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탐방
나는 지금 고구려로 가고 있다
1. 序 詩
역사는 현대 속에 살아 숨 쉬는
과거라는 생명체이며 미래 논리다
과거와 현재의 진솔한 대화이란다
한민족으로 맥이 이어져 출렁이는
깊고 깊은 역사의 바다, 고구려 여
거침없이 말 달리던 광활한 삶의 터전
중원의 대평원, 지금은 비록 변방이지만
후손들에 피의 농도와 역사의 진실을
자긍심과 미래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걸머지고
시간을 마구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역사의 그림자 따라 고구려로 가고 있다.
2. 대련항 , 갑판 위에서
관광객들이 장난삼아 던져주는
새우깡부스러기에 생사를 걸고
뱃꽁무니를 억척스럽게 따라붙던
세태에 길들여진 서해 갈매기 떼도
어둠으로 덮어가는 밤이 밀려오자
하나, 둘 지쳐서 나가 떨어져버리고
검은 포장을 이불처럼 둘둘 말아 덮고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버린 서해 바다
잠에 미처 들지 못한 작은 파도들만이
하얗게 몸을 여름밤의 정막에 뒤척이며
지상에 떨어져 내리기전에 펼쳐 보이는
마지막 무대, 별똥별의 꼬리와도 흡사한.
역사란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것이다
수많은 인간사의 사연과 삶의 파편이
세월과 만나면서 엉키고 풀렸다 엉키고
한국과 중국의 물줄기 바다에 한데만나
서해를 이루며 중국 쪽에선 동해도 되고.
3. 천리장성의 남단, 비사성
천리장성의 최북단은 부여성
최남단은 바로 여기 비사성
고구려의 수군이 적을 만나
처음 부딪쳐 싸우게 되던 곳
이렇게 가파르고 험준한 산
이 높은 산꼭대기에 비사성이
수. 당의 수군은 무순 재주로
여기를 침략할 수가 있었겠나
당 침략에 대비해 연개소문이
16년간의 공사에 완성되었지만
세월은 성과 역사를 허물어가고
건축물도 중국식으로 바뀌어가고.
4. 저기가 바로 신의주인데
중국의 단동과 북한 땅,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둔 옆 동네와 같다
조선과 중국 국경에는 두 개의 다리
끊어진 철교 옆에는 새로 이어진 다리
다리 위로는 기차도 다니고 밑으로는
유람선이 압록강을 가르며 떠다닌다
다른 나라와는 기차가 오고가면서도
남북만이 오갈 수 없는 오늘의 현실
중국 땅 단동에서 확인한 압록강은
세찬 물살에 가로막혀 눈으로만 본
단지, 칼날같은 국경의 강은 아니었다
사람 살아가는 애환이 깃든 동네의 강
한강, 금강, 낙동강과 다를 바 없었다
이웃 마을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을 땐
막헤염이라도 하며 오고가서 만났던
동네안의 큰 내 , 그 정도의 강이었다.
여름비 억세게 내리는 압록강 가에서
빗줄기 속에 흔들리며 들어온 강마을
북녘 땅, 신의주를 넋 놓고 바라보며
다른 나라 땅은 지금 밟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건너 갈 수 없는 금단지역인
저기가 바로 우리의 북한 땅, 신의주
지척에 두고도 밟아보지 못하는 심정
분단 현실의 뼈아픈 조국이 안타깝다.
5. 소리도 지르며 , 손도 흔들어보고
유람선이 압록강 단교 밑을 휙 지나
신의주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우중충 낡은 조선소의 모습도 들어오고
현란한 핏빛 체제 선전 현수막도 보이고
바로 눈앞에 북한 땅의 현실이 펼처진다
중국 배를 타고 북한과 인접한 곳 까지
우리는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여름철에는 중국인들이 수영을 하여
신의주까지 갔다 오는 이도 있다지만
압록강을 오가는 북한의 유람선은 없었다
북한 쪽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으로
넘어 올 때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손 한 번 쭉 뻗으면 닿을 듯 말듯한 거리
강가에서 낚시하는 인민복 차림의 노옹과
돌지 않는 놀이터의 회전목마도 보인다
강 건너 북한 땅을 넋 놓고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고 손을 마구 흔들어봐도
실낱같은 메아리도 들려오지는 않았다
간혹,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반가운 모습에 가슴이 찡해오기도 하였다.
