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의 씨름(엡6:12-13)
6월28일 주일11시
할렐루야!
오늘도 주 안에서 평안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을 가끔 하시지요? 언제 이런 말을 하십니까?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을 할 때 하시지요. 정말 세상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싸움을 해보면 틀림없이 질 것 같았던 약자가 오히려 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명량대첩을 아시지요? 임진왜란 말기에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 자리를 원균이 맡았지만 일본에게 대패하여 우리나라 수군은 거의 전멸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이순신 장군이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남은 병선이 12척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 12척의 병선을 이끌고 울돌목이라고도 하는 명량에서 일본군 133척과 싸워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것이 명량대첩입니다. 물살이 빠른 울돌목에 쇠줄을 설치하여 이긴 것으로 유명한 해전이지요.
명량에서의 싸움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군이 이겼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승리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음 세 가지 답변 중에서 하나를 골라보시겠습니까? 1) 병사들이 잘 싸웠기 때문이다. 2) 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3)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3)번이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정말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싸웠더니 다윗이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다윗은 사울왕이 준 갑옷과 칼이 불편하다고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가지고 나가 골리앗이 공격도 하기 전에 번개같이 물맷돌을 골리앗의 이마에 맞춰 죽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승리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 답변 중에서 하나를 골라보십시오. 1) 다윗이 잘 싸웠기 때문이다. 2) 다윗의 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3)번이지요.
물론 다윗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갑옷과 칼을 버리고 자기에게 적합한 물맷돌로 싸운 것은 아주 지혜로운 일입니다. 특히 물맷돌은 멀리 있는 적을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물맷돌이라는 무기도 승리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이 함께해주지 않으셨으면 다윗이 이겼을 리가 없습니다. 골리앗 앞에는 방패든 사람이 있었고 골리앗 자신도 다른 싸움이었다면 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해주셔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려면 좋은 무기도 필요하고 지혜와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막강한 분이 우리와 함께하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무기가 부족해도 이순신 장군이 함께 있으면 막강한 군대가 됩니다. 반면에 좋은 무기를 갖춰도 이순신 장군이 없으면 약한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장군이 함께 있어도 이렇게 강해진다면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최강이 되는 거지요. 어떤 무기를 가졌느냐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골리앗과 싸울 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7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것은 세상의 싸움에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영적인 무기를 갖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무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서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성도는
사탄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영적 전쟁을 하는 군사 군인으로 비유했습니다.
전쟁에 지는 것은 패망입니다. 죽음입니다. 끝입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의 성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글 성경에 “성공”이라는 단어는 두 번 나옵니다.(개역개정 – 욥 5:12 전 10:10)
그러나 “승리”는 많이 나옵니다.
요한1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믿음 가진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은 ‘성공’이 아니라 ‘승리’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만나면 ‘할렐루야!’, 헤어질 땐 ‘승리하세요!’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승리하세요!” 이 인사가 처음엔 어색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범사의 삶에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했습니다.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마귀(Satan이)가 어디 있냐 …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정신을 바짝 차릴 것입니다.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사탄의 공격인지,
어떤 방식으로 유혹하는지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역사를 모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찰스 스탠리, <마음 전쟁>, 미션월드, p.22~23. 참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영적 전쟁을 ‘씨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레슬링이 대중적 스포츠였기 때문에 영적 전쟁을 ‘wrestle’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레슬링은 경기가 시작되면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게 되면 지게 됩니다.
「딘 셔만,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전쟁>, 예수전도단, pp. 45~46. 참조」
씨름이나 레슬링처럼 영적 전쟁도 쉴 틈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 하는 것처럼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게 막으려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2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영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사용했던 방에는 잉크 퍼진 자국들이 지금도 있다고 합니다.
루터가 방에서 기도할 때, 말씀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마귀가 두려움과 의심을 주고 낙심케 합니다.
그때 루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외치며 잉크병을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영적 전쟁에 예외는 없습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훌륭한 목회 … 종교 개혁을 이룬 위대한 인물이라도 …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고, 말씀 잘 배우고 교회에서 예배 잘 드리는 경건한 사람이라도 사탄은 그 마음을 잡아 흔듭니다. 복잡하게 만들고 자빠뜨리려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피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언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믿음의 사람은 담대하게 / 당당하게 / 주저 말고 선언해야 합니다.
