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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기라(2201.2023.7.23)
벧전 5:7-9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가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심문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는가?-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아닙니다. 목사님은 곧 저주의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밝은 빛이 환하게 비추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목사님을 꼭 껴안고 보좌를 향해 올려다보며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했고 항상 깨끗하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저의 편에서 있었으니 저도 이 사람의 편에 서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항상 목사님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저의 편에 서 있겠다고 했으니 나도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라고 증언해 주시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누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예수님이 내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예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고난을 받고, 어떤 어려움에 있든지 항상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상은 변하고 바뀌어도 변함없이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5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위해서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앞에 갑자기 한 사람이 칼을 빼 들고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서 ‘너는 우군이냐, 적군이냐’하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우군도 아니고 적군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 곳에 왔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라면 여호수아의 편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 편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왔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함을 깨우처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편에 설 때, 하나님의 군대가 싸워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승리하게 되었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를 바라는가?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주장하며 싸우며 분쟁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되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고, 너도 하나님 편에 서면 서로 싸우고 분쟁할 일이 없습니다.
굳건한 믿음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은 어떤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은 고난으로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은 고난으로 실패를 당해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은 고난으로 절망의 늪에 빠져도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일 때 믿음이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모습을 추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의 모습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야말로 믿음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5절‘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더 나아가 그를 대적하십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목욕탕이나 식당에 가면 이런글이 있습니다. ‘주인에게 맡기지 않은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하는 글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맡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말로 맡긴다는 말은 ‘꼴’ 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 위에서 아래로 굴려서 내려 보낸다’ 는 것입니다. 돌을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 언덕 아래로 돌을 굴려버리면 얼마나 가볍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던 길갈이 바로 ‘굴러가다’는 뜻입니다.
모든 근심과 염려와 걱정을 다 하나님께 굴려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맡긴다는 말이 ‘어피어리판테스’ 인데 그 뜻은 ‘내어 던진다’ 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모두 완전히 내어 던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모두 맡길 때에 그 다음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물밀 듯 넘쳐 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염려와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염려가 참고 견딜 수 없을 때, 절망하게 됩니다. 때로는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염려는 인생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염려는 건강한 정신을 쇠약하게 합니다. 평안한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염려는 정신적인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육체적인 병인 소화불량, 고혈압, 불면증 등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염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염려는 신앙적으로도, 불신과 낙심을 가져다 줍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때로는 염려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14:1절‘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염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납니다. 여러분! 염려할 일이 있을 때, 그 염려를 붙들고 밤을 새우지 마십시오. 그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께서 해결하여 주실 것을 믿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28일(수) 뉴스를 보았습니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83세)이 전남 순천시 서면 6개 마을 주민 280명에게 2,6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개인 통장으로 돈을 꽂아준 것입니다. 액수는 마을 거주 연수에 따라 5단계로 차등 지급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이회장은 모교인 동산초(25회)와 순천중(15회) 동창생 80여 명에게 현금 1억 원, 순천고(8회) 동창에게는 5천만 원씩 나눠 줬답니다. 왜 초교와 중학교동창은 1억을 주고 고교동창은 5천만원을 주었는지 궁금했지만 개인적으로 물어볼 길이 없어 숙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이 회장은 주민들과 동창생들에게 일일이 계좌번호를 묻고 지급 의사를 알렸으며, 거액의 증여로 인한 세금도 미리 공제 후 전달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운평리 한 주민은 ‘회장님이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 주민들이 고향을 지켜준 것에 고마움의 표현으로 돈을 주신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중근 회장은 군 동기, 친인척, 주변 어려운 지인들에게도 격려금을 전달하며 온정을 베풀었는데 그동안 이 분이 개인적으로 기부한 현금만 약 1,400억 원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선물 세트, 공구 세트, 역사책 등 기부 물품까지 더하면 총 2,400억 원 규모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부영그룹이 기부한 전체 금액은 총 1조 1천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이 회장은 운평리 죽동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동산 초등학교와 순천 중학교, 순천 고교를 졸업하고 건국대에 입학해 다니다가 가정 형편 상 중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상이 그 분에 관한 신문기사입니다. 이분 돈을 멋있게 쓴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기업이나 사업가가 돈을 푸는 이유가 뭘까요? 금품을 돌려 표를 사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의원이 되려 하거나, 선심성 향응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아 사기를 치거나, 아니면 뭔가 이익을 편취하려는 목적으로 금품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회장님은 올해 83세 연로한데다 일선 경영에선 한발 물러나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지난날을 회고하며 진짜 고향을 지키는 분들에게 뭔가 보상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제가 너무 세상물정 모르고, 철모르는 소리입니까? 그렇게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저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어려운 이웃이나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선물을 돌릴 때 본인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받는 사람은 잠시 뿐이지만 베푸는 사람은 세상 떠날 때까지 행복할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기쁨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도 이렇게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돈 많은 장로님께서 ‘우리 목사님의 생명수 같은 설교는 더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한다’며 ‘금주 낮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1인당 100만원씩 주겠다’고 광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얼마나 많이 모일까요?
