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6:17-31, 삼손의 몰락과 하나님의 은혜, 23.9.13, 박홍섭 목사
삼손은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마지막 이야기로 가장 강한 사사였던 그가 적에게 사로잡혀 온갖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나실 인으로 태어난 사사가 적에게 사로잡혀 두 눈을 뽑히고 재주를 넘는 광대가 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사자를 찢던 삼손이 소처럼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자신의 영적 비밀을 알려준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 일곱 가닥의 머리털이 밀립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이 떠나갑니다. 얼핏 보면 삼손의 능력이 사라진 이유가 그의 머리털이 밀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털은 일곱 가닥만 밀렸습니다. 아직 남은 머리털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능력이 사라진 이유는 머리털 때문이 아닙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삼손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능력은 머리털이 근원이 아니라 그의 머리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근원입니다. 머리털은 단지 하나님이 그의 머리 되시며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며 그에게 힘을 주신다는 외적인 상징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삼손을 떠나셨습니까? 그가 하나님이 주신 나실 인의 사명, 구원자의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여자의 꼬임에 빠져 나실 인의 영적 비밀을 발설하고 그녀의 무릎 위에서 영적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상을 나실 인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위해 여자의 치마폭에 휩싸여 살면서도 머리만 깎지 않는 한 자기가 나실 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과 신학이 이미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영적 무지와 그로 말미암은 비참한 몰락의 자리로 삼손을 이끌었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문제는 영적 무감각과 무지입니다. 그는 들릴라가 세 번이나 자신을 배신했음에도 몰랐고 그녀가 블레셋에게 매수되었음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자신을 떠나고 있음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습니까? 하나님은 그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잘못 살았음에도 불쌍히 보시고 이스라엘을 생각하사 많은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 많은 은혜의 기회를 다 저버리고 여인의 무릎 위에서 깊은 잠에 빠졌고 마침내 눈알이 뽑힌 체 가사로 끌려가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며 온갖 조롱과 수모를 당하는 비참한 몰락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비참한 몰락이 갑자기 일어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왔던 결과입니다. 오늘 당장 우리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은혜가 허락된다고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셔서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주고 있음에도 삼손처럼 계속 영적 무지와 무감각으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언젠가는 이런 비참한 몰락의 자리로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삼손을 통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바닥까지 떨어지는 비참한 몰락의 시간이 오기 전에 영혼의 존귀함을 지키고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비참한 몰락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틈새로 빛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의 머리털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상징입니다. 다시 머리털이 자라고 있습니다. 눈알이 뽑히고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면서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어있는 그에게 다시 은혜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성도의 삶은 몰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십시오. 노함은 잠깐이고 그의 은혜는 평생입니다.
가장 비참하게 몰락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피어나고 있음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삼손이지만 그를 버리지 않고 그를 통해 블레셋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25-30입니다. 삼손은 실패했지만 그를 사사로 세우신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삼손은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으십니다. 삼손은 몰락했지만 하나님은 몰락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의 실패와 넘어짐과 몰락과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십니다.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아 달라는 삼손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마지막 능력을 베풀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시 삼손에게 힘을 허락하시고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블레셋 방백들을 다 함몰시키심은 삼손을 생각하고 그의 복수를 갚아주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곤 신전에 모여 삼손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면서 다곤을 연호하던 블레셋 방백들과 지붕 위에 있던 삼천 명의 남녀들 앞에 삼손의 죽음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나타내고 다곤이 신이 아니라 삼손의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고 스스로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가족이 삼손의 시신을 들어올려 마노아의 묘지에 매장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방탕한 삶을 살다가 비참한 몰락을 경험하고 죽었지만 하나님은 삼손의 죽음을 통해 이방 신전을 심판하셨고 그의 영혼을 들어올리셔서 사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삼손의 스토리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삼손처럼 이렇게 몰락과 죽음으로 사용될 필요가 있냐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몰락의 시간이 오기 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계속 기회가 주어질 때 잘못된 신학과 잘못된 삶을 버리고 부르심의 소망대로 돌이켜 영혼의 존귀함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주신 모든 재능과 은사, 그리고 건강과 재물,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외적인 조건, 밀릴 수 있는 머리털과 뽑힐 수 있는 눈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그분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해서 비참한 몰락의 순간이 와도 하늘이 열려 있음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 머리털이 자라고 다시 힘이 주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