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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2037.2020.7.19)
사30:23-26
할렐루야
지난 수요일 어느 목사님이 내일 목요일이 초복이니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으니 다음에 먹자고 대답을 했습니다만 우리나라에는 초복이 지난주 목요일에 지나고 이번 주 수요일에는 대서도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는 그래잖아도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고통을 당하고 그중에서도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설상가상으로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어느곳에서는 교회에서 소모임, 식사 등을 하게되면 신고하게 하고 포상한다고 하고 교회학교 가지말라고 통지서가 날아오고 완전 교회를 감염지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 성도들도 좀더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이로 인하여 천재지변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주님의 재림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24:7절‘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살전5:3절‘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언제까지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아옹다옹하다가 우리주님 오시는 날에 우리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는데 그때에 가서 마7:21절‘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노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25:41절‘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는 주님의 돌이킬 수 없는 준엄한 심판을 당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백내장 수술을 하려고 갔는데 검사를 한 결과 진나번 검사 때보다 많이 진행되지 않고, 안구 건조증으로 진단하고 6개월마다 정기검사를 통하여 나중에 눈이 더 나빠지면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하여 그냥 내려왔습니다. 강단에 서면 설교 원고가 희미하게 보여서 많이 힘들어서 수술을 결정하고 간 것인데 진단결과가 수술을 이번에 안해도 된다고 하지만 더 밝게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설교제목 처럼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이라고 정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1:9절‘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으니’라고 합니다. 참 빛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참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고 어두움은 죽음입니다. 빛이 없을 때 죽는 것입니다. 빛이 오므로 비로소 세상이 살아났습니다. 새 생명이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가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걷으면 밝은 햇빛이 들어옵니다. 캄캄한 방을 밝게 한 것은 내가 아닙니다. 햇빛은 내가 커튼을 걷기 전 이미 있었습니다. 나는 다만 햇빛이 방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걸림돌을 없앤 것뿐입니다. 커튼을 걷은 것밖에 내가 한 것이 없습니다. 커튼을 걷으세요. 빛이 들어옵니다. 커튼을 걷으세요. 그러면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햇빛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케 하시려고 일곱 배의 햇빛을 주십니다. 일곱이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빛을 주시고, 완벽한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빛,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벽한 회복과 치유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얼굴입니다. 우리의 행동에 믿음이 나타나야 합니다. 말도 믿음의 말을 해야 됩니다. 듣고 따라다니는 사람과 보고 따라다니는 사람은 다릅니다. 듣고 따라다니는 사람은 귀동냥으로 따라 다니기 때문에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듣고 귀동냥으로 믿지 말고 주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분명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주님의 실체를 나는 봐야한다’주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나는 체험해야지 하며 믿음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속에 믿음의 생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절대 기가 죽으면 안 됩니다. 기가 살아야 합니다. 활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생기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보는 것처럼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셨고 나는 믿고가니 기적은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야 자신의 신앙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얼굴이므로 절대로 기가 죽으면 안 됩니다. 이전의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1.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에 풍성한 복이 임할 것입니다.
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에 풍성한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도록 때를 따라 비를 주십니다. 시65:10절‘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얻기 까지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복을 주셔야만 합니다. 자연과 땅과 식물도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이 땅은 불모지가 되어 버립니다.
