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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 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 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15장 수의 독단론 Le dogmatisme du nombre 344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 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제17장 수학들의 수리[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1절] 대수 분석론 과 기하 분석론 Analyse algébrique et analyse géométrique 371
[2절] 층위[학급, 집합]들의 논리학 Logique des classes 373
[3절] 명제들의 논리학과 관계들의 논리학 Logique des proposition et logique des relations 377.
[4절] 수학들의 논리적 번역 La traduction logique des mathématiques 380.
[5절] 초한수 와 연속 Le transfini et le continu 383 §227 §228 §229 §230
[6절] 논리계산의 실재론 Le réalisme logistique 389 §231 §232 §233
제18장 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수학사에서 둘째 상실(붕괴), 첫째가 비유클리드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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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6권 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머릿글] 369
§216 , [형식적 논리학 대 현대 논리계산 사이에서 구별에서 논리계산(logistique)의 제조술(la technique, 조성술)이며, 철학에서 새로운 사건이다.] .
만일 관념이 수학적 진리를 선천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하여 양(+)의 정수[자연수]의 내속적 지성성에 지탱한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실망스럽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산술적인 개념작업 과 가장 일반적 용어들로부터 연역법을 함축하는 선천적인 정당화의 조건들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369)
따라서 산술주의는 운동 속에서 한 단계로서 고려되어야만 하는데, 이 운동이 수의 특수한 형식들을 저 넘어서 존재의 보편적 형식과 재결합한다. 이 운동은 인간 정신의 자연[본연]에 의해서 명령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것이 퓌타고라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부터 생산되었다고 우리가 보았던 것은 정신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적 논리학(la logique)은 현대 논리계산(la logistique)의 원형[원본]일 뿐이다. 수학들의 완전화된 알고리듬(진법계산)을 모방하면서 근대 방법들의 접촉에서, 논리계산은 분석학의 유연성을, 엄격함의 근심을 표출한다. 논리학은 논리계산으로부터 무한히 멀리 떨어진 채 남아있을 것이다. 논리계산은 바로 새로운 제조술(la technique, 조성술)이다. 수학의 철학은, 몇몇 사상가들(이들 중에 첫째 서열에 버트란트 러셀이 있으며)이 이로부터(철학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철학의 존재론을 믿는 그것[철학]의 충실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새로운 사건이다. (369)
제17장 수학들 중에서 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개요] 370
§217. [라이프니츠의 하노버 원고에서, 논리 방정식과 대수 방정식에 대한 예시가 있으며, 이로부터 순수 대수학과 순수 기하학의 차이를 다음 절들에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형식적 논리학의 혁신이 완수되는지를, 그리고 어떤 편이 그것으로부터 진술과 증명에서 수학적 절차들의 모방으로 되돌아오는지를, 탐구해야만 한다. (370)
어떤 의미에서, 논리계산(la logistique)의 발생적 관념들이 실행한 것은 라이프니츠(1646-1716)로부터이다. 라이프니츠는 19세기에 따라야 했던 차이나는 길들을 열었다. 그는 논리학을 수학적 형식화하기 또는 계산의 논리적 형식화하기가 제공할 수 있는 전망들을 얼핏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게르하르트(1816-1899)와 특히 꾸뛰라(1868-1914)에 의해 하노버의 수고본(手稿本)들의 연구에서 얻는 정보들(les révélations)을 추출한다면, 그리고 만일 라이프니츠가 그의 직접적인 계승자들에게 향해 실행할 수 있었던 영향을 참조한다면, 우리는 보편적 지표[특성]들의 시도들로부터 단지 모호한 개념작업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수적 방정식들의 과학에 비교할 수 있는 논리적 방정식들의 과학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공간적 표상작업들의 몇몇 체계들은 논리적 [순열]조합들의 예시들 제공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데카르트의 곡선들이 분석적 관계들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370)
이런 개념작업의 정확한 범위는 어떤 것인가? 분석적 기하학 그 자체가 허용하는, 말하자면 순수 대수학의 의미에서 그리고 순수 기하학의 의미에서, 해석 작업들 중의 전자 또는 후자를 따라서, 수학적 논리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면서, 마이몬(Salomon Maimon, 1753-1800)과 제론(Joseph Gergonne, 1771-1859)은 이런 질문에 대해 정확한 응답에 기여했다. (370)
1절, 대수 분석론과 기하 분석론 Analyse algébrique et analyse géométrique 371
§218. [마이몬의 알고리듬: 논리적 대수학에서 그의 기호표기법은 빈약하고 불모성이라 수학사에 살아남지 못하였다. ]
마이몬이 흔적을 남겨놓았던 알고리듬의 초안에서 우리가 흥미를 갖는 것, 그것은 논리학과 수학 사이에 현존하는[있는] 근본적 차이(la différrence radicale)에 대해 우리가 매우 드문 감정을 거기서 발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 차이란 공통의 기호들의 사용이 감출 위험이 있는 차이이다. 논리학과 수학은 형식적 진술을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 논리학 속에서 형식은, 형식의 외부에 있는 질료(la matière, 재료)에 관여[참조]한다. 그런데 명제의 진리를 이루고 있는 것,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Socrate est homme
상징적으로 쓰여진 명제 속에서 보존되지 않는다.
X는 Y이다. [이 문장 또는 명제 속에는 진리를 보존하지 못한다.]
전제들[두 전제들]은, 전제들의 진리 또는 전제들의 거짓에 앞서는 가설의 혜택을 입지 않고서, 삼단논법에서 도입되었다. 결론은 이 가설들의 가치에 상대적이다. 이것의 조정은 논리학자의 실력(la compétemce)을 회피한다. 반대로 수학적 추론들의 결론들은 범주적 진리를, 다시 말하면 고유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수학적 명제들이 이것들의 형상 자체 이외 다른 질료[재료]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수학은 그자체로 자기의 영역 내부에 경찰서(la police)를 만들 수 있다. 그것(elle, 대수학 또는 경찰서)은 거짓의 가치들을 진실의 가치들과 분리하며, 말하자면 방정식을 동일성으로 변형[변환]하는 가치를 분리한다. (371)
그러한 것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관념[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마이몬의 논리적 체계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우리에게 보인다. 마치 칸트(1724-1804)에 있어서처럼 마이몬(1753-1800)에게 있어서 논리적 판단의 전형은 분석적이다. 따라서 판단의 분석적 성격을 명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술어가 주어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있따. 이로부터 마이몬의 깊이 있고 또 순진한 상징주의가 나온다. (371)
바르바라(Barbara)의 번역을 지적하는 것이 우리에게 충분할 것이다. +[기호 더하기]는 긍정의 기호로서 선택되었고, x는 어떤 것이든 지칭하며 따라서 전체(tout)와 동등가 이며, 그리고 보편성을 의미한다. 전체[전칭] b는 a 이라는 진리는 abx + a라 쓰여질 것이다. 전체[전칭] c는 b라는 진리는 abcx + abx라 쓰여질 것이다. 그러면 c는 a라는 결론의 진리는 그 자체로 abcx + a 라는 형식으로 제공될 것이다. 논리적 방정식들의 해결은 대수적 방정식들의 개혈과 동일한 완전함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삼단논법이 완수하는 제거의 작업은 이렇게 입증된다(manifeste). 그러나 또한 그것의 귀결[결론]이 빈약한 작업이라도 입증된다. 논리학은, 진리의 영역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 위하여, 언어적 명증의 협소한 수평을 전혀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마이몬의 논리적 대수학은 단어의 엄격한 의미에서 통행할(viable, 생존할) 수 있다. 그의 논리적 대수학은 잔존할 운명에 처해 있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생산성이 없기 때문이다. (372)
§219. [제론의 알고리듬에서 포함관계 표시방법(5가지): 제론은 오일러의 해명 방식을 확장하였다. 이 다음에 불(Boule)이 등장할 것이다. ]
제론(1771-1859)의 알고리듬은 반대방향과 보충적 관점으로 진행했다. 그는 기하학적 직관을 토로 삼았다. 오일러(Euler, 1707-1783)의 원(圓)들은 논리적 명제들의 단순한 번역이 되는 대신에, 주어의 관념과 술어의 관념 사이에 초기관계들을 규정하려 할 것이다.
제론이 말한다. “다양한 상황들이 어떤 상황들인지를 검토해 보자. 이 상황들 속에서 서로 서로 비교되는 두 관념들이 이것들 너비에 상대적으로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문은 다양한 종류의 상황들이 어떤 상황들인지를 분명하게 질문하는 데로 귀착한다. 그 상황들에서 두 가지 닫힌 어떤 도형들은, 즉 예를 들어 동일한 평면위에 그려져 있는 두 원들은, 하나의 원과 다른 원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각 원의 너비는 각 관념들의 너비를 재현한다.” 이로부터 아래와 같은 관계들의 목록이 나온다.
1° 배제(l’exclusion) S P 두 원이 떨어져 있음 = H
2° 겹침(la sécance) SP 두 원이 부분적으로 겹쳐있음(할선이 있음) = X
3° 동일성(또는 합동 l’identité) (SP) 두 원이 완전히 하나됨, 합동 = I
면적(la contenance)은 도치를 허용할 수 있어서, 두 가지 도치에 의해 표현된다.
