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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4일. 결국 하루 더 이스마일리아에 남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잘한 결정이었다. 나는 캡틴 톨스(Troels)에게 하루 더 남기로 했다고 말했고, 그는 즉시 디젤 에이전트에게 문자했다. 오전 8시.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나는 앞 요트의 영국인 부부에게 인사하러갔다. 아담과 다이애나, 은퇴한 노년의 부부가 세일요트로 세계 일주 중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들이 직접 오더하거나, 아예 자신들이 만든 요트를 타고 다닌다. 캡틴 톨스(Troels)도 그의 부친이 만든 요트라고 한다. 디젤 탱크가 750리터고, 물탱크가 또 1톤, 거기에 워터메이커도 있다. 배 곁에는 용골을 덧대어 엄청 튼튼하다.
아담과 다이애나는 이미 두 번째 세계일주 중이다. 캡틴 톨스(Troels)도 두 번째니 서양 세일러들은 세계를 두어 번 쯤 다니는 게 기본인가보다. 그들도 이번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서 깜짝 놀란 모양이다. 박시시에, 세일러를 마리나에 가두듯 하는 에이전트들의 사기성 짙은 행각과 열악한 요트 마리나 환경에 넌더리가 난 모양이다. 아마 다시는 이집트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아담과 다이애나에게 남은 경유통이 있으면 팔라고 한다. 그들은 경유통 두 개를 주면서 돈은 됐다고 한다. 오히려 배에 여유 공간이 생겨 좋다고 농담도 한다. 아내를 불러 이들과 인사 시킨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작별인사를 한다. 아담과 다이애나 부부는 이제 크레타로 떠난다. 포트사이드에서 계류할 때, 배 파손을 주의하라고 다시 일러준다. 세일러들이 다 같이 덤벼들어 그들의 배가 안전하게 이안하도록 돕는다. 본보야지! 라고 외치며 서로의 안녕을 빈다. 원래 세일러들은 서로 돕지만, 다 같이 타국이고 이집트에서 당한 것들이 서로에게 유대감을 더해 준 모양이다. 이집트 에이전트들은 관광객들에게 아주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일반인들은 상당히 친절하다. 에이전트들은 다 XXX! 라고 보시면 된다는 또 다른 선장님의 탄식도 다시 기억난다.
오전 9시 캡틴 톨스(Troels)의 친구인 카슨이 배로 왔다. 같이 차 한 잔 하는데 곧 캡틴 톨스(Troels) 도 왔다. 둘이 친구냐 하니 그건 아니고 카슨의 딸이 베네토 40을 사서 폴리네시아를 항해 중에 톨스를 알게 되었고, 카슨 딸의 소개로 톨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진짜 세일러 다운 만남이다. 내가 볼보 펜타 엔진은 처음이라, 엔진오일 갈기, 필터류 갈기, 임펠라 교환 등을 좀 도와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둘은 차를 마시자마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엔진커버를 열고 엔진을 살피는 모습이 진짜 프로들이다. 면봉을 달라고 해서 엔진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한다. 오일이 좀 샌다고 어디서 새는지 확인 하겠다는 거다. 오일량을 체크하고 기어 오일도 체크한다. 기어오일은 엔진 오일과 같은 것을 쓴다고 금새 검색한다. 엔진을 싹 닦고 엔진 RPM을 1,600까지 공회전하며 엔진을 살핀다. 헤드 개스킷 쪽은 이상이 없고(있으면 심각하다.) 엔진 커버의 개스킷 쪽에서 약간의 누유가 있다며, 한국가면 엔지니어에게 보이고 교환하라고 한다. 당장 문제가 없다면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엔진 상태는 새 엔진 같이 보인다며, 엔진을 교환했느냐고 묻는다. 2020년에 전부 손본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들은 오일 썩션 펌프를 가져와 엔진오일을 7.5리터 뽑아낸다. 아내가 운동 한다며 열심히 펌프질 했다. 엔진에 공기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날 때까지 완전히 오일을 뺀다. 문제는 연료 필터다. 이탈리아에서 준 연료필터란 것이 하나도 제 것이 아니다. 나는 조만간 연료필터를 확보해야 한다. 엔진오일 필터만 6개다. 임펠라는 3개 새것을 샀다. 캡틴 톨스(Troels)는 연료필터는 200시간마다 교환한다고 한다. 오일필터는 400시간. 임펠러는 800시간마다 무조건 교환. 대단하다. 엔진 관리의 정석이다. 그리고 자기들은 5노트로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스리랑카에서 지부티까지 14일이 걸린 거다. 나는 1,300Rpm 5.5노트로 다닌다. 그러나 속도는 다시 한 번 더 느리게 고려해 볼만 하다.
