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1961) : 전쟁이 할퀸 사회와 심성에 대한 날선 묘사
유현목 감독
줄거리;
가난한 계리사로 한 집안의 가장 철호(김진규)는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의 아내(문정숙)는 만삭의 몸으로 생활의 고단함에 찌들려 살고 잘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남동생 영호(최무룡)는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청년으로, 상이 군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여동생(서애자)은 밤이면 짙게 화장을 하고 식구들 몰래 양공주 일을 한다. 막내 아들은 빈곤을 견디지 못해 신문팔이로 나선다.
철호는 만성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치과에 갈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견디다 못한 동생 영호는 마침내 권총을 마련하여 은행을 털 결심을 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노모는 비행기의 폭음 환청에 시달릴 때마다 놀란 듯 벌떡 일어나서 "가자, 가자"를 외친다. 아내는 출산일이 되어 병원에 갔으나 난산 끝에 절명하고, 은행강도에 실패한 동생은 형사에 붙잡힌다. 치통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과에 간 철호는 앓던 이를 뽑고 택시에 몸을 싣지만 잘못 발사된 오발탄처럼 갈 곳이 없다.
해설;
<오발탄>은 1960년에 만들어져 1961년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5ㆍ16쿠데타 세력에 의해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1963년에 다시 상영되는데, 이후 20여년이 지나 다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복권 아닌 복권은 한극 영화의 굴곡과 비슷한 그래프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즉, <오발탄>은 ‘80년대 세대'의 손으로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났고, 이제는 비디오 가게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틈만 나면 “가자”고 외치는 늙은 어머니,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 만삭인 아내와 어른을 믿지 않는 딸, 양공주가 된 여동생, 신문팔이를 하는 막내동생, 그리고 주인공 철호는 언덕배기에 있는, 마치 영화 세트 같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꿰뚫고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환경과 심성의 뒤틀림은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놀라운 포착이다.
비록 이범선의 원작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유현목이 자기 작품에서 포착한 것은 문학적 서술이 아니라 영화적 표현, 에이젠슈테인에 기대서 말하자면 유기성과 파토스(정념)였던 셈이다. 유현목은 전쟁이 휩쓸고 간 서울의 바지런함 속의 공허, 공허 속의 실낱같은 희망, 희망의 좌절을 차례차례 그려가고 있다.
이런 순차적 배열은 계획적인 주제 전달을 통해 유기성을 획득하고, 그 결과 치열한 정서가 폭발한다. 멀쩡하게 신사복을 입은 사내가 치통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동생이 양공주가 된 사연과 동생 영호의 은행 강도짓이라든가 딸의 불신 따위를 이해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요 배경인 집 안을 비춘 화면 구도와 빛의 명암, 배우들의 동선과 그것을 잡은 카메라 렌즈의 깊이 같은 것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공을 좀 들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반항아 영호(최무룡)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배경과 몸짓, 실내 배경의 서구적 구도 따위는 미학적으로는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낯설게 보인다. 이 낯설음은 서구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낯익은 것이고, 우리 상황으로 보면 낯선 것이다. 유현목은 안의 고민을 바깥 것을 동원하여 드러내려 하였고, 그럼으로써 ‘근대 영화’에 다가섰던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유현목의 발걸음은 갈팡질팡한다. 죽은 아내가 있는 병원? 동생이 갇힌 경찰서? 어머니가 있는 집? 꼭 그만큼 그는 방황한다. 감정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영화? 네오리얼리즘? 몽타주? 할리우드 또는 유럽의 대중영화? 결국 유현목은 결정하지 못한다. 단지 택시 기사가 “나 참,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군” 하고 불평할 뿐이다. 이렇게 유현목은 단역의 입을 빌려서 영화를 마감한다. 꼭 그만큼 유현목은 전쟁과 서울을 놀랍도록 날카롭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 고민 방식은 어딘가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오발탄>의 좌표는 한국적 현실이라는 수직선과 ‘빌려온 근대 영화적 고민’이라는 수평선 위에서 찍한다. 수직으로는 한없이 올라간 지점이며, 수평으로도 멀리 나아간 지점. 물론 수평의 마이너스 영역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앙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될 때, <오발탄>은 다시 부활할 것이고 당분간 혹은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영화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ㅡ이효인
출처: 이승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