6·25때 미군 B-29폭격기의 폭격으로
끊겨진 압록강 단교가 중국인에게는
미군을 막아낸 구국항쟁의 상징물이며
중국은 전쟁에 개입한 침략국이 아니고
미국에 맞서 나라를 지킨 방어국이란다
6. 백두산에 천지는 없었다
백두산 정상을 향해, 굽이굽이 반나절
1200 계단 중턱까지는 그 맑던 하늘이
언제 어디서 내가 온다는 소식 듣고서
먹구름 , 비바람, 안개를 몰고 와서는
못볼 사람 만난 것처럼 위협 하려는가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와 세찬 산바람
백두산 정상에 천지의 실체는 없었다
다만 얇다란 비단 운무에 휘감긴 채
풀고 튀어나오지 못하는 신비로움만이
묻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태우면서
벗을 듯 말 듯 망설이는 여체의 환상이
속계에서 올라온 우리를 맞고 있었다
늘 마음속에 그려왔던 만인의 연인인
천지는 끝내 알몸을 내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 기분 좋을 땐 새색시처럼이나
수줍어하다가도, 심통을 자주 부려보고
반백년을 짝사랑해온 나를 만나자마자
눈길 한번 주지않고 베일속으로 숨는다
7. 비바람에 시달리는 조중경계비
정상에 볼품없는 표지석 하나가
중국령, 북한땅의 경계를 나누고
백두와 장백산으로 이름을 바꾼다
벙어리로 태어나 , 지쳐온 애기 비석
朝 . 中 간의 말 없는 국경선 표시
우리민족 가슴속의 영산인 백두산을
남의 나라를 거처 밟고 들어서야 하는
가슴 아린 사연 반쪽을 뚝뚝 갈라서
자기들 땅에 색깔 지도 그려 놓으며
이름까지 장백산이라 부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영토인 백두산을 가까운 거리를
뒤로 하고 중국을 통해서 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중경계비 앞에 와 사진을 찍으면서
한여름 속에 겨울의 찬공기를 맛보며
북한 땅을 밟아본 것에 만족해야했다.
8.조선족학교
집안시 조선족학교의 학생들은
한국어, 중국어, 영어에 컴퓨터도
전국 평가에서 수석을 여러 차례
명문학교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학생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절반
또래들이 중국인이라 가르쳐주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한국어
뜻있는 기업인들이 힘을 모아
조선족학교를 세워 주려고 해도
중국정부가 허가해 주지 않아
조선족 학교 설립이 힘들다고 한다
이국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교포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9.국내성
집안시 중심부에 자리한 국내성은
적을 삼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성벽 앞쪽으로 튀어나온 치이자
돌을 퇴물려 쌓은 것이 특징인데
가정의 담벼락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두 번째 도읍지가 사라져가고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봉금지역
지나가던 구름만 잠시 쉬었다가는
동서 10K, 남북 5K의 아늑한 분지
물고기도 많고, 농경지에 적합하고
제사에 제물로 쓸 돼지가 도망가서
뒤쫓아 가다가 발견한 곳이, 국내성
기원전 37년에 첫수도 환인에 이어
집안시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한
420년 집권, 고구려의 2번 째 수도
어마어마한 성곽을 상상해왔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러 개의 돌을
마구잡이로 축조해 놓은듯한 모습
기원 후 3년, 고구려 유리왕 22년에
천도한 지금의 허름한 아파트 앞에
초라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국내성
역사보존에 대한 의식이 적었던 때
성안의 네모반듯한 돌들만 빼다가
주민들은 제집 담장에 보태었단다
10.광개토대왕릉은 자갈산
네모꼴의 큰 돌덩이가 어지럽게
물처럼 아래로 흘러내린 돌 언덕
직경 60m 돌무덤의 크기에 맞게
무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따라 왕릉을 마구 밟으며 오르니
대륙을 호령하던 광개토왕의 널방
세 애첩과는 따로 누워있었던 석관
왕릉으로 보기보다는 허물어가는 성
왕릉 주변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역민들의 많은 집들과 소학교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빈터에 남아
옛 모습을 오늘에 보여주고 있는
고구려 최대의 광개토대왕릉이
아들 장수왕의 무덤 장군총과 같은
처음에는 돌들로 축조된 피라미트
왕릉은 분명히 자갈산으로 보였다
석릉에서 발견된 사실이 증명해준
광개토대왕과 왕비의 무덤을 알리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글자
辛卯年 好太王 ,청동방물이 나오고
세월 속에 돌무덤도 허물어져 가고
무덤 내부는 도굴되버려 텅빈 공간
여기서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어찌 광개토대왕릉이라 상상을 했겠나
11. 방탄유리 속의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는 높이가 6.39m
웬만한 건물 3층 높이 정도이다
비석의 무게만 해도 수십 톤
응회암에 새겨진 1775자의 글자
어디에서 바위를 운반해 다듬고
이 자리에 지금까지 일으켜 세워
아버지 태왕의 업적을 기록한