[본론]
1. 마귀의 정체
첫째로, 마귀는 왜 생겼습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묻습니다. 마귀는 누가 만들었으며 왜 생겼냐구요. 여러분 마귀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비기려고 할 만큼 잘 지음을 받은 천사장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졌던지 자기가 하나님과 비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성경 이사야 14장 12절로 14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지극히 높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비기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천사장이었습니다. 마귀는 자기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가 너무 아름답게 때문에 그만 하나님과 경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13절로 14절에 보면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한번 보십시오. 그의 정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 사람으로 형용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보석의 이름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덮는 그룹천사로 만들었는데 그룹천사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위하는 천사로 가장 하나님께 신뢰를 받고 가까이 있는 천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음을 받던 날에 소고와 비파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음악을 책임지는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음악을 좋아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하는 찬양을 총책임진 그룹천사였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흉내를 내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합니다. 아주 타락하고 요란스러운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에 타락한 곳에 음악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요란하고 타락한 음악 속에 사람은 광란하는 것입니다. 인생과 음악은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장엄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꼭 필요한 것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올 정도로 자기가 아름다웠습니다. 희랍신화에 보면 나르시스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너무 인물이 잘나서 하루는 연못을 지나다가 연못에 비췬 자기 얼굴을 보고 반하여 들여 보다가 곤두박질쳐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곳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그 이름을 수선화, 나르시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람을 나르시즘에 빠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나르시즘에 빠진 젊은이들도 많이 있지만 이 루시퍼 마귀야 말로 자기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도취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고 오만하게 날뛰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 쫓겨났을 때 그를 따르던 하늘천사 3분의 1을 데리고 타락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리더쉽이 강했던지 하늘천사 3분의 1을 반역에 가담시켰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3절로 4절에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용이 그 꼬리로 하늘별 3분의 1을 땅에다 던졌다는 것은 타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에서 쫓겨난 루시퍼는 타락한 천사 3분의 1과 더불어 공중에 왕국을 세우고 반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잡은 악의 영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사라는 것은 한 나라의 중심입니다. 임금이나 대통령이나 수상이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임명합니다. 장관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쫓겨난 여러 천사들중에 힘있는 자를 장관으로 세워서 온 세계를 다스리게 하고 그 밑에는 지상의 주관자, 지방장관들을 세우고 공중에 권세잡은 마귀의 군대 악령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국가의 조직처럼 공중에서 마귀는 완전한 나라의 조직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자들을 유혹하고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려고 유혹하며 하나님께 밤낮 참소하고 이간질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사람을 매개체로 삼아서 이 세상에 자기의 사악한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더욱 잔인하고 어두운 곳으로 만들고 있으며 온 세상은 마귀의 손아귀에서 좌우되고 있습니다. 현재 온 세상은 마귀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온 세상을 주었어요. 세상의 임금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을 때 이 세상을 마귀에게 진상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예수께 나와서 그를 미혹할 때 하는 말이 “내게 절하면 온 세상 부귀, 영화를 다 주겠다. 이는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게 절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넘겨주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 세상 주권을 마귀에게 넘겨주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해서 마귀는 세상의 주권자로써 일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가 와도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육신의 정욕, 세상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이런 것으로 혼미하게 만들어서 물질만능주의, 인본주의, 쾌락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한통계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5,560년 동안 지구상에서 14,530회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는 1년 평균 2.6회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5,000여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쟁준비에 연간 5,50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며 6백조원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이 6백조원을 전쟁하지 않고 나라를 부강케하고 국제적으로 기아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잘사는 곳이 될 것입니다. 나는 어느 학자가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전쟁을 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서로 골고루 나누어 쓴다면 이 지구는 2백억명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60억이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2백억명은 지구에서 능히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자원을 동원해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이는 것에 사용해야 합니까?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도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오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있는 이상 이 세상은 파괴적인 역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인류구원 작전
둘째로, 하나님의 인류구원 작전을 우리가 알아봐야 됩니다.
아담의 타락은 철저하고 그 죄 값은 사망입니다. 마귀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그 죄 값으로 죽기 때문에 자기 죄도 갚을 수가 없고 남의 죄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능력은 모든 인류의 죄를 갚고도 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까지 인류의 죄를 다 청산할 수 있어야 되고 그런 실력이 있어야 되고 또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야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아담의 씨를 받은 사람은 배속에 있을 때부터 죄로써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아담의 씨를 받지 아니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어서 죄 없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그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여 희생재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아도 인류구원의 전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이 죄 있는 인간의 몸을 썼지만 죄 없이 태어나셨으므로 그의 삶은 어마어마한 속죄의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피는 죄인의 피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요.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인생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희생제물이 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주실려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하게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철저히 고난 당하셔서 주님의 흘리신 핏방울 방울마다 모든 인류의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는 아담으로부터 장차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산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요사이 말로 말하면 상황 끝~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죄악의 상황은 끝났다. 세상에 마귀와 세속의 상황은 끝났다. 질병의 상황도 끝났다. 저주의 상황도 끝났다. 죽음과 지옥의 상황도 끝났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승리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와 싸워서 인간의 죄를 다 도말시키므로 마귀가 묶고 있던 죄의 사슬이 보혈의 능력으로 녹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가 가장 미워하는 것이 예수요 그 보혈의 능력을 미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오심과 그 보혈을 흘리심으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는 박살이 나고 만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말씀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은 이겼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까?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3. 하나님의 전신갑주
그러므로 세 번째,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겨 놓았습니다. 상황이 끝났습니다. 죄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세상과 마귀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병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저주와 가난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죽음과 멸망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상황은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끝이 안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으로 속이고 협박하고 공갈하며 지금도 게릴라전을 하고 있는 마귀하고는 전쟁이 아니라 전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로 18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전신갑주를 입어야 게릴라전에서 우리가 이기고 신앙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허리는 몸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상하면 사람은 걸음도 걸을 수 없고 짐도 짊어질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고 반드시 누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허리가 우리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강해야 몸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은 예수님으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허리띠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면 진리의 영, 성령이 여러분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의의 흉배를 붙여야 됩니다.
