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자여,이 모든 법들의 진공 실상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그러기에 “이 제법은 공상(空相)”입니다. 그리고 이 ‘공’은 ‘없다[無]’는 의미의 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왕 어떤 사람은 ‘공’을 한번 체험하고 거북이의 털, 토끼의 뿔 같다고 해석하여 말하는데,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진공(眞空)’의 뜻입니다. 진공과 묘유(妙有)는 두 가지 일이 아니라, 하나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진공 그것은 묘유이고, 묘유 그것은 바로 진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법은 공상입니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이라는 진공의 경계는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당사자의 자성이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자성이 바로 진공이요 바로 묘유입니다.
그러므로 진공 가운데에는 (5온이 없으니) 색이 없고 수상행식이 없으며, (6근이 없으니) 안이비설신의가 없으며, (6진이 없으니) 색성향미촉법이 없다.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이미 이와 같은 이상, 진공에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습니다. 앞에서 이미 5온이 모두 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진공 어디에서 색⋅수⋅상⋅행⋅식을 찾겠느냐고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다음은“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입니다. ‘안이비설신의’는 6근(六根)이고, ‘색성향미촉법’은 6진(六塵)입니다. ‘근(根)’과 ‘진(塵)’은 상대적인 것으로, 눈은 색상을 상대하고 귀는 소리를 상대하며, 코는 냄새를 맡고 향기를 맡으며, 혀는 맛을 보고, 몸은 접촉하고 감각이 있으며, 의식은 갖가지 법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법’이란 글자는 일체의 사(事)와 물(物)로서 유형과 무형, 이치와 개념,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이 모두를 법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냄새가 없고, 맛이 없으며, 감촉이 없을 때 자기 속마음에서 대상으로 삼는[所緣] 경계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경계들은 실제로는 5온이 남긴 그림자입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태산에 올라 일출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광경을 지금 회상하니, 마음속에서 생각나는 것은 그때의 태산 해돋이의 영상일 뿐입니다. 이게 바로 법진(法塵)으로서 바로 의식의 대상입니다.>
이 6근과 6진은 상대적이며, 이 두 개를 한곳에 두면 “12입(十二入)”이라 합니다. 이것들은 서로 관련되고 서로 영향을 주어서[互入], 능(能: 주체)이 있고 소(所: 객체)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열두 가지를 12입이라 부릅니다. 그렇게 5온이 이미 “무(無)”라면 12입은 ‘공(空)’해져서 12입은 깨뜨려집니다. <그래서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라 했습니다.>
(18계가 없으니) 안계가 없고, 의식계까지도 없다.
無眼界乃至無意識界.
이어서는 18계(十八界)인 “무안계내지무의식계(無眼界乃至無意識界)”를 깨뜨립니다. 이는 지극히 정련(精鍊)된 언어로서, 양쪽을 말했습니다. 자세하게 말하면 6근⋅6진에 6식을 더해 18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안식에서 신식에 이르기까지를 전5식이라 하고 의식은 제6식입니다. 눈이 색상을 볼 때 안에는 렌즈가 있으며, 바깥에는 비추고자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생물로서 식(識)의 작용도 있기에 간단한 사진기가 아닙니다. 그게 안식입니다. 귀로 소리를 들음에 있어 귀는 근이고 소리는 진이며 식별하는 것으로 하나의 이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6근⋅6진⋅6식을 18계라 합니다.> “무안계내지무의식계”는 실제로는 18마디 말의 첫마디와 끝마디입니다. 무안계는 근(根)으로부터 말하면서, 무안계에서 무의계(無意界)까지를 말합니다 (무6근). 그 다음의 색성향미촉법에서 무색계 무성계 이렇게 이어져 무법계까지를 말합니다 (무6진). 다시 그 다음은 무안식계 무이식계 이렇게 이어져 무의식계까지를 말합니다 (무6식). 그래서 첫마디는 안계이고, 가장 마지막 한마디는 무의식계로서 18마디의 말인데, 이를 정련(精練)하여 이렇게 간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장 대사가 번역한 반야심경은 문자는 적지만 의미가 많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의 것들이 모두 공하기 때문에 18계도 그 실체를 얻을 수 없으니, “무안계에서부터 무의식계까지” 이 18계도 쓸어버렸습니다.
《경문 중에서 지적하기를, “무안이비설신의”, 안에는 6근이 없고, “무색성향미촉법”, 바깥에는 6진이 없어서, 12입이 모두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6근 6진이 모두 없는데 6식 또 어디로부터 발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18계도 공합니다. 바로 인아(人我)와 관계가 있는 5온⋅12입⋅18계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당신에게 이해시켜줍니다. 당신은 안으로 6근이 있고, 바깥으로 6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식(識)의 작용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은데, 요컨대 이 일체가 과거에는 ‘나’이며 ‘진실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반야심경은 당신에게 이 일체는 모두 없다[無]고 말해줍니다. 진실한 법성 가운데서 이러한 일체는 모두 허망이 드러내는 현상[相]입니다. 물 위의 파도를 예로 들면, 파도가 움직일 때 파도 전체가 물이며 그대로가 진공입니다. 그러기에 모두 없다고 말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인아(人我)를 깨뜨리게 합니다.
제6식은 일체를 분별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한가? 등으로 분별합니다. 제7식(말나식)은 아집(我執)인데, 항상 하나의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저마다 하나의 ‘나’가 되어 자기를 지키고 싶어 하고 갖가지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모두 하나의 ‘나’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모두 ‘我’ 자로부터 출발하는 까닭이 바로 제7식의 작용입니다. 제8식은 장식(藏識)이라 하고, 아뢰야식이라 하는데, 모든 심신의 행위들의 기록 파일은 모두 이 안에 저장됩니다.
눈⋅귀⋅코⋅혀⋅몸은 비디오카메라의 렌즈에 해당하여, 이를 통해 외부의 것들을 찍어 들여서 제6식⋅제7식으로부터 제8식, 즉 아뢰야식으로 전달합니다. 이 일체가 모두 저장된 것이 바로 종자입니다. 이것이 한 방면입니다. 다른 방면은 그것은 진정으로 당신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후에 떠나가고 가장 먼저 옵니다. 죽을 때 신체가 모두 무너지면, 눈⋅귀⋅코⋅혀⋅몸이 모두 작용이 없어지고, 제6식도 작용하지 않으며, 제7식도 작용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또 제8식이 최후에 몸에서 떠나간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죽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말하지 않고, 제8식을 말합니다. 불교에는 단견(斷見)도 없고 상견(常見)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타 모든 종교와 과학보다 높습니다. 아뢰야식은 기록 파일 보관실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제가 하는 많은 말을 듣고 두뇌에서는 허다한 새로운 기록 파일이 증가했습니다. 기록 파일에는 새로운 재료가 증가하여 방금 전과는 같지 않습니다. 당신은 방금전과 서로 비슷하지만, 방금 전의 그 나는 아닙니다.
날마다 새로운 것이 증가하기 때문에 비슷함[相似]이 연속됩니다[相續]. 그것은 비슷하기 때문에 상(常)이 아닙니다. 즉,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연속되기 때문에 단(斷)이 아닙니다. 즉, 존재와 연속이 끊어진 것도 아닙니다. 끊어지지도 않고[不斷] 변하지 않지도 않으면서[不常], 비슷함이 연속되는 것이 아뢰야식인 제8식입니다. 하지만 지금 경문에서는 단지 전6식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모두 범부에게 설하신 것으로 범부의 경계입니다. 이른바 5온⋅6근⋅6진⋅6식⋅12입⋅18계는 모두 범부의 경계입니다. 다음은 성인의 경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