4° S는 P 속에 포함되어 있다. {p(s)} = C
5° S는 P를 포함하고 있다. {s(p)} = Ͻ
만일 사람들이 두 개씩(deux à deux)의 다섯 관계들의 조합을 형성한다면, 만일 사람들이 거기서 동일한 두 관계의 반복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25[5x5]개의 조합들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두 전제의 조합이 결론 속에 다섯 관계 중에 어떤 하나의 관계를 제시하도록 허용하는지를 자문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만일 두 전제들이 H 형식의 두 개 전부이라면, 또는 X 형식의 두 개 전부이라면, 결론은 우리가 방금 열거했던 다섯 형식들을 가질 수 있다. 반면에 만일 두 전제가 C 형식의 또는 Ͻ 형식의 두 개 전부이라면, 하나의 선택지만 가능하며, 결론은 전제들과 동일한 형식을 가져야만 한다. (373)
제론의 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틀보다 훨씬 쉽게 재현[표상]할 수 있다. 담론들의 분절들(les articulations)은 무매개적으로 명백해 진다. 그러나 이렇게 직관에 지지를 받아서 사람들은 지식의 한계들을 너무나 급속하게 도달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제론이 자신의 알고리듬과 전통적 논리학 사시에 대응점들을 주목했을 때, 그의 고유한 탐구는 소진했던 것 같다. 다른 한편 추론의 원리들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전통적 형식은 제3격의 몇몇 삼단논법들을 정당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형식은 전제들로부터 결론으로 이행하는데 필연적인 현존의 조건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론은 최선의 상황 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처해 있는 만큼이나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출발했던 순수하게 직관적인 고찰들은 단번에 사람들이 현존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증명을 제공하거나 또는 가설을 진술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현존의 조건이 효과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분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373)
2절, 계층/층위들의 논리학 Logique des classes 373
[수학에서 classe(집합)란, 여러 용도에 쓰이는데, 순서에서 자리(지위), 위계에서 등급, 공간론에서 위상, 현존에서 영역 등의 한계안의 범위를 의미한다. (59RKF)]
§220. [불(Boole, 1815–1864)의 대상들을 대수화(기호화, 대리화, 표상화): 대상화는 실재 대상과 연관 없이 논리계산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절대무나 자연수에서 계산할 수 없는 0이란 없으며 영은 대상의 방향을 가르는 기준이다. 이차원적으로 순방향(+) 역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3차이상 곱셉(지수)과 분수(복소수의 분수)처럼 기준에 따라 여러 방향이 나올 수 있다. 최소한 좌표로 (1,1) (-1, 1) (-1, -1) (-1, 1)의 영역에서 곡선(도형을 형성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한편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 길은 막혔다. 만일 논리학이 수학에 비교할 수 있는 과학을 만들어갈 폭넓음과 엄격함을 소유해야만 한다면, 논리학에게 범위를 뛰어 넘을 수 있게 할 천재의 발명이 필요하다. 그 범위 안에서 분석적 기하학의 모방이 논리학을 유지한다. (373)
이런 발명은 불(George Boole, 1815–1864)에서 유래한다. 불은 1847년에 논리학의 수학적 분석: 연역적 추론의 계산을 위한 시론(1847)을 1854년에 논리와 확률의 수학적 이론이 기초하는 사고의 법칙에 대한 탐구(1854)를 출판했다. 이 발명은 무엇보다 두 개의 논리적 상(수)항(constantes logiques, 논리적 계수係數)의 도입에 있다. 이 상항들의 연관하여 논리적 관계들의 체계가 조직화된다.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관계들의 체계가 선택된 좌표계들에 의해 조직화된다. 이 상항들의 논리적 값은 이것들을 표현하는 상징[기호]에 의해 부각된다. 하나의 상항은 0인데, 만일 y가 대상들의 어떤 등급[집합]을 지칭한다면, 사람들이 마치 대수학에서처럼 갖는 방식대로,
0 x y 또는 0y = 0;
다른 하나의 상항은 1인데, 사람들이 형식적 방정식을 갖는 방식대로,
1 x y 또는 1y = y.
논리적 곱셈을 구성하는 계층들의 조합을 고려하면서, 이런 상징들로부터 기호화작업[의미화작업]을 구별하는 것은 쉽다. 0y는 0와 y의 공통요소들에 의해 형성된 계층을 지칭한다. 곱셈의 결과가, y가 어떤 것일지라도, 0을 부여하기 위하여, 계층 0이 0(없는, nulle), 즉 논리적 무(le néant logique)를 지칭해야한다. 마찬가지로 1y가, y가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y를 지칭하기 위하여, 1과 y의 조합은 y의 확장(l’extension, 외연)에서 아무것도 결코 들어낼[제거할] 수 없다. 그 귀결로서 그것(y)은 논리적 우주(l’univers logique)이다. (374)
그런데 상징 0과 상징 1의 도움으로, 논리적 계산의 요소적 계산작업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합론의 협소한 경계들을 뛰어 넘는 방식으로 그리고 형식적 논리학의 재원들을 넓히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374)
계층[집합]들의 요소적 계산작업들은 곱하기(곱셈)과 더하기(덧셈)이다. 전자[곱셈]는 우리가 보았듯이 논리적 계층들의 어떤 수로부터 그것들의 공통적 특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그것[곱셈]은 내포들에서 더하기이다. 만일 x가 포유동물들의 계층을 지칭한다면 그리고 y가 수생동물들을 계층들을 지칭한다면, xy의 수생적 포유인 동물들의 계층을 지칭한다. 외연들의 더하기는 소위 말하는 논리적 덧셈을 말하며, 게다가 이 덧셈에서 양자가 덧붙여진 계층들은 어떠한 공통 특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했다. 불에서 덧셈은 선택적(disjonctive, 이접적)이다. 만일 x가 포유류들의 계층이라고 하고 그리고 y는 물고기들이라고 한다면, x+y 조합은 포유류와 물고기 계급들의 일체를 지칭할 것이다. (374)
기호(le signe) ㅡ[moins, 빼기]는 논리적 더하기의 반대방향의 계산작업을, 즉 빼기(뻴셈)을 지칭할 것이다. 빼기는 사람들이 고려한 모든 계층들의 보충적인 계층을 얻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만일 x가 인간들을 지칭한다면, 1ㅡx는 비인간들(non-hommes)을 지칭할 것이다. 이 동일성의 원리는, 3자 배제의 원리[배중율]의 특별한 형식하에서 이런 방정식에 의해 번역될 것이다.
x(1ㅡx) = 0. (374)
이 방정식은 원초적(primitive)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방정식은 증명될 수 있다. 방정식은 논리적 곱셈의 무매개적 성질을 표현하는 법칙의 도움으로 증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법칙에서 라이프니츠는 소위 수학적 대수학과 연관하여 논리학에 대한 대수학의 특수한 성격을 이미 인정했다. 이 법칙은 [아래] 방정식에 의해 이원성의 법칙(la loi de dualité)이다.
x2 = x
이런 이유로, 예를 들어 인간들의 계층과 두손동물(les bimanes)의 계층이라는 동일 대상들을 포함하는 두 계층의 조합에 의해 형성된 논리적 생산은, 이 요소들의 중의 하나에 동등가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x=y 이라면, xy = x = y이다. [그러면] 생산물 xx 또는 x2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x2 = x를 제기사면서, 우리는 무매개적으로
x(1ㅡx) = 0. (375)
§221. [불의 논리학, 3원성의 벤다이어그램의 8 경우(구성요소)를 여집합(공집합)을 포함하여 설명한다. - 중국의 8괘의 곤괘(坤卦, 곤삼절坤三絶)이 여집합이며, 중국에서는 부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성질들의 집합이다.]
일단 논리적 알고리듬의 기초들이 고정되면, 불은, 직관적 표상[대리]를 상징적 조합작업들의 각각에 대응하게 하려고 조심[배려]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기호들 사이에서 가능한 모든 조합들을 조작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게다가 삼각법으로(en trigonométrie) 상상계들[허수 또는 복소수로]의 사용이 그것[알고리듬]을 제시한 것처럼, 오로지 변형[변환]작업들의 마지막 해석이라는 것이다. 불의 논리학은 어떤 점에서 이법[이성]의 영역이 상상작용의 영역을 넘어서는지를 알게 해준다. 불의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연관있을 것처럼, 대수학은 산술학에 연관 있다. (375)
한 계층[집합]이 있다고 한다면, 또는 불이 말한 대로, 한 계층은 담론의 세계에서 특별한 영역의 제한작용(délimitation)이라는 것을 충분히 주목하려면 면서, 즉 선택적 상징(symbole électif x)[선택기호]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논리적 함수 f(x)를 제시할 수 있으며, 이 함수에 우리는 다음의 형식을,
f(x) = ax + b(1-x)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375)
문제는 계수(les coefficients)들 a 와 b 규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적으로 x 대신에 상징들 1 과 0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는 [다음을] 얻는다.
f(1) = a + b(1-1) = a
f(0) = a + b(1-0) = b
여기서부터
f(x) = f(1)x + f(0)(1-x)
이런 정식은 발전을, 즉 f(x)의 확장[확대](l’expansion de f(x))를 제공한다. (376)
이런 동일한 절차들에 의해, 사람들은 두 상징들 x 와 y의 하나의 함수를 위하여, 다음의 정식을 발견할 것이다.
f(x, y) = f(1,1)xy + f(1,0)x(1-y) + f(0,1)(1-x)y
+ f(0,0)(1-x)(1-y).