세상이 삭막해 집니다. 전 국토가 불모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으면 자연도, 땅도, 식물도, 사람도 살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까 논바닥과 강바닥이 모두 거북이 등과 같이 무섭게 골이 패이고 갈라지고 그럽니다. 그렇게 갈라지고, 메말라 버린 흙은 마치 돌같이 단단해지고, 칼날 같이 날카로워 집니다. 땅도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이렇게 돌처럼 그 마음이 단단해지고, 삭막해지고, 포악스러워 집니다. 심성도 악해지고, 생각도 난폭해 집니다. 그래서 날이 가물면 세상 인심이 흉흉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메말라진 세상에도 비만 내리면 모든 것이 일시에 해결됩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논과 밭에도 비가 와서 물을 먹으면 지금까지 칼날 같이 굳어 있던 흙들이, 돌 같이 굳어 있던 흙들이, 언제 그렇게 부드럽게 녹았는지 스스로 부스러져서 흙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죽어 있던 흙에서 식물들이 돋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비를 성경은 ‘은혜의 단비’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단비는 세상의 단단한 것들을 풀어지게 하고, 말라비틀어진 식물에 생명을 공급하고, 불모지 땅 위에 초목이 돋아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은혜의 단비를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혹 우리가 피땀 흘려 일하고 노력하여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풍성하고 그 성공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23절을 보면‘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농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안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비를 오게 하고 오는 비를 멈출 수 있습니까? 가까운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진에 관한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한 연구소가 있고 지진 계측시설일 발달되어있고 집을 지어도 지진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년 총 1200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 피해액과 인명피해 역시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합니다. 지진이란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개의 지각판이 있는데 그 지각판이 움직이면서 충돌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지각판의 운동이나 이동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예입니다만 사람의 힘으로 자연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현상인 것 같지만 그 현상을 조종하시고 운행하시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148:3-4를 보면‘해와 달 별 하늘 별 물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고 5절을 보면‘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다’고 했고 6절에서는‘저가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지으시고 세우시고 없어지지 않는 자연 질서를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은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소산의 곡식이 살찌고 풍성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본심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곡식과 재물이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농부의 수고에 하늘이 화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농부가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농사는 될 수가 없습니다. 결과는 땅이 먹을 것을 주고,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농업은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비를 주시는 분입니다. 농부의 소망은 농사가 잘돼 소출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기업인의 소망을 기업이 발전해 이익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꿈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은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자수성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야 하고 눈물과 한숨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저도 총각때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에 한번 빠을 사 먹지를 못하고 보름달 이라는 빵을 하루에 하나 먹으면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유는 장가가려고, 돈을 벌려고 하니까 빵하나 먹고 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장면 한그릇 먹고 하루를 보내기도 해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장가를 가고 오늘 여기 까지 왔습니다.ㅎㅎㅎ
두 번째 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친구, 이웃, 선배, 권력 그 누군가가 도움을 주고 밀어주면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여건이나 사람들은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분과 여건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절대로 믿고 의지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세 번째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농부의 밭에는 단비를 내리시고 기업인의 기업위에는 번영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내 손에 바로 잡히지도 않고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대개 큰손은 숨어서 일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돈을 굴리고 만지는 큰손의 심부름을 하는 작은 손들은 얼른 눈에 띄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큰 손이 세계를 덮는 손, 역사를 다스리시는 손이 나를 도우시면 됩니다.
창19:29절‘하나님이 소돔 고모라 성을 엎으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큰 성이었고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고 번영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엎으심으로 그 성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가 필요한 것은 식물만이 아닙니다. 내 영혼도 은혜의 단비가 필요합니다. 비를 주지 아니하시면 내 영혼이 시들어 죽고 맙니다. 주여 내 갈한 심령에 은혜의 단비 말씀의 단비 축복의 단비를 쏟아 부어 주옵소서.
가축의 먹이를 먹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단비로 목초가 잘 자라서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광활한 목초를 마음껏 뜯고, 또한 곡식도 잘되어서 ‘맛있게 한 먹이’즉 ‘발효된 배합사료’,‘(귀리, 보리, 풀, 겨, 소금, 향료 등을 섞어)’를 가축들에게 먹여 가축이 잘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구약시대는 농경시대였습니다. 물질의 축복은 바로 소출의 축복이요. 가축의 번식이였습니다. 이스라엘 지형은 사막지대입니다. 언제나 물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씨를 뿌려도 제때에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비는 곧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밭에서는 곡식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풀밭에서는 가축의 살이 통통 찝니다. 이것은 바로 재물의 번영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28장의 축복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누가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 힘으로요? 우리 능력으로요?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면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2.