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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형태의 좀 더 정확한 모습 확인은 파일을 열어보시면 됩니다.
* 아래 첫 파일이 안 지워집니다. 둘째는 재수정본입니다.(하두자 시인 원고만 수정함)
2023년 제24호 강남시문학회 사화집—2023.10.6.
*발간 표기일은 11월 8일입니다. 11월 14일까지 택배 완료 목표.
*제23호(2022년)처럼 해주세요.--책 크기, 편집 등
*작년 책에서 우재욱, 이수영 조산해 님들이 빠지고; 소율 님이 새로 들어갑니다.(글 직접 제출-박종래 회장님) (소율 : 제22호에 사진, 약력 있음)
제목 : 푸른 별로 가는 간이역 -손글씨 예정(마땅찮으면 컴글씨)
*한자 표기—병기일 때 괄호 없이—아래처럼 해 두었어요.
--제목, 본문 : 예-행복幸福
[앞날개]--2022년 것을 수정 완료했음. 아래에 카페 주소
강남시문학회는 1999년 11월 18일에 창립되어 내년이면 25주년을 맞게 됩니다. 아름다운 삶을 가꾸고 시의 위의를 지켜 가기 위해 ‘좋은 시’를 창작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부단한 성찰과 연찬에 게으르지 않으며, 동시대인들과 함께하기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매월 1회 주어진 주제에 맞춰 쓴 신작 주제시 낭송 파일 《네오포엠》(2021년까지는 종이책)을 제작해 시낭송회를 개최하여 오는 12월에는 289회(낭송 파일도 289호)를 기록하게 됩니다. 연간 사화집은 24호를 발간하게 되었으며, 문학특강, 시인 초대, 시화전, 답사 기행, 시화엽서와 자필 시선집 제작, 창립 20돌 기념 육필시화 사화집 발간 등 다양한 문학 활동도 펼쳐 왔습니다.
시낭송회장이던 대치평생학습관 2층 문화교실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상 폐쇄되자 (2020.2.-2022.5.) 문학관이나 박물관, 공원, 유적지 등을 이용했던 탐방시회를 계속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지자체 보조금 없이 자체 예산만으로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
수록 시인
강성구 ․ 권경애 ․ 김계영
김광옥 ․ 김금래 ․ 김영호
김정운 ․ 김홍섭 ․ 나금숙
박재화 ․ 박종래 ․ 박철웅
방지원 ․ 백우선 ․ 소 율
신난희 ․ 신표균 ․ 오승엽
이복자 ․ 이태규 ․ 임윤식
정영호 ․ 정정근 ․ 조성순
조은설 ․ 차영미 ․ 하두자
강남시문학회 카페: http://cafe.daum.net/knp21
서문—2쪽으로 편집/ 끝 단락도 수정했음.
시詩가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가 지속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분열, 갈등을 화합으로 바꾸어 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질병을 치유해서 건강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고물가, 고금리를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안전하고 보람 있는 일자리를 갖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집값을 안정시켜 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누구나 기쁘게 아이를 낳아 기르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모든 생명체가 함께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일본이 해양에 방류하는 핵 오염수가 아예 생기지 않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사람들의 말을 진실하고 품위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즐겁고 서로 고마워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축구, 배구, 탁구…… 운동도 잘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배려와 관용을 몸에 배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을 알게 하고 실천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가 기후 위기 가속을 멈추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구 생명체의 안전한 존속과 관련하여 지금 가장 화급한 문제는 기후 위기일 텐데 자기와는 무관한 문제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기우이길 바라며 저의 졸시 「폭군」을 덧붙입니다.
“기후도 폭군이 되었다./ 수억만 가지 중/ 저만 잘났다며 멋대로인/ 인간 탓이다./ 폭군이 폭군을 낳았다./ 인간의 불편 회귀나/ 못살기는 어렵고/ 때가 늦었다고도 한다./ 이대로 가면 머잖아/ 다 죽고 말 것이다.”
※ 강남시문학회 사화집은 창립(1999.11.18.) 이듬해부터 매년 발간해서 올해로 24호를 내게 되었습니다. 전체 회원 가운데 27명의 자선 ‘시 3편’이나 ‘시 3편+산문 1편’씩이 모아졌습니다. 성명 가나다순으로 엮었는데, 표제로 선정된 시구를 쓴 회원의 작품들을 맨 앞자리에 놓았습니다.
2023년 11월
백 우 선
[뒷날개]--추가 24
23 우린 서로 3인칭 (2022.11)
24 푸른 별로 가는 간이역 (2023.11)
[표4]
우리 명시 —새로, 이 글귀를 왼쪽 맨 위에 넣어주세요./ 아래 양이 많으면 행간을 줄여주세요.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김소월 「옷과 밥과 자유」 전문(《백치白稚》제2호. 1928.7.)
가장 높이 느끼고 깨달을 수도 있는 힘, 또는 가장 강하게 진동이 맑게 울리어 오는, 반향과 공명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악기, 이는 곧 모든 물건이 가장 가까이 비쳐 들어옴을 받는 거울, 그것들이 모두 다 우리 각자의 영혼……일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가장 이상적 미의 옷을 입고, 완전한 운율의 발걸음으로 미묘한 절조節操의 풍경 많은 길 위를, 정조의 불붙는 산마루로 향하여, 혹은 말의 아름다운 샘물에 심상心想의 작은 배를 젓기도 하며, 이끼 돋은 관습의 기험한 돌무더기 새로 추억의 수레를 몰기도 하여, 혹은 동구洞口 양류楊柳에 춘광은 아리땁고 12곡방曲坊에 풍류는 번화하면 풍표만점風飄萬點이 산란한 벽도화 꽃잎만 저흩는 우물 속에서 즉흥의 두레박을 드놓기도 할 때에는 이 곧, 이르는 바 시혼으로 그 순간에 우리에게 현현되는 것입니다.
시혼은 본래가 영혼인 동시에 자체의 변환은 절대로 없는 것이며, 같은 한 사람의 시혼에서 창조되어 나오는 시작詩作에 우열이 있어도 그 우열은, 시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오, 그 음영의 변환에 있는 것이며, 그 음영을 보는 완상자 각자의 정당한 심미적 안목에서 판별되는 것입니다.
달밤의 꾀꼬리 소리, 물소리에도 한결같이 그의 특유한 음영은 대낮의 밝음, 야반夜半의 어두움보다도 더한 밝음, 어두움, 어스름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시혼은 직접 시작에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영으로써 현현된다는 것과, 현현된 음영의 가치에 대한 우열은 적어도 그 현현된 정도 즉 태도 여하와 형상 여하에 따라 창조되는 각자 특유한 미적 가치에 의하여 판정할 것임을……
—김소월, 「시혼詩魂」 중, 《개벽開闢》 1925년 5월호
※한자 표기는 한글로 바꾸거나 병기하고, 맞춤법은 현재의 것을 따름. 일부 축약.
2023년 제24호 목차—신난희, 이분 다음부터는 가나다순.--전체를 2쪽으로 편집해 주세요.[27명]
서문
신난희 강성구 권경애 김계영 김광옥 김금래 김영호 김정운 김홍섭 나금숙 박재화 박종래 박철웅 방지원 백우선 소 율 신표균 오승엽 이복자 이태규 임윤식 정영호 정정근 조성순 조은설 차영미 하두자
* 제자: 신난희
--신난희 —제목에 뽑힌 이여서 맨 앞
돋보기 외 2
늙어간다는 건
수리도 할 수 없는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거겠지만
닦고 닦아
반들반들해진 마루처럼
밝아지는 것도 있으리
빨래를 널다
얼굴을 묻던
젊은 엄마의 달개비꽃빛
푸른 멍이 보이고
비 새는 지붕을 고치며
산에는 옹이 없는 나무 없다고
혼잣말하시던 아버지의
깊숙한 옹이도 보이고
내 아픔으로
다른 이의 아픔을 읽는
나이라는 돋보기가
이제 있으니
별들의 주소
어린 날
다락에 오르면
별에 가까워졌다
조붓한 창문을 열면
다락은
푸른 별로 가는 간이역
카시오페아 페가수스
궁수자리나 물병자리
별자리는
별들의 주소였다
어린 역장들
다 떠나고
이따금 어머니 혼자
창문을 닦던,
그마저도 벌써 삼십여 년 전 옛일
다락은 다락 속에 들었는데
내 가장 높은 곳엔
별들의 주소를 기억하는
망루 같은 다락 아직 있을까?
칠부 능선이 보이는 저녁
불쑥 물음표 하나
부표처럼 떠오르고
비바람 몰고 오는
구름 사이 작은 별
답신처럼
용케 깜박거리고
숫눈길
먼저 간
발자국 길 따라가다
숲 안쪽 인적 드문 길목에서 만난
숫눈길
누군가 금방
청잣빛 도는 옥양목 한 필
펼쳐 놓은 것 같습니다
햇살 한나절이면
흔적도 없어질 테지만
처음 걷는 것처럼
벅차고도 조심스런 걸음마
길이 되어 따라오는
발자국 비뚤비뚤해도
눈 위에
동그란 똥 내려놓고
개운하게 뛰어가는
어린 짐승처럼
마음짐 한 줌씩
내려놓고 갑니다
어떡허든
한 세월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듯
꾹꾹
발 도장 새기며 갑니다
--강성구
청진정 백일홍 외 2
백일홍 붉게 핀 청진정 처마 높이
한낮의 태양이 빛나는 오후
아름드리 가로수 그늘 아래로
한줄기 샛바람이 시원도 하여라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옛 선조 先覺을 되뇌어 무엇하랴
그 옛날 그 자리에 백일홍 그 꽃이나
오가는 젊은이들 그들은 뉘신지요
지평선 저 멀리
지평선 저 멀리 아득한 산 너머
양지바른 옹달샘 개울가 마당에
감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내 고향
푸른 하늘에 유유히 흰구름 흘러
디뚱디뚱 논둑길에 세월이 가네
봄여름가을겨울 변하는 계절마다
장독대 뒤뜰에 언덕 위 큰 소나무에
살구꽃 호박꽃 들국화 함박눈 꽃이
올해도 나 없어도 여전히 피련마는
어제도 오늘도 무심한 이내 마음
등나무 그늘 아래
아직 따가운 늦여름 오후
눈부신 햇살 사이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오는 이 가는 이 도란도란
지난봄 보랏빛 사연
오래전 희미한 흑백 추억들
주렁주렁 흔들리는 그리움
붉게 물드는 노을도
그늘 아래 사연 되어 쌓인다
--권경애
껍질 외 2
껍질만 남은 빈 몸으로 엄마는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셨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가
먼동이 틀 때까지 집 안을 맴돌았네
어느 한겨울 캄캄한 밤
기도는 얼음이 되었어도
한 줌 가루로 요약된 엄마
기도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모래알 세상에 웅크린
나를 양수처럼 감싸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장애물 경기는 물구덩이와 허들을 놓고 달리는 운동경기
장애인은 그것을 몸에 달고 달리는 사람
장애는 넘어가야 하는 것. 걷고 뛰는 것, 노래하고 춤추는 것, 그 노래가 어디든 간다는 것, 세상 밖으로 우주로 마구 날아간다는 것, 꽃이고 나비고 새라는 것, 강물이고 바다라는 것, 별이고 달이고 해라는 것, 당신이고 나라는 것
하트는 손동작으로 날리는 게 아니지. 노래처럼 가슴에 저절로 와 닿는 것, 심장이 쿵쿵거려 내 심장과 당신의 심장이 거기 달려 있음을 알게 하는 것, 박동 소리가 마음을 타고 흘러 하나로 이어지는 것
* 발달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그 새
바람결에 얼핏 들었다 쿵,
무겁고 짧은 낙하물 소리
그 앞을 지나다 보았다
흐릿한 핏자국
이슬처럼 날아간 열아홉 어린 새
올려다본 23층 옥상,
절망은
저토록 아득한 봄날인데
고스란히 남아있는 희망의 바닥을
희고 붉은 꽃 몇 송이가 차지했구나
--김계영
화석을 드로잉하다 외 2+산문
감당하기 어려운 물속이나 깊은 지층의 무게를 품고 나와
지상의 시간에 파고들었다니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의 흔적이다
보이는 것마다
미끼를 달고 유지해 온 일종의 부고장 같아
생각의 씨앗을 무한정으로 펼쳐가며
그 너머의 세상을 향하여
최후의 몸부림을 지키려 하지만
망각은
어제의 분간을 헤아리기 어려운 적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의문만 커지기도 하는 낯선 정체 앞에서
시간의 가늠자로 끊어진 매듭을 이어가며
연대의 보고서에 주목하는 일 또한
망각의 사무침에 대한 선한 답례가 아닐까
토르소와의 거리
오후의 햇볕을 탐하시는군요
성근 주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침묵의 순간들에
꼼짝없이 감금당할 것 같아서 당신의 애인이 될 수는 없어요
이쯤 간격을 유지하며
당신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알고 싶어요
그러나 내게 묻지는 말아요
관계가 없는 우리 사이에
불안한 맥박이 뛰는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사랑의 시련일까요
고집 센 얼굴의 짙은 눈썹을 그리움 머금고 상상해 봐요
근육의 선을 중심으로 리듬을 따라가다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을 떠나기 전
고독한 날의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은 거리에서
빗장 풀린 오후의 틈이 햇살 쪽으로 이동해가네요
거듭나는 선물
젖을 빠는 아이처럼
말씀과 시의 골 사이를 파고들어
애원하듯이
머물 자리가 어디인가 헤매는 날이 길다
빈혈증으로 시간과 슬픔과 겨루기도 하면서
숨어있는 얼룩이나 눈물을 껴안으며
뭔가 행복한 미소를 찾으려 거리 좁히기를 해가는 동안
한 방울 피의 증거가
한 구절 시의 증거로 바뀌기도 하는데
서로를 끌어당기는
말씀과 시의 길 사이에서
붉은피톨은 혈관과 촉수를 흔들어대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세우기도 하고
영원으로 가는 사랑의 좌표를 그리게도 한다
<산문>
프랑스에서 한국 시의 향연을 펼치다
—시로 맺은 한국과 프랑스 첫 공식 교류 행사에 참여하고
프랑스는 해마다 3월이면 프랑스 전역에서 ‘시인들의 봄 축제Printemps des Poetes’가 열린다. 올해는 25년째를 맞이하는 최대규모 문학 행사다. 올해의 주제는 국경과 울타리를 넘어 시의 정신으로 온 세계를 아우르자는 의미의 ‘경계’다.