엄청나게 고생하고 모든 부분들 다 점검하고 교체했다. 카슨에게 임펠러를 아주 천천히 빼고, 타이밴드로 감아서 넣는 방법도 배웠다. 진짜 나는 주변 정리만 할 정도로 이들이 아주 전문적인 엔지니어처럼 일을 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하니. 톨스가 카슨을 놀린다. 카슨 일손이 느려서 며칠 뒤에나 가능할거라고 낄낄거린다. 이렇게 농담을 해가며 엔진룸 바닥의 고인 물과 오일 찌꺼기까지 전부 닦아낸다. 완전 새 엔진처럼 만들어 놨다. 놀랍다. 이들에게 여러 수 배웠다. 수에즈에서 연료 필터와 앵커, 앵커체인을 구할 수 있을지 확인해 봐야겠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필터를 구해야 한다.
그사이 톨스가 연결해준 수단 수아킨 에이전트 모하메드 에게 연락이 왔다. 디젤 연료와 물, 달러까지도 가능하단다. 희소식이다. 캡틴 톨스는 좋은 사람이라며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지부티의 에이전트 아산에게도 연락이 왔다. Troels is good friend! 라고 한다. 톨스는 어디에서나 제대로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에이전트들도 톨스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톨스도 좋은 에이전트들을 만났다. 다만 이집트는 예외다. 톨스도 그들에 대한 평가가 아주 나쁘다. 하지만 나는 톨스 덕에 내 문제들이 하나 둘씩 풀리고 있다.
디젤 에이전트가 왔다. 에이전트는 디젤 1리터에 1.5달러, 운반비는 한번에 20달러라고 한다. 나는 500리터를 신청한다. 운반비는 두 번 40달라. 총 790달러다. 배를 기름으로 가득 채우고 여차하면 지부티까지 바로 갈 태세를 갖춘다. 그러나 오늘 상황을 보면 수단 수아킨에 들렀다 가야겠다. 그럼 약 5일씩 끊어 가니까, 항해에도 큰 문제가 없을 거다.
톨스와 카슨이 작업을 마치니 오후 1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우리가 내기로 한다. 그런데 마리나 식당이 5시에 마친다며 4시에 저녁을 먹어야 한단다. 참 말도 안 되게 불편한 이집트다. 점점 더 정나미가 떨어진다. 반드시 지나가야만 수에즈운하 통과 객들에게 이정도면 아예 행패다. 시간이 촉박한데 디젤 에이전트는 2시 다되어 왔다. 우리가 4시에 식사를 해야 하므로 서둘러 달라고 한다. 운반이 두 번에 40달라 라고 하더니 갑자기 3번에 60달라 란다. 말이 계속 바뀐다. 표정하나 안 바뀐다. 그리고 디젤을 500 리터 산다는 문서를 써주라고 한다. 세관 감시 경찰에게 그 문서를 보여주어야만 한단다. 참 열심히들 산다.
아내가 배를 청소하다, 에구 이게 뭐예요? 하고 놀란다. 실은 어제 러시아 배가 떠나면서 내게 찢어진 스타킹을 하나 주고 갔다. 기름 2톤을 넣느라고 유조차가 와서 기름을 넣었는데, 쇳조각하고 더러운 것들이 너무 많아 이 스타킹으로 임시 필터를 만든 거라 한다. 도대체 디젤유가 얼마나 더럽기에! 나도 슬슬 걱정된다. 여분의 연료 필터도 없는데 난리네. 어디든 최대한 빨리 연료 필터를 확보해야 한다.