집에서 놀고있는 자식이나 게임에 빠진 손자, 심지어는 병든 남편까지 억지로 데리고 오려 하지 않을까요? 아파 죽겠다는 사람을 리어커에 실어서라도 데려오고, 죽어도 교회 문턱 밟고싶지 않다는 사람도 손이야 발이야 빌어가면서까지 전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내 설교가 그만도 못한가? 100만원의 가치도 없는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목사님, 일주일 내내 혼자있다가 주일에 교회에나 가야 웃어요’,‘목사님, 삶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요.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요. 떠나고 싶어요. 그래도 주일에 주시는 설교 말씀으로 한주를 잘 살아갑니다. 그러니 목사님 힘내세요’라고 한다면 ㅎㅎㅎ 무익함과 무능력에 지친 내 어깨를 밀어주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보며 오늘도 힘차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증거합니다. 여러분도 한주일 힘들게 살아오셨지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고 한주간 삶의 터젼에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인생길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까?
마음에서 염려를 떨어내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설교 말씀 들을 때는 조금 은혜가 되고, 위로도 되는 것 같은데, 교회 밖을 나가 일상생활로 되돌아가면 잊어버렸던 염려가 슬그머니 다시 올라옵니다. 또 고민되고, 또 낙심되고, 또 좌절합니다. 염려라는 것이 찰거머리처럼 떼어내면 또 붙고 떼어내면 또 붙습니다. 맡긴다고 애써보다가도 또 다시 밀려오는 염려들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십시오’아무리 선포해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기 십상입니다. 어떻게 맡기면 좋겠습니까?
기도하면서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믿음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 믿음만이 보배입니다. 이 세상 것 다 없어진다고 하여도 믿음 하나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티끌만도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며 맡겨야 합니다. 마치 부부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인생을 서로에게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서로를 기꺼이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가 바로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전부를 주님께 맡기는 것은 마지못해서 억지로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라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서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든지 다 맡아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용광로 속에는 무엇을 넣더라도 삽시간에 모두 녹여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능력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우리 인간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일단 주님의 능력에 맡기기만 하면 일시에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이 모든 문제를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2.인생길 무엇을 맡기는 것이 좋습니까?
7절‘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말을 몰라서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잘 안됩니다. 염려와 가까운 말이 근심입니다. 근심의 원인은 불안과 공허함에서 옵니다. 곧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맡기면, 정말 해결될까’라는 불신하는 마음과 다 맡겨버리면 내 안에서 무언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불신하는 마음, 즉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근심의 짐, 염려의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염려와 근심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염려와 근심이 산더미 같이 높게 쌓였는데도, 믿음이 없어 주님께 맡기지 못하면 고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높여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의 짐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맡기기가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길 수 있는 큰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께 염려를 맡길 수 있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또 시간이 지나 믿음이 떨어지면 또 기도하고, 믿음이 다시 충천 되면, 그때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문제도 해결되고 염려와 근심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6: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새워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할 것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 없음을 염려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세상이 주는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믿음과 말씀을 내 안에 충만하게 채워서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염려를 모두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 염려가 무엇입니까? ‘염려’란 ‘마음을 나눈다. 물어 뜯는다. 날카로운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사나운 짐승이 이빨로 다른 약한 동물의 목을 꽉 물어 질식해 죽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염려는 질식하게 하고, 숨을 못 쉬게 합니다. 염려에 빠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염려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마음만 찢어 놓습니까? 염려는 우리의 행복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믿음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 눅21:34절‘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활의 염려로 둔하여진다’고 했는데, 여기서 ‘둔하여진다’는 말은‘감각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영혼의 감각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염려가 지나치면 우리의 생각이 마비되고 삶이 망가집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몸과 영혼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마비시킵니다. 아프게 합니다. 병들게 합니다. 죽게 만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33:29절‘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려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매순간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염려를 품고 있으면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참된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습니다.