‘세계 시의 날'인 3월 21일에 맞춰 한국시인협회 회원 20여 명은 프랑스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비행시간이 지연돼 14시간이나 걸려서 파리에 도착했다.
프랑스 시인협회 회원 40명과 프랑스 문화계 인사, 최재철 주프랑스 대사와 유네스코 대사, 국내외 인사들이 파리 중심가에 있는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국제 교류 행사를 가졌다. 한국시협 유자효 회장과 프랑스시협 쟝 샤를 도르주 회장이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하고 서명식을 했다. 1886년 한,불 수교 이후, 한국 현대시 120년 역사상 외국 시인협회와 최초로 진행된 공식행사였다.
파리의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자 ‘시와 함께하는 한국과 프랑스 우정의 밤’축제가 펼쳐졌다. 한국과 프랑스 시인 중 남녀 각각 1명씩 양국의 대표 시를 낭송하는 순서였다. 한국을 대표해, 현재 한국시협 기획간사를 맡은 내가 박목월의 ‘나그네’와 이근배의‘ 살다가 보면’을 낭송하였다. 객석에서 감탄과 환호가 쏟아졌다. 프랑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를 낭송하였다. 분위기는 고조되며 거문고와 첼로 연주가 이어지고, 우리 것을 알리려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국악팀의 연주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이어서 격식 있는 파티를 하며 파리의 밤이 무르익었다.
다음 날, 파리 중심에 위치한 파리시테대학교에서 ‘시인들의 봄축제’가 펼쳐졌다. 한국시인 5명과 이 대학 한국학과 재학생 6명이 한국어로 쓴 시낭송 릴레이를 선보였다.
1학년인 루이 페냐르는 ‘숟가락인人’이라는 시에서 ‘숟가락과 젓가락, 나이프와 포크/ . . ./ 저는 동과 서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에 있는 사람입니다/ 포크와 젓가락 사이에/ 저는 숟가락인(人)이 아닙니까?’라며 한글과 한자까지 아우르는 묘미를 선보였다.
저녁에는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저로 한국과 프랑스 시인들이 초청을 받아 만찬을 하며, 양국이 시의 영토를 넓히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23일에는 한국 시인들이 파리 6구, 오데옹거리에 있는 프랑스 시인협회 사무실을 방문해 MOU를 자축하였다. ‘대립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명약은 곧 시’라고 교감을 나눴다. 해마다 ‘번역 시 교차 게재’ 등 실무 협약을 재확인했다. 또한 이번에 참여한 한국 시인들의 번역 시가 가을에 파리에서 출판할 것도 약속했다.
오가는 길에 마주한 파리의 거리는 혼잡했다.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는 마크롱대통령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쓰레기더미가 곳곳에 쌓여있고, 교통이 막히는 곳이 많았다.
3월24일, 아침에 떼제베를 타고 세잔느와 에밀졸라의 고향, 라 마르틴느의 시‘호수’로 유명한 엑스엉프로방스로 이동했다. 고풍스러운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엑스마르세이유대학교를 찾았다.
‘한국 시의 날’ 행사가 예정돼 있어 이미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동호, 유성호 교수의 기조 강연을 비롯해 ‘프랑스에서의 한국문학’이란 장클로드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다음은 한국시인들의 자작시 낭송 순서다. 나는 ‘아리랑 가락에 하나 되어’를 약간의 춤사위를 넣어서 낭송하였는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끝나자 학생들이 줄을 서서 싸인을 요청해 한참이나 서비스를 했다. 이근배 시인의 ‘한국어의 유래’에 대한 강의로 마무리를 했다.
그 후로 엿새 동안은, 예술의 향기가 진하게 남은 장소들을 유람하며, 아프고 슬프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보고 느끼고 왔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의 역할이 열광하던 프랑스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한류문화의 열풍을 타고 한국시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된 문화행사에 참여한 올해는, 내 인생에서 ‘시인으로서의 어떤 지점’이었음이 분명하다.
--김광옥
사진 찍기 외 2+산문
그는 사진을 찍는다
그는 걷고 굽히고 넘어서 사진을 찍으러 간다
산이 막히면 산을 넘고 들을 건너고 다시
바다가 나오면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간다
사진을 찍지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ㅇ파인더[측정기] 안으로 보이는 산보다 더 넓은 밖의 산을
ㅇ파인더 안의 강보다 더 넓은 밖의 강을
자신보다 넓은 밖의 바다를 더 오래 바라본다
냇물 속 물고기의 흐름을 유심히 본다
산 위로 나는 새를 따라 함께 난다
풀벌레가 나는 모습을 쫓다가 벌레가 날아가는 허공에
가슴 설레며 셔터를 누른다
그는 바람을 찍는다
그는 틀거리를 만든다
그는 이야기를 숙성시킨다
그는 사진을 찍는다
*(참고) 표기법 : 측정기[finder] 표기로는 ‘인더’ 혹은 ‘인더’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자판기[ᄒᆞᆫ글]에서 찾아야 한다. 현실성이 약하다. 이에 ‘파인더’ 혹은 ‘ㅇ파인더’가 가능하다.
K 컬쳐시대
한국문화 하면 될 것을 세계에 알리려고
Korea Culture로 ‘K 컬쳐’가 되었다
K뷰티, Kㅇ푸드, K방역, K팝 등
거기에 ‘코로나 19’로 다른 나라가 열지 못하는 사이
야구와 축구가 먼저 무관중 경기를 펼쳤다
K야구 매력의 하나로 빳다 던지기인 빠던이 관심을 끌었다
야구의 맛은 뭐니뭐니 해도 ‘스트라이크’인데
이를 제대로 써보자면
‘ㅅㅌ라이크’가 좋을 것이다
발성은 ‘쉬트라이크’, ‘스트라이크’ 그러다 정 가운데 꽂히면
‘슈투라이크’ 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가 흐르고
문자가 흐르고
정음도 따라가고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세종 탄생일을 맞아 영릉에 가실까요
좋지요
마침 세종대왕님 제사도 있다면서요
탄생일인데 왜 제사에요
명칭은 숭모제에요 글쎄요 생일에는 춤추며 즐거워해야 할 텐데
옛사람 위하는 길은 제사밖에 없는지
아무튼 숭모제든 제사든 축하공연 보고나서 천천히 옆 영릉으로 가는 숲길도 걸어봅시다
그 영릉이 그 영릉 아닙니까
아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 말고 그 옆에 있는 효종의 녕릉寧陵 말입니다
그런데 영릉, 녕릉 부르면 될 텐데 다 같이 영릉이라고 하나요
- - -
아무튼 돌아가는 길에는 정말 돌아가지 않게 운전이나 조심하십시다.
올 때처럼 잘못해서 돌아서 간다는 것이에요, 정말 돌아간다는 것이에요.
어젯밤 광주에서 작은 차 사고가 있었대요, 그래서.
갑자기 차 사고는 ... 경기도 광주廣州에요 전라도 광주光州에요.
운전 조심하시라고요. 아무튼 광주에요.
<산문>
시인의 의견
한글([훈민정음] 표기법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1) 쓰지 않고 있는 훈민정음 표기 4글자를 살려 쓴다.
쓰지 않고 있는 반시옷 , 옛이응 , 여린 히읗 , 아래아 ㆍ를 필요시 사용하도록 한다. (앞으로 장기계획)
2) 부수적으로 외래어 표기에서 훈민정음 기호 활용을 이용한다,
영어 F 표기를 ㅇ프로 표기한다.
V 표기를 ㅇ브로 표기한다.
Z 표기를 ㅇ즈로 표기한다.
L 표기를 ㅇㄹ로, (혹은 ㄹㄹ로 표기한다.)
발음기호 ɵ ㄴ스, ㅌㅅ
발음기호 ᶞ ㄴ드, ㄷㅅ
- 중요한 점은 우선은 현 컴퓨터 자판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IPA 범위에 있어도 일일이 골라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훈민정음 원리에 맞추어 글자를 만들어도, 이를 어떻게 컴퓨터 자판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싣는 것이다.
3) 두음 법칙 등에서도 원발음을 살려 혼용하도록 한다. 이는 리/李. 류/柳씨 등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그 외에
4) 외국어 표기
5) 한자 표기, 맞춤법, 표준어와 사투리, 고유어 살리기, 새 말 만들기 등이 있겠다.
--김금래
겨울 이별 외 2+산문
옥상 화분에 붉은 꽃
그 곁에 작은 새
꽃과 새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를 보았고
시를 읽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새는 꽃숭어리 안에
깃들고 싶었지만
문득 눈발이 날려
빈 화분들이 겹겹이 포개졌어
삶은 사라지는 환영이었어
만남도 이별도 사랑조차도
호르몬 장난이었어
새는 꽁지깃을 모으고 눈을 감았어
가슴이 저려왔어
그래서 조금은 행복했지
다락방 공주
다락방은 꿈나라
낡은 라디오를 안고
웅크리고 누워 노래를 들었어
다락방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고
은하수가 흐르고
다락방이 낳은 다락방 공주는
유명 가수가 되었다
발레리나가 되었다
왕자님이랑 황금마차를 타고
키스를 하다 혼비백산
문밖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버지가 내려다보고 있었어
이젠 아버지도 가고
어여쁜 공주도 가고
거울이 구경하듯
늙은 나를 보네
토끼의 말
산다는 건
돌을 집어 들고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귀에 대보는 일일지도 몰라
마지막 순간 나를 미소 짓게 할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산과 들을 헤매다
울어서 눈이 빨간
두 귀가 뾰족한 하얀 돌멩이를 발견했지
그날 나는 버렸어
늑대나 여우 독수리의 포효를
지금 내 주머니엔
당근을 던져주면 사각사각 소리 날 것 같은
채식주의자 같은 말이 들어있어
바스락 소리에도 눈이 동그래지는
말이 들어있어
나는 나날이 절로 꽃이 피듯 미안해지고 있어
용서할 수 없는 너에게 줄
토끼처럼 예쁘고 순한 말을 오물오물
연습 중이거든
<산문>
백설공주의 고향을 가다
백설공주의 고향은 바드빌룽겐이라는 높은 지대의 휴양지에 있다. 우린 백설공주가 살았다는 프리드리히 슈타인 성으로 갔다. 이곳에서도 우리의 다급한 고민은 공중화장실! 입구에 조그만 화장실이 다행히 열려있어 환호를 올렸다.