디젤을 기다리는 짬에 배에 물을 넣기로 한다. 호스가 없고 엄청 굵은 호스가 보인다. 고민하는데 갑자기 이집트 사내가 오더니 유 코리안? 한다. 예스! 나는 코리안이다. 하니 자기는 컨테이너선을 타면서 부산에 여러 번 와봤다고 한다. 이 호스는 우리 전용 호스인데 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구를 챙겨와 호스를 적당한 굵기로 연결해 준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배에 물을 넣고 호스를 돌려주니 직접 감고 호스를 옮기느라 더러워진 내 손에 물도 뿌려 준다. 굉장히 큰 파워 요트 두 대를 관리한다. 멋진걸? 누구 요트야? 이집트 대통령. 왓! 영광이다 사진 찍어도 되나? 물론이지. 이집트에선 대톨령이 이런 호화 요트를 가져도 되는구나. 한국 같으면 난리날 일이지. 2~3미터짜리 경기용 딩기 요트 가지고 있다가 호화요트라고 대서특필된 대통령도 있는데. 이집트도 보통 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좋다.
3시에 디젤이 왔다. 먼저 10개가 왔다. 200리터다. 톨스가 와서 디젤 기름 넣는 방법을 알려준다. 매우 간편하고 쉽다. 불면된다. 하나 또 배웠다. 기름 색이 좀 검다. 톨스는 100%는 아니지만 깨끗한 편이라고 한다. 일단 배에 가득 채운다. 배에 남은 기름이 제법 있었나 보다. 7개 반, 150리터가 들어간다. 남은 50리터는 오늘 하루 종일 일해 준 톨스에게 아낌없이 선물한다. 이제 15개 총 300리터가 더 오면 된다. 내 배는 오늘 650리터의 기름을 싣는다. 이제 내 배는 13일 정도를 갈 수 있다. 1,300Rpm으로 5.3~5.5노트를 유지하면 더 갈 수도 있다. 엔진오일도 갈고 임펄러도 갈았다. 냉각수도 보충했고, 기어오일도 보충했다. 톨스는 엔진 켤 때마다 매번 엔진룸을 확인하라고 한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뭔 일인지, 디젤 에이전트가 직원같이 보이는 사내에게 불 같이 화를 낸다. 그는 현대 엑셀 승용차를 가지고 기름을 배달했다. 1989년 내가 처음으로 샀던 차다. 감회가 깊다. 이집트는 아랫사람에게 마구 성질을 낸다. 이들의 노동문화도 1989년 쯤에 멈춘 것 같다.
오후 4시가 다되어 마리나 내의 식당으로 갔다. 이집트에서는 제법 고급 진 곳인가 보다. 보기에 유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중이다. 여기도 에이전트가 따라 온다. 우리 7명이 식사를 주문한다. 메뉴를 보여 주지 않는다. 그냥 프라이드치킨, 그릴드치킨, 프라이드 피쉬, 그릴드피쉬다. 추가 메뉴는 밥이나 프렌치 프라이 중 택일. 내가 좌중에게 맥주라도 한잔씩 하라니까, 다들 웃는다.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 술이 금지되어 있다. 실수로 농담을 한 셈이다. 콜라나 사이다중 택일이다. 잠시 후 나온 식사는 우리나라 체인점 음식 같이 보인다. 내 입맛에 50점이다. 어쨌든 사진도 찍고,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쳤다. 한꺼번에 5명의 덴마크 친구가 생겼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종업원이 당황한다. 뭐지? 계산대로 가서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에이전트에게 물어 보란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식당에 메뉴가 없더니. 식사비를 왜 에이전트에게 물어보나? 식당 주인이 알아서 계산해야지. 나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세계 어느 식당이나 메뉴와 금액이 있다. 보니까 계산대에 매뉴와 금액이 있다. 대략 120 이집트 파운드들이다. 7명이면 840 이집트 파운드다. 그런데 1인당 15달러란다. 3,600 이집트 파운드란다. 내가 여기 메뉴판과 금액은 뭐냐고 따진다. 그러자 여기 음식 값이 너무 비싸서 지금 우리가 먹은 비용이 일반 노동자 한 달 급여란다. 그래서 여기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메뉴란다. 그럼 우리 방문객을 위한 메뉴는 어디 있냐? 따지니 같은 이야길 반복한다.
