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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2259.2024.7.21) 마12:31-37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세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승리하는 성도가 되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말씀으로 구원을 위한 언약을 주셨고, 성자 하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그 구원의 언약을 이루셨고, 성령 하나님은 영으로 오셔서 각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 사역을 성령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 이루시는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의 영이 성령입니다.
우리에게 왜 성령이 필요합니까? 지금은 약속된 성령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욜2:28-29 절‘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모든 육체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행2:16-17절‘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성령시대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요엘서 2장에 예언하신 그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물처럼 부어주신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은 말세 중에서도 말세에 이른 것입니다. 원래 말세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말하는데 요새는 말세 중에서도 말세인 것입니다. 어쨌든 말세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부어주시기로 약속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누구든지 다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중심이 돼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중심이 돼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려고 하면 성령의 감화 감동과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야 할 이유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행4:29-31절‘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 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 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고전2:10-12절‘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눅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없어서 넘어질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모양으로 흔들거리지 말고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이 든든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믿음이 생겨납니다.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후5: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오순절후 베드로의 첫설교 요지도 성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것을 잃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오늘은 왜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바로알고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결핍되면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호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은 하나님을 바로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같은데 도리어 하나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을 통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하지만 솔직히 그렇치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원숭이가 자기주인의 콧 등에 파리가 앉은 것을 보고는 돌맹이를 들고는 주인을 위한다고 콧 등에 있는 파리를 잡으려다가 콧등만 깬것과 같을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위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공갈협박한다고 해서 쳐다봅니까? 이번에 나를 쓰지지 않으면 하나님 손해라고 우기면서 따진다고 하나님이 눈하나 깜짝 합니까?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쓰실려고 능력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잘못되어서 쓰임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임받을 수 있도록 거짓말을 버리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경건생활을 하시면 능력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호6: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롬10:2-3‘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한낱 제사나 드리는 대상으로 혹은 자기민족을 이방인의 손에서 구출하시는 분으로 또는 육신적인 행복이나 안일을 주는 분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때에 그들은 영접을 하지 못했습니다. 요1: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부터 배척을 받았고 살면서도 그러했습니다.
마11: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12:24‘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요10:20‘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요1:46‘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행24: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밖아 죽으심으로 온 인류을 위해 구속주가 되신분을 고발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중시하면서도 의와 인과 신은 버렸습니다. 이들은 마15:6절에 유전을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겼고, 요9:22절에는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자는 교회에서 출교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서 마13:13-17‘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들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 탄생시에도 예수님이 구주인줄 몰랏지만 시므온이나 84년동안 과부로서 살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은 안나라는 여인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요일5:9-11‘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했습니다.
성령님도 증거합니다. 요15:26‘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님도 증거합니다. 요14: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지식이 없어서 성령님에 의해서 당시의 유대인들 처럼 성령을 바알세불이냐 샤머니즘이냐 취급하니 큰일입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신관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강력하게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마12:31-32‘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죄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들린 자를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행하였다고 비난하는 죄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성령 훼방죄인 것입니다. 이는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하시는 역사를 거부하는 것으로, 참회와 중생에 이르는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기 때문에 사함 받지 못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영원토록 그리고 결단코 용서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앞에 있는 상황과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을 향해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예수님을 모독하고 거역함으로써 성령을 모독하는 죄,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죄는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 구원을 개인에게 적용시키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고전12:3). 우리가 거듭나 새롭게 되는 것도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딛3:5).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감화의 결과입니다(슥12:10). 그렇게 볼 때 성령을 모독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히10:29절‘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했습니다.
2.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의 창고에 악을 쌓아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완전히 버리지 않거나 고백하지 않아서입니다. 33-35절에 악한 말을 하는 죄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를 보고 판단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협한 지식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말을 서슴없이 범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이는 사탄에게 속한 멸망의 자식들로 악한 열매를 맺고 말로 마음에 가득한 악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창고에 악을 쌓아둔 사람은 언제든지 입으로 악한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으니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36-37절에는 무익한 말을 하는 죄가 있습니다. 무익한 말이란 아무 유익함이나 덕이 되지 아니하고 선한 열매를 맺는 데 아무 효과도 주지 못하는 쓸데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말은 대개 방심하거나 의식적인 생각이 없을 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생각 없이 남을 비난하며 저주하는 말, 또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서 나오는 부도덕하고 패역한 말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경계해야 할 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4:29절‘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심판 날에 자기가 한 말로써 죄의 유무가 판결됩니다.