벧전5:7절‘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잠15:13)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잠17:22)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합니다.(고후7:10)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라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맡긴다고 하는 것은 ‘다시 찾지 않는다. 던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쓸모없는 것을 멀리 멀리 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백해무익한 염려를 멀리 멀리 던져 버려야 합니다. 염려는 멀리 던져 버리고 다시 찾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살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 염려하고 있습니까?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내일 이루어지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게 있는 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우리 가운데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염려가 끝나지 않습니다.
온갖 걱정거리와 근심거리를 안고 날마다 살아갑니다. 하나의 염려가 사라지면 또 다른 염려가 밀려 옵니다. 염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염려를 모두 다 주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온갖 근심과 고민과 걱정거리를 송두리째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을 붙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염려를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빌4:6-7절‘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짐들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염려를 맡아 주시고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찬송가 369장 가사입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당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보다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은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와 염려를 주님께 믿고 맡겨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맡길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염려를 해결하여 주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모두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시37:5절‘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길’이란 히브리말로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장래일’ 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장래에 어떤 길을 걸어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아십니다. 신30:15절‘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9절‘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길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이 갔으면 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가는 길을 친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나아갈 길도, 주님만을 믿고, 주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맡기지 못합니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나아갈 길도, 주님을 믿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한다고, 부흥하지 않습니다. 염려한다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맡기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다윗은 시23:1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망한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 뿐만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을 믿고, 맡기고, 순종하며, 따랐습니다.
여러분의 나아가는 길을 주님께 맡기고, 목자되신 주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행복의 길로, 생명의 길로, 형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 미래의 비전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으로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는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행사를 모두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맡기면,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들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사, 일, 계획 등을 주님을 믿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솔로몬은 시127:1절‘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일어 설 수 있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안전합니다. 낙심되는 일이 많고 무엇을 해도, 어디에 있든, 늘 불안한 사회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든 환경이든, 쉽게 믿을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집을 세워주셔야, 바로 설 수 있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께 여러분의 행사를 모두 다 맡기십시오. 문제가 있을 때,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생각과 계획과 모든 일들을 모두 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책임져 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님 앞에 여러분의 모든 계획과 행사를 맡기므로 복되고 형통한 역사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하고자 계획한 모든 일들 가운데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까요? 맡길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의 짐을 모두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시55:22절‘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오늘날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모든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일평생 지고 가야 할 죄악의 짐, 가난의 짐, 질병의 짐, 불안과 위험의 짐, 등을 다 우리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어떤 짐이든지 능히 맡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짐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의로운 사람, 착한 사람이 망하도록, 절대로, 그대로 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의 짐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짐이란 무거운 것입니다.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가 구부러지게 합니다. 그 짐을 지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옵니다. 그런데 우리를 무겁게 하는 짐 중에 제일 무거운 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의 짐입니다. 시81:6절‘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어깨에서 죄의 짐을 벗기시려고 여러분의 손에서 무거운 광주리를 놓게 하시려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러분의 무거운 ‘죄의 짐’까지도 주님은 마다하지 않으시고, 모두 다 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거운 죄의 짐을 모두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 같이 찬송을 한 절 부르겠습니다.<찬337장 1절>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비틀거릴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진실로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로 회개로 믿음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길과 모든 행사와 무거운 짐과 염려와 원수 갚는 것과 기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기도로서 온전히 맡겨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은혜로 기쁨과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3.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씀 중에‘근신하라’는 말은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이고 ‘깨어라’는 말은‘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염려와 근심과 같은 내부의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하려는 마귀와 같은 외부의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굶주린 사자와 같은 마귀에 당해본 경험자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피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픈 과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마귀의 공격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참혹하게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가장 강한 표현을 사용해서 ‘근신하라 깨어라’고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마26:41절‘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6:13절‘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님이 잡히셨던 밤,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의 결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이 있기에 베드로는 다른 성도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고 담대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벧전4:7절을 보면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외쳤습니다. 때가 때인만큼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약 4:7절‘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근심의 짐, 염려의 모든 짐을 안고 와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근심, 두려움, 연약함, 지나친 욕심, 닥쳐오는 유혹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로 맡겨버리십시오.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하무적, 백전백승의 무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신 권세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사탄, 마귀, 귀신 가릴 것 없이 한 방에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요16:33절‘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요한일서 5:4-5절‘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근신하여 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건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터를 견고하게 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근신하여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여러분의 나아갈 길, 행사, 짐,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근심과 걱정, 환난과 역경의 모든 짐을 다 하나님께 맡겨 드릴 때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소망의 삶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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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