독일은 1차대전 패배 후 바이마르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왕정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당시의 수많은 성들은 현재 박물관, 시청, 학교 등으로 변했는데 백설공주가 살았던 성도 박물관이 되어있었다.
백설공주는 숲속으로 도망가 일곱 난쟁이와 살았지만, 이 성의 공주는 17살에 계모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자신이 죽어 동화 속의 백설공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죽음이라면 그녀는 오히려 이 성에서 영원하리!
여기엔 광산이 많아 백설공주랑 살았던 일곱 난쟁이들이 광부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은 것도 이곳이 사과 산지여서이고 공주의 피부가 눈처럼 흰 것도 유명 온천이 많아서일 것이다.
가이드에게 들은 독일의 목욕 문화는 경이로웠다. 호텔이든 공중목욕탕이든 어디나 혼탕이며 심지어 시아버지와 며느리도 같이 목욕을 한다니!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고도 평등하다면 아담과 이브의 경지가 아닌가. 다음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리라!
독일에선 성교육을 중요시한다. 어린아이에게 성적인 그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엄마, 아빠 둘 다 원해서 관계를 갖는다는 걸 분명히 알려준다. 그럼으로써 성이 본능임을 알려주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하기 때문이라고. 독일의 개방적 목욕 문화는 어릴 때부터의 이러한 성교육의 영향일 것이다.
가이드는 복지가 좋아 독일에 산다고 한다. 이곳에선 아이 양육도 노동으로 인정받아 3년 동안 연금보험을 받으며 아이를 키운다. 도중에 취업을 한다 해도 연금보험은 계속 나온다니 꿩 먹고 알 먹고다. 독일 노인들은 병원비가 전액 무료라 늙어서도 병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고 한다. 늙어 갈수록 오히려 풍요롭다니 갑자기 독일에 사는 가이드가 부러워졌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맑은 공기, 학비도 없고 노후 걱정도 없다니 이곳이야말로 낙원이 아닌가?
그러나 가이드는 와서 살아보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이곳에 오면 입도 다리도 쓸모없게 된다고 한다. 말 모르고 길 모르니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꼼짝할 수 없지 않은가. 그 옛날, 이곳에서 독일 남자와 결혼한 여인네들의 서러운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국 아이들은 독일 학교에서는 조용하지만, 한국 아이들끼리 뭉치면 사고뭉치가 된다고 한다. 무언가에 눌렸던 잠재의식이 폭발하는 것이다. 독일 유학생 중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이 많다고 한다. 언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독일어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할까? 시간은 흘러가고 부모님 기대는 크고 학점은 안 나오고 그 초조함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게다가 음식도 안 맞고 향수병까지 겹치니 어찌 견뎌내겠는가. 가이드도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었단다. 남의 집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남의 집인 것이다.
--김영호
눈맞춤 외 2
뒷마당에 와 풀을 뜯던 산토끼
나와 눈맞춤을 했다
토끼의 눈 속에
거친 세상에 놀라 경기驚氣든 나의 生이 비쳤다
토끼의 눈 속에서 총소리가 들렸고
포연이 자욱했다.
나의 눈 속에서
평생 놀라 경기든 저의 생을 본 듯
토끼, 그의 눈에 젖은 물기를 보였다.
연필을 들면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면
영혼이 숲속 새들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네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면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이 백합화를 안고 들어와
우는 귀를 만지네
연필을 들면
내 안의 우울이 문을 열고 나가
소를 몰고 밭고랑을 가네
감자를 심네.
몬테레이Monterey의 친구들*
녹내장 통증으로 유학 중 학업을 중단하고
길을 잃고 몬테레이 해변을 걸었다.
날로 야위어가는 그를 바라보던 해가
바다에서 전복 홍합 물고기를 낚아
그의 눈에 약으로 먹였다.
저의 죽지 위에 그를 업은 갈매기가
해풍과 맞대결하는 훈련을 시켰고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바위를 조각하는 파도의 투혼을
바다는 매몰차게 가르쳤다.
밤하늘 별들이 그의 눈을 열어
옛 꿈길이 새 길임을 보게 했다.
어린 두 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2년 만에 일리노이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몬테레이 친구들 해 바다 갈매기 별들이
이삿짐 차 유홀 U-Haul을 뒤따라왔다.
학업이 끝나는 날까지 그 친구들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썼다.
함께 눈물로 기도를 하고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오늘 오랜만에 찾아온 백발의 그를 맞은 옛 친구들
뜨겁게 포옹을 해 주며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 1982년 유학 시절 눈 치료차 휴양을 했던 북가주 해안도시. 36년 만에 옛 친구들과 재회하였다.
--김정운
속마음 외 2
사십이 훌쩍 넘은 딸 아이
늦은 개구리 울음소리 듣더니
여태도 짝 못 찾았다면
이제는 없는 거야
단념하고 그만 울어
슬픈 밥
—상가에 다녀와서
뜻밖의 비보에 가슴이 멎었다
더 계셔도 될 어른인데…
조문하면서도 멍하던 마음이
밥 앞에서 허기를 느낀다
혀는 실없이 맛을 느끼며
살아있는 사람의 끼니는
더 슬픈 것이구나
더 무서운 것이구나
바깥은
세상의 야박함이야
어제오늘 일이던가
나도 누구에겐가 세상의
야박함일 수도 있었던 것
초겨울 이쯤에서 서 보니
세상에 대해 할 말은 줄어 들고
나는 자꾸 쪼그라들고
* 김정운 약력—시집에
『저물도록 색칠만 하였네』 --두 번째로 넣어주세요.
--김홍섭
연필로 쓴 시詩 외 2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어 사랑은 연필로 쓴다지
처음부터 잉크로 잘 쓴 사랑이 있을까
인생도 연필로 써가며 지우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을까
물 위에도 쓰고 모래 위에도 그리며
바위에도 새기고 인생을 쓰고 그리며 새긴다
연필은 마음이 가는 대로 써진다
마음은 눈이 가는 대로 간다
마음은 귀와 코가 가는 대로 간다
아니 마음은 제 맘대로 간다
연필도 마음대로 간다 연필로 쓴 시도 마음대로 간다
연필촉을 세우면 시도 세워지나
연필도 작아지고 인생도 작아지는데 시는 길어진다
햇살 좋은 날
햇살 좋은 날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 날고
작은 잎새들 여유로이 춤추고
너와 걷던 해변 길
작은 오솔길 위로
들꽃들 향기로이 흔들리고
네 머릿결 위로
햇살 내리던
너와 내가 햇살이던 날
강물 가장자리에
물결치던 햇살
포르릉 물새 떼로 날아오르던
물결 위에 이는
너와 내가 바람이던 날
잎새 위에 깃든
내가 너와 햇살이던 날
다시 4·19 탑에
봄 햇살 따사롭고
유록빛 나무들 빛나고
클로바꽃향 그윽한 경내
어디 정겨운 뻐꾸기 소리
임들 핏빛 거리 달릴 때
거짓의 소리 진동하고
폭력이 진실을 억압하던
숨죽인 침묵의 시간
비바람에 꽃잎 지고
밟히던 껍데기 난무하던
임들의 외침 내달림
분노의 팔매질
꽃으로 피어
땀과 눈물로 핏물로
적신 거리마다
눈물의 고랑마다
눈빛 머문 잎새마다
오늘 여기 화사한 꽃들 만발하고
재잘거리며 아이들 노니는
느티나무 잎새 되어 푸르고
아직도 풍요 속에 쓰러지는 거리에는
다시 목청 높이는 촛불들
지하철에서 피흘리는 꽃잎들
언제 꿈은 오려나
그의 나라는 어느 때 오려나
이제 정원으로 멈춰선 이곳에
임들의 영혼
한 마리 학 되어
여기 작은 연못을 맴돌고
사위를 둘러보며
하늘을 난다
--나금숙
순간을 풀어주다 외 2+산문
물의 심장이 두근거리자
하늘엔 별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 물을 자르고 들려면 세 명은 필요하다
물의 광장에 노을이 지고
모닥불이 피워지고
우리는 옥수수가루로 죽을 쑤어 날랐다
울지 말라고 해도 물은
괜찮을 거야라고 해도 물은
노래를 깨물었다
물의 지문은 흩어져
그의 다잉메시지는 프랙탈로 공중에 새겨졌다
순간을 움켜쥔 나무를
베어내 옮기던 임도林道에
묶여 있던 순간을 풀어준다
순간은 순식간에 뛰쳐나간다
복제
해적판
불법 다운로드
물의 꿈이 복제되어 해적판으로 나가도
물은 행복하다
가난한 아이들 배고픈 새벽에
허리를 움켜쥐고
별을 다운로드 한다
물고기 비늘 같은 은하수를 만난다
땅속이나 공중이나 하늘에서
물의 꿈은 행복하다
아이들 생피 같은
이슬 같은 물의 심장은 행복하다
트리하우스
뱀이 난간에 앉아있다 가는 집
별이 내려와 잠들다 가는 집
비와 안개가 쓰다듬어 물방울이 되는 집
옷도 집도 패치를 붙여 기워 나가는 집
음악이 빛을 응시하는 집
들어오는 길도 나가는 길도 하나뿐인 집
숲이 만지고 다다르고 감싸 안고 감싸지는 집
구불구불 불안한 기호가 범람하는 집
웅크려 숨어 있다 녹색두꺼비처럼 튀어 오르는 집
주인공이 창문인 집
창문이 눈동자인 집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도시의 거리를 바라보는 집
(* * * 해변)
즐비한 유리창들의 호리는
시선을 잡아당겨 둥글게 구부리는 집
횡단보도를 건너는 뒤뚱거리는 암탉과
시선을 맞추는 집
내가 다시 어린이가 된다면
십 년쯤 날 데려가서 살고 싶은 집
우거진 푸른 나뭇가지 아래 더운 피를 눈치채고
뚝 떨어진 진드기에 더러워진 피
다 뜯기고 싶은 집
집은 나무 위에서 전능하다
자퇴한 여고생 마지막 교복치마처럼
부풀었다 쪼그라졌다 다시 부풀 때
집은 숲속에서도 다 알고 있다
반월역
널빤지가 뜯어져 있었어
우거진
달빛이 그리로 빠져들어 간 거야
치명적 그리움이 하늘에만 떠 있다가
지상에 가끔 내려오는 곳
여기까지 오느라
이 달빛이 상한 건지 알 수 없지
맛볼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역 앞마당에 나가보면 안다
싱싱한 달빛이 좌판에 비늘 반짝이며
추억을 뒤척이는 걸
한낮 나나니벌은 생울타리 잉잉 넘어가고
오이며 부추며 열무 팔러
텃밭 채소 이고 오시는 우리 할머니
노을 넘어오시고
지나간 것이 다 그리운 사람들은
역 이름을 입안에 읊조리며 간다
반월역이라고?
반이 지나가고
반이 남았던 그리운 시절
반만 벙글고 반만 이울어
정점인 줄 알았던
바로 거기가 여기라고?
<산문>
검은 뼈의 슬픈 추억
저문 몸을 열어 추려낸 뼈는 검다 생의 대부분을 고통으로 연명했으니
쯧쯧 혀 차는 소리가 사소하지 않은 잡음으로 들리고
아무렴, 지게가 그의 등이었으니
가루를 내어도 검은 빛은 여전히 검다 흰 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탄식하려다가 검은 뼈는 얼마나 처연한가로 급히 수정
감히 비교하다니, 여기서 흰 빛을 입에 담는 건 검은 뼈에 대한 모독이자 희롱
도대체 그는 왜 자학의 생애를 보냈는가? 라고 묻는 건 어리석다
죽으려고 하필 폐유를 한 사발이나 들이켰다는 건 헛소문이 아니었나?
검은 뼈는 그 폐유가 결정적 급소였나?
그는 결국 땅에 묻혔다 곱고 부드러운 흙을 열고...
