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산행후기
241116 서울 둘레길 21코스(북한산 우이역~도봉산역), 깊은 역사의 울림이 있는 길, 7.3km, 3시간 25분,
지난달 20코스, 나라를 생각하며 걷는 길, 에 이어 깊은 역사의 울림이 있는 길이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다 하니 완전 10월 느낌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황금빛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리만큼 찬란하다.
날이 좋아서 오늘은 다소 많이 오시리라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얼핏 생각하기에 날씨와 참석률 사이에 어떤 비례관계가 있을 법한데 다시 고쳐 생각해 보면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올 한 해 평균 참석인원 6명 수준은 된다. ㅎ
오늘 출발점 북한산 우이역까지 이동 경로는, 둔촌-청구-보문-북한산 우이역, 전철로만 59분이다. 2번을 갈아타는 관계로 환승 시간이 지체되어 약속 시간 10시 10분에 살짝 지나버렸다. 우리 일행 중에 직접 오시기로 한 레지나 자매님이 미리 와 계셨다. 그래도 10분 안쪽이니 다행이다.
서울 둘레길 21코스는 1번 출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방학동 방면 산중도로를 따라 오르게 되어 있다. 도로 양옆으로 단풍나무 병풍을 세워놓은 듯 아름답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다가 다시 종이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오른다. 동화 속 가을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곧바로 21코스 스탬프를 찍는 빨간 우체통과 왕실묘역길 아치문이 보인다. 이정표에 연산군묘 0.8km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이곳부터 왕실의 묘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보통 산길과 달리 두세 사람이 대화하면서 걸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다. 왕실묘역길이라 특별히 신경 써서 길을 넓혀 놓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아무튼 빗자루질까지 한 흔적이 보인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 걸었던 다른 둘레길과 비교 될 정도로 길이 시원하게 넓고 잘 단장 되어 있다.
단풍이 나를 멈추게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찍어보아도 눈으로 보는 만큼 안된다. 나의 한계다. 그래도 아름다움을 눈으로나마 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곧바로 연산군묘가 나오고 방학동 은행나무(수령 550년)에 이른다. 은행나무잎은 거의 떨어져 없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만으로도 아름답다. 포토 존이다.
연산군은 조선 10대 왕으로 31세에 폐위당해 이곳에 부인과 후궁, 딸과 사위 5개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관리는 잘 되어 있지만 왠지 쓸쓸한 느낌이다.
곧바로 도로변에 정의공주묘가 나오고 산길로 접어들며 방학동길 아치문으로 들어선다.
분명 길 따라 걸었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지며 울타리가 나타난다. 길을 잘못 든 걸까? 다들 어리둥절한 순간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멧돼지가 출몰한 적이 있었는지 알림판과 함께 출입문을 설치해 놓았다. 아마 밤이라면 문을 열고 들어설 생각을 못했을텐데 긴장감 1도 없이 과감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리라.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처럼 공동체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거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둘레길을 따라 쌍둥이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은 특이하게 전망대가 두 개 다보니 오른편으로 올라가 왼편으로 내려오는 일방통행식으로 되어 있다. 자연과 어울리게 나무색깔을 덧칠해놓아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만든 현대식 인공조형물이다. 좌에서 우로 칼바위, 병풍바위, 주봉, 뜀바위, 신선대, 자운봉(740m), 만장봉 성인봉, 포대정상이 능선으로 이어져 보인다. 자연 전망대와 달리 최적의 위치에 설치되어 거침없이 시원하다. 게다가 각각의 전망대를 구름다리로 연결해 놓아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품 전망대다.
전망대 아래부분에 평상들이 놓여있다. 아마 전망대와 같이 공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도 식사시간이 되어 자리가 필요하던 차였는데 마침 운좋게도 평상이 비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내려갈 때까지 비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자리를 아내가 날래게 차지하곤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팔을 높이 치켜올리고 있다. 이심전심으로 통한거다. ㅋ
아무리 생각해도 산행만한게 없는 것 같다. 걷는 것 뿐만 아니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또 인원수와 별 관계 없이 많으면 많은대로 좋고 적어도 문제없다. 게다가 먹는 즐거움까지 더하면 즐겁다 못해 행복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오전내 걸었으니 이제는 배를 채울시간이다. 가지고 온 것들을 꺼내어 놓았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니 행복한 미소와 함께 얼굴에도 살짝 단풍이 물든다. 덕분에 오늘도 살짝 과식했다. 후식으로 과일과 건강차로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내리막 길을 따라 걷는다. 움푹 파인 계곡을 통나무로 덧대어 만든 숲속길로 이어진다. 끝 무렵 ‘도봉옛길’ 아치옆으로 빨간 단풍나무가 절정을 이루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치를 지나니 2024.7월에 개관 ‘무수골 녹색복지센터’가 나온다. 도봉구민만 이용가능한 명상과 힐링이 머무는 곳이란다. 도봉구민이 부럽다.