나도 모르게 썩소가 나온다. 그중 젊은 녀석이 왜 웃느냐고 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번역기를 켜라고 한다. 나는 없다고 한다. 그 와중에 에이전트는 음료수 가격이 빠졌잖아? 레몬 가격이 빠졌잖아, 자꾸 가격을 올리란다. 결국 3,800까지 올라갔다. 지들한테는 엄청난 비용일지 몰라도, 한국에서야 1인당 2만 4~5천 원짜리 손님 대접 못 할 것도 없다. 하루 종일 엔진 고치고, 마리나 에이전트 확인해준, 덴마크 인들에게 애써 대접하고 분위기 망칠까봐 그냥 주기로 하고, ATM 기계로 간다. 헉! 내 카드가 안 된다. 아내 카드를 넣으니 된다. 그런데 아내 카드에 돈이 7만원 밖에 없다. 다 내게 보냈다. 핸드폰으로 아내 통장에 돈을 보낸다. 세상 좋다. 이집트 이스마일리아에서 핸드폰으로 계좌 송금을 하다니.
돈을 보내고 카드로 4,000 이집트파운드를 찾는다. 한국 돈 17만 3천원이다. 까짓껏, 내일이면 여긴 끝이다. 거스름돈 400 이집트 파운드를 준다. 나는 필요 없으니 달러로 달라고 하니 에이전트가 펄쩍 뛴다. 나도 그냥 해본 소리다 요놈아.
돌아와 톨스의 배로 간다. 43피트인데 공간이 엄청나다. 그의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으니 모든 게 세일러에 맞춰져있다. 가족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전형적인 유럽 세일러의 요트다. 잠깐 오늘 식사에 대해 말한다. 사람이니까 다들 상황을 말 안 해도 안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항해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 눈부신 발전을 하는 선진국이라는 것도 잘 안다. 강릉을 이야기 할 때, 평창 동계올림픽을 말하니 다 안다. 설명하기 편리하다. 이들이 에이전트에게 버터와 세제를 사오라고 부탁했는데, 마아가린과 엉뚱한 세제를 사왔다. 이런 것도 대행하면서 돈을 빨아 먹는 거다. 톨스 일행도 당장 이집트를 떠나고 싶지만 현재 지중해 날씨가 안 좋아서 며칠 기다려야 한단다. 나도 지중해 날씨를 보니 안 좋기는 하다. 하지만 톨스 일행은, 우리보다 더 안전한 날씨일 때만 출항하나보다. 그들의 여유가 부럽긴 하다. 내일 우리 배 떠날 때 다들 도와준단다. 끝까지 친절하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오늘 엔진 정비를 도와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니, 자기들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오후 7시 20분. 배로 돌아와 경유통 15개를 갑판에 묶는다. 집세일 시트 때문에 한쪽으로 15개를 다 실으니 배가 조금 기울어지는 듯도 하다. 어쨌든 총 650리터를 실으니 마음 든든하다. 하지만 이걸 다음 마리나에서 앵커링하면서 혼자 딩기로 나를 생각하니 착잡하다. 보통 고생이 아니겠구나. 한창 경유통을 묶고 있는데, 에이전트가 온다. 수에즈 운하에서 주는 선물이라며, 웬 초콜릿을 준다. 저도 인간이라 미안했나? 어차피 수에즈 통과하면서 쓰려고 가져온 돈이고, 멋진 수에즈 운하 구경도 했다. 하지만 마치 모기떼에 뜯기듯 돈을 쓰니, 돈쓰고 뒷맛이 아주 나쁘다. 어쨌든 이스마일리아는 내일로 끝이다. 리나에게 야채 계란 볶음밥을 해주고 오늘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