검은 뼈를 온전히 제 것으로 다 받아들이자면
땅에게도 오랜 시간의 숨 가쁨이 필요할 것이다
잊히지 않는 검은 뼈,
그의 年譜를 뜨겁게 되살리는
ㅡ 김충규, 「검은 시간의 숨가쁨」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은 두 빛을 투망해 내고 있다.
두 빛, 검은 빛과 흰 빛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이 시에서는 검은 빛이 승하다. 그 이유는 검은 빛이 고통을 수용하고, 표현하고,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빛이 처연한 빛을 띄는 것은 그 빛깔이 자학의 빛이요, 목숨을 연명하는 중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뼛 속까지 검어지도록 폐유 같은 고통을 들이마셔야 하는 가혹한 삶은 도처에 있다. 곱고 부드러운 흙이 그냥 받아들이기엔 힘들어 숨이 가쁜 검은 뼈.... 가루를 내어도 여전히 검다는 것은 이미 그 존재가 검은 빛과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검은 뼈를 품어야 하는 곱고 부드러운 흙의 차례다. 그냥, 날 것으로는 이 검은 뼈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버거운 그의 고통을 속으로 받아 삭여 내고 이윽고는 함께 동화되고 섞이기 위해 흙은 긴 시간 숨이 가빠야 한다. 여기서 흙은 모든 것을 품는 대지요, 모성을 상징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어머니가 되던 순간들을 추억해 냈다. 아이들을 회임하고 나서부터 출산, 수유까지를 더듬어본다. 아, 우리는 사실 어머니가 무엇인지 모르는 날내 나는 아이 같은 엄마들이었다. 말 그대로 긴 시간 숨이 가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 시에서처럼 검은 빛을 띄어갔다. 우리를 둘러 싼 온 세상도 그랬다. 아이들은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폐유를 곧잘 마시고 와선 우리 품에 쏟아 냈다. 우리는 어머니로서 그들의 흙이 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급히 자라야 했다.
우리들 생의 대부분은 고통으로 연명한다. 시편에서도 인생이 칠십이요, 길면 팔십이라고 했는데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 지게가 등이 되도록 삶의 무게가 막중한 이들이 쉴 곳이 있으니 결국에 돌아가게 되는 흙이다. 검은 뼈 역시 흙이 될 것이니, 근원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깨달을 때, 모든 몸부림을 놓게 되리라.
김충규 시인의 뼈 역시 검으리. 어려서부터 두 번이나 죽음을 처절하게 체험했던 그는 이생에서 많은 이들에게 곱고 부드러운 흙의 역할을 하다가 그 자신 검은 뼈를 흙에 묻었다. 그의 숨가쁨도 지금은 고요하리라, 이제는 부디 평화로운 연보를 쓰기를 기도해본다. 치열하게 살던 생을 아쉬운 나이에 마감하고 나비같이 홀연히 날아간 그를 이 시를 감상하며 다시금 그리워한다. 어느 모임에서도 선량하고 다정한 미소를 영영 볼 수 없게 된 것이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 깊고 아름다운 시는 남아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박재화
삼형제 외 2+산문
아버님! 소자 남건男建이옵니다 666년 형의 뒤를 이어 태막리지가 되어 당의 백만대군을 물리치고 고구려를 튼튼히 지키려 하였사오나 소자 무능하고 부덕하여 끝내는 망국의 지도자로 떨어졌으니 죄송하고 망극하옵니다 실은 형이 지방 순시중 때를 보아 저와 동생을 친다는 고약한 소문이 돌았고 실제 형이 수도로 잠입시킨 밀정까지 잡히고 보니 저와 남산男産도 자구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환을 없애고자 부득이 큰조카 헌충獻忠을 도모킨 하였으나 조정을 재빨리 전시체제로 개편하는 등 필요한 조치는 취하였습니다 668년 평양성을 포위한 나당연합군에 맞서 끝까지 분전하였는데, 보장왕과 동생은 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항복하였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비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 또한 천만 뜻밖에도 아끼던 부하 신성信誠의 밀고로 사로잡히고 말았으니 원통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호족들과 결탁한 불교를 견제하고자 광개토태왕 때부터 도교 도사들을 우대하는 풍조에서도 저는 신성을 중용하였건만 승려인 그가 형님과 내통하여 비열하게 돌아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쨌든 아버님과 조국의 열조들을 뵈올 낯이 없어 자결코자 하였으나 그마저 실패하고 이 머나먼 검주黔州*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의 슬픔을 걱정해서이겠지만** 저의 처형을 막았다는 형님의 처사가 오히려 원망스럽습니다 소자, 이제 여기서 눈을 감사오나 죽어서도 어찌 아버님을 뵈올지 정신이 아득하고 아득키만 하옵니다
—669년 검주에서 불충불효한 남건 올림
*오늘날의 충칭시重慶市 펑수이현彭水縣
**연개소문의 부인은 살아남아 연남생과 함께 장안長安 등에서 천수를 다함
드넓은 만주와 한반도를 떠도는 고구려 유민 여러분께! 어리석은 남산男産이 사죄의 글을 올립니다 아버님이 어렵게 지켜낸 대고구려를 한 순간의 오판*으로 소생이 결딴나게 했으니 참으로 비참하고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당시 지방 순시중이던 큰형님이 저희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공공연하였으므로 자위수단을 쓴 것뿐인데... 또한 숙부님(淵 淨土)도 남녘 열두 성을 끌고 신라로 넘어가는 등 어수선한 정세에서 전쟁을 계속하면 결국 수많은 백성들만 희생될 뿐이니 우선 항복하고 뒷날을 도모하자, 왕과 많은 대신들이 채근하므로 그에 따른 것이오나... 이제 와 돌아보니 큰형님이 저희를 제거하려 했다는 소문도 다 당나라 간자들의 이간책이었습니다 남의 말에 휘둘려 사태를 그르친 제가 바보였고 특히 작은형에게 죄송키만 합니다 그뒤 저는 시시때때로 고국 산하를 헤매는 여러분이 생각나고 이 낯선 땅에 마음 붙이지 못하다보니 우울증만 깊어졌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금 사죄하오나 아무래도 저는 죽어서도 편히 누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702년 장안에서 연남산 올림
*연개소문은 '너희 형제들은 화합하기를 고기와 물같이 하고 작위를 다투지 말라. 만약 이리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웃나라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특별히 당부함
**그의 묘지명엔 '고국으로의 길은 멀기만 하니..., 고국을 그리는 아픈 마음은 영원한 한이요 슬픈 신음'이란 표현도 보임
무측천 황제 폐하! 소신이 665년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나라에 귀부한 것은 동생들에게 쫓겨 세 불리하자 목숨을 보존코자 하였음이요 더욱이 맏아들 헌충은 이미 평양에서 피살되고 오롯이 남은 아들 헌성獻誠이 '당에 항복하자!' 눈물로 호소하니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오나 노자老子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황실에서 기꺼이 받아주시어 변국공卞國公에 봉하고 식읍 3천호를 내리는 등 여러 번 과분한 은혜를 베푸셨기,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황실의 명을 따랐던 것입니다 소신이 바람처럼 달리며 번개같이 내쳐서 막바로 평양성에 다달아 높은 성벽의 성가퀴를 깨뜨린 걸** 잘 아시지요? 고구려 부흥운동도 최대한 탄압하고, 보장왕이 고토회복운동의 중심이 되지 못하게 견제하는 등 견마지로를 다하다가 679년 1월 요동 신성의 안동도호부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음은 폐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피눈물을 나누며 함께 전장을 누볐던 헌성이 장안에서 억울하게 역모로 처형당하니 참으로 원통하고 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고구려를 배반한 업보요 하늘의 심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은 진작 모든 걸 체념하고 중원의 흙이 되어 지하에 잠든 몸이오나 아들의 참변에 이르러선 이러려고 조국을 배신했나 후회스럽고 고구려 유민들의 손가락질과 돌팔매가 두렵기만 합니다 다만 저희 부자가 당에서 결국 내침을 당했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제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옵소서
—693년 1월 낙양 북망산 지하에서 연남생 올림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때부터 스스로 국호를 高麗라 하였음
**연남생 묘지명의 일부
안시성安市城*
중원을 차지하고 티벳 돌궐 등을 제압하여 기세를 떨치던 당 태종 이세민, 그러나 643년 황제의 위신이 떨어져 태자도 마음대로 못 세우고 신하들 앞에서 자살소동도 벌이다가 권위 회복차 644년 2월 고구려**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니
유목민 기마병을 앞세운 그의 50여만 대군은 개전 초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점령하며 기고만장, 드디어 645년 6월 20일엔 안시성 가까이 이르렀으니
이때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수도를 지키면서 대대로大對盧 고정의高正義로 하여금 군사 15만을 이끌고 이세민과 맞서도록 하였으니
고정의는 북부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에게 군사 4만을 주어 수비위주로 싸우면서 적을 피곤케 하고 보급망을 끊어라 당부했건만 젊은 고연수는 당의 유인책에 넘어가 정공법으로 싸우다 6월 23일 주필산전투에서 그만 패하고 항복했으니***
신중한 고정의가 10만여 군사를 독려하며 게릴라전법으로 당군을 공략하니, 이세민은 7월 15일엔 안시성 동쪽으로 8월 10일엔 안시성 남쪽으로 부대를 옮기는 등 쫓길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7월 13일에는 특별히 아끼는 부하들의 시체를 수습하지도 못한 채 도망치기 바빴으니
이처럼 두 달이나 허비한 뒤 안시성을 포위한 이세민이 토산土山을 쌓으면서까지 함락시키려다 실패하자 애꿎은 말단 장수 부복애傅伏愛를 참수하는 등 몸부림쳤으나 자신도 눈에 화살을 맞아 645년 9월 18일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니
도망가면서도 고정의의 추격이 두려워 심복이자 종친인 이도종李道宗에게 4만 대군을 맡겨 후방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핵심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전통이었던 고구려의 1차 고당전쟁 당시 전방 총사령관 고정의****의 대활약 덕이었으니
668년 9월 26일 통탄스럽게도 평양성이 무너진 뒤 안시성은 기어이, 오랫동안 고구려 부흥운동의 중심지였으니!
*安寸忽이라고도 함. 오늘날 중국 요녕성 海城市 英城子屯 英城子村으로 비정됨
**광개토태왕 때부터 스스로 국호를 高麗라 함
***그는 당으로부터 鴻臚卿에 봉해지고 나중 고구려 공격의 앞잡이가 되었으나 645년 자신의 행동과 처지를 비관하다 죽음
****당시 안시성주가 楊萬春이라고 잘못 알려진 것은 16세기 明의 소설 <唐書志傳通俗演義>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어디까지나 승리의 주역은 고정의라 하겠음
스카잔과 레깅스
코믹한 얼굴 가득한 미디어 파사드를 달고
사거리를 내려다보는 우울한 빌딩
에스컬레이터가 표정 없이 툴툴거린다
쇼핑몰은 겨우 노출을 걸친 마네킹으로 넘치고
깍두기머리가 괜히 스카잔을 툭툭 턴다
세상에 할 말 많은 듯 꿈틀대는
용무늬 팔에 매달린 여자애
레깅스가 탱탱하다
보여줄 것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여줄 것 많은 남녀들을 부지런히
올렸다 내렸다 한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도 레깅스는
대롱대롱 매달려서 풍선껌을 씹는다
오늘 밤 어디서 보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2세를 낳을 것 같지는 않다
<산문>
천지에 복사꽃 날리니
—이 詩, 이렇게 썼다
복사꽃이 흥건하고나 누이야
잔구름 물결치던 봄날
꽃밭 사이사이 햇살 줍던 누이야
가슴 울린 말들은 사라지고
강물도 돌아서 입다문 모퉁이
그 언덕에 이젠 해도 앓아 눕고
흙바람 속 네가 남긴 핏덩이도 누워
더는 잠을 못 이루고
다만 저무는 강 저무는 아파트 단지에
이른 별만 시름겨이 돋는고나
저녁 하늘 비인 달로 걸려서
낮게 우는 누이야 목이 긴 누이야
—拙詩 ‘도시의 말 1’ 전문
위 시는 《현대문학》의, 내 초회 추천 작품이다. 이 노래엔 다음과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곧, 중학 시절 단짝으로 자주 어울리던 서넛이 있었는데, 졸업 땐 합동시집 『思母曲』을 낼 만큼 의기투합했고, 정서와 지향도 비슷했다. 그 가운데서도 ㅅ은 지금까지 고향을 지킬 만큼 우직하고 소박하며, 슬그머니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해놓곤 하는, 인정 많고 의리 깊은 친구이다.