바로 울타리 옆에 산악마라톤대회 중간 캠프를 운영중이다. '오들로(odlo) 북한산 트레일 레이스'라고 적혀있다. 북한산 둘레길 65k,17k 참가선수들이 500명이나 된다고... 스위스 에슬레저 라는 스포츠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행사다. 나도 젊었다면 도전해 보았을 텐데 지금은 무리라 매우 아쉽다. ‘산을 뛰는 젊은이들, 그들의 내일은 푸르리라’
도봉산 자락 마을 ‘무수골’, 몇몇 예쁜 카페들을 지나 산을 오르노라니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낙엽에 부딪히는 마찰음이 방과 후 하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림처럼 시끌시끌하다. 잠깐 비를 피해서 가자 했더니 다들 비가 더 오기 전에 빨리 가자고 하신다. 각자 준비해 온 우산과 우비를 꺼낸다. 사실 비의 양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 모자도 썼으니 대충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리아 자매님이 기다리라며 배낭에서 비닐을 꺼내 반으로 나눠 주신다. 돗자리로 사용했던 비닐로 영락없는 판초 우의 대신이다. 혹시 군 근무 경력이 있으신 건지 상황대처 능력이 갑이다. 덕분에 쿨하게 투명한 비닐 우의를 걸치고 가을비를 맞으며 걸었다.
차량 통행도 가능할 만큼 길이 넓어지고 있다.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쁜 단풍잎이 가을비에 젖어 곱디고운 비단이 돼버린 느낌이다. 도봉사에 이르렀다. 산사 앞에 보통은 은행나무가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수종이 다른 메타세콰이어가 심겨 있어서 인상적이다. 사실 키 크고 세련된 메타세쿼이아는 어디에서나 제 몫을 다한다. 특히 가을이라 운치를 더한다.
‘도봉사’(조계종) 입구에 달마대사 석상이 나란히 입구에 서 있다. 도봉사는 968년 혜거 스님이 창건하여 고려시대 제작된 철불좌상과 대장경의 ‘초조대장경’이 제작된 곳이라니 말 그대로 천년고찰이다. 담벼락에 법회 현수막과 붉은 연등으로 도심의 분위기와 닮아 왠지 들떠 있는 분위기다. 순간 가을비로 차분해진 마음이 깨는 느낌이다. 외부에서만 기웃거리고, 통과다.
이어서 도봉사와 담벼락이 붙어 있는 ‘능원사’다. 온통 금칠을 해놓아 한눈에 보아도 기존 사찰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절이라기보다 궁전 느낌이 든다. ‘한국불교 도봉산 능원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궁금증을 더한다. 찾아보니 일반 절과 달리 미륵불을 모시는 ‘용화전’이 중심 법당이며, 여타 종단에 속하지 않고 여주 본사와 서울, 부산에만 사찰을 운영 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약간 정통 불교에서 벗어난 사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비를 이루고 있는 두절은 묘하게 세상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널찍한 등산로 입구에 ‘북한산 국립공원’ 커다란 로고가 나타난다. 이곳을 찾는 산객들이 놓치지 않는 포토 존이다. 오늘 가을 핑계를 대고 원 없이 사진을 찍는다.
내려오는 길에 큰형님께서 붕어빵에서 눈길을 못 떼놓으신다. 먹고 싶기보다 나누어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얼른 가서 6마리를 샀다. 한 마리씩 나누어 드리니 다들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서울 둘레길 21코스를 생각할 때마다 비닐 뒤집어쓰고 걸었던 오늘 산행이 떠오르리라. 비에 젖은 산사와 노랗고 빨갛게 물든 메타세콰이어와 함께….
둘토산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님들! 영육 간 건강한 날들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