확대의 절차는 아리스토텔레스이래로 논리학에 모자랐던 풍부성을 형식논리학에게 기여한다. 엄격함은 형식논리학이 대수학에서 빌려온 제거의 절차들로부터 논리학에게로 올 것이다. (376)
가장 단순한 예를 다루어보자. 인간을 마치 합리적 동물로서 정의, 즉 하나의 정의에 상응하는 방정식을 구성해보자. 인간은 x이고, 동물은 y이고, 합리적은 z이다. 합리적 동물은 논리적 생산물 또는 yz이다. 여기서부터
x = yz,
또는 x-yz = 0이다. 만일 사람들은 인간들의 계층으로부터 합리적 동물을 빼면, 사람들은 없는(nulle) 계층을 얻는다. (376)
이때부터 xyz의 완전한 전개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선택적 상징들의 잡다한 조합을, 즉 잡다한 구성자들(les constituants, 구성요소)을 계속적으로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1과 0을 함수로 하는 이것들의 계수들을 규정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으로, 구성요소들은,
wyz,
xy(1-z), x(1-y)z, x(1-y)(1-z)
(1-x)yz, (1-x)y(1-z), (1-x)(1-y)z,
(1-x)(1-y)(1-z)
다른 한편, 이 구성자들의 각각에게, x-y = 0는 아래와 같은 계수들에 해당한다:
1-1
1-0 1-0 1-0
0-1 0-0 0-0 - [0-1, 0-1, 0-1, 이어야 할 것인데] --
0-0
말하자면, (계수 0에 항들을 제거한 후에), xy(1-z) + x(1-y)z + x(1-y)(1-z) + (1-y)yz = 0이다. 더하기의 법칙들에 따르면, 이런 합계는, 만일 각 항들의 각 항이 없는 것(nul)일 경우에만 없는 것(nulle)이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분리하여 얻는다:
xy(1-z) = 0
x(1-y)z = 0
x(1-y)(1-z) = 0
(1-x)yz = 0. (377)
따라서 논리방정식의 이론은 다음처럼 기초되어 있다. 즉 인간들이란 계층과 합리적 동물들이란 계층을 동일시하는 원초적 관계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계층들의 비현존을 결론으로 얻었다. [위의 구성요소들에 언어의 항목들을 대입하면]
인간, 동물이면서 비합리적이고 hommes animaux non raisonables;
인간, 동물아니면서 합리적이고 hommes non animaux raisonables;
인간, 동물아니면서 비합리적이고 hommes non animaux non raisonables;
인간 아니면서, 동물이며 합리적이다. non hommes animaux raisonables. (377)
“이리하여 각 초기 명제는 사물들의 몇몇 한정된 계층들을 위하여 현존의 부재들의 계열로서 해결되었다.” (377)
그러한 것이 계층들의 상징적 논리학의 주된 관념들이다. 이런 논리학에게 사람들은 보다 나중에, 수학들의 철학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해야만 했다. (377)
3절, 명제들의 논리학과 관계들의 논리학 Logique des proposition et logique des relations 377.
[사실(현상)들의 정태적 논리학 대 사건(실재)들의 동태적 논리학의 차히가 아닐까? (58WKA)]
§222, [불의 상징논리의 기본요소들의 성격은 존재와 비존재로 구분 이후, 기호작용(signification)에 따른 추론작업을 할 수 있다. 이는 연산과 달리, 연접, 이접, 조건(만일..)의 경우를 다룰 것이다.]
불 자신은 자신의 알고리듬의 범위를 넓혔다. 그가 논리적 계층들에게 또는 초기 명제들에게 적용하는 찰나에서부터, 그는 부차적 명제들에서도 또는 절대적 명제들에서도 성공해야만 한다. (378)
꾸뛰라가 말하듯이, 개념들과 명제들의 유비(l’analogie)는 아마도 불의 가장 아름다운 발견물일 것이다. 이 유비는 수학의 자연에 관하여 일반적 개념작업을 진행한다. “수와 양의 관념들에 전념하는 것이 수학의 본질로부터가 아니다.” 수학은 “조작작업들이 적용될 수 있는 잡다한 물질들과 독립적으로 고려되었던 그 조작작업들을 그 자체로” 다룬다[취급한다]. 수학은 정식에 관하여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변환[변형]론을 연구할 것이다. 이런 정식은 “수들의 성질들에 관계하는 문제의 해결을 하나의 해석과 더불어, 그리고 기하학의 문제의 해결을 다른 하나의 해석과 더불어, 또 동력학 또는 광학 문제의 해결을 셋째 해석과 더불어, 표상[재현, 표시]할 수 있다.” 수학의 이런 개념작업은 같은 시기에 그라스만(Grassmann, 1809-1877)이 확장이론(1844)에서 동일하게 영감을 받았는데, 불(1815–1864)은 이 개념작업을 논리학의 지평 위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는 이로부터 과학의 틀의 특이한 확장을 끌어냈다. 이 논리학은 사물들 사이에서 관계들에 전념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실들 사이에서 관계들에 전념했다. 그런데 사실들은 명제들에 의해 표현된다. 만일 태양이 전체적으로 잠식[일식]된다면, 별들은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계급들의 논리학에서 성공했던 확대의 동일한 절차에 따르면 명제적 방정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절차들에 해결의 동일한 절차들을 적용하기 위하여, 두 상징들 0과 1에게 명제들을 위하여, 절차들을 진리의 시간에 연관시키면서, 한 유효한 의미화[기호작업]을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1은 시간의 총체를 지칭할 것이고, 그 총체에서 명제는 진리이며, 진리의 유보 없는 긍정이다. 그런데 0은 시간의 무(le néant)[정지]를 지칭할 것이고, 따라서 진리 또는 명제의 부정이다. 이접 명제를 번역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양자택일들의 합을 1과 동일하게 한다. 조건명제를 번역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첫명제가 진이라고 하는 비결정적 시간인 v 동안에, 둘째 명제인 y는 따라서 마찬가지로 진리, 즉
y = vx 이다. (378)
§223. [불의 알고리듬을 확대하면 새로운 관계체[un corps relatif]가 등장할 것이다. 관계식(xRy)이 창안되어 이 모르간과 러셀, 그리고 퍼어스와 슈뢰더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것이 결국 전부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잡다한 개별자 또는 개별자의 계층들을 주목한다면, 그리고 관계들이 있다면, 우리는 논리적 학설의 새로운 체(틀)을 구성할 수 있다. 예로서 이항관계(la relation binaire)를, 즉 개체들의 짝 또는 계층들의 짝 사이에,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확립된 관계를 들어보자. 우리는 관계를 검증하는 짝들 고찰들을 계산의 토대로서 얻을 것이다. 1과 0이라는 논리적 상징들 중에서, 하나는 모든 짝들의 일체, 즉 관계들의 세계를 지칭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짝 전체의 부재, 즉 관계의 무(le néant)이다. 이렇게 생각된 관계의 관념은 논리적 확장(외연) 관념의 새로운 형식이다. 관계의 관념은 확대와 제거의 계산작업 절차들을 셋째로 적용을 허락한다. 그러나 관계 관념의 특수성은 몇몇 계산 작업 양태들의 독창적 성격들 속에서 나타난다. 사람들이 짝들의 질서를 전도시켰을 때, 사람들은 한 관계를 반대 관계로 변경한다. 몇몇 관계들은 그것들의 반대 관계에 동일하다. 형제 또는 친구의 관계(대칭 관계)에 비하여, 반면에 다른 관계들은 마치 아버지 관계처럼 (비대칭 관계) 비가역적이다. 그런데 또한 사람들이 관계들을 서로 함께 조성할 때, 사람들은 관계적 생산을 얻는다. 그것의 자연[본연]에 의하여 관계적 곱셈작업은, 논리적 곱셈작업의 차이에 비추어서, 교환가능하지 못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아버지의 형 과 형의 아버지를, 자선가의 친구 와 친구의 자선가를 혼동할 수 없다. 이 관점으로부터, 명백히 밝히는 것의 본질적 경우는 이런 경우인데, 여기서 관계 그 자체에 의한 관계적 생산은 이런 관계와 동일하다. 우리 친구의 친구는 우리 친구가 필연적으로 아닌 반면에, 우리 형의 형은 우리 형제이다. 형제애의 관계는, 모르간(Morgan, 1806-1871)에 의해 도입된 표현에 따라면, 추이적(transitive, 推移的)이다. 이런 예들은, 그가 논리학을 계층들의 논리학에 독립적이게 하는 새로운 특성들을 관계들의 논리학 속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러셀(1872-1970)이 그렇게 행했던 것처럼, 특별한 상징[기호] R을 도입하면서 독립성에 전념하는 것은 철학적 관심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xRy는 x 와 y 사이에 관계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계층들에 의해 관계들을 정의하는데 만족하는 대신에, 퍼어스(1839-1914)와 슈뢰더(1841-1902)가 또한 그렇게 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관계들에 의해 계층들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379)
4절, 수학들의 논리적 번역 La traduction logique des mathématiques 380.
