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연락이 안 된 지 7년이 넘었어요. 이렇게 안 보면서 호적상으로만 부부로 되어 있고….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지난 3월 14일, 모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나훈아의 아내 정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송에서 그녀는 2007년 이후 연락이 잘 닿지 않는 남편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방송 이후 제작진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수경 측에서 먼저 출연 의사를 내비쳤다. 시사 방송 쪽으로 연락이 왔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보도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애초부터 다른 매체와는 안 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방송에서 정수경은 제작진과 함께 나훈아의 집을 두어 차례 찾았다. 하지만 번번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얼마 뒤 남편 나훈아와 만나 나눈 대화를 녹취해 공개했다. 작년 말부터 나훈아와 주고받은 편지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6년째 대중 앞에서 사라진 ‘영원한 스타’ 나훈아와 14세 연하의 아내 정수경. 이들 부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 번째 아내, 정수경은 누구인가
1978년 ‘이름 모를 그 사람’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정수경. 신인 가수였던 그녀는 5년 뒤 당대의 톱스타 나훈아와 결혼식을 올리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4살 나이 차를 극복한 채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다, 총각이다 해서 사실 결혼 결심을 한 것도 있었죠.”
하지만 정수경이 들은 바와 달리 나훈아는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돌싱’이었다.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 이모 씨와 결혼했으나 2년 후 이혼했고, 1976년 배우 김지미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6년 만에 헤어졌다. 그러던 나훈아에게 정수경은 평생의 인연일 것 같았다.
“굉장히 잘했었죠. 연애하면서 ‘사랑’ 같은 노래도 불러주고요. 제 생일에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집 앞에 장미꽃 100송이를 놓아주라든가 이런 이벤트도 해줬어요.”
슬하에 1남 1녀를 둔 이들은 1993년부터 자녀 교육 문제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 그러나 마음만은 늘 함께였다고. 그녀가 방송에서 공개한 가족사진 속 나훈아는 더없이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현재 정수경은 두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왜 이혼을 원하나
영원할 줄 알았던 이들의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07년 무렵이다.
“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좀 쉬어야겠다, 연락이 안 될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를 계속 했어요. 근데 그게 길어야 2~3년일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남남이 될 거라고는…. 저 사람이 너무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보다(정도로만 생각했죠).”
이때부터 나훈아는 가족 앞에서도, 대중 앞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그해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콘서트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대관료의 50% 이상인 계약금 수천만 원을 포기하면서까지 공연을 취소하고 소속사도 연락이 끊기자 야쿠자 폭행설, 신체 훼손설 등 악성 루머가 번졌다.
결국 이듬해 2008년 1월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단상 위에 올라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리며 “이래야 믿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수경은 이 순간에도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걱정도 됐었고 황당하기도 했었고 어이도 없었고요. 근데 걱정은 돼도 딱히 연락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중의 기억에서 나훈아 세 글자가 잊혀갈 즈음, 이들 부부의 이혼소송이 전해졌다. 아내 정수경이 제기한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나훈아가 승소했다는 판결 소식이었다. 당시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여러 차례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3년이 넘도록 연락도 없이 생활비도 주지 않으면서 가족을 유기했다”며 2011년 8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3년에 걸친 이혼소송은 지난 2013년 9월 대법원 판결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대법원은 증거 부족과 가정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없다는 점을 들어 나훈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본지는 당시 정수경 측 변호사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작년 대법원 판결 이후 그와 관련해서는 맡고 있지 않다”는 직원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변호사는 방송에서 “재판에서만 (나훈아가) 이혼 안 하겠다고 떠드는 거지, 실제 행동으로는 동거, 부양, 협조의 의무를 전혀 안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다. 정수경은 한국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함에 앞서 2010년 미국에서 이미 이혼 판결을 받아냈다. 미국에서는 나훈아와 정수경이 더 이상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훈아는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방송에서 정수경은 왜 이혼했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일단 4년이 지날 때까지 연락이 없으니까요. 세금도 그렇고 아이 학비 같은 경우도 전혀 보조를 못 받아요. (제가) 수입이 없는데 집 하나만 덩그러니 가지고 있다고 해서 거기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대법원 판결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이혼을 원치 않는 남편 나훈아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까.
“제가 편지를 보냈고 역시 결과는 방법이 없다는 거죠. (남편은) 같이 살자고 하거나 아니면 (저는) 이혼을 하거나. 방법이 없어요. 그냥 이대로 질질 흐지부지예요. 연락을 해서 바로 만날 수 있으면 문제는 간단한데, 연락도 잘 안 되고 만날 수도 없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요.”