중학 시절엔 ㅅ의 시골 농가에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자연 그 누님과도 잘 알게 되었다. 세 살 위 누나도 나를 퍽 귀여워해주었고. 그런데 고등학교는 서로 갈라져, 나는 大田高에 진학케 되었다. 학교 풍토에 따라 일찍부터 大入 준비에 내몰린데다, 한편 경제형편상 가정교사 노릇까지 해야 했던 바람에 ㅅ의 시골집엔 자주 들르지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 누나도 나도 서울에서 살게 되었는데...., 누나는 당시로서는 시골 처녀들의 선망의 직장이던 <모토로라>에서 일했다. 피차 객지에서 외롭고 서러운 날들이었던 데다 누나가 그리워서 가끔 편지를 보냈다.
그러던 1971년 4월 어느 날. 아침 일찍 뚝섬에서 누나를 만나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봉은사에서 놀다 왔다. 그 주변은 오늘날의 잠실과는 천양지차로서, 복숭아밭만 이어진 완전 시골이었다. 그때 사위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복사꽃은 아주
아주 환상적이고 신비하기까지 하였다.
몇 해 뒤 누나는 시집가서 단란하게 잘 살았는데, 얼마 못 가 그만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 소식에 얼마나 놀랍고 슬프던지....., 오래오래 가슴이 아팠다.
이를 작품으로 소화하면서, 다만 시적 감흥을 생각하여 누나를 누이로, 그리고 姉兄을 어린것으로 바꾸었다. 물론 거기엔 그 소중한 기억의 공간이 소란스러운 아파트단지와 유흥 공간으로 상전벽해된 것에 대한 충격과 실망도 담겨 있었고---.
이 시는 내 첫 시집 『都市의 말』(1990년, 현대문학사 刊)의 맨 앞에 실려 있다.
그런데 2005년 6월 우연히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네이버에서 <눈사람>이란 이의 블로그 "첫눈 내린 밤"의 '발길닿는 헌책방'에서 이 시와 관련된 글을 읽게 된 것! 그는 이 시 전문을 소개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외웠던 시 중의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때 헌 책방에서 몇 년 지난 《현대문학》 과월호를 사서 읽곤 했었는데, 그중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시입니다. 시인이 《현대문학》(제353호)에 발표할 땐 "저녁하늘 오보에로 걸려서"라는 표현을 썼는데, 몇 년 후 시집이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읽어 보았더니 이 구절이 '저녁하늘 비인 달로 걸려서"로 고쳐졌네요. 여러분은 어느 구절이 더 나아 보여요? 전 예전에 외우고 다녀서인지 원래 구절이 더 맘에 드네요.
세상에! 내 시를 이처럼 꼼꼼히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니! 참말이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며칠 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거기에 달았다.
우연히 이 글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이름난 시인도 아니고 매스컴 탈 줄도 모르는데, 이처럼 낯 모르는 사람의 시를 읽어주는 분도 계시구나....., 전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욱 탄탄한 시를 써야겠다는 걸 절감합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슬프고 낮은 음색의 오보에를 참 좋아합니다만, '오보에'란 외국 악기 이름이 이 시의 전체적인 情調엔 잘 맞지 않는다고 여겨서, 시집 묶을 땐 고쳤습니다. 아무튼 섬세하고 뜻깊은 멘트, 감사합니다.
이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쪽지를 보내왔다.
쪽지를 받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다음 선생님 홈피에 가 봤습니다. 글을 쓰느라 『도시의 말』 시집을 다시 읽어 봤는데 종교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홈피에 가봤더니 역시나 선생님에겐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으셨군요ㅎㅎ 근일간 『전갈의 노래』(*필자의 제3시집을 말함) 읽고 나서 선생님 한 번 찾아뵐게요(선생님께서 연락처 알려주시면.....ㅎㅎ). 연락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고, 영광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2008년 ㄷ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당선소감에 ".....처음으로 예술의 길을 일러주신 조성기 교수님과 박재화 시인님, 김수용 감독님, 신앙의 다채로운 빛깔을 보여주신 김재준/한경직/김진홍 목사님, 창작의 길을 다듬어주신 한승옥/송하춘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라 고백한 것!
시쳇말로 '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싶었다. 고맙기 그지없었지만, 한편 두려웠고....
뒤에 들으니, 그는 헌책방 매니아로서, 고교시절부터 서울시내의 헌책방은 죄다 순례하고 다녔단다. 高2때 신당동의 헌책방에서 《현대문학》지에 실린 내 시 "도시의 말" 연작을 읽고 엄청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중 상계동의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내 첫 시집 『도시의 말』을 발견하곤 뛸 듯이 기뻤다는 것. 그는 그 서점의 진열장 위치(내 시집이 꽂혀 있던)까지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감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튼 그 일로 나는 누가 언제 내 작품을 읽을지 모르니, 더욱 진지함과 솔직함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잡고 있다.
최소한 포즈(?)에 치우치는 창작생활을 해서는 아니 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였던 것이다.
이 봄에는 쉰 해 전의 추억에 젖어 한 번 봉은사 언저리를 다녀와야겠다.
--박종래—시 3편, 원고 바로 받아서 편집해 주세요. 그러시기로 했음.
00000 외 2
--박철웅
안부 인사 외 2
요즘 어떻게 사냐고? 너는 어떻게 사는데? 어제는 상가에 갔더니 영정 아래 목 꺾인 국화 한 송이 피어 있더라. 어떻게 지내냐고? 그런 너는 어떻게 지내는데? 주여, 주여, 날마다 기도하는 후렴에는 십자가가 피 흘리며 웃고 있고 술시마다 주님을 모시는 식탁에는 목 달아난 통닭 한 마리 누워있더라. 요즘 어떻게 사냐고? 지나가는 길목마다 등불이 꺼지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5분 만에 잠든다는 수면 유도 음악을 켠다. 그래 너는 어떻게 지내는데? 아직도 사기 치면서 사냐? 네 안의 너부터 갉아먹고 사냐? 며칠 전 부고가 왔더라. 사기 치고 떠난 친구의 이름이 웃고 있더라. 다, 용서했어야. 폴쌔 잊어버렸어야. 돌아보면 나도 사기꾼, 내 인생의 도둑놈. 그래서 용서했어야. 재미도 없고, 그러니까 밍밍하고,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는 사라지고 머리만 몸통만 허수아비처럼 웃고 있어야. 너는 어찌 지내는데. 요즘도 컹컹 짖으면서 술만 마시냐. 십자가 아래 촛불 하나 켜놓고 108배를 해봐야. 부처가 먼저 오는지 예수가 먼저 오는지. 자식이 울면 어미는 뛰어와야. 그렁께 옷 홀딱 벗고 펑퍼짐하게 울어봐야. 하면 왜 사는지 답이 오지 않겠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그런 너는 어찌 지내는데?
천상병
천 원만… 하며 손을 내미는 시인이 있었지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지는 않았지
지금 내리는 비는 시인의 손바닥일까
주룩주룩 내리는 비
천 원만…
오늘 전철에서는 오백 원도 괜찮다며
손을 내미는 남루한 손이 있었지
거울처럼 바라보는 눈길
생은 껌 한 통 값일까
오백 원만…
그가 떠나간 창밖 단풍나무에
오백 원짜리 동전처럼
햇살이 누워있었다
그림자 없는 햇살은 소풍도 아니라면서
그쟈
헤이 헤이 눈썹을 움직여봐
찰랑찰랑 눈꺼풀을 움직여 봐
봐! 봐!
바보처럼 웃어 봐
파도처럼 일렁이는 심장의 고동 소리 들어 봐
눈물이 글썽
웃음이 글썽
소주 한 잔 들이켜 봐
입술 한 잔 마셔 봐
봐! 봐!
가까이 와 봐
나를 한 번 안아 봐
봐! 봐! 한 잔의 술잔처럼 들이켜 봐
솜사탕처럼 녹아버리고 싶어
시퍼! 시퍼! 씹혀! 씨이펴!
웃어 봐 우서 봐 우스워 봐 눈물이 되어
목 달아난 국화처럼 웃어 봐
술잔 속에
비웃음이 눈물이 될 때까지
너는
스쳐 가다가 휘날리는 물안개
아니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닌 거야
헤이 헤이 웃어 봐
휘날리는 웃음
풍선이잖아 그쟈!
--방지원
첫 외 2
수많은 ‘첫’을 만들며 살았지요
매번 두렵고 서툴지만 절실하고 맑아서
마치 풋내 나는 신작시 같았어요
너무 늦었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나의 ‘첫’은 싹둑싹둑 잘려 나갔지요
무수히 사라진 용감한 나의 첫 경험에
애틋한 박수를 보냅니다
살아있는 한 매번 일어나는 ‘첫’이
언젠가 멈추는 날은
설렘일까요 담담함일까요
오늘 아들 연출의 새 드라마 방영 첫날
또 다른 ‘첫’으로 종일 초조합니다.
러닝머신
뛴다
속도를 차츰 높인다
구름과 하늘 태양이 함께 달린다
풍경 저편
달아나려는 시간을 붙든다
마냥 곁에 서 있을 줄 알았던 시간
자꾸 시선이 바닥으로 간다
바닥을 보면 어지럽다
머물려는 바닥과
달리려는 시간의 마음이 어긋나듯
하늘의 뜻도 그럴지
점점 빠르게
점점 느리게 마침내 멈춤
땀이 흐르고
허름했던 허물이 벗겨진다
내 손으론 조절 안 되는
어쩌면 높으신 그분의 시간 버튼을 만져본 듯하다.
해조음
얼마 전부터
왼쪽 귀에 바닷소리가 산다
나룻배에 달빛 붉게 흐르던
외로운 선비의 섬
그 섬 뒤척이던 소리가 들린다
낮에 참았던 울음을
밤이면 쏟아놓는 흑명석 소리
그립고 아득해서 귀가 대신 우나 보다
세상 소리는 반만 들으라는 건지
사주에 물이 많아 이명도 물소리로 왔을까.
* 방지원의 약력 중 시집 끝에 추가, 시선집 앞
『왼쪽 귀에 바닷소리가 산다』
--백우선
뿌리 외 2
뿌리를 잘 내려 보려고
땅을 파 내려간 반지하 방을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창 아래 심은 나팔꽃 덩굴의 힘이었는지
3년 뒤 연립 3층으로 올라갔다.
습기, 곰팡이, 침수 걱정은 피했으나
땅에서 멀어져서였을까
스무 해쯤 공중에 떠서 살다가
민들레 씨앗을 따라
날고 날아 서울 밖
산성 아래 아파트에 내려앉았다.
등기부의 십여 평 땅에
쉰넷에야 뿌리를 내렸다.
독배
매천 황현은 경술국치 사실을
여드레 뒤에 알았다.
절명시와 자만시* 등을 쓴 뒤
아편을 더덕술에 타 마시고는
놀란 동생 황원에게
“세상일이 이리되었으니
선비는 당당히 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약을 입에서 뗀 것이 세 번이다.
내가 이렇게 어리석구나!”
* 자만시自輓詩:: 스스로 죽음을 애도하는 시.(6일 밤 음독, 이튿날 숨짐)
레다와 백조
79년 화산 폭발로 묻혔다가 2018년 새로 발굴된 폼페이 유적 중 색감과 형태가 매우 뚜렷한 편이라는 벽화, 그 안고 안긴 스파르타 왕비 레다와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2천 년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생생한 것은
우리 둘이 처음 그대로 꼭
안고 안겨 있어서랍니다.”