§224. [수로 생각하는 대수학, 수가 아닌 상징으로 계산하는 대수학의 차이.]
논리학의 대수학적 구성은 어떤 반향(la répercussion)을 수학들의 철학적 개념작업에 근거하게 할 것인가? (380)
무엇보다 우선, 사람들은 논리학의 대수학 과 수학의 대수학을, 수학의 일반성 전체 안에서 그 자체로서 생각된 학설의 동일한 몸체 안에서, 재통합할 것을 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재통합은 마치 하나의 병치처럼 단순하게 이해될 것이며, 이 병치는 두 분과학문들의 동일성을 전혀 편견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그 두 계산들의 접근이 서로 다름들(les dissemblances)을 깨뜨리게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일어난다. 이리하여 형식적 연역의 모든 전형들의 연구를 제안하는 보편 대수론(A Treatise of Universal Algebra, 1898)에서,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는 a + a = 2a라는 수학적 대수학들 일반으로부터, a + a = a라는 상징적 논리학의 대수학을, 즉 더하기의 특수한 법칙을 갖는 비(非)수적(algèbre non numérique) 대수학을 구별한다.
§225. [상징계산에서 불의 방식의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의 표기법을 페아노가 정리하였다. 이제 항들의 내용을 생각하기보다 항들 사이의 관계만을 교육적이고 발견적인 방법을 창안하다.]
그러나 논리학과 수학들의 병치는 새로운 시대에 소개될 수 있다. 수학들에서 빌려온 알고리듬의 입문이 허락하는 진보의 형식적 논리학을 이용한 후에,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일종의 충격에 의하여 새로운 진보들의 수학을 이용하기를 시도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는
논리학이 자신의 모델을 넘어서면서 실현했는데, 증명작업의 요소들과 조건들을 정확하게 나열하는 배려[정성]을 수학보다 더 멀리 밀고 나간다. 이때에 불의 분과학문들에 의해 채택된 상징 언어 속에서 수학의 여러 다른 분과학문들의 내용 전체를 진술할 이유가 있다. (380)
이탈리아 학파는 고려해야할 이런 작품을 완성하는데, 페아노(Peano, 1858-1932)에 의해 제안된 표기법의 원리들에 따라서,성공했다. 그리고 작품은 풍요롭다. 이렇게 수학들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은 실재적으로 수학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종종 지식이 아닐지라도 정신 자신이 자신의 고유한 작업 속에 참여한 전체에 대하여 충만한 의식을 정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형식]은 그것들의 추론의 동일한 형식들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연역법들의 상항[상수] 체계를 태어나게 하는 특수한 요청들[공리들]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페아노가 쓰기를 “수학적 논리학은 수학의 모든 명제들을, 심지어는 매우 복잡한 명제들을, 가장 작은 수의 협약들과 더불어 표상한다. 이 명제들의 일상 언어로 번역은 피곤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 논리학은 대수적 상징 문자화[글쓰기]로, 일종의 속기표기(tachygraphie)로 단순하게 번역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호들의 법칙들을 그리고 명제들의 변환[변형]들의 연구하게 허용한다.” (381)
그것이 기관(논리학)처럼 정식(la Formulaire)을 소개할 수 있는 한에서, 페아노와 그의 협력작들의 노력[노동]에 의해 끊임없이 넓혀지고 완전하게 되는, 논리계산은 현존한다. 그리고 논리계산은 신중한 이의제기 전체를 막아주고 있다. 이것이 과학을 위한 교육적인(didactique) 방법, 인식론을 위한 발견적인(heuristique) 방법이다; 논리계산은 논리학 또는 수학의 잡다한 형식들을 취급하며, 그러나 이것[논리학과 수학]들의 내용의 동일성을 결단함이 없이 다룬다. 이 방법은 과학의 원리들[형식들]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분명한 그것들의 표현으로 귀착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계산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자에게 그것이 가능한 만큼 멀리까지 정교하게 밀고 나갈 질료[물질]을 제공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증과학의 영역 속에 남는다. 그리고 페아노의 협력자들의 중요인물 중에 하나가 쓴 것에 의하면, “수학들의 각 가지[분과]의 근본적 전제들에 대한 진술을 가능하게 한 것은, 페아노와 그의 협력자들에 의해 채택된 논리적 상징중의의 최소한의 장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환원되고 단순화된 형식 하에서, 그리고 부수적[보조적]이고 그리고 이런 귀결로 가장 변화 많고 가장 이질적인 해석들을 담당하게 허용하는 모든 요소를 빼버린 것이다.” (381)
§226. [논리 계산의 방법에서 논리계산의 체계로 이행을 시행한 프레게는 상징 알고리듬을 창안하였다. 프레게는 논증을 함수로 바꾸었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 철학의 문제는 논리계산의 방법(la méthode logistique)을 저넘어 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논리계산의 체계(un système logistique) 속에서 자기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체계에서 용어들(les notions)은, 공통의 알고리듬의 용법에 의해 접근되기까지, 이제부터 동일한 종합의 통일성 안에 기초 지워진다. 수학의 명제들은 논리학의 명제들로 귀착되었다. 그런 이유로 수락의 진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특수한 원리들에 호소해야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논리학의 이론이 이루어졌기에, 수학의 이론은 단번에 이루어져 있게 될 것이다. (382)
논리 계산의 방법에서 논리계산의 체계로 이행, 이것을 첫째 시행한 이가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이다.그는 스스로 자신의 상징적 알고리듬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 개념, 함수, 관계의 근본적 관념들을 재주조[개정] 위에 지탱하게 하였다.그는 철학적 모든 범위를 논리학에게 되돌려주고서, 사유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der Sinn)으로부터 사유가 실재성으로 지적하는 것(die Bedeutung) 사이의 구별을 강조한다. 판단 속에는 주장이 다른 것이 있듯이, 그것의 내용의 재현[표상]도 그 만큼 다른 것이 있다. 그거에 속하는 진리의 가치가 있다. 다른 한편, 이렇게 생각된 논리학에게, 프레게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학에 의해서 수학을 다시 연결하는데, 그는 그 분석학을 명제로부터 얻는다. 그리고 그 분석학은 1<2[1은 2보다 작다라는] 이런 확언[주장]하는 만큼이나, 또한 시저가 골지방을 정복했다[Cesar a conquis la Gaule]는 다른 확언도 말할 가치가 있다. 그는 기호( )에 의해 그것들을 대체하면서, 시저와 골지방과 1과 2를 계속해서 제거하였다. 이렇게 대체된 부분은 일종의 변항이며, 이 부분은 논증(l’argument)이다. 다른 부분은 이런 연관하여 함수(une foction)일 것이다. 개념은 단순한 함수이다. ( )는 ‘골지방을 정복했다’ 또는 ( )는 <2일 것이다. 관계는 두 원자가(deus valences)의 함수이며, 이 함수는 포화되기(saturée) 위하여 두 가지 논증들을 필요로 한다. ( ) 정복했다 ( ); 또는 ( ) < ( ). (382)
우리는, 프레게 그 자신에게서, 논리학의 개혁 과 수학들과 더불어 접근이 끌어낸 귀결들을 따르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이 갖는 본질적인 것을 위하여, 러셀에게서독립적인 방식으로 동일한 질서의 결론들에게로 이끌려 졌던, 이것들을 재발견할 것이다. 독창적 알고리듬을 새로운 값을 치러 창조하는 대신에, 러셀은 이미 수학자들과 논리학자들에 의해 도달했던 결과물들을 토대로 삼는 이런 장점을 지녔다. 역사 속에서 프레게의 자리[지위]를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히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또한 몇 가지들을 고려한다면 선구자의 작품이라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 연구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수학적 철학은, 수학 원리(1910-1913)의 제1권에서 러셀에 의해 제시되었던 수학적 철학이다. 이 철학은, 슈뢰더의 거작이 그것을 옮겼다는 점에서 [꾸뛰라의] 논리학의 대수학(1905)을 받아들이고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 철학은 페아노가 구성했던 수학들의 상징적 형식화하기를 받아들이고 발전하였다. 결국 이 철학은, 이들[슈뢰더와 페아노]을 접근하게하고 그리고 지배하기 위하여, 칸토르(1845-1918)의 논문 「집합들의 이론(1895)」을 여기에 덧붙여야 한다. (383)
5절, 초한수 와 연속 Le transfini et le continu 383
§227. [보이스-레이몬트(1831-1889)의 초한수를 포함하는 집합론을 전개. - 수렴과 발산 – 보이스-레이몬트는 가부번 무한에서도 집합의 요소들의 대응한다고 본다. ]
집합들의 이론으로부터, 어떻게 수학자들이 논리학자들을 마중하였는지를, 어떻게 수학자들 자신이 중간항을 사용했던 용어들을 정교하게 했는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특성값들(les traits caractéristiques)을 구별해내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한다. 우선 이런 용어들이 변증법적 파괴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용어들은 분석의 제조술[기술]에서 이것들은 근(根)을 갖는다는 것을 잘 확립하는 것이 우리들 목표에 본질적이다. 이로서 왜 우리가 보이스-레이몬트(Bois-Reymond, 1831-1889)에 의해 함수들 일반이론(1882) 속에 소개된 몇몇 관념들을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유이며, 우리를 초한수 용어의 분석적 정교화에 참석하게 하는 이유이다. (383)