흉배라는 것은 방탄복입니다. 방탄조끼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으면 총을 쏴도 가슴에 맞아도 튕겨 나가지요. 불화살을 쏘아도 뚫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 의의 흉배를 붙어야 되느냐. 마귀는 와서 늘 말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정죄 받아야 마땅하다. 죄인의 괴수다. 너는 죄 덩어리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나는 예수의 보혈로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으면 마귀가 아무리 와서 정죄해도 끄덕도 안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였습니다. 보혈로 하나님의 용서와 의로움을 가슴에 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어야 됩니다.
여러분 신발 없이 자갈밭을 걸어가거나 가시와 엉컹퀴를 걸어가면 피투성이가 되고 못 걸어가지요. 옛날에 종과 아들은 똑같이 밭에서 일했는데 겉으로 보면 누가 종이고 아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발을 보면 아들은 신을 신고 종은 맨발을 벗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주님은 신발을 신겨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용서와 의의 신발을 만들어 주어서 죄악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만들어 줍니다. 성결과 성령충만한 신발을 만들어 주어서 세상에 죄의 유혹을 짓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발을 믿음으로 신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써야 됩니다.
머리는 참 중요합니다. 공사장에 일하는 사람은 헬멧을 씁니다. 다른데 다쳐도 고침을 받을 수 있지만 머리가 깨어지면 사람이 죽지 않습니까? 운동선수들도 머리에 헬멧을 씁니다. 스키타는 사람들도 머리에 헬멧을 씁니다. 다른데 다쳐도 괜찮지만 머리가 다치면 죽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머리에 투구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칼로 내려치거나 창으로 찔러도 꿈쩍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 머리라는 것은 생각인 것입니다.
이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와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나는 슬프다. 불행하다. 패배자다”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치명타를 입습니다. 머리가 구원의 투구를 써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소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어떤 부정적인 말을 해도 “이 마귀야~ 거짓부렁이야 너는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원히 구원받아 용서와 의를 얻어 잘되고 범사의 저주에서 해방을 얻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어 강건하고 부활에서 영생을 얻게 되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방패란 적의 화살을 막는 것입니다. 불화살이 오면 방패로 막아야 되지 않습니까? 다른 방패는 맞아도 구멍이 다 뚫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는 마귀가 아무래도 뚫지 못합니다.
믿음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이 믿음의 선물인 것입니다.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는 믿을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는 믿고 있으면 눈에 안보여도 귀에 안 들려도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칠흙같이 어두워도 우리는 말씀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방패를 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성령의 검입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공격하고 마귀의 염통을 찌르는 말씀의 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성경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권능의 말씀인데 말씀을 이용하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쫓겨 나가는 것입니다.
존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을 전할 때 당시 통치자였던 메리 여왕은 열심있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목표를 정하고 애끊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가 기도하던 방의 창문으로는 메리 여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 보였는데 그는 그곳을 바라보며 같은 기도를 몇시간씩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자 메리여왕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여왕은 죽기전에 “존낙스 한사람의 기도가 백만대군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존낙스의 기도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마귀가 치를 떨고 무서워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도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미혹케 하려고 참소하고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이 마귀를 우리는 이제 전투에서 이기고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 항상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성령의 검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긴 예수님을 의지하고 마귀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써 이제 마귀와 전투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마귀가 죄악의 유혹을 가져오면 “야 이놈아! 상황 끝이다. 십자가에서 다 끝나 버렸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세상이 들어오면 “상황 끝이다. 세상은 나와 관계가 없다.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물러가라.” 여러 가지 병이 다가옵니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너를 다 도말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은 사람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알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장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생활하고 천국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