이혼 원치 않는 나훈아
“미국 이혼 판결문 정리하고 돌아와라”
이런 아내에 대한 남편 나훈아의 입장은 어떨까. 제작진은 정수경과 함께 나훈아의 집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나훈아의 여동생은 ‘왜 전화도 안 하고 오느냐’며 스피커폰 너머로 나훈아의 부재를 알렸다.
“황당하죠. 내가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웃음) 진짜 황당해요. 부인인데 남편이 어디 사는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게요.”
하지만 정수경이 공개한 몇 장의 편지를 통해 나훈아의 심정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주고받았다는 5통의 편지 가운데는 나훈아가 자필로 빼곡히 채운 무려 9장짜리 편지도 있었다.
정수경이 보낸 편지에 대한
나훈아의 답장 일부(2014. 1. 29)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직접 (나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어렵게 XXX를 통해 연락하려고 했을까? 미국에서 나 몰래 이혼소송을 하려면 피고인인 내가 어디에 있는지 연락도 되지 않고 생사불명이라든지 이런저런 위증이 있어야만 가능한 소송이었고, 그렇게 하여 이혼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니, 만약에 나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게 되면 연락처를 모른다, 주소도 모른다 등의 거짓말들을 한 것이라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어버릴 테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 햇수로 3년을 끌어왔던 소송의 결과는 어떠한가. 결국 변호사들의 주머니만 채워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 어떻게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가 있는가. 나의 주소는 물론이고 식구들 모두의 전화번호까지 다 알면서 어렵게 XXX를 통했다니….”
편지에서 나훈아는 자신에게 말도 없이 미국에서 이혼 판결문을 받아낸 아내에게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아내 정수경이 자신의 거처를 알고 충분히 연락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수경은 7년 만에 어렵사리 만난 남편과의 대화 녹취록 일부를 방송에 공개했다.
7년 만에 만난 나훈아와 정수경의
대화 녹취록 일부
정수경(이하 정) 같이 살고 싶거나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거네, 당신은. 그렇지?
나훈아(이하 나) 아니, 내가 얘기했어. 그리고 법원에서 판결한 대로 소송비용 보내주고, 그다음에 그 집에 있는 거 다 가지고 이리 들어와. 너를 내가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지켜줄게. 들어와.
…
나 (미국에서의) 이혼 판결문, 너는 왜 날 속이고 이렇게 했느냐고.
정 내가 미국에서 이혼하기 전에 집에 전화를 다 했었어, 여러 군데.
나 나는 (너에게 온) 전화가 없었어. 미국에 분명히 잘못한 것(이혼 판결 받은 것)을 지금이라도 바로 정리해서 들어와. 이게 내가 죽을 때까지….
정 이걸 정리해서 들어오라는 건 첫 번째가 해결이 안 되면 (내가) 들어올 수가 없는 거잖아. 그렇지?
나 그렇지. 당연하지.
“미국에서 한 이혼을 다 정리하고 여기를 들어와야지만(함께 살 수 있다). 들어와서 살아라 그 얘기예요. 해결을 하고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방법이 없죠.”
이혼을 원하는 정수경과 달리 나훈아는 강력하게 이혼을 원치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이혼 판결을 번복할 수는 있을까. 미국 변호사는 나훈아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무효 소송은 나훈아 씨가 내야 해요. 근데 나훈아 씨가 그걸 안 하겠다고 하면 정수경 씨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죠.”
이런 가운데 나훈아는 어떤 심경일까. 은둔하다시피 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 대신 여동생이 짤막한 심경을 밝혔다.
“오늘 아침에 ‘세상 참 싫다’ 하고 가방 둘러메고 떠났어요. 몰래 (아내가 미국에서) 이혼을 해놓고 이제 와서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그렇게 났으니까 같이 살아야겠다, 그러니까. 미국 가서 그걸(미국에서의 이혼 판결) 또 같이 돌려놔야 된다고 했을 때 선뜻 ‘그래, 가서 하자’ 하고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오빠도 긍정적인 결말을 바라지 않겠냐는 입장을 넌지시 내비쳤다.
“오빠가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많이 가슴 아파해요. 자기도 이 책임에서 어떻게 피하겠느냐는 식의 얘기를 하고요. 싫든 밉든 간에 잘되는 걸 누구나 바라고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