보이스-레이몬트는 분석학을 마치 함수들의 특수(spéciale)이론과 일반(générale)이론을 허용[포함]하는 것처럼 고려한다. “전자[특수이론]는 복합변수들의 함수들을 매우 일반적 방식으로 연구하면서, 규정된 성질들 함수들을 제시하는 것을, 그리고 초월적인 것들의 거대한 계층들의 자연[본연]을 특히 대수함수들과 관계들을 갖는 계층들의 자연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것이 바이에르스트라스(Weierstrass, 1815-1897)와 메레(Méray, 1835-1911)의 분석학이며, 완전수에 근거하여 구성될 수 있는 분석학이다. (383)
반대로 일반이론에서는 함수의 관념에게 어떠한 제한을 부과할 이유가 없다. 예를들어 보이스-레이몬트의 작업들에서 유지해야 했던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거기에서 “여러 다른 무한한 계산작업들의 수렴과 발산의 공통 조건을” 연구할 것이다. (383)
만일 x가 실재적 양(+)의 값들에 의해 무한정하게 증가한다면, f(x)는 무엇이 되는가? 무엇보다 먼저, 차이 f(x1) - f(x)는, (x1> x, 그리고 무한하게 증가하는 x), ε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달리 표현하자면 그 차이 f(x1) - f(x)가 극한 0(zero)이라고 하더라도, 양 ε의 하부에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면 f(x)가 변수의 무한정한 증가를 위하여 규정된 하나의 극한한계]를 갖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쉽다. 이 경우에, 보이스-레이몬트가 수렴의 일반 원리라고, 계열들이 지배하는 원리와 유비에 의해서, 부를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384)
이제 발산의 경우를 고찰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된 한계를 소유하지 않는 함수는, x가 무한정하게 증가할 때, 두 고정된 양들 사이에 포함되어 남아있는데, 그 고정된 양은 무한정하 진동의 경계를 표시할 것이고, 보이스-레이몬트는 그것을 비규정성의 한계들(limites d’indetermination)이라고 부른다. 이제 이런 경우들이 남는데, 그 경우에서 함수들은 변수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무한정하게 증가한다. 함수들은 모은 한계[극한]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함수들이 계산을 회피했다거나, 그리고 여기서 보이스-레이몬트의 탐구들이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심오하다는 결과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결과로, 계열들의 이론에서 발산의 규칙들과 더불어 새로운 유비에 의해서, 우리는 무한정하게 증가하는 함수들 사이에 비교를 확립할 수 있다. 그리고 증가의 속도에서 정도 차이들을 규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f(x)는 φ(x) 보다 더 신속하게 증가한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충분하게 큰 x으 값 X로부터, f(x)> φ(x)이라면, 그리고 만일 f(x) - φ(x)의 차이가 x와 더불어 증가한다면 말이다. 보이스-레이몬트가 덧붙이기를, 적용들은 함수들의 다방면으로 빠른 증가에게 특별한 이익[관심]을 부여할 것이다. 만일 가장 빨리 증가하는 함수는, f(x)/φ(x)의 나눈 몫(quotient)이 한계없이 동등하게 증가하는 만큼이나, 상위의 속도를 제시한다면 말이다.” (384)
이것들은 무한계 계산(le calcul infinitaire)에서 토대로 쓰이는 고찰들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함수들을 x로, 즉 하나의 계열로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f0(x) … f1(x) … f2(x)
마치 각각의 함수가 모든 앞선 것들보다 가장 큰 무한을 갖는 것처럼, 그리고 y 계열 속에 들어가는 모든 함수는 규정된 자리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완전수의 계열에 비교할 수 있는 함수들의 계열을 얻는다. 완전수 n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보다 큰 n+1의 완전수가 현존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형성작업의 절차 덕분에, 양[+]의 함수가 아무리 빨리 증가하더라도,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함수가 현존한다. (385)
그러나 이 유비가 완전수들의 무한 계열과 증가하는 함수들의 무한 계열 사이에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은 쉽다. 함수 φ(x)로 집합 E를 구축해보자. 마치 “이 집합의 어떤 두 함수들이 서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게다가 이 함수 φ(x)의 어떤(quelconque) 증가하는 함수가 주어지면, φ(x)보다 상위인 φ(x)의 함수가 집합 안에 현존한다.” 이때에 우리는 보렐(Emile Borel, 1871-1956)이 “증가하는 전형들의 사닥다리”라 부르는 것을 가질 것이다. 이런 사닥다리의 형성은 우리에게 집합의 영역(la sphère, 구체 球體)을 넘어서기를 강요할 것이다. 완전수들의 집합과 유비로서 사람들은 집합의 영역에게 무한정의 관념(이것을 칸토어는 가부번 집합ensemble dénombrable이라 부른다)을 제한할 수 있었다. 이 사다리의 형성은, 보렐(Emile Borel, 1871-1956)의 매우 깔끔한 표현들을 다시 다루기 위하여, “무한정하게(indéfiniment, 영구히)라는 단어의 의미를 넓히는 논리적 필연성(la nécéssité logique)을 부과한다. 게다가 이 혼동을 회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단어의 의미를 변모하는 것을 회피할 것이다. 그리고 초한수로(transfiniment)라는 새로운 단어를 도입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보이스-레이몬트의 절차의 적용을 초한수로 반복하는 것, 이것은 사람들이 증가하는 전형들의 가부번 무한성을 가질 때마다, 사람들이 이런 무한성을 얻었던 그 절차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매번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리라. 귀결로서, 그리고 정의 자체에 의하여,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전형들의 비(非)가부번 무한성(une infinite non dénombrable)을 얻는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단지 비(非)가부번 무한성을 얻는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그런 것의 일부를 남김없이 또한 동일한 절차를 적용해야할 것이다.” (385)
§228. [레이몬트를 넘어서 칸토어가 무한수 계열들을 열거하면서 초한순서수(transfini ordinal)를 고안하였다. 수 ω의 창조로부터 둘째 원리(무한하게 무한한 계열)를 발견한다.]
보이스-레이몬트는 분석학과 실증과학의 질서를 따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반대로 칸토어는, 수학자들이 고려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 관념의 토대 위에서, 특별한 탐구들에 의해 동등하게 인도되었던 개념작업들을 조직화한다. 이리하여 마치 선천적 구축작업의 귀결들처럼 무한정과 초한 이라는 근본적 구별들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385)
칸토어에게서 집합(l’emsemble)은 요소들의 재통합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것[재통합]에 대해 단지, 어떤 요소들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이 요소가 집합에 속한다는 것을 재인식할 수 있고 또는 적어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안다. 집합 M은 우리 정신 속에서 수의 형식 하에서 스스로 투사된다. “우리는 일반적 용어를 거듭제곱(puissance,잠재태) 또는 M의 기수(nombre cardinal)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일반 용어를 M으로부터 연역하는데, 우리 사유의 역량의 도움으로, 차이들인 m의 자연[본연]으로부터 그리고 이 차이들의 질서로부터 추상화하면서 연역이 이루어진다.” (386)
이 거듭제곱의 측정은 다음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다음을 말한다. 두 집합 M과 N은 등가(équivalents)이며 … 이것들을 연합하는 것이 가능할 때, 그런 방식으로 각 요소에게 하나[M]는 하나이고 다른 것의 유일한 요소이며 … 두 집합들의 동등가는 이 집합들의 기수들의 동등성에 대한 필연 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386)
이런 개념작업들은 자연적으로 유한한 수들에게 적용된다; 한 집합의 유일한 요소로서 고려된 분리된 대상에게, 우리가 일/하나(un)라고 이름 부르는 대상이 마치 기수처럼 상응한다. 이 요소로부터 다른 요소들의 계속적인 첨가는 유한한 기수들의 무한계의 계열을 제공한다. 이 유한한 기수들의 항들은 그들 사이에 완전히 차이가 난다. (386)
형성작업의 이런 원리는 1, 2, 3 … v 이라는 수들의 집합(I)를 구성한다. 이 수들은 완전히 유한하며, 이 수들 중에서 사람들은 최대치(maximum)의 수를 발견하기 못한다. 왜냐하면 n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n+1을 항상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들의 집합은 무한하다. 따라서 수학적 무한은 현존한다[있다], 사람들이 계열들의 내부에서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마치 퐁뜨넬이 그것을 만드는 것이 불행했다고 하던 것과 같다. 그것은, 사람들이 현실적 무한에 또는 칸토어가 ω라고 지칭할 초한수에 도달했다고 하는 계열에 대해, 마지막 이후(apres)이지, 마지막을 향해서(vers)가 아니다. 칸토어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그 새로운 수 ω를 마치 한계[극한]처럼 스스로 재현[표상]할 수 있다. 그 극한을 향하여, 수들 v가 향하고 있다. ω가 모든 수들 v를 따라갈 첫째 완전수일 것이라는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조건에서이다. 따라서 첫째 완전수를 모든 수들 v보다 우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386)
수 ω의 창조는 새로이 계속적인 첨가 절차를 적용하도록 허락한다. 이 절차 덕분에 게 사람들은 수들은 무제한적이 된 계열을 얻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차례차례로 얻도록 허락하는 형성작업의 둘째 원리를 가질 것이다.