--소율
쇼윈도우 속 유리구두 외 2
삶이란 결코 장식품이 될 수가 없다 우리네 삶이란, 현실 속에서 보다 치열하게 보다 살벌하게 부딪치고 깨지며 척박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쇼윈도우 속 유리구두를 샀다 흠집 하나 없이 유난히 매끄러운 유리 표면 위로 색색의 꽃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분히 아름답고 더 충분히 고귀하게만 보이는 그 유리구두를 보며 나도 그처럼 충분히 아름답고 더 충분히 고귀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
창밖 거리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 사이를 뚫고, 질척질척 진흙탕 속을 맨발로 걷는 많은 사람들, 나는 신축성도 유연성도 전혀 갖추지 못한 유리구두를 장식장 안에 얌전하게 올려놓는다
삶은 결코 장식품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장식장 안에 거룩하게 올려져 있는 저 유리구두는 절대 거리로 나올 수 없다, 나의 발은, 맨발이다
에투알* 앞에서 아이스크림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승리를 향하여 전진
출정을 앞둔 병사들이 국기 앞에서 맹세를 한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구국의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의 각오는 굳건하다, 이제는 실전이다 피가 튀는 전장에서 그동안의 이론을 써먹을 때이다 하지만, 곧 난관이다 속성으로 배운 전략은 어떤 난수표를 해독하는 것보다 어렵다 에투알은 도무지 눈앞의 밤하늘 별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별 수 없이 나는 나폴레옹의 기세를 몰아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익숙하지 않은 맛은 사양하겠어요 은은한 향의 바닐라와 붉은 빛깔의 스토베리 그리고 노란 망고가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주세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입술 위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다
개선문 한가운데엔 참전 용사들의 승전을 기념하듯 만국기 펄럭여댄다
*개선문의 또다른 이름. 프랑스어로 별(星)을 뜻한다. 개선문이 설치되어있는 곳을 중심으로 샤를 드 광장앞 길이 별모양으로 설계된 것에서 기인함.
처세술
센강이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가고 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을 향해서만 거세게 질주해간다 유순하게 누워있던 물결들이 한 번씩 뒤엉켜든다, 물결 위로 파장이 인다, 이 때 강줄기가 엄하게 주의를 준다,
쉿! 지금은 물길 흐르는 대로 가야 하는 거야.
--신표균
거듭 또는 새롭게 그리고 다시 외 2
몽매한 환각의 늪에 빠져
논리도
철학도
의미도
통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서 살아 봤으면
환시의 착각 속에서
환상적인 곡을 붙여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환幻의 그림 속에 파묻혀
영영 헤어나지 못하는
영생을 구가할 수 있다면
에펠탑을 쌓은 하늘에
해만큼 크고 뜨거운
계란프라이가 떠 있고
웨딩드레스에 화장한 신부와
사람 몸만 한 장닭에 비스듬히 기대어
바이올린과 한 몸인 염소의 연주를 들으며
공중에 매달린
야영초소만 한 신혼집에
드는
에펠탑의 신혼부부*로
한번 살아 봤으면
순간
뇌전증 도져
다시多始 또는 多視를 되풀이하면서
多施를 시도하는
*야수파의 입체주의에 영감을 얻어 환상, 몽상적인 화풍을 탄생시킨 마르크 샤갈의 그림
낡아짐의 미학
모서리가 닳아 손때 반들거리는
낡아가는 것들이
억눌리기도 짓밟히기도 더러는 긁히기도 하면서
나이 따라 늙지 않고
보쌈주름 두터이
눈길 팽팽하게 잡아 당긴다
옥척屋脊 대들보나
선로에 깔려 고막 잃고
침묵의 삶 일관해 온 침목의 무게
몸에 새긴 레일의 시간 외려
결이 단단하다
손금 굳은살 느릿느릿 두터워진
침모
반짇고리 골무 깊어지는 주름에
동백기름 바르면
장롱 문짝은 쉰 목소리로 익어간다
시화석詩化石
알파와 오메가를 스스로 깨우칠 수 없는
자나 깨나 억겁의 흑암 속
홀로 끓여 온 우울 켜켜이 쌓여 더는 견디다 못해
찰나의 순간 솟구친 울화
분화구.
모든 숨 쉬던 것들의 스러져 간
뼈와 발자국 간추려 새긴
흔적.
한숨과 눈물 울음으로 가둬 온
산정의 호수
수수만 년 갈고 닦은 연금술로
들숨 날숨 사포질 한 끝에 한갓 드러낸
돌비.
우레와 번개와 폭우와 폭설과
만 년 정釘을 통해 빚어낸 상형
묵시록.
지구가 두고두고 온몸으로 써 내려갈
시
백비.
--오승엽
구담, 옥순봉 허리춤의 물안개 외 2
신새벽 찬바람 먼동이 터오르고
금빛보다 더 찬란한 은빛의 고운 물결
휘감아 피어오르는 섬섬옥수 물안개
여나무길 물속을 햇살 따라 유영하듯
수려자태 파고들어 물그림 그려내고
선들한 추풍에 낙엽 수북 쌓인 오솔길
너도나도 꼬나쥔 알미늄 막대기
까마귀 유유한 날갯짓 흉내내다
가을은 울긋불긋다 속절없이 가도다
억만 겁의 시간과 온갖 풍상 겪어 온
깨어지고 부서진 그대로의 모습이라
허공를 물살 가르듯 스쳐가는 바람아
구담에 옥순을 이어놓아 단양팔경
오경이 구담봉 육경이 옥순봉이라
두 곳이 한 곳에 있어 미려절경 이뤘네
천축산 불영계곡
인도의 천축 옮겨와 기암괴석 수려하고
좁은 듯 넓고 막힌 듯 탁 트인 물줄기
얉은 물 깊은 속내로 유연자적 흐르네
동으로 흘러 굽이절경 사십리(四十里)
연못의 부처 모신 불영절 휘감아 돌고
태고의 금강낙락송 깊은 호흡 내쉰다
감추어 놓았으나 모르는 이 없고
적당히 낮추니 높을 필요가 없어
천년의 신비로 넘쳐 흐느끼듯 흐른다
꽃잎 지다
불다 불어도 못다 분
춘풍이라도 있었으니
무지막지한 꽃 피어
먹먹한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흐르다 흘러도 못내 흐를 손
산골짜기 한줄기 맑은 물 있었으니
돌틈의 찌든 때 씻기고
한 떨기 꽃잎 띄워 초목을 희롱하네
꽃 피고 새 우짖는
춘삼월
새 날고 꽃잎 떨어진
막막한 가지에 푸른 물이 오른다
--이복자
나절 필름 10 외 2+산문
까치도 참새도 예쁘게
비둘기는 말없이도 다정하게 노는데
덩치도 중간쯤, 치장도 예술이 아닌
직박구리 몇 쌍을 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꽤 오랜만에 만났는데 화통을 삶아 먹었나, 난리다
직박구리, 어느 날 화단에 꽃같이 빨간 열매
피라칸사스를 한 톨도 안 남기고 먹어 치운 사실
또 어느 봄 10층 우리 베란다 난간에서 둘이 연애하느라
며칠 시끄럽더니 똥 한 사발씩 싸놓고 간 사실
빗자루로 쫓아도 보고
갈겨놓은 똥 씻어낼 수도 없어 장마 때를 기다리고
안 만났으면 했던 시끄러운 소리
나무 그늘에 앉아 듣자니 패거리다
목소리 약하고 말 못 하는 사람 또 당하겠구나
안 부딪히면 좋을, 만나면 꼭 뒤끝 안 좋은 사람들
껍데기이면서 이름으로 세상 쫓는 사람, 왠지
저들이 집단이라는 사실에 꼬이는 심사心思
그래, 내가 자리 뜨는 게 맞지.
나절 필름 13
설렘은 촉수가 미세해
차 한 잔의 흡수, 그 느낌만으로도 떨고
닿으면 그냥 젖는다
비 올 때 차를 마시며 멍 때리는 건
맘 놓고 설렘에 마비되는 날
만감이 홀딱 젖은 오감 사이로 빠져나갈 때는
한 손으로 턱을 괴어야 무게가 있다
빗방울이 닿는 땅에 틈이 생기고
비 파열 소리가 가슴에 쌓이는 앙금처럼 세밀한
그 틈새 그리움도 한 편 스멀스멀 기어들어
밑동 단단했던 사랑이 아려 오는
말랑말랑한 마음 속살
멍하니 널어 짜고 말리는 설렘의 도가니, 비
젖는 점심나절이 좋다, 좋다.
나절 필름 14
—꼭두각시의 망상
비 오는 날 추적추적 젖는 행적들
마음으로 물기 깨끗하게 닦아 상자에 넣는다
동심이 동동 뜨는 동요도 몇 챙겨 넣고
똑똑한 시와 동시 몇 편이나 될까마는
혼신을 다해 얻은 시편 몇 거두어 넣고
소중한 남편과 손녀 부모 남매들의 사진과
사랑했던 제자들의 목록도 넣고
적선(積善)에 목적을 둔 적 별로 없고
조목조목 회개하련만 죄 제목조차 헤아릴 수 없어
청렴의 공적은 빈약하기만 하고
어쩌다 받은 훈장까지 챙겨도 고작 한 상자의 인생
추적추적 비에 다시 젖는다
투명하게 내려와 길 따라 흘러가는
흔적은 있어도 절대 행적을 남기지 않는 비가
인생 상자, 사라지고 말 것들을 내 것인 양 붙들고 있는
영혼을 툭 툭 치고 부질없다며 골내듯 사라진다
모습조차 지우고 가는 무(無)의 흐름
그렇지, 나도 빈손으로 왔지
창조주의 심부름꾼으로 세상에 왔다면
두고 가야 할 것들이 비를 맞아도 보기나 좋게
<산문>
칠순에 만난 환갑 제자들과의 특별 인연
살다가 참 별일도 있다. 명예퇴직을 한 지도 10년이 지난 2023년 스승의 날 일이다.
한국동요문화협회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을 찾는 제자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개인정보이니 물어보고 알려 주겠단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졸업생이 이복자 선생님을 꼭 찾고 싶다고 보냈다는 간단한 문자를 보내왔다. 79년도 졸업생 손민준, 담임도 아니고 내게 국어를 배웠다는 45년 전 제자란다. 내 나이 스물네 살, 1977년 부임한 첫해이니 담임했던 제자 몇은 기억에 있지만 다른 반의 기억은 깜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민준이는 없었다. 그러나 애타게 선생님을 찾겠다고 하니 전화번호는 알려 주라고 했다.
바로 민준이로부터 수필 제목 ‘이복자’라는 파일이 왔다.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하자면 내가 국어 시간에 ‘사랑’이라는 자작시를 써 오라는 숙제를 줬는데 놀기 바빠 학교에 와 아침에 급히 써서 얼굴도 못 들고 제출, 다음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손민준’ 이름을 부르고 네가 쓴 게 맞냐고, 가장 잘 썼다고, 아이들 앞에서 낭독했단다. 그 칭찬을 가슴속에 지니고 살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10년 전 수필로, 시로 등단하여 수필집도 시집도 낸 작가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민준이와 함께 나를 찾았다는 여자 제자와 셋이 만났다. 이 제자도 담임이 아니었으니 기억에 있을 리 없다. 꽃다발을 받고 이런저런 얘기로 까마득한 옛날을 되짚어 보았다. 국어 시간이 참 즐겁고 재미있었다는, 내가 담임한 1학년 8반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는 등, 이야기를 거스르다 보니 의외로 많은 기억이 살아있었다. 새삼스러웠다. 근간에 출간한 내 시집을 주고, 제자의 시집 두 권을 받았다. 뿌듯했다. 시를 쓰는 국어 선생이 시를 쓰는 제자를 키웠다는 보람, 눈물이 솟을 만큼 큰 행복감이 왔다. 시집 출판 기념을 구리에서 한다고, 오셔서 시 낭송 한 편을 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들었다.
6월 9일, 제자의 환갑 기념 겸 두 권의 시집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꽃바구니를 들고 택시를 타고 식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하나둘 앞으로 모여드는 제자들! 그야말로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어 만나니 도무지 어릴 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자들의 집합이다. 30여 명의 선생님,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아우성쳤다. 금방 제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시 낭송만 할 줄 알았건만 거대한 예식홀을 꽉 메운 하객들 앞에서, 칭찬으로 시를 쓰게 했다는 국어 선생님 소개에 이어 축사를 하고 낭송을 하고 케이크를 자르고 건배 제의까지, 환갑인 제자 시집 출판 기념식에 국어 선생님을 위한 잔치도 큰 몫이었다. 참석한 문인 중에는 문인협회 부이사장을 비롯해 잘 아는 분들도 몇 분 계셨는데 스승과 제자의 이 기막힌 분위기에 이런 기념식은 생전 처음 보았노라고 감탄하는 분도 있었다.
