 새로 지어진 숙소다. 우비는 따로 걸어두고, 젖은 등산화는 휴지를 넣어 습기를 제거하고 난로 옆에 세워두었다.
넓은 홀에 침대가 가득하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침대 옆에 널었다. 젖은 양말은 스팀이 돌아가는 라지에다 위에 올려 놓았다. 몸이 따스해지고 정신이 편안해 지니 좀 살 것 같다. 비가 막 그치며 바람이 분다. 춥다. 여기가 해발 950m 되는 고원지대란다.
어두워지기 전에 잠시 동네를 구경하러 나왔다. 밀밭에 둘러싸인 중세풍의 아름다운 마을인 온타나스는,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초록색 들판을 더욱 푸르게 해주는 샘이 도처에 많은데, 여기에서 마을의 이름 온타나스(Hontanas; 샘)가 유래했다.
온타나스는 석회암으로 지은 전통적인 건물과 벽돌을 넣어 지은 목재 건물 사이로 까미노가 이어진다. 전통적이면서도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 흔적이 남아 있어서 풍성한 역사를 느끼기에 좋다. 8월 16일은 성 로케의 축일이다. 오후가 되면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큰 모닥불을 피우며 모닥불 근처에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축일을 기념한다고 한다.
꼰셉시온 성모 성당 (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이 좀 작고 초라해 보인다. 골목길 코너에 있는 알베르게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으니 식사가 없단다. 활활타는 화로만 좁은 실내를 데워주고 있다. Ruiz Martinez(1949~1996)의 흉상이 보인다.
아마도 이 지역 출신의 예술가인 것 같다. 골목길에 있는 숙소 Albergue El Puntido 벽에 붙은 온도계가 영상 6℃를 가리킨다. 한기가 느껴진다. 오후 6시 51분이다. 마을을 한바퀴 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저녁은 비상식량으로 했다. 우리 숙소에서 빠에야를 만들어 제공한다는데 빠에야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아 먹지 않기로 했다.
숙소에 가만히 누우니 비바람치는 시골길을 힘들게 걸어온 일이 달콤한 추억으로 스쳐간다. 웃음이 나온다. 사람은 망각이 있어서 사는 것 같다. 방금 겪은 험난한 여정이 이제 먼 추억으로 저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