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협잡으로 받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김대중의 사기질은 무엇이고, 협잡질은 무엇인가?
김정일은 1995년부터 고난의 행군시절 3~4년 동안 최소 300만명~
최대700만명 규모의 대량 아사자를 냈다.
그 당시 김정일에 대한 민심이 심상치 않았었다.
그래서 일대 숙청극을 벌여 국민의 관심을 공포분위기로 흡수했다.
이른바 ‘심화조 사건!’ㅡ
장성택 등을 등장시켜 노동당 농업비서 서관희와 농업연구의 권위자
인 백설희 여성 박사와의 염문설을 지어내 공개총살시켰다.
그당시 2만 5천 명의 아버지 김일성세대의 충신들을 숙청하자
토사구팽한다는 여론에 직면했다.
이처럼 1998년까지는 김정일이 북한민심 수습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달러와 쌀이 절실했다.
달러는 꼬붕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필수 양식이었다.
머리 좋은 김정일은 작전참모들과 협의한대로 남한의 김대중을 협박
하기 시작했다.
1999년 11월, 일본 문예지에 육성 녹음을 보냈다.
”김대중은 우리 아버지 김일성 수령님이 일본의 북조선 조총련(조선
총연합)의 막대한 지원책으로 키운인물이다.“라는 내용으로 협박을
한 것이다.
그래도 김대중의 응답이 시원치 않자, 생각다못한 김정일은 1999년
12월 김대중에게 심복 한 사람을 북으로 보내라 했다.
바짝 쫄은 김대중이 망명했던 미국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었던
14년간 미국에서 살다가온 똑똑한 좌파심복이었던 김경재 의원을
북한에 특사로 보냈다.
김정일은 북한에 도착한 김경재에게 달러가 절실시 필요하다는 말
을 전했고, 광주에 가서 5.18때 투입되어서 전사한 490명의 인민군
열사 묘지를 보여주었다.” 달러를 한시라도 빨리 보내라.ㅡ
안 그러면 5.18은 남한의 간첩들과 북조선에서 파견한 특수간첩들
이 주도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이었다.
김경재는 이 사실을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즉시 김대중에 전했고,
김대중은 즉시 4억 5천만 달러를 우선 보낸 뒤에 김정일을 직접
만나서 이후의 지원계획을 알려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려
했다.
이후 금강산 사업과 개성 관광 사업이라는 봉이 김선달식 사업을
벌여 1년에 몇명이 관광을 가던지간에 50만명씩 간 것으로 처리해
서 1인당 300달러씩을 제공했다.
현대 상선을 닦달하여 금강산 독점 사업권이라는 명목으로 9억
4,200만 달러를(당시 1조2천억원을) 주라고 협박했고, 이에 반대
하고 저항한 정몽현회장이 의문사를 당했다. (높은 빌딩에어 창문
으로 내던져진것으로 결과는 나와있었다.)
이후 김대중은 쌀, 비료, 결핵약을 미친 듯이 보내주어서 북한의
붕괴를 막아주었다.
이것이 진실인데 김대중은 노벨상을 타기 위해 사기질과 협작질
을 했다.
김대중이 북한에 간 것은 개 끌려가듯 협박에 못 이겨 끌려간 것
이 아니라 오로지 평화를 위해 위험한 적진으로 날아가 적장을 만
나 남북을 평화분위기로 만들었다는 노벨 공적서를 썼다.
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사기 기술인가?
이 사기 공적 내용을 노벨상에 반영시키기 위해 국정원이 공작을
했다.
이 사실은 김기삼 전 국정원 간부가 망명의 험한 길을 걸으면서
까지 폭로하고 있다.
5.18을 북괴가 전면 남침의 마중물로 일으킨 폭동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중물
사건을 직접 기획한 장본인이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또 사기를
쳤다.
1991년부터 지급된 5.18유공자 보상금. 가장 높은 공을 세운
사람의 일시금이 3억 1,700만 원이었고, 이와 동시에 당시 금액
으로 월 420만 원씩 연금을 받았다.
그렇게 추진한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라는 의심이 간다.
① 자기가 주도해서 내란, 여적 폭동을 일으켜놓고, 이를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시키고
② 노벨 상금의 30%에 해당하는 일시금에, 월 420만 원의 연금
을 평생 받고
③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전라도 왕초의 사기 협작 기술이 얼마
나 대단한가?