지금도 그날 만난 제자 몇 명과 그 후 또 선생님을 찾은 제자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나같이 웃는 선생님, 칭찬하는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 학교에 36년을 몸담고 있었으니 담임으로, 국어 선생님으로 대를 이어 가르친 때도 있어 그들의 2세 제자들까지 만나게 된다. 아이들이 예뻐서 많은 사랑을 쏟으며 가르쳤던 그때, 몇 마디씩 해 준 칭찬이 45년 후 헤아릴 수 없이 팽창하여 칠순 나이인 선생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행복에 가슴이 너무 벅차다. 꿈인 듯 제자들에게 아직도 그때의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나를 돌아보며 더 다스리고 자중하게 된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교사들의 수난을 실감하는 때에, 오로지 사명감으로 전념할 수 있었던 나의 교육 현장과 위치, 그것도 참 감사하다.
웃음 많고 선한 제자 시인 민준이와 함께 동등한 문인으로 문학 모임에 참여하는 일이 그저 행복하다.
--이수영--빠짐
--이태규
다보도 사랑 외 2
다보도는 내 사랑 보고 싶은 내 사랑
홀로 떠 있는 다보도에 햇살이 쏟아져요
금빛 물결이 출렁여요
갈매기 하늘에 쌍쌍이 날고
백사장엔 청춘들이 노래를 불러요
나는 다보도 사랑의 포로가 되었어요
달빛에 은하수 사위어가도
내 영혼에 영원한 다보도여
바람 소리에 환상의 사랑이 노래해요
파도 소리에 다보도 사랑이 춤을 춰요
심장에 핀 꽃
나는 그대의 꽃이 될래요
곱고 부드러운 꽃
살랑살랑 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꽃
십 리 밖에서도 향기가 피어나는 꽃
그대가 행복하다고
다가오는 꽃이 될래요
잔잔하던 호수에
바람 한 줄기 내려와 꽃을 심네요
넓은 호수가
갑자기 바람꽃으로 가득 찼어요
그대
심장에 언제나 피는 꽃이 가득 찼어요
섬진강 비가
가을바람이 하도 스산하여
강나루터에 나섰더니
처녀 뱃사공은 간데없고
쪽나룻배만 출렁인다
휘늘어진 수양버들
옷고름처럼 나부끼고
끝없이 흐르는 꽃추억은
갈대숲에 스러진다
섬진강아 섬진강아
홀로 가는 섬진강아
금빛 노을이 이리도 섧구나
--임윤식
빙어氷魚 외 2+산문
누구에게나 꿈은 달콤하고 아름답다
엄마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세상을,
아빠는 고래가 되어
바다를 주름잡는 꿈을 꾼다
자식들은?
머나 먼 걸리버 나라에서
공주를 꿈꾸는 딸
아들은 로빈후드가 되어
백마 타고 웹 속을 달린다
춘천 호반의 겨울
얼음 속 동화나라는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다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빙어 가족
그들의 꿈은 오직 한 끼 밥상이다
엄마의 여전한 잔소리
쉿,
낚싯밥을 조심할 것
조장鳥葬
발가벗겨진 채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가지 끝에 매달려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붉은 감 몇 알
한평생 삶이 사리처럼 영롱하다
제물로 바쳐지는 마지막 육신
새들이 모여든다
시신을 잘게 자르는 배화교 사제처럼
익숙하게 살붙이를 쪼아댄다
몸은 그렇게 새들의 먹이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또 다른 세상으로 옮기는 사자使者들의 의식
엄숙하고
진지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섬
어느덧 항구에 닿았구나
닻을 내려야겠다
숨가빴던 뱃길
바다 위 안개 자욱하다
구름 위로 떠다니는 그림자
꿈이었던가
다가올 듯 다가오지 않고
말없이 고개 끄덕이며
손 흔들어 보이기만 하는
물결에 밀려 점점 멀어져 가는
작은 쪽배 하나
<산문>
잔아박물관에서 초가을의 시심詩心에 취하다
—오세영 시인 초청, 시 콘서트 ‘소통과 공감’
옷깃에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스며드는 9월 마지막 일요일. 경기도 양평 소재 잔아문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인 오세영 교수를 초청, ‘소통과 공감’을 주제로 뜻깊은 가을맞이 시 낭송회가 열렸다.
오세영 시인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서울대 인문대 교수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국문학자이기도 하다. 만해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셨고,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도 받으셨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 소설가 김용만 씨가 사비로 건립한 잔아문학박물관은 ‘문학’과 ‘테라코타’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이다. '테라코타Terracotta'란 '점토terra를 구운cotta 것'의 뜻으로, 벽돌, 기와, 토관, 기물, 소상 등을 점토로 성형成形하여 초벌구이한 것이다.
박물관 경내에 들어서면 야외정원 및 전시실 곳곳에 보기에도 정말 귀엽고 앙증맞은 '테라코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테라코타 작품들은 김용만 소설가의 부인이며, 시인, 조형예술가인 여순희 작가의 작품들이다. 박물관 자체가 김용만 소설가와 여순희 작가의 문학적, 조형예술적 공동산물인 셈이다.
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글은 인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다. 한국문학, 세계문학, 아동문학 등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은 물론, 해외 대문호들의 작품과 삶을 감상할 수 있다. 희귀 문예지, 육필원고, 대문호들의 테라코타 흉상,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잔아문학박물관에서는 ‘문학을 그리다’, ‘문학을 만들다’, ‘테라코타 교실’ 등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잔아문학박물관의 넓은 야외 잔디마당에 무대를 설치, 지역 문인, 화가, 음악인 등과 함께 시 낭송, 노래, 기타 앙상블의 클래식 한 마당, 색소폰 연주, 시화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엮은 한 판 ‘문화난장文化亂場’이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진선 양평군수, 강금덕 서종면장,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환경공학자이면서 작곡가 · 성악가인 이기영 호서대 명예교수, 이승하 중앙대 교수, (전)중앙일보 문화부장인 이경철 문학평론가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낭송문예협회 회장인 장충열 시인이 사회를 맡았다.
오세영 시인은 이날 특히 지난 2018년 8월 25일 금강산 제21차 이산가족상봉장에서 북에서 내려온 이종 여동생에게 써 준 ‘그때 너는 네 살’이라는 시를 낭독, 참석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너는 4살, 나는 8살.
우리는 그때 외갓집 마당가에 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헤어졌지.
네 초롱초롳 빛나던 눈동자에 어리던
푸른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네 볼우물에 감돌던 그 천진스런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지.
곧 전쟁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우리는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생사를 모른 채 이처럼
70년을 헤어져 살아야만 했구나.
예뻤던 내 여동생 종주야.
이제 너는 일흔 둘,
나는 일흔 하고도 여섯.
몸들은 이미 늙었다마는 아직도
네 눈빛에 어리던 푸른 하늘과
네 볼우물에 일던 그 귀여운 미소는
여전하구나.
종주야. 내 사랑하는 동생아,
이제 우리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우리 외가 집 마당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는 그 끔찍한 민족의 시련을
겪어선 안 된다.
그때 너는 4살, 나는 8살.
소설가이면서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용만 잔아박물관장은 오세영 시인의 시에 관하여 “나는 오세영의 시세계를 엿보면서 안개처럼 야울거리는 슬픔의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낭만주의의 꽃은 비극성이다. 슬픔은 비움空과 자유의 산물이다. 비움과 자유의 토양에서 자란 슬픔이어야 진정한 슬픔이다. 채움滿에서는 자유가 억압을 받아 슬픔이 움틀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런 쟁취해야 될 자유가 아니다. 허무, 고독, 절망 같은 실존적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우러난 비극적인 자유, 그냥 ‘던져진’ 진공상태의 자유이다. 오세영도 ‘스스로 존재를 허무에 기투할 수 있는 인간’을 완전한 자유인이라고 말했지만, 망망한 사막에 홀로 버려진 그 독존의 허허한 절대자유에서는 슬픔 말고 향유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슬픔은 감정의 외화가 아니라 감정의 객관화현상이다. 온전한 비움의 진공상태에서 자연발생된 슬픔, 그 슬픔의 절대가치는 ‘나를 절망시켜달라’고 외치는 미적 자학뿐이다”라고 풀이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성우협회 성우강사인 석원희 시인의 자작시 ‘수국의 부탁’을 비롯, 심연수, 노진희, 소영민, 김미영 등 지역문인들의 자작시 낭송과 함께, 오세영 시인의 시 ‘아아, 훈민정음’(낭송 유경옥, 위경숙), ‘대한민국 2022년’(낭송 정기만, 문명숙), ‘첫눈 내리면‘ (낭송 서희진, 김정순), ’꿈꾸는 병‘(낭송 김진희, 이경섭), ‘히말라야를 넘다가’(낭송 장제은, 박선휴), ‘9월’(낭송 이병국) 등 낭송가들의 멋진 시낭송이 이어졌다.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오세영 시 ‘9월’ 전문
특히 진행순서 중 수입초 3학년 박벼리 어린이의 시낭송은 관중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의외의 백미였다. 박벼리는 ‘저녁놀’ 이라는 자작시를 낭송, 관중들의 찬사와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박벼리의 낭송이 끝나자 김용만 관장은 무대에 직접 나와 박벼리 어린이를 미래 노벨문학상이 기대되는 꿈나무라고 소개, 관중들의 큰 박수갈채를 끌어내기도 하였다.
아빠랑 둘만 걷는 산책길
노을이 너무 예쁘다
구깃구깃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캠프 갔던 언니
돌아오면
이불 속에서 보여줘야지
—박벼리 시 ‘저녁놀’ 전문
KBS 라디오 일일연속극 원작소설이기도 한 김용만 장편소설 ‘능수엄마’와, 한 묶음의 ‘떡·과일’ 선물로 돌아오는 길 역시 푸짐했다.
*임윤식 프로필 중 수정--홍보위원으로
(현)한국사진작가협회 국제교류분과위원 → (현)한국사진작가협회 홍보위원
--정영호
아내 외 2
여보, 자크 좀 올려줘
잠에서 깨어나
지퍼를 올려 주다가
부스스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보았다
꽃봉오리처럼
한없이 부끄럼 타던 아내가
그 무엇으로 피어 있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을 때마다
지퍼를 올려 달라며
등을 보이는 아내
꿈속에서나 길을 걸을 때에
늘 나의 왼쪽에
가만히 피어있는 꽃이었다
오늘도 아내는
내 왼쪽에 오래된 습관처럼
그 무엇으로 피어있다
공원에서
동네 공원 벤치에
빈 소주병 하나
먹다 남은 컵라면이 나뒹굴고 있다
벤치 아래 발로 비벼 끈 담배꽁초 두 개
누가 다녀갔을까
나도 그 자리에 앉아본다
이 친구,
분명 이 자세로 앉았을 게다
병째 꺾었군
고개를 한참 떨구고
바닥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았다
소실점
한강을 끼고 미사동 걷다가
멀리 예봉산 끝자락을 바라보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서로 어깨동무하고 있다
한참을 걷다보면
길은 점점 아득해지고
가로수 길 끝 한가운데 보이는
소실점
저 길 끝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어린 시절 무지개를 쫓아 다니던 소년이 되어
천천히 걷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빨리도 걸어본다
한참을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소실점
어느새 내 나이 육십 줄인데
수없이 이 길을 걸어왔다
무언가에 이유 없이 떠밀려온 세월
내가 쫓던 소실점 너머 궁금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정정근
마녀의 집 외 2
맵고 짜고 쓴 그녀
시고 떫기까지 해
조곤조곤 깐족이기까지 하면 쥐어박고 싶어
푸근해 보이지만 속속들이 가시냉골
순한 듯 속 터치고
음전한 듯 뚝별녀
어쩌다 보이는 수굿한 낯에 속으면 안 되지
지인에게 오백만 원 떼인 오래 전 허물을
똥 친 막대기 휘둘 듯하는 그녀
눈빛은 내 안 훑는 최신형 복사기
기억력은 영구 방부제
말씀은 우리 집 경전
한때는 토파민 세로토닌 분출로
어떤 연인들도 부럽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드레날린만
그녀의 콧대는 세월도 안 데려가
지가 무슨 미다스손인 줄 알고 주식을 하는데
샀다 하면 초록불
팔고 나면 빨간불
오늘은 큰맘먹고 나는 하늘이다! 했더니
값도 안 쳐주는 하늘 실컷 하라며
콧바람을 핑~
시름시름 비 오는 저녁, 내 속도 척척하네
동네 육교에 올라가
기죽어 숨은 개밥바라기나 찾아볼까
그 섬의 심마니
울릉도 골 깊은 알봉분지 투막집에
심마니 노부부 살아가네
구름도 휘청이는 산비탈 오르내리다
바깥노인 등허리는 활처럼 휘어지고
염소 몇 마리 돌보며 도망도 못 간 꽃순이는
호호할미 되었네
여름엔 거센 빗줄기와 바람
겨울엔 허구한 날 길눈 쌓여
장독대는 정개에 외양간은 방 옆에 둔
원조 자연인들
봉당 옆 황토벽에는
포효 삼킨 호랑이, 수문장으로 걸려 있고
마당 복판 가로로 걸쳐놓은 바지랑대엔
땡볕과 비바람에 마르다 적시다 돌멩이 된
수백 통 옥수수
눈雪이불 덮고 편안히 잠들었네
오늘은 약초라도 팔러 가시나
망건 위에 흑립 쓰고
솜바지 동저고리에 검정 두루마기 입으신
산신령수염,
쌓인 눈 지팡이로 헤치며
검정 치마 흰 저고리 마나님과 길 뜨시네
지나던 바람이 마나님 치맛자락을
펄쩍 들추네
마늘
남편의 고향에 갔다
당숙모님이 마늘을 까시는데
쪽이 스물도 넘는다
나도 자랄 때 저런 마늘을 깐 적 있다
싫증 나고 손톱 밑 아려
쥐젖 같은 것들은 마당가에 버렸다
"그새 다 깠니?
