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인데 기온은 여름이다. 녹음이 우거져 산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시원하겠지만 바람이 없다면 땀께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하겠다. 구간 전체가 조망이 전혀 없는 숲길의 연속이라 사진이나 글을 남길 소재도 없다.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으니 지루함은 감수를 해야 한다.
오늘은 소백산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격인 늦은목이부터 대간산행이 시작된다. 출발점인 물야저수지 위 생달마을에서 몸 풀듯이 늦은 목이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시작한 소백산 국립공원은 묘적령까지 이어진다.
큰 꽃 으아리
상운사 입구에 있는 국립공원 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으로 집입해 늦은 목이로 올라간다.
감자난초
은대난초
샘터를 지나면 바로 늦은 목이다.
‘늦은 목이’는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을 잇는 고갯마루로 ‘늦은’은 ‘느슨하다’를 뜻하며, ‘목이’는 ‘고개’를 말해 ‘느슨한 고개’는 ‘낮은 고개’쯤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까지 어렵지 않게 완만한 경사길을 올라왔다.
여름의 들머리쯤 되니 가는 잎 사초도 무성하다.
오늘 구간에도 애기나리가 많다.
이렇게 오늘 구간에는 500m마다 이정목이 약속한 듯 세워져 있다.
갈곶산.(961m)
곶이라 함은 장산곶, 호미곶처럼 바다로 돌출된 지형을 말하는데 대간 능선길에 곶이라는 지명이 있으니 이유가 뭘까하고 지도를 유심히 봤다. 대간길이 갈곶산에서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그런가 생각도 되는데 그것을 알고 이름을 지었나 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이유를 모르겠다. 동네 이장님께 물어볼걸.....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 부석산 뒷산인 봉황산이 있다.
나무틈 사이로 겨우 마구령 위에 있는 1096봉이 보일랑 말랑.
북쪽으로 잠깐보인 전망이라 사진에 담아 봤다. 어래산 뒤로 목우산 방향인데 잘 구별이 안 간다.
1057봉인 듯
민백미꽃
마구령에 도착.
마구령(馬駒嶺·820m) 은 오래전부터 단양 영춘면 주민들이 영주 부석장에 가기 위해 넘던 고개다.
유래가 여러 가지다.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말을 탄 군사들이 자주 넘던 고개라 마군령馬軍嶺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장사치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이라고 불린다고 하기도 하고, 현지 주민들은 ‘매기재’라고도 부른다. 경사가 급해 논을 매는 것처럼 오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름만큼 고갯길은 험하다.
수많은 민중의 애환이 깃들어 있을 마구령 길(935 지방도 일부)은 이제 걸어서도 넘어갈 수도 없다. 마구령터널 건설 이후 소백산국립공원은 마구령 옛길의 포장을 벗겨내고 자연 복원 중이다. 탐방로도 따로 개설되지 않아 영원히 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정상석 뒤에 있는 수준점.
고치령으로 가는 길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1096봉이다.
헬기장이고 삼각점이 있는데 나무가 무성해서 헬기장 기능은 없어졌고 삼각점은 여러 번 돌고 아무리 뒤져봐도 안 보인다.
자개지맥 능선이 살짝 보인다.
홀아비꽃대
500m마다 있는 이정목 중간에 이 런 이정목이 있다.
뒤로 등로보다 높은 봉우리 959봉이 있는데 그리 가지 말라는 표시다.
사실 그곳이 대간길이나 지금은 대간 등로가 희미하다.
이곳이 자개지맥의 분기점인 것이다.
계단이 나오면 고치령 직전.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 그 고을 추익한 전 한성부윤이 태백산의 머루와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곤룡포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났다. 이상히 여겨 급히 영월에 가보니 단종이 그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단종의 혼령은 태백산에 이르러 "여기는 내 땅이다."라고 하였고,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
이 그림에서 나물을 바치는 모습의 선비는 추익한으로 보인다.
소백산 산신은 누구인가? 금성대군(錦城大君)이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며 단종의 숙부이다. 사육신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친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거처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돌로 벽을 쌓아 둘레에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어 가시울타리를 만들었다. 한 평 남짓한 바닥은 축축하여 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이른바 위리안치(圍籬安 置)의 형벌.
이곳 고치령은 금성대군의 밀서를 전하던 밀사가 넘어 다니던 고개다.
왜 이곳에 두 분의 산신을 함께 모셔놓았을까? 그건 고치령이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인 양백지간(兩百之間)으로, 두 분이 마음으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이 어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지금도 이곳 성황당에서 과거의 설움과 회한을 모두 내려놓고 숙부와 조카로서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고치령(古峙嶺·770m)은 단산면 마락리와 좌석리를 잇는 고개다. 신라시대에 고개 아래에 대궐을 짓기 위해 터를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옛 고개’가 변형돼 ‘고치재’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고치령 너머는 마락리다. 말이 떨어질 정도로 비탈이 심하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금성대군과 단종 사이를 왕래하던 밀사가 말에서 떨어진 곳이라 하여 ‘마락’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백두대간은 분수령分水嶺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남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와는 유역이 다른, 고치령, 마구령을 넘으면 영월과 단양의 경계인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부석면 남대리다. 늘재를 넘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버리기미재를 넘은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더불어 지리적으로 몇 안 되는 대간을 넘는 예외적인 행정구역이다.
고갯마루 바로 아래 여우샘(고치령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내려가면 마락리다. 우리 대원들이 배낭을 벗어 놓고 샘물에 물 마시러 갔다. 샘물이 있다고 알려준 나는 정작 물도 못 마셨다. ㅎㅎ
입하가 지난 지 열흘이 넘었으니 여름은 여름이겠으나 이른 더위에 점점 산행이 힘들어진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노래가 그립고, 전망이라도 있으면 더위를 이기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구간을 지나기란 참으로 지루하다. 그래도 무사히 산행을 마쳤으니 그러면 됐다.
마을 이장님의 리무진은 우리를 실어 나르고 오기사님의 탁월한 선택으로 소 불고기를 먹을 수 있어 지친 몸이 바로 회복되는 듯 했다.
요즘 단종오빠가 대세인데 최근 관련된 산행지를 지나게 되어 다시한번 역사 공부도 하고 이야기거리를 담을 수 있어서
흥미로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소백산 구간은 고치령에서 어의곡 삼거리만 남겨 놨는데 그곳은 또 어떤 얘기가 있을까. 아마 신라 마의태자와 퇴계선생 얘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첫댓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해서 산행기는 참 뜻깊은 거 같습니다 저는 못보고 지나친 감자난, 큰꽃의아리도 보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감자난초 못밨는데... 구수한 이야기가 있는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깊은 공력이 느껴지는 산행기 즐감했습니다.
사족 한마디.
2:35 사진을 1057봉이라고 추측하셨는데, 사진은 1057봉 지나 마구령 직전 헬기장 있는 봉우리(해발 890m)인 것 같고,
올리신 사진 중 1:52 사진이 1057봉인 듯 합니다(저도 산행 중 표식을 찾지 못해 고도를 확인하고 똑같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