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필요할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렘5:24절‘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비가 언제 와야 할지 언제 오지 말아야 할지를 알고 계십니다. 때를 따라 비가 적당히 와주면 농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마5:45절‘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합니다. 해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해가 없으면 살 수 조차도 없습니다. 적당한 햇빛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의 복이 어떠합니까?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습니다. 소와 어린 나귀도 맛있게 먹이를 먹습니다. 고산과 준령에 개울물이 흐를 것입니다. 빈틈이 없는 완벽한 자연 혜택을 받습니다. 완벽한 흙과 물과 햇볕과 공기를 얻습니다. 이런 자연의 완벽한 혜택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왜 우리에게 가뭄이 있습니까? 왜 홍수가 납니까? 왜 곡식이 안 익습니까? 왜 깜부기가 생깁니까? 왜 소가 낙태합니까? 왜 양의 새끼가 없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진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욥21:10절‘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현실적 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햇빛을 비추시면 우리의 삶이 풍성합니다. 우리의 곡식과 가축이 잘 됩니다. 비와 햇빛이 늘 적당히 우리에게 내립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셔야 하고,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5절‘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력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변 강대국 앗수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나라를 치고 망대를 무너뜨리고 그들을 파멸시켜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신다는 것이 이사야의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골짜기에 시냇물이 흐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은 파멸시키고 이스라엘에게는 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도 중요하지만 365일 흐르는 시냇물은 더 소중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비는 일년에 두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합니다. 그러나 흐르는 시냇물은 낮에도 밤에도 어제도 오늘도 흐릅니다. 시냇물은 지속적 은혜, 끊임없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한꺼번에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 큰 은혜를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냇물 흐르듯 낮에도 밤에도 봄에도 겨울에도 365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은혜를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한 달에 한번 잘 먹었다고 해서 한달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매일 아침마다 지면에 내렸고 그날 만나는 그날 거두어 먹어야했습니다. 저축도 저장도 안됐습니다. 오늘 은혜는 오늘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먹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는 오늘 해야 합니다.
시145:18절‘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께 자신들의 고통을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고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스라엘이 바로에게 속박되어 있었던 것처럼 사단에게 속박되어 있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귀신에게 매여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또한 돈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라면 못할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안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해결을 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어려운 형편을 가지고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계속적으로 실수를 하고, 잘못을 범했어도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본질적 고통, 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지혜를 믿는 인간은 결코 참된 해방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셔서 여러분의 심령속에 개울과 시냇물이 흘러서 모든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3.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에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상처란 무엇입니까? 상처란 다쳐서 나중에 생긴 자국들입니다. 어느 집에 하도 별난 아이가 방문간에 매달아 둔 그네를 타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문지방에 뒤통수가 깨졌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의사가 하얗게 벌어진 상처을 꿰매주면서 ‘곧 나을 것입니다. 이마였으면 상처가 보일텐데 뒤라서 머리카락으로 가려지니 다행입니다’ 어릴 때 자라면서 다치고, 칼에 베이고 상처나고 우리 몸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상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다치고 아팠으나 이제는 다 나았다는 증거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 상처를 승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할까? 왜 이렇게 행동할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마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습관과 행동, 불행한 길로 가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자신, 내 속의 저주스런 어떤 것이 내 마음과 행동을 몰고 가는 것이 있지 않은가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행동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격 때문에, 또는 기질이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But 좀 더 섬세하게 우리 자신을 들어다 보면 과거에 받았던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내 마음 속에 머물러 있을 때 이것을 ‘상처’라고 이야기합니다. 상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형성되어 남아있게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상실했을 때 우리에게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실패로 끝났을 때, 그 일이 상처가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 받기를 원했던 그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상처가 됩니다. 그리고 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자신이 짓밟혔을 때, 상처가 됩니다. 자기가 가진 귀한 것들과 존재가 위협받을 때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상처는 그냥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습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 성격의 일부, 내 인격의 일부가 되어 남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데도 내가 모르는 이유는 이미 그것이 생활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주면서도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상처가 있는 사람은 화살처럼 꽂혀있는 자신의 상처의 화살을 뽑아서 화살촉을 더 뾰족하게 만들고 거기다 독을 묻혀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부터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아댑니다. 자기가 받은 상처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됩니다. 자기뿐 아니라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됩니다.