마늘이 원체 작아놔서 한 됫박도 얼마 안 되네
애썼다 고구마 쪄놨으니 먹어라"
어머니의 다정함에 낯이 뜨거웠다
이듬해 봄
두엄 위로 여봐란 듯 일어서는 초록이들
그 눈치 없는 것들로
뒤늦게 야단맞던 일 생각나 피식 웃는데
당숙모님, 까던 마늘을 입에 넣으신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고소하다네 질부도 먹어볼랑가?"
그러면서 또 아그작
미심쩍지만 묘하게도 그 맛이 궁금해
새끼손톱만 한 것 하나를 호기롭게 씹었다
죽는 줄 알았다
명치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자
당숙모님은 웃으시며
"자네 창시는 우덜과 다른갑네
내는 암시랑토 않은디"
--조산해—빠짐
--조성순
기쁜 날 외 2
자폐증을 앓고 있는
서경빈 씨가
내 인사를 받았다.
더 기쁜 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서경빈 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게 설명해줬다.
즐거운 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서경빈 씨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수많은 볼펜 선이 만든
한라봉이
내게
먹음직스럽게 다가왔다.
입에 침이 고였다.
--조은설
수목장 외 2
어머니의 새 주소는 숲속 깊은 마을이다
해님이 사방 둥근 창틀을 걸고
눈을 감거나 뜨거나
깊은 속 후련히 볼 수 있는 풍경들
먼바다 파도 소리가
굴렁쇠에 감겨 굴러오는 날
이삿짐이라곤
아들의 품에 안긴 봉안함 하나
백 년을 살아 더욱 단출한 흔적이다
떨리는 손이
소나무 쇄골에 명패 하나 걸어주면
당신은 이제 피안의 백성
불립문자들이 나비처럼 날고 있다
어머니, 이제 발돋움하시면
까치놀 피는
먼바다도 바라보고
가끔은
두고 온 피붙이들 생각
사무치는 그리움 홀로 삭이시리라
빈집
누군가 버리고 간 집이다
마른 체취가
셀로판지처럼 얇은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짐을 꾸리면서
아무도 몰래 발효시킨
한 병 설움도 꺼내 갔다
몇 방울 떨어트린 울음소리
달빛에 젖는 밤은
깊은 산사 풍경소리로 우는 빈집
길 건너 미루나무 우듬지에 행장을 풀고
두고 온 빈집 내려다보며
뒤늦게 삶의 매움을 알았을까?
매움매움매움
밤늦도록 찰나의 삶 변주해 내고 있다
엘리베이터
허공에 집이 있어요
바람과 구름을 잘라 쌓아 올린 마천루의 숲
때로는 두려워요,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진 않을까?
저 위태한 공간에 당신의 마음 하나 매달았군요
지상에서 반공을 오르내리는 나의 생애
눈물이 밤하늘의 별을 자꾸 꺼트리고 있어요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진다고 하죠?
나는 마침내
‘순간이동 머신’을 탔어요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이 교통수단은
불확실한 미래나 과거로 운행하지 않아요
현실의 반경에서 직선으로 순간이동을 하죠
지상의 대리석 현관에서 기다렸다가
당신을 품고 쓔우우웅 날아가요
어느새 두려움은 깃털처럼 날아가고
우리의 사랑
지금은 순간이동 중입니다
--차영미
가만히 받아 적은 노래 외 2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시를 쓴다
아니, 나무 노래를
받아 적는다
수 천 수 만
폭풍우의 밤을
염천 더위의 낮을
공기처럼 스민
햇빛의 나날을
꽃과 열매의 시간을
그 위에 겹으로 쌓인
새들과 풀벌레의 언어를
오늘밤
가만히 받아 적는다
우는토끼
햄스터보다 조금 큰 그 녀석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에 산다지요
갈색쥐 닮은 녀석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둥근 귀 종긋 세우며 꽃과 풀을 딴다지요
그걸 볕 잘 드는 바위에 올려놓고
바람과 햇볕이 말려주길 기도한다지요
순록이 한 입에 털어먹지 않도록
짧은 여름 내내 망을 본다는데
그러다 순록이 그걸 털어먹으면
높고 큰 소리로 울기만 한다는데
햄스터보다 조금 큰 녀석 이름이
우는토끼라는데
아, 어쩌면 좋지요
풀 같은
꽃 같은 토끼를
햇빛꽃 만발 예약석
담벼락 앞
나란히, 나란히
경미할매봉구할매기준이할매혜주할매성민이할매
서로 다른 꽃무늬 옷마다
난분분 햇빛꽃이 피는
꼬박꼬박 졸다가 깨어
오가는 사람 푸지게 구경하는 길목
해거름엔 모두
설렁설렁 일어나
굽은 골목 따라
집으로 스며든다
하여,
내일도 담벼락 앞은
햇빛꽃 만발 예약석이다
* 차영미 약력에 추가--최계락문학상
/ 이주홍아동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수상/
--하두자
사과는 둥글고 악수는 어색하게 외 2+산문
우리는 날마다 착하게 인사를 하지
동글동글 사과는 접시에서 제 무게를 잘 지키고 있지
입술에 웃음 걸어 놓아도 당신의 손은 언제나 불안해
뜨거운 찌개 같이 끓고 있거든
당신과 나의 세상은 같으면서도 서로가 달라서
가끔은 푸른 다알리아꽃을 손에 들고 사랑이라는
거품 문 문장으로 당신은 나를 물어뜯고
나는 두통이 멈추기를 기다리지
소용돌이에 갇혀서 했던 말과 하지 않은 말들이
나쁘거나 나쁘지 않은 말들이 귓구멍으로 파고들 때
주어가 되는 사과가 어색한 목적어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
한 사람은 말의 사실만을 기억하고
또 한 사람은 말의 느낌만 기억했지
당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어
내가 한 일은 당신이 알고 당신이 한 일은 내가 알아
주먹을 쥔 채 악수를 하고
사과를 받아먹어야 된다는 거지
내 사과는 점점 줄어드는데
당신의 사과는 수북하게 쌓여만 갔지
내비게이션, 수선화
지금부터 수선화 피는 봄입니다
뒤쪽은 잊어버리세요
여기 눈이 내려도 이제 마음만은 미끄러지지 않아요
간절기의 정차, 잠시해도 좋습니다
도달할 수 있는 봄의 목록을 확인하세요
시동조차 켜지 못하는
미숙한 운전 실력을 가졌다고 두려워 마세요
마주보는 일 없이도 더듬이로 건너오는 햇살
허공을 사이에 두고
빛은 푸르게 바뀝니다
내 몸의 중심이 당신에게 기울어가도 될까요
이곳은 수선화 봉오리가 올라오는 3월입니다
물론
꽃샘추위 구간도 만날 수 있습니다
꽃과 눈발이 충돌하는 시간
오래전 돌려받지 못한 마음이 생각나겠지요
부딪쳤던 기억이 있고 그럴수록
마음을 맡기는 상상을 해 보세요
겨울에 두고 온 얼굴을 쓰다듬습니다
멀어지지 않으려고 고개를 뒤쪽으로 슬쩍 젖혀보면
당신에게 향한 끊긴 길도 이제는
반환점의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선화가 수다스럽게 피는 봄이니까요
ㅁ에 대한 단상
한사코 밖을 외면하며 갇혀 있는
내 방의 고요는 네모
산다는 것의 안과 밖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모서리가 있고 구석이 있고
구부러지면 꺽어지는 어둠의 자세까지 살고 있는데
내가 말을 거는 순간 벽 속으로 숨어 버린다
창문을 벗어난 달이 더 캄캄한 쪽으로 기운다
열려진 저 켠을 바라보며
닫혀진 세계의 한끝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음지 식물은
나를 닮았을까 닮지 않았을까
난 줄기도 없고 빛에 집착하는 뿌리도 없으니
은밀한 문장만 피우고 싶은 생각만 있을 뿐
시계와 달력을 떼어내고
스마트 폰을 버리고 인터넷도 끊어
벽과 벽을 만들었다
주어도 부사도 없이
썼다가 구겨지는 은유를
가장 고독한 에필로그가 될 때까지
큰 입을 벌리고 있는
ㅁ 안에 문장을 채워 넣는다
<산문>
내 시집 속의 겨울 시
성당 종탑과 빨간 함석지붕뿐인
처음 가는 마을은
잘못 받은 처방전처럼 막막했다
소리 내어 울고픈 그런 저녁 날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에 흘깃대는 발걸음으로
당신은 그곳에 잘 도착했을까
기다리는 쓸쓸한 시간
아무나 오지 않지만 누구나 잠시 머물다가는
이곳은 또 하나의 기착지
앞뒤 구분 없이
눈은 지나온 길을 지우고
무릎은 이유를 모르는 채 퍼렇게 멍이 들었다
누군가 오고 누군가를 보내야 할 때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부끄러움이 발설되었다
간판도 지워진 헐한 밥집에서
한 상에서 밥을 먹어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애꿎은 나물만 뒤적거리다가
문득 굵어진 눈발을 염려하는 당신의 아내가 떠올랐다
눈은 그칠 생각을 않고 길은 자꾸 지워지는데
—하두자, 「장례미사」 전문
<시작 노트>
부음을 받고 온 길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휘어진다.
하얀 잠속의 겨울나무들이 내뱉은 입김에 차창 밖 비릿한 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왼 종일 쉼 없이 내리고,
조문 가는 나는 낯선 관광객처럼 어디서 어디로 향하는지
가름되지 않은 겨울 풍경 속에 서 있다.
떠나고 보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견뎌내야 하는 슬픔과
그가 머물던 자리에 남긴 기억들이 목까지 차오른다.
그가 없다가 있다가를 반복하는 생각에 위령기도 올릴 수 없어 성당 밖으로 나온다.
파문 뒤의 고요처럼 내리는 눈,
침묵에 잠긴 나무가 나무를 지우고 들판이 들판을 버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버리고 왔을까
애도의 눈빛들이 지나쳐갔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밥을 먹다가 허술하고
고단한 우리들의 삶이 멀건 국물 위로 떠 올랐다.
힘겨워 쓰러진 그를 탓할 수 없다는 듯 눈은 그치지 않고
지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고 있다.
언덕배기 빨간 지붕과 낡은 종탑 떠날 길을 염려하는
그의 아내는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러나 당신을 묻고 하늘 어느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별자리 하나 새로 그려 넣는 겨울로 남겠지.
폭설 속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나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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