ω + 1, ω + 2, … ω + n : 2ω, 2ω + 1 … ; 3ω … nω.
ωω, ωm, ωω, ωω+n, (ωn)ω , (ωω)n , (ωω)ω, etc. (387)
둘째 계층의 수들의 무한히 무한한 계열들(les suites infiniment infinies) 은, 첫째 계층의 수들 보다 더 많지 않기에, 최대치의 수를 갖지 않는다. 이 계열들은 귀결로서 그것들의 항들의 총체를 표현하는, 그리고 항들의 각각보다 우월하는, (하나의) 수의 현존을 함축한다. 이로부터 형성작업의 셋째 원리가 나올 것이다. (387)
이리하여 칸토어는 추상 속에서, 보이스-레이몬드의 분석학이 마치 “수학적 사실들”처럼 제시하고자 허용했던 관념들을 만난다. (387)
§229. [칸토어는 서수적 용법보다 거듭제곱(잠재태)에서 무한을 생각하였다. ∞ +1 = ∞(무한+n도 무한)이고, ∞ -n =∞(무한 빼기 –n도 무한이다) 칸토어는 모든 무한의 용어를 하나로 만들었다(?)]
칸토어의 독창성은 거듭제곱이라는 용어의 체계적 용도가 무한의 연구에서 인도했던 결과들에서 특히 표출되었다. (387)
가장 단순한 무한 집합을, 즉 자연수들의 계열에 의해서 형성된 집합을, 고려해보자:
1, 2, 3, … n. (387)
완전수 각각에게 2배수(le nombre double)가 상응한다. 따라서 짝수들의 집합은 자연수들의 집합에 등가이다. 홀수들의 집합은 짝수들의 집합에 등가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즉 하나의 합리수[유리수]는 두 완전수의, 즉 분자(numérateur)와 분모(dénominateur)의 규정작업을 허용한다. 규정된 점으로부터 완전수로 된 수평선과 수직선이 허용하는 양방향 교차표(un tableau à double entrée)를 다루면서, 사람들은 두 수들의 조합들의 각 조합이 완전수의 계열에 상응하게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대수학적 수들의 계열에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증 수학 속에 도입될 수 있은 이런 결과들은, 마치 데데킨트(Dedekind, 1831-1916)가 그것을 주목하게 했던 것처럼, 자연수들의 집합에 등가인 모든 수들을 동일한 계층 속에 줄 세우기에 이른다. 이 계층은 셀 수 있는 집합들의 계층일 것이다. (387)
그러나 여기서 단순한 언어적 접근은 중요하지 않다. 계층들의 논리학과 집합들의 논리학 사이에 내밀한 유비가 있다. 만일 사람들이 홀수들의 집합과 짝수들의 집합을 결합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수의 집합을 얻는다. 그런데 전체 집합은 부분집합들의 각각에 동응가이다. 이로부터 이원성의 법칙 또는 동어반복의 법칙에 비슷한(analogue, 상사적) 조합의 형식이 무매개적으로 결과 되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א0는 셀수 있는 집합들의 거듭제곱을 지칭하는데) 다음을 얻는다.
0א + n = א0
n x א0 = א0
א0 x א0 = א0 .
다른 말로 하면, 계층들의 논리학과 수들의 논리학(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비수적 대수학과 수적 대수학) 사이의 분리의 기준(le criterium)은, 수학의 내부 자체에서, 초한수들의 계산과 유한 수들의 계산 사이에 현존하는 구별의 표시가 된다.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는 공리(l’axiome)는 유한 수들에서 진리이다. 반대로 무한 집합의 특성이라는 것은, 그것이 그 집합 자체의 총체적 부분(적분의 일부)이라는 것이다. 집합들의 이론은, 명석하고 판명한 자격으로, 파스칼과 칸트가 그것을 이미 마주쳤던 대로, 무한의 철학적 용어를 합체한다(incorporer). (388)
§230. [바이에르스트라스가 무리수의 현존을 밝힌다. 초한수도 현존이라 할 것 같다. 분석학에서 한계점을 예측하는데 쓴다. ]
A와 B라는 두 수들 사이에 포함된 간격들의 체계적 참여[나누어가짐]에 의해, 합리 수[유리수]들이 두 수들의 간격을 소진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보게 해주면서, 바이에르스트라스(1815-1897)는 비합리수[무리수]들의 현존을 명증하게 완성했다. 이리하여 그는 예를 들어 0과 1사이를 포함하는 실재적 수[실수]들의 집합과 합리수들의 집합 사이에 상응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성이라는 것을 확립했다. 실재적 수들의 집합 C, 즉 선형 연속(le continu linéaire)은 일차 거듭제곱보다 우월한 거듭제곱을, 또는 셀 수 있는 집합들의 거듭제곱을 갖는다. 이런 집합 C의 거듭제곱을 칸토르는 연속의 거듭제곱(puissance du contunu)이라 불렀다. 그는, 셀 수 있는 집합들의 비교를 위하여 그에게 사용했던 절차에 유사한 절차에 의하여, 거듭제곱이 동일한 것으로 남아있음을 보게 했는데, 사람들이 집합에 속성 부여한 차원들의 수가 어떤 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두 연속 집합들 사이에 상응의 연속성을 추상화한다면, 1차의 연속 집합들과 2차(3차)의 연속 집합들 사이에, 그리고 하나의 변항의 함수들과 여러 변항의 함수들 사이에 차이는 없다.” (389)
한계점(point-limite)이라는 근본적 관념을 도입하면서, - 다시 말하면 이 집합에 속하는 점즐의 무한 수가 발견되는 이웃[가까이]에서 집합의 점 – 칸토어는 마치 실재 수들의 집합과 같은 셀 수 없는 집합과 마치 합리적 수[유리수]들의 집합과 같은 셀 수 있는 집합을 분리하는 조건들을 추상적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이리하여 연속에 대한 분석적 정의를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연속집합은 모든 한계점들을 포함하고, 그리고 이것의 모든 점들은 한계점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집합은 완전하다(parfait). 게다가 그 집합은 잘 연쇄되어 있다(bien enchaîné), 다시 말하면, dl 집합의 p0 와 p 라는 어떤 두 점들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E 속에서 점들의 계열을, 즉 p1, p2… pn (유한한 수 n으로서)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이어지는 두 점들의 거리들이 … 주어진 수 ε의 모든 하부들에 있는 것처럼 [주어지고] 그리고 이러한 것은, 이 수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주어진다.” (389)
6절, 논리계산의 실재론 Le réalisme logistique 389
§231. [수학이 논리학을 포함하는 논리계산을 발명하다. 논리적 대상이 우리 바깥에 현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실재론의 주장들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이때부터 상응하는 동일한 관계 위에 토대가 된 것으로 발견된다. 그 관계에 산술학자의 유명론은 수의 서수적 개념작업으로부터 기수적 개념작업으로 이행을 위하여 한 이론에 호소하게 한다. 그 이론의 지평은 요소적인 서수 산술학의 영역을 훨씬 많이 넘어선다. 그리고 그 학설에서 유한한 수들의 이론은 특별한 경우의 자격으로만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철학적 관심이 과장될 수 없는 만남에 의하여, 이 이론은 논리학의 대수학이 정교하게 만든 틀들 속에 다시 들어간다. “집합들의 이론은, 그 이론의 가장 일반적인 부분에서 계층들의 온논리학(la Logique)고 혼동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다른 부분들에서 집합들의 이론은 전적으로 관계들의 온논리학(la Logique)이다.” 따라서 수학은, 논리학과는 다른 원리들에 호소함이 없이도 가장 방대한 평면 위에 구성되었다. 이로부터 수학 철학의 방향정립에서 근본적 변화가, 즉 유명론과 더불어 가장 호기심 많은 방식으로 대조하는 실재론으로 회귀가 나온다. 이 유명론은 산술주의의 피할 수 없는 귀결이 될 것 같다. (390)
한 번 더 우리는 역사에게 기대하지 않은 이런 방향전환들(cette revirements)의 비밀을 물어야 한다. 이 방향전환들은 처음으로 역사 과정에서 획일성과 연속성을 물어야 한다. 계층의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생겨났다. 생물학적 계층화작업[분류작업]의 초벌의 초기용어들에 의해, 그리고 그것의 요소들로 담론들의 해체작업의 의해, 암시되어 있어서, 이 계층의 용어는 논리적 존재론의 구성작업으로 인도했다. 일반화의 절차 또는 실체의 관념은 그 자체들 속에서 이런 존재론주의(cet ontologisme) 함축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다. 반대로, 만일 실체들의 인식이 개별적 대상들의 직관에 제한하는 데 있다면, 일반화의 진보는 정신이 체계적으로 존재 자체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말했던 계층 관념에게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여기서 그것을 강조해야 하는데, 즉 그것은 자연적 과정의 전도(l’inversion)이다. 이 과정에 의해 인식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이행한다. 즉 그것은 일반적인 것이 원리가 되고 개별적인 것이 귀결이 되는 질서의 창조(la création)이다. 결국 이것은 이런 질서에게 부여한 형이상학적 공인(l’investiture)이며, 이때 사람들은 칼리아스의 실체성을, 즉 우시아(l’οὐσία)를 인간(l’homme)에게 거슬러 올라가게 하면서이고, 또 특수한 본질을, 즉 계층의 실체성을 상상하면서 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포함되어 있는 이런 해석을 스콜라 철학은 하나의 체계를 만들기 위해 분간했는데, 그 체계는 수세기 동안에 정신들[스콜라학자들] 위에 그것의 지배권을 행사했었고, 그리고 그 체계는 사람들이 철학자들의 상식(sens commun)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을 형성했다. 게다가 이런 전통은 이것으로부터 완전하게 중단된 적이 결코 없었고, 그 증인인 리드(Thomas Reid, 1710-1796)의 순진한 실재론이다. 그것의 영향은 가장 반대되는 학파들의 앵글로색슨 사상가들에 관하여 우리들의 시대에도 잘 알아 불 수 있다. (390)
