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에 핀 꽃
태양의 손길로
바람이 데려다 놓은 구름들 사이로
어거지로 숨 쉬는 하늘만 원망하며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서는
분주한 모습들 속에
“서로 먼저 왔다며 다투는 사람들”
“긴 줄 사이로 새치기해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삭막해져 갈 때
땡볕에 금 간 주름을 안고
노쇠한 어깨를 옷가지에 감추며
서 있기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저울에
세상을 달고 서 있습니다
귀밑머리 하얀 운명을 부여잡고
손등에 먼지가 이는 삶이
전부였다 말하는 할머니는
하루라는 선물을 지팡이 삼아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나왔다며
배고픈 우체통처럼 서 계셨지만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르는 오랜 기다림은.
한 점 바람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건 세상을 핥아 놓고도
성이 가시지 않은 코로나 때문인데요
할머니 한 분이
목마른 하늘만 원망하며
서로 먼저 사겠다며 난리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속에
더 서 있기가 힘이 들었는지
허기진 긴 그림자를 끌고
그늘진 곳으로 가시더니
..주저앉고 맙니다
하늘빛이 말라서인지
누구 하나 그런 할머니에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시간 사이로
길을 가던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맨 뒷줄에 줄을 서고 있었고
하늘에 햇빛 방울이 한 칸씩 헤엄칠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둘 마스크를 들고 사라져갔고 드디어 여자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학생은
약사에게 받은 마스크를
고여버린 세월을 안고 앉아 계신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걸어가더니
꽃은 져도
찡그리지 않는 바람처럼 웃어 보이며
“할머니…. 오래 기다리셨죠
여기 마스크 ...“
할머니는
생에 첫날인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워 보이시면서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이 귀한 걸 학생이 오래 기다리다 산 걸
날 주면 어떡하누”
세월 뜸 들인 깊음으로
고마움을 내보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조금 있으면 날이 어두워져요”
할머니는
떠나가는 바람처럼
그제서야 먼지 가득한 슬픔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학생...
여기 2,000원 마스크값 받아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하지...”
“네 할머니...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라며
할머니의 뭉쳐진 시간 위에
마음을 울려놓고는
떠오르는 저 태양이 아름다운 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햇살을
나눠주기 때문이라며
마중 나온 햇살을 밟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2,000원은
할머니가 들고 가시는 마스크가 든
비닐봉지 안에 몰래 넣어두고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