바리새인의 성령님 모독죄는, 사실은 그들의 마음에 악한 것이 가득 찼기 때문에 이것이 밖으로 말이 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 본문은 말에 대한 경고입니다. 즉, 악한 생각을 하는 것도 나쁜데, 이 생각이 밖으로 나오게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되어, 우리가 한 말 때문에 우리가 심문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모독죄에 적용한다면, 사람이 성령 모독적으로 생각만 하고 있다면, 회개의 기회가 있지만, 이것이 말이 되어 일단 입 밖에 나오면 사함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본인이 분명히 성령님을 배신한다는 결심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말도 우리의 결단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이 들 때에는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것을 위험 신호로 보고 하나님께 나가 회개하며 마음을 완전히 돌리라는 것입니다. 36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한 모든 말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행동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무서운 경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인이 얼마나 쉽게 성령님 모독죄를 지을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자를 교회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그는 어차피 구원을 받지 못할뿐더러, 다른 교인들도 멸망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사람을 모으는데에만 혈안이 되어서 성령님 모독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죄인을 심판하실 하나님, 인간의 모든 말까지도 심판하실 하나님께 대해 너무나 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같이 모독자가 됩니다. 그러니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악한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말씀을 연구하여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마음의 주인이 아닙니다. 악한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 말씀만 믿고, 이 말씀이 항상 내 마음에서 역사하시도록 내 마음을 단단히 매어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님을 말로 모독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를 기뻐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는 거룩한 영입니다. 갈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철저하게 내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어 살면 성령께서는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조심할 것은 갈5:17절을 금욕주의로 이해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것만 사모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서 헌금을 해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거짓된 행동으로 성령충만을 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자복함에 그치지 않고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문명의 최첨단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게 하는 거치는 돌이 있는데 그것은 음란한 시대에 살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든 것입니다. 노아시대도 음란해서, 소돔과 고라성도 음란해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정욕이 가득치 있기 때문에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벧후2:10‘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약4: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렘3:2-3‘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찬송가 197장--2절 정욕과 죄악에 물든마음 성령의 불길로 태우사 정결케 하소서 태우소서 깨끗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방종교들은 섹스의 종교였습니다. 말세가 되면 섹스가 난무할 것이라고 계17:1-5절에, 계18:1-4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때가 가까우면 성적으로 문란해진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잠5:19‘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히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심판의 때가 가까운 시대에 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신랑되시는 예수를 맞이할 세마포를 더럽히지 않는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의 결핍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기도에 눈을 떠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체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세상적인 방법보다는 영적인 방법입니다. 영적인 인물들은 누구나가 기도의 사랑이었고 창세이래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일을 가장 강력하게 힘있게 하는 이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흥된 교회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전도 잘하는 성도도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이들도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슥12:10‘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했습니다.
렘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마7: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했습니다. 막9: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이제 기도의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살아야 영이 삽니다. 기도가 살아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기도가 꺼진 곳에서는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기도생활을 쉬면 쉬는만큼 손해가 올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주여 이시에 기도할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옵소서. 기도를 적당히 하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기도할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늘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겸손해집니다. 교만하면 성령충만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약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했습니다.
루시퍼가 교만해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사람도 자신을 자제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망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치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준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흙덩어리입니다. 그래서 교만화지 말고 더욱더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시고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도 직분도 올라가면 올갈수록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면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여 더 존경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치겨들고 있으면 저거 부러지지 하면서 걱정을 하고 그대로 부러지고 맘니다. 교만한 것은 하나님이 꺽으십니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기도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4.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 탐욕을 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지나치게 세상에 집착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을뿐 아니라 성령충만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골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딤전6:7-10‘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7-19‘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잘히 찾는자는 되어야 합니다. 돈이 많으면 여유가 생기고 교만하게 되고 죄질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만하면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잠30:8-9‘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은혜받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줍니다. 세상에 살기 때문에 물질과는 불가분리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자청년처럼 물질을 버리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16: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히11: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결핍과 죄를 완전히 버리거나 고백하지 않는 연고와 교만한 마음과 탐욕의 마음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은 이왕 주를 믿기로 결심을 했다면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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