이에 대한 분노가 마그마처럼 지하에서 끓고 있는 마당에
제2의 노벨상 수상자가 또 시궁창 오물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내
리는 한강이라는 광주녀라니!
호남 세력들의 남은 계략
이승만 대통령의 명예 회복 분위기가 확산되자, 그당시 남조선
로동당(남로당)이 북조선의 지령을 받고 남한만의 자유선거를
방해하려고 빨갱이들이 일으킨 4.3반란을 이승만 대통령이 진압
했던것을 지난 수십년간 비난하고 격하ㆍ폄하해오던것을 이승만
의 역사적인 재조명으로 인해서 더이상 폄하만 할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승만을 폄하해온 거짓들이 진실의 연구로 인해 드러나는 우익
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2024.6.17.및 7.4일 양일 동안 전직 안기부장 권영해가
5.18의 진실을 밝혔다.
“5.18은 북한이 적화통일 목적으로 일으킨 군사작전이었고,
이를 위해 광주에 보낸 북 특수군 중에서 490명이 전사했으며,
490명 명단이 공개돼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당시 국군정예군 20사단을 기습한 작전으로, 남한의 군용차
400여 대를 탈취하여, 그것을 가지고 44개의 무기고를 일시에 턴
군사작전,
그리고 교도소를 공격한 작전은 모두 북한군이 주도한 것이라고
부연하여 증언했다.
이로써 이제 5.18이 북조선에 의해 남한을 공격한 역사적인 대
사기극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전라도 악귀들은 이 내용이 파급되는 것을 그동안 언론
과 사법계를 장악한 힘으로 모든것을 다동원해 강압적 수단으로
막고 있다.
낭중지추! 이렇게 한다고 주머니 속에 든 뽀족한 추가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라도가 모두 나서서 노벨상의 위력을 악용하여 국제
사회를 통해 4.3과 5.18의 명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김대중이 미국에 숨겨놓았다는 미국 은행계와 법원계에서 출
처가 명백히 드러난 11조 달러 단위로 이미 드러난 일부의 비자
금이 노벨위원회한테도 갔었고, 김정은의 주머니로도 공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다.
김정은이 무슨 돈으로 개당 수천억원씩하는 비싼 유도탄을 심심
할때민다 쏘아대는 것 하며, 자신의 패거리 졸개들에게 고가의
명품 세례를 하는 것이며, 장벽공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
는 것인가?
북한 역사 선전자
4.3은 한라산 무장 유격대 350명과 80%의 좌경화된 마을 빨갱이
들이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한 반란-내란 사건이었다.
양민을 처참하고 잔인하게 학살한 집단은 남로당 빨갱이들이었고,
경찰과 군은 목숨을 걸고 이들을 토벌하였다.
이렇게 명백한 사건을 북한은 박설영의 논문을 통해 학살 주체를
경찰과 군으로 바꾸어 놓았고, 2005년 노무현은 이를 토대로 4.3
역사를 양민 학살 사건으로 뒤집어놓았다.
여기에 신흥빨갱이인 한동훈이 힘을 실었고, 한강이 스피커 역할
을 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 중학생과 광주 시민을 학살한 주체 역시 계엄군
이 아니라 북한군 600명이다.
이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그동안 수십년간 끙끙앓아오면서 고심
해왔었던 진실을 밝혔다.
그런데 전라도는 그 당시에 공수부대가 아무짓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던 비무장의 어린 중고생.여성.중년.젊은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로 저질렀다고 박박 우긴다.
이 지구상에 국가와 국민을 지켜주는 군대를 학살 집단이요, 강간
집단이라고 인위적으로 저주하는 국민이 전라도 국민들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들이 장악한 언론사 노조원들에게 가짜 여론
에 속아서 호남은 반역-반골의 길에 서게되었다.
결 론
박원순이 여비서에게 문자로 보냈다는 외설적인 말들은 한강의 표현
에 비하면 오히려 새발의 피다.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내지른 언어가 너무나 더러워 책을 외면한
적이 있다.
전라도 고은태, “태’자는 떼어내고 고은으로 문화 황제 노릇을 했지
만 그는 저질의 성희롱자였다. 호남은 왜 그토록 더럽고 혐오스럽게
굴면서도 자화자찬을 일삼고 사는지??
한강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다! 이래도 한강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