이 상처는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제도 부부싸움을 하면서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도 교회와서는 ---안 그런척 했드래요---ㅎㅎㅎ 여러분 내면에 남아 있는 상처가 특이한 것은 내가 남에게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받은 상처는 잘 지워지지 않고 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는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내면의 상처는 상처 입는 그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부모 밑에서 부정적인 자녀가 성장합니다. 야단맞고 자란 자녀들에게 상처가 자꾸 쌓여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내면의 상처는 그 사람에게서 평안을 빼앗아 가고 상한 감정과 불안을 안겨 줍니다. 내면의 상처는 인간관계에 여러 가지 장애를 가져옵니다. 내면의 상처는 생명력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치료하시고 아픔을 치유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출15:25‘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26절‘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며’하나님은 우리의 내면 세계를 중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 상처를 승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치유의 주인이십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 은혜로 무장한 사람은 작은 일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햇빛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햇빛을 비춰주시면 모든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일곱 배의 해는 일곱 배나 병을 잘 치유할 것입니다. 상처를 싸매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능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누가 고치십니까? 하나님이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아픈 것을 고치십니다.
호6:1절‘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성경에는 ‘내가 고쳐주리라’는 말씀이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고 고치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치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달빛을 햇빛같이 만듭니다. 햇빛을 일곱 배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의 ‘달’이란 히브리어 ‘할레바나’로 흰 것을 뜻합니다. ‘해’는 ‘하하마’라는 히브리어인데 뜨거움을 의미합니다. 흰 것과 뜨거운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태양광이 일곱 배나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죽습니다. 일곱, 7이란 숫자는 완전수로서 치유하기에 충분한 완전한 빛을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26절을 보면‘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말4:2절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합니다. 태양은 그 자체가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햇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힘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병 고치시는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38년 동안 베데스다 못 가에서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병자를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한 편 손 마른 사람의 손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소리 지르던 시각장애인들을 고치셨습니다. 아무 희망이 없고 부정하다고 자신을 멸시하던 한센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칼로 친 말고의 귀까지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치유였습니다. 마9:35절‘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합니다. 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까?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은 한 결 같이 대체의학에서 탁월한 자연 치료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치료방법은 바로 자연입니다. 햇빛이야말로 정말 좋은 지료제입니다. 햇빛을 잘 쬐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고, 심장병이나 색전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암 발생 위험을 줄여주고, 뼈의 건강에 도움을 주며, 행복지수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아침 햇빛을 받음으로써 뇌 활성화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긴장과 흥분을 일으키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활발하여 지식이나 정보의 흡수, 논리적인 사고, 아이디어나 발상을 얻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뜰 때의 시간은 많은 것을 버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햇빛의 대표적 기능은 살균작용입니다. 햇빛 자외선의 살균작용은 1분간 쬐면 대장균, 디프테리아균, 이질균 등은 99%가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두고 옷과 이불을 널었습니다. 햇빛의 강력한 살균작용을 생활 속에 이용한 것입니다. 햇빛이란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 조상들은 지혜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섬기던 사람이 하나님 떠나는 것, 예수 믿던 사람이 다른 것 믿는 것, 교회 나오던 사람이 교회 안나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것, 열심이던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쉬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상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상처를 입었든지 하나님은 싸매 주십니다. 언제 어떻게 맞았든지 하나님은 고쳐 주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강조점입니다. 현대인은 상처가 많고 큽니다.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일하다가 상처받고 돈 벌다가 상처받고 여행하다가 상처받고 함께 살다가 상처받고 그 상처를 달래고 고치기 위해 이불 뒤집어쓰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도 있고 상담 전문가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고 훌쩍 현장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상처를 싸매주겠다. 내가 고쳐주겠다. 내가 책임져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고치리라 내가 싸매리라 내가 온전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치고 싸매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찢기시고 상처 받으시고 아파하시고 마지막엔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까? 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하다고 고백합시다. 영광을 돌립시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도 이 세상을 살아 갈때에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 받은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내 과거가 상처로 얼룩져 있을 때를 생각하면 아프고 쓰라린 나날을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삶이지만 그것 때문에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치료받고 건강해져 그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워야 합니다. 오히려 나와 같은 상처로 고통 받는 이들을 치료해 주는 치료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를 건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치료의 광선을 발하실 줄 믿습니다. 그분 앞에 여러분의 상처를 감추지 말고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상처를 통해 아프지 말고 건강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좀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상처 입은 자들을 돌아보는 치유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남을 용서하고 은혜로 용서받고 치유 받아 건강하게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달빛이 햇빛처럼 되는날 일곱배로 밝아진 내 인생에 일곱배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제보다 커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을 닮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얼굴이고 나의 얼굴이 나의 믿음입니다. 사30:26절‘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빛이라는 말은 소망을 말합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입니다. 이 어두움은 빛이 들어오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 되십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는 생명이 자라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는 퇴화가 되고 맙니다. 빛은 능력입니다.
