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1:18-32,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0,3,11, 박홍섭 목사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물리적으로 비옥한 낙원의 땅이 아니라 연 초부터 연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자기백성들에게 있어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땅입니다(11:1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항상 인도하고 보호하는 은혜의 수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율법과 규례와 법도와 명령들입니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면 말씀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11:13-15절 다시 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반복되는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0:12-13절이죠.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도 계속 이런 당부가 이어집니다. 너희는 항상 나의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손목에 메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자녀들과 더불어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라(18-20절). 내가 순종에 따른 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네 앞에 두노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해서 내가 준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21-32절). 오늘 본문의 요약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신명기 내내 반복되는 순종하면 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다는 이런 도식을 우리하기에 따라서 복과 저주가 갈라지고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둔다는 말씀은 그렇게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선택에 맡겨두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엄중하고 냉정한 선택의 요구 이전에 제발 나의 말을 떠나 저주 받을 곳으로 가지 말라는 애달픈 호소가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것은 복을 주기 위해서지 저주를 쏟아 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과 바로를 치시고 홍해를 갈라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바위에서 생수를 내시어 마시게 하면서 인도해오셨습니다. 단순히 순종하면 복을 주고 불순종하면 저주하겠다는 말을 통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알아서 잘 하라고 우리의 선택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 두시기에는 하나님이 이들에게 쏟으신 사랑과 열심과 능력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친히 마련해두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달게 받아 소화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불순종하는 연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지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고 선포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불순종할 때 떨어지는 저주는 꾸지람과 징계와 매 맞음이지 영원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매 맞는 것과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매를 맞는 것은 저주 받아 마땅한 자리에서 복 받는 자리로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완악함을 아십니다. 아시기 때문에 이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와 쏟아진 사랑이 어떤 은혜와 사랑인지를 잊지 말고 그 은혜와 사랑이 무엇을 목표로 지금도 부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허락될 것인지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민6:22-2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못나고 완악하고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를 저주로 경고하고 그 경고대로 불순종할 때 벌주고 매를 때리시겠지만 그 벌줌과 매 때림의 목적은 마침내 우리를 복주고 은혜와 평강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 8장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이 말씀대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합니다. 그런데 거기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30-35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서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불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축복을 선포하는 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입니다. 구약의 제단은 백성들의 죄를 정결한 짐승의 피로 속함을 받게 하기 위한 단입니다.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받아야 할 저주가 해결되는지를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기고 받아야 할 저주를 죄 없는 짐승들이 담당합니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 받는 삶을 위해 다시 기회를 얻습니다. 은혜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가르쳐주는 은혜의 방식은 완전한 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바라보는 아직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방식입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의 몸으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의 저주아래에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갈4:4-7).
무엇을 의미합니까? 축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다는 말은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갈라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들까지 주시면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맡겨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으십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았는데 다른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면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여기에 담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리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달려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자들입니다.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이 그런 우리를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매를 때리고 징계하시면서 까지 복을 받는 자리로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신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장인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그 축복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아멘.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결정과 선택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갈라지는 그 정도의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신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고 벌 주시는 차원을 넘어 몸소 저주를 담당하시면서 끝끝내 우리를 복의 자리로 돌려세우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인생들입니다. 우리 같은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그 사랑으로 말씀을 붙들고 행하는 삶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