아들 장수왕의 배포가 놀랍다
갈수록 많아지는 관광객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의 한 기업가가 기증한 돈으로
비각을 방탄유리로 둘러싸 보호하고
담장과 철문, 누각을 다시 세웠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는 있어도
근접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있다
겉모습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12.고구려 벽화
넋을 빼앗아간 고구려벽화 5호 묘
개인의 일기장도 언젠가 누구에게
읽혀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쓰여지듯
고구려 벽화는 분명 언제든 후손들에게
공개 될 것을 생각하며 만든 것 같다
중앙에는 시신을 모셨던 돌판이 있고
천장과 벽에는 선명한 사신(四神)상과
우주와 고구려 역사창조의 원리와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그림들이
다양한 색채로 생생한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이렇게 선명할 수가 있을까
귀족의 묘로 추정되는 5호분 5호 묘는
무덤 안으로 꽤 깊숙이 들어가자
방 같은 곳에 직사각형의 돌판이 3개
가운데 돌 판은 귀족의 시신이 놓였고
좌측과 우측에는 본부인과 애첩의 자리
돌의 간격이 가까운 것이 정실부인이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애첩의 자리
사신상 청룡의 눈에 박힌 보석은 물론
무덤안의 보석들은 모두 도굴당한 상태
도굴꾼들이 빼낸 보석의 빈자리 구멍과
벽화 사면에는 지하수와 빗물이 스며들고
하루에도 수백명 씩 찾는 관람객들에
벽화가 점점 훼손되어 가고 있으니
경주의 석굴암이나 광개토대왕비처럼
유리벽이라도 설치하여 보호하는 것이
고구려벽화를 살려보는 길은 아닐런지.
13.장군총
조금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돌산 같고
가까이 다가서보니 피라미트 같네
이집트의 것을 축소해 옮겨 놓은 것 같은
이 축조물이 아시아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우리의 역사책에서 이미 낯익은
장수왕의 돌무덤, 장군총 이란다.
일천오백년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비바람 받아온 龍山 기슭의 장수왕릉
철골 기둥에 시멘트 벽돌을 쌓은 듯
돌 1100덩이, 돌의 총무게 6000톤을
반듯반듯, 차곡차곡, 아파트 5층 높이
빛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
하늘을 향하는 사각뿔 모양의 왕릉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릉은
환인성 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흙을 쌓아서 만든 무덤 형태이지만
그 아들인 장수왕의 릉은 거대한 돌을
마치 나무토막 자르듯 깍고 다듬어
네모반듯하게 구조물을 만들어 층층히 쌓고
비바람에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만들었네
이렇게 크고 단단한 바윗덩이를
어디에서 예까지 어떻게 옮겨다 놓고
어떻게 돌을 주물러 만들듯이 이렇게
이 큰 돌덩이를 깍고 대패질하여 놓은 듯
과학적이고,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무색하게
고구려의 예술혼은 가슴에 벅차올랐지.
14. 東北工程
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에 대해
중국 민족의 역사로 연구 공정
동북은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북서풍의 눈보라와 역사를 같이 해온
고구려는 발해와 신라의 몸과 혼을 받아
고려와 조선에 이어 대한민국에 머물고
중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오직 중국역사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동북지역의 역사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고조선, 고구려, 발해, 오늘의 한국까지도
변방국가로,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혈안이 되 진행하는 왜곡된 역사 프로젝트.
광개토대왕비, 백두산, 국내성 등이
중국의 영토 안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관리하고 대대적 홍보를 하며
관광자원으로 개발, 입장료 수입을 올리고
중국의 역사적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려는
한․중 두 나라 간의 뜨거운 역사적 분쟁
광개토왕은 동북지역을 평정하였고
수나라를 멸망케 한 을지문덕장군과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패왕으로 만든
역사적 현실을 어떻게 날조할 것인가
중국의 역사적 태도와 우리의 안일함에
맞서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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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나는 지금 고구려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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