본문에서의 7은 완전수입니다. 3은 하나님의 수(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4는 땅의 수(동, 서, 남, 북)입니다. 이 하나님의 수와 땅의 수를 합하면 7이 됩니다. 7이라는 수는 단순히 숫자적인 놀음이 아니라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무지개도 7색깔 음계도 7음계, 한 주는 7일,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일곱 바퀴, 아시아에 있는 7교회, 성막안의 촛대도 7촛대, 요셉이 꿈을 꿀 때도 일곱 이삭 일곱 황소, 욥의 아들도 일곱, 초대교회의 칭찬받는 일곱 집사(행6:3), 몸을 굽히되 7번굽혀(창33:3), 하루에 7번 찬송(시119:164), 7년이 7번이면 안식년(레25:8). 7배의 축복 완전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사30:23절‘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이 말은 생업에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 이사야가 7배의 축복을 선언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2020년도에는 어떤 상업에서 종사하시든지,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7배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7배의 빛이 비추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 복은 나 한사람만 받아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주변이 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30:24절‘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이 말은 자연이 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나와 내 주변이 모든 자연들이 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30:25절‘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의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란 말은 막혀있는 방해물이 해결되는 것이고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12:1-3절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주신 사람의 옆에 있어도 같이 복을 받도록 아브라함의 옆에 있던 롯도 복을 받았습니다. 나를 인하여 다른 사람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주변이 다 복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창30:27절‘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우리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탈무드라는 책에 ‘쓰러지는 담장 옆에는 절대 혼자 걸어가지 마라’라는 말이 있는데,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랍비가 걸어갈 때는 괜찮다’ 이는 하나님께서 랍비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살다가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곁에 계시면 안전합니다.
7배의 축복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받게 될까요? 믿음대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신뢰’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충실하게, 충직하게’라는 뜻으로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막11:23-24절‘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믿고 나가는 것이 능력입니다.
사30:18절‘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기다려서 기어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무에는 상록수와 낙엽수가 있는데, 낙엽수는 온화한 봄날에는 잎이 파랗지만 엄동설한에는 잎이 변색되고 퇴색됩니다. 일시적입니다. 이런 사람에 사울왕, 히스기야왕, 웃시야왕이 있습니다. ‘내가 한 때 우리교회에서, 내가 그래도 옛날에는, 내가 왕년에’이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 늙은이는 추억에 살고 젊은이는 앞날에 삽니다. 상록수가 되어야 합니다. 상록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요셉, 다니엘, 사무엘, 바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때는 잘 믿고 따랐지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옥은 다듬지 아니하면 구실을 못합니다. 옥토는 갈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 심령의 밭이 기경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참 인제는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변덕 없이 성장해야 됩니다. 동적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활동하고 행함이 있는 신앙입니다. 정지된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엡4:13절‘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아무리 좋은 나무도 사막에 심겨지면 안 됩니다. 돌밭에 심겨지면 안 됩니다. 시냇가에 심겨져야 합니다.
심은 대로 받습니다. 영적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고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시127:1-2절‘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인간의 노력으로는 달빛을 햇빛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햇빛이 칠 배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7배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마7:7절‘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구하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이고 찾으라는 말은 행동하라는 뜻이고 두드리라는 말은 인내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고 행동으로 나가고 인내로 기어이 칠배나 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위해 일생을 바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 것을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시다. 내가 아무리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일과 바꾸지는 마십시다. 마6:33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그날에, 승리하는 그날에, 주님 오시는 그날에, 일곱째 날에, 햇빛이 칠 배나 되어서 어둠이 완전히 끝장나는 그날에, 영광의 주님을 기쁨으로 만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이 의로운 재판관,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또한 세상이 끝나는 그 날에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여러분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여러분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여러분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칠 배나 더 빛난 햇빛이 되어 영원히 천국에서 거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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