§232. [수학에서 실재 또는 현실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
그런데 수학적 영역에 관한 것을 위하여, 상식에서 실재론은 모순처럼 나타나는 난점들에 부딪혔다. 근대 수학적 과학은 무한성과 연속성의 근본적 관념들 위에 근거할 때, 수학적 대상들의 초월적 현존을 어떻게 인정하는가? 실재론적 직관은 다음을 요구한다. 즉 직관 앞에 위치한 본질[본징]들이 유한 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본징들이 서로서로 구별되어 있으며, 이 본징들은 신중한 계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알고 있는데, 라이프니츠처럼 그리고 심지어는 칸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권위를 인정하기에 가장 잘 맘에 준비가 되어있었던 철학자들이 근대 수학의 성공에 의하여 고대 존재론의 틀들과 단절해야하도록, 공간과 시간을 연관들의, 즉 정신의 형식들의 체계들로 다루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반대로 19세기 후반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수학적 인식론을 고대 실재론의 의미(le sens, 방향) 안에서 방향을 잡았고, 그리고 마치 아리스토텔레스 그 자신처럼 현실성의 영역을 유한과 불연속에 제한하였다. (391)
이리하여 집합들의 이론이 다루어야만 했던 중심적인 중요성이 설명된다. 수 세기의 습관들이 인간 정신 속에 매우 깊이 뿌리내렸던 실재론은 제조론[기술론]이 자기 발전의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게 되자마자 그 자체로부터 되살아났다. 칸토어와 더불어, 주어진 항들의 다곱성(une multiplicité)은 무한과 연속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형식적 논리의 언어 속에서 연속성과 무한을 번역하기에 성공한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때를 맞추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점들의 다곱성이 주어지는 것처럼 다곱성이 스스로 재현되는 것이, 또 공간과 시간에게 그 귀결로서 운동에게 절대적 실재성의 특성을, 뉴턴이 그것들에게 인정했지만 근대 철학이 그 실재성을 정당화 할 수 없었던 특성을 되돌려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391)
러셀의 체계 속에 스콜라적인 실재론이 뉴턴의 실재론과 재결합한다. 그러한 귀결에 따라 수학 철학은 또한 과학의 핵심에 침투한다. 만일 과학자가 형이상학자에게 수학과 분석학의 용어들에 대한 논리적 해결에 관한 문제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자유롭다면, 과학자는 기호화작업을 고정하는데 스스로 거부하는 것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 기호화작업에서 그는 시간, 공간, 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이다. 러셀에 따르면, 만일 공간, 시간, 운동이 정신의 성질들에 상대적이라면, 기하학과 기계학[역학]은 그것들의 진리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관념론은 그가 그것에 부여한 해석에서, 심리학적 본질이다. 그는 과학의 가치를 개인적 통찰의 주관성으로 환원하지 않을 수 없다. 기하학과 과학이 진실한 과학이기 위하여, 이것들은 우리들 바깥에 현존하는 대상을 가져야만 한다. 공간은 초월적 실재성을 가져야만 하고, 그리고 초월적 본징들은 효과적으로 그것과 교체될 수 있어야 한다. (392)
§233. [러셀의 실재론: 러셀은 지성적(알수 있는) 원자론이 실재하는 것이라 한다. ]
따라서 글자 그대로 사유[지성]의 세계(κόσμος νοητός), 즉 합리적 본징들의 세계가 현존하며, 마치 감각적 자료들(les données)의 세계, 즉 감성의 세계(κόσμος αἰσθητός)가 현존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두 세계는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한편에서 복잡한 명제들은 구성하는 부분들로 해체되고,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한편의 형체적 모임들은 요소들로 나누어진다. 러셀의 실재론은 원자론(un atomisme)이다. 과학의 내용을 구성하는 점진적 연역법의 진리는 이런 연역법이 중단되어 매달려 있는 항들의 또는 단순한 연관들의 기초위에 있다. (392)
게다가 러셀의 지성적[논리적] 원자론은 감각적 원자론의 틀들을 넘쳐난다. 그는 무한성과 연속성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실재성의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거짓의 가치들에도 넓혀진다. 왜냐하면 이런 가치들과 저런 가치들은 초월적 논리학을 위한 대상들이다. 거짓의 초월적 현존도 있듯이 진리의 초월적 현존도 있다. 하나는 허위성이란 그것의 성질과 더불어 무매개적 직관 속에 주어져 있으며, 이는 마치 다른 하나가 진리의 성질과 더불어 주어져 있는 것과 같다. (392)
적어도 우리는, 러셀이 가끔은 당화하게 하는 언어를 이렇게 설명하게 된다. “필연성에 대한 칸트의 이론은 … 근본적으로 거짓으로 나타난다. 어떤 의미에서 전체는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소위 명제는, 사람들이 명제를 몇몇 전제들로부터 연역할 때, 증거 된다. 그러나 전제 자체들을 아주 단순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리하여 전제들이 결론을 함축하는 명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모든 전체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어떤 진실한 명제도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명제가 거짓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또한 바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붉은 색은 색깔이 아니라 취향(un goût)일 수 있을 것이다. 진리인 것은 진리이고, 거짓인 것은 거짓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필연성은 논리학적 용어라기보다 오히려 심리학적 용어일 것 같다.” (393)
1904년에 러셀은, 진리 문제의 현존을 부정하면서, 마이농(Alexius Meinong, 1853-1920)에 대한 아름다운 작품들의 기나긴 비판적 연구를 끝냈다. “정확하게 붉은 장미들과 흰 장미들이 있는 것처럼 진실한 명제들도 있고, 거짓 명제들도 있다. 믿음(la croyance)은 명제를 대하는 어떤 태도이다. 명제들이 진리일 때 이 태도는 지식(savoir)의 이름을 취하고, 명제들이 거짓일 때 오류(erreur)라는 이름을 취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그런 것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우리에게 진리로 향하여 밀고 나가게 하는 선호도가 있는데, 그 선호도는 도덕의 최종 명제를 토대로 삼아야 한다. 진실한 명제들을 믿는 것이 착하고(bon), 거짓 명제들을 믿는 것은 서툴다(mauvai). 진실한 명제를 [사람들은] 바란다(희망한다). 게다가 반대의 경우에,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나쁘다(mal)고 생각할 근거[이유]가 없다.” (393)
(24:04, 59RLF) (20:21, 59RMF)
# 인명록 *** ***
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510? 칼리아스(Callias, Καλλίας), 아테네 정치가, 미칼 곶(Cap Mycale)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하고 난 뒤(전479년) 메디아 전쟁을 종결 시킨 인물(la paix de Callias)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O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파스칼의 가명: Louis de Montalte, Amos Dettonville, Salomon de Tultie.]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57 퐁뜨넬(Bernard Le Bouyer(Bovier) de Fontenelle, 1657-1757), 프랑스 작가, 극작가, 과학자.
1707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스위스 출신, 수학자, 물리학자. 러시아제국의 성페테스부르크에서서 활동.
