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1 (숙소 : Biduedo, 12 유로)
perfil de la etapa 26: Las Herrerias - Biduedo(24.6km)
아침 6시가 되자 주인남자가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구워 아침을 먹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주인 내외의 친절함과 작은 꽃을 꽂아 놓는 센스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 남자에게 이곳은 내가 묵어 온 알베르게 중 베스트 중의 하나라고
말하자 매우 기뻐하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며 포옹을 하더니 큰소리로 웃는다.
오늘 카미노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갈라시아 지방답게 바람이 세차게 불고 산길인데
만일 혼자서 이 길을 걸었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를 잠시 생각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동지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지금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점심때 쯤 해수를 만났는데 바람은 불어 춥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걸으니 너무
무서워서 걷다가 만난 두 명의 여성에게 함께 걷자고 말하고 같이 왔다며 우리를
보자 매우 기뻐한다. 어제는 길을 잘못 들어 한동안 헤맸다고도 한다.
혼자서 노란색의 화살표를 따라 분명히 걸어갔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 아줌마를 만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배낭 메고 길을 묻는 사람은 다 순례자이기에
그 아주머니는 스페인말로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서있었더니 보기에 안타까웠는지 해수의 손을 잡고 30분쯤 걸어 산티아고로
가는 길가까지 걸어서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너무도 고마웠지만 정신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또 생겼단다. 노란색의 화살표가 아까 왔던 그 길로 또 그려져 있어 갑자기 정신이
띵하며 귀신에 홀린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 있는데 마침 자동차가 오길래 무조건 손을 들어 세워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니 운전하던 여인이 타라고 하여 산티아고로 가는 길가까지 데려다
주어 빨리 도착했단다.
큰일 날 뻔 했다고 말하니 자기도 순간 맨탈 붕괴 상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길눈 어두운 내가 혼자 걸었다면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제랄드와 다니엘에게 고마운 생각이 또 들었다.
한참을 함께 걷다가 바에서 식사를 하려는 우리와 자기는 계속 걷겠다고 하며
또 헤어졌다. 우리를 만날 때마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에 만나면 같이 걷자고
다시 한 번 얘기해 봐야겠다.
비탈길을 한참 올라와 오 세브리에로에 성당에 도착하니 일본인 관광객이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본 다니엘과 제랄드가 싫은 기색을 하며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런 길을 단체여행객이라니.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자전거를 탄 순례자들을 카페인이 제거된 순례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알베르게에서는 자전거 순례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도보순례자들이 없는 경우에 잘 수 있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종종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순례자가 아닌 관광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같은 도보순례자들 중에서도 스틱이나 지팡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순례자라고 말하며, 오로지 자기의 두 발과 의지로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걸으면서 지팡이없이 걷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거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걷기는 했지만 다만 준비를 하지
못해서였는데...
카미노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모 여행사가 인솔자를 동행한 단체에게
"Korean Group: 이라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 걷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들이
많았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성당 안에 들어가니 스탬프도 찍어주고 성체현시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성체 앞에는 각국의 성서가 펼쳐져 있다. 한글로 된 성서는 없는 줄 알았는데
맨 앞줄 첫 번째에 자리에 공동번역성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펼쳐진 곳은 구약성서의
에제키엘서의 말씀이었고 내가 다시 펼치니 잠언서가 나온다.
성체 앞에 앉아 우리말로 된 성서를 읽고 앉아 있으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옆에 앉아 있던 제랄드가 아무 말 없이 나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준다.
세 사람 모두 스페인어를 모르기 때문에 아침에 알베르게 주인에게 부탁하여
만석인 알베르게 대신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는데 도착하여 보니 세 사람이 같은 방을
쓰는 곳이다.
제랄드가 침대를 일일이 체크하더니 베드가 좀 좋지 않은 것은 자기가 쓰고 나와
다니엘에게 좋은 베드를 쓰라며 양보한다. 제랄드는 아래층 침대가 있어도 언제나
내 침대 위층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내가 불편할까봐
배려하는 것 같았다.
침대는 아무리 조심해도 거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내가 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 것을 알면 조용히 휴대폰을 열어 그 빛으로 주위를 밝게 해 주어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자상함도 있다.
알베르게에서 잠잘 때에 남자들은 거의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처음과 달리
이제는 그러려니 생각하니 아무렇지도 않다. 어쩌면 바지에 티셔츠까지 챙겨 입고
자는 내가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춰졌을 수도 있다.
이틀 전 알베르게가 Full된 적이 있은 다음부터 제랄드와 다니엘은 매일 다음 날
머무를 숙소에 예약을 한다. 사설 호스텔인 이곳은 저녁과 아침을 포함하여 28유를
받는다. 침낭이 필요 없는 곳이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침대 안에 침낭을 까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온다. 도착하여 샤워하고 한 잠 자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제랄드와
다니엘은 한잔하고 있었고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어 그 곳에 젖은 옷을 널어
말릴 수 있었다.
이곳은 우리와 스페인남자가 전부여서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페인 아저씨는 카지노에서 카드를 분배하는 전문 딜러라고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어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더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금 더 있다가 먹겠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 식사를 한다고 말한다. 8시쯤
퇴근하여 식구들과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먹어도 함께 먹으려면 그 시간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이들은 보통 낮 2시부터 5시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쉴 수 있는 씨에스타가 있기 때문에 늦게 자도 별 문제가 없는 것
같기는 했다.
내가 스페인은 산티아고 순례객들로 인한 경제적인 도움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스페인 경제의 적지 않은 부분을 순례객들이 걷는 도시와
시골의 구석구석과 산골마을을 지나며 먹고 자고하며 쓰는 돈이 차지한다고 했다.
그래서 스페인 정부에서도 이들 순례자들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도 했다. 실제로 유로비젼 TV 에서는 산티아고 길에 대한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저녁식사로 제공된 농사지은 야채로 만든 야채스프와 이 호스텔 주인이 직접 기르는
소를 잡아 요리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도 참 맛있었다. 기운이 있어야 잘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또 과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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