1710 리드(Thomas Reid, 1710-1796) 스코틀랜드 철학자. 흄과 동시대, 스코틀랜드 상상학파의 기초자이다.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53 마이몬(Salomon ben Josua Maimon, 1753-1800), 유대계, 당시 폴란드의 리투아니아 태생 프러시아 철학자. 칸트 비판자.
1771 제론(Joseph Diez Gergonne, 1771-1859), 프랑스 수학자. 혁명기에 군대에서 근무, 몽펠리에 대학 수학교수, 학장을 지냄.
1781 볼짜노(Bernard Bolzano, 1781–1848), 부모는 경건한 카톨릭, 이탈리아출신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라하에서 활동, 작품은 독일어로 썼다.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신학자.
1806 모르간(Auguste (ou Augustus) De Morgan, 1806-1871), 인도태생, 영국 수학자, 논리학자. 불과 함게 근대 논리학을 세우다. / On the syllogism and other logical writings, 1966.
1809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 프러시아 수학자, 인도연구자. 언어학자, 물리학자, 네오휴머니스트.
1815 불(George Boole, 1815–1864)[마흔아홉], 영국 독학으로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
- 논리학의 수학적 분석: 연역적 추론의 계산을 위한 시론(The Mathematical Analysis of Logic, Being an Essay towards a Calculus of Deductive Reasoning, 1847),
- 논리와 확률의 수학적 이론이 기초하는 사고의 법칙에 대한 탐구(An Investigation of the Laws of Thought on Which are Founded the Mathematical Theories of Logic and Probabilities, 1854)
1815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Weierstraß, 1815-1897) 독일 수학자.
1816 게르하르트(Carl Immanuel Gerhardt, 1816-1899),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연구자, 저술 편집자. Die Mathematische Schriften, Berlin, 1850-1853. Die Philosophischen Schriften von G. W. Leibniz, éd. C. I. Gerhardt, Berlin, 1875-1890.
1831 보이스-레이몬트(Paul du Bois-Reymond, 1831-1889), 프러시아 수학자.
1831 데데킨트(Julius Wilhelm Richard Dedekind, 1831-1916), 독일 수학자.
[1834 벤(John Venn, 1834-1923),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1880년 경에 다이어그램을 고안했다. 이원의 경우(이족동물과 날개동물의 예에서 중첩부분을 팽귄), 3원의 경우(알파벳으로 그리스, 라틴, 러시아의 예로) - 3원의 초기 고안은 오일러 것인데, 벤은 겹침이 없어도 3원으로 그렸다.]
1835 메레(Hugues Charles Robert Méray, 1835-1911) 프랑스 수학자. Sur les propriétés générales des racines d'équations synectiques (thèse de doctorat), Paris, Mallet-Bachelier, 9 juillet 1858, 31 p
1839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 미국 기호학자, 철학자, 철학에 실용주의 도입.
1841 슈뢰더(Ernst Schröder, 1841-1902), 독일 수학자.
1845 칸토르(Georg Cantor, 1845-1918), 독일 수학자. 집합론의 창안자. 「초한수 집합론의 도대들에 공헌들(Contributions aux fondements de la théorie des ensembles transfinis, 1895」(약칭, 「집합론(la théorie des ensembles, 1895)」)
1846 리야르(Louis Liard, 1846-1917), 프랑스 철학자, 행정가.
1848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1848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프랑스 수학자. 박사학위논문:
1853 쇤플리스(Arthur Moritz Schoenflies (ou Schönflies), 1853-1928), 독일 수학자. 230그룹의 수정체 공간 제안(cristallographe).
1853 마이농(Alexius Meinong, 1853-1920) 오스트리아 수학자, 철학자. 독일카톡릭 심리학자 브렌타노(1838-1917)의 제자(후설도 브렌타노 제자).
1858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 수학자, 언어학자. Formulaire de mathématiques, 1895(참여자: Giovanni Vailati (en), Mario Pieri, Alessandro Padoa, Giovanni Vacca, Gino Fano, Cesare Burali-Forti, etc)
1858 밀오(Gaston Milhaud, Samuel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수학자. / 협력자, 지로(A. Girot, 1855-) [니스의 수학교사?] Théorie générale des fonctions / Première partie, Métaphysique et théorie des concepts mathématiques fondamentaux: grandeur, limite, argument et fonction. (Nice, 1887), also by Paul Du Bois-Reymond and Georges Milhaud (page images at HathiTrust)
1859 비반티(Giulio Vivanti, 1859-1949), 이탈리아 수학자. Il concetto d'infinitesimo e la sua applicazione alla matematica, 1894.
1861 엥겔(Friedrich Engel, 1861–1941), 독일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에게 배웠다. 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 1888–1893 /cf. Friedrich Engels (1820–1895), 맑스의 동지.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잔후에 미국에서 활동, A Treatise of Universal Algebra, 1898.
1861 부랄리-포르티(Cesare Burali-Forti, 1861-1931), 이탈리아 수학자. 서수의 가장 큰 수 파라독사(le paradoxe du plus grand ordinal en théorie des ensembles)
1863 바일라티(Giovanni Vailati, 1863–1909), 이탈리아 수학자, 과학사가, 철학자. 철학 저술들(Scritti filosofici(1911)) / G. Vailati, La méthode déductive comme instrument de recherche,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T. 6, No. 6 (Novembre 1898), pp. 667-703. et Scritti, Leipzig et Florence, 1911, p. 135.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L'Algèbre de la logique, 1905.
1871 보렐(Emile Borel, 1871-1956) 프랑스 철학자, 파리대학 수학교수. 정치가(해양장관). Leçons sur la théorie des fonctions (1898).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
1873 마로뜨(Francisque Marotte 1873–1945), 프랑스 수학자, 교육자.
1874 베르(René-Louis Baire, 1874-1932) 프랑스 수학자. ENS 수학으로 교수자격, 연속성과 무리수(nombres irrationnels) 연구.
1883 베르크만(Samuel (Schmuel) Hugo Bergmann, 1883-1975), 프라하 지성인그룹으로 카프가의 친구, 인류학에 관심,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 교수로 활동. Das philosophische Werk Bernhard Bolzanos. Niemeyer, Halle an der Saale 1909.
1884 쟝 레(Jean Joseph Ray, 1884-1943), 법률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이 사람이 아닐 것 같다. 아니 맞을 것 같다 - 공동 번역으로 J. Ray et R. Ray인데 아마도 부부 또는 형제가 아닐까?
(26:32, 59RLF) (23:09, 59RMF)
# AI 설명:
로지스틱스/논리계산 (La logistique)는 재화나 서비스가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이동하도록 자원, 정보, 제품을 계획·실행·통제하는 물리적 유통 및 공급망 관리 과정을 의미하며, 알고리즘(L'algorithme)은 특정 문제 해결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일련의 계산 절차나 규칙을 뜻합니다. - 로지스틱스는 물리적 대상(화물, 재고, 운송 수단)과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다루고, 알고리즘은 논리적 지시사항(데이터, 연산 과정)을 다룹니다.
- 고대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추상적인 이론수학(arithmetike)과 대비되는 실용적인 계산술(수치 계산, 상업 산술)을 ‘로지스틱’이라고 불렀습니다.
- 19세기 프레게, 20세기 초 러셀과 화이트헤드 등에 의해 수학의 기초를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처럼 수학적 명제에 엄밀한 기호와 규칙을 적용하는 현대 기호논리학(수리논리학)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학술 용어(Logistique, 논리계산)로 사용이다.
- 프랑스에서는 프왕카레에 연관되어 있다.
알고리즘(L'algorithme): 체계적이고 기계적인 계산 절차, 알-과리즈미(Al-Khwarizmi)에서 유래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학이나 기원전 300년경 유클리드의 최대공약수 계산법(유클리드 호제법) 등이 그 시초이다
로지스틱스(La logistique): 그리스어λογιστικός, adj., 계산에 능한, <λογιστής,
λογιστης, nm 계산기 <- λογίζομαι, v.계산하다, 고려하다, 숙고하다, 생각하다.
# 삼단논법(συλλογισμός)의 총 256 격식이 있다.
명제의 세 순서로 나열하는 것을 식(논식, lat. modus, le mode).
중명사(매개념)의 위치에 따른 4종류를 격(la figure).
* 1식 1격에서 네 종류의 타당한 삼단논법이 있다. Barbara, Celarent, Darii, Ferio.
고중세에서는 형식논리에서 21개, 현대 실재론 총 19개의 타당한 추론이 있다
벤다이어 그램에서는 24개 타당하다고 한다.
포르-르와얄은 Barbari, Calentes, Dibatis, Fespamo, Fresisom.
Barbara(바바라)는 대전제, 소전제, 결론이 모두 전칭긍정명제(A)로 된 1식1법 추론
Tout chat est sympathique ; Or tout philosophe est un chat ;
∴ Donc tout philosophe est sympathique
Celarent,
Aucun agent de change n'est borgne ; Or tous les rats polyglottes sont des agents de change ; ∴ Donc aucun rat polyglotte n'est borgne.
Darii :
Feri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