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불교아동문학회 연간집 원고
기차 타기
眞月 김 일 환
기차역엔 빽빽한 군중
찾아가는 사람
찾아오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은 더 많은데
작은 배낭 하나 멘 사람은
열차 행선 전광판만 읽는다
그곳에는
탑이 있고
탑 위로 휘어져 내려보는 소나무
아마도 무심한 백로가 한 마리
이윽고
긴 행렬 묻어가다가
개찰구 앞
차례가 오면 슬몃 빠져나온다.
그야말로 나이가 희어졌는데
오늘도 기차 타기를 연습하는 사람.
양철 지붕
眞月 김 일 환
비가 사뿐히 내린다.
고기 떼 노는 소리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엄마의 도마질 소리.
양동이로 퍼붓는 비
물받이도 철렁거릴 때
말 달리는 소리.
마음 놓고 질러대는
아이들 고함 소리
말씀하는 불상이 계시다
眞月 김 일 환
미얀마를 다녀온 분들은 대개 네 성지를 기억한다. 첫째, 양곤에 있는 휘황찬란한 쉐다곤 파고다, 둘째, 만델레이에 있는 마하무니 부처님, 셋째, 바간의 허허 벌판에 흩어진 고대 사원, 넷째, 인레 호수에 있는 파웅도우 사원의 눈사람처럼 생긴 부처님 네 분.
많은 사람들은 그곳들을 한 번 더 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곳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큰 감격을 주는 성지가 있다. 미얀마 서해안의 라카인 주(Rakhine State)에 있는 므락우(Mrauk-U)라는 도시다.
접근이 쉽지 않다. 양곤에서 시트웨까지 520km를 날아가야 하고,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4시간 가량 시골 길을, 시골 버스를 타고 허리 아프게 타고 가야 한다.
므락우는 옛날 아라칸 왕국(BC 3325년∼1784년)의 수도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녀가셔서 그런 것일까? 유서 깊은 파고다가 무척 많다. 한때 바간에는 448만개, 라카인에는 535만개의 파고다가 있었다니 이들의 불심이 바간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수만이 므락우를 알아주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씀하는 불상이 므락우에서 탄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런 마음은 더욱 커진다.
미얀마 책자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해탈한 지 20년 되던 해에 라카인 왕의 초대를 받아 500명의 수행자를 이끌고 라카인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이 시기라면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일이고, 아마도 므락우까지는 1500km를 더 걸으셔야 했을 것이다. 진리를 구하는 자들이 있으면 먼 길을 마다 않고 필히 찾아가서 설법하셨던 부처님이셨기에 필자는 부처님께서 라카인 땅을 정말로 방문하셨을 거라고 믿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설화가 실제 이야기라고 필자보다 몇 백 배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만델레이 사람들은 당시 부처님께서 므락우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아라칸 산맥을 넘어서 만델레이까지 방문하셨다고 주장한다. 600km를 더 걸으셔야 했을텐데 가능하셨을까? 고개를 저으면 그들은 만델레이 북쪽에 있는 만델레이 언덕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발자국을 증거로 제시한다.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만델레이로 천도한 민돈 왕이 민심 수습용으로 지어낸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드는 설화이기도 하다.
므락우 체류 기간은 책자에 나와 있지 않지만 헤어질 때의 모습은 자세히 적혀있다. 라카인 왕은 부처님께서 인도로 돌아가시는 것을 슬퍼하면서 부처님과 똑같은 모습의 불상을 만들어 두기를 원했다. 라카인 백성들은 불상 재료를 앞다투어 시주하였고, 필요한 양보다 몇 배가 모아졌다. 부처님께서는 하늘을 다스리는 왕 띠차민(아마도 제석천왕이 아닐까 한다)의 도움을 받아서 부처님과 똑같은 불상을 만들어 주셨다. 머리카락 하나 다르지 않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한 군데 있었으니, 이마에 머리카락 굵기의 구멍을 만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틈새에 가슴의 바람으로 생명을 불어넣으셨고 그리하여 불상이 생명을 얻으셨다. 그리고 5000년간 살아계실 것이라고 예언했단다. 바야흐로 부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제2의 부처님이 생겨난 것이다. 라카인 사람들은 남은 재료로 부처님과 같은 모습의 불상 두 분을 더 만들었는데, 모양은 똑같지만, 말씀은 하지 못하는 보통 불상이었다.
흥 다음에는 망이 있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 라카인 왕국의 운이 쇠약해졌다. 1784년, 라카인의 마하땀마따야사 왕은 버마족 꼰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왕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보도파야 왕은 전리품으로 말씀하는 불상을 만델레이로 옮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왕자에게 맡겼다. 그런데 왕자는 말씀하는 불상을 모시고 가다가 그만 이리와디 강에 빠뜨리고 말았다. 왕자는 부왕으로부터 질책을 두려워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남은 두 불상 중 한 분을 대신 옮겼는데, 그 부처님 만델레이의 마하무니 불상이며, 훗날 미얀마의 3대 보물 중 하나가 되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만델레이의 마하무니 불상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마하무니 불상을 친견하더라도 부처님으로부터 뿜어져 내리는 위력이 다른 불상과 다르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낀다. 이것은 부처님의 생전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은 불상 한 분은 므락우에서 60km 떨어진 짜욱토 사원에 모셔져 있다. 여행을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올 때, 바로 그 곁을 지났으나 노선 버스를 탔기 때문에 내릴 수 없었다. 친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언젠가 므락우를 다시 간다면 짜욱토 사원도 들러보고 싶다.
불상 재료를 얼마나 많이 보시했는지 불상 세 분을 만들고도 재료가 남아 있었다. BC 308년, 이것으로 불상 다섯 분을 더 만들어서 므락우 주변 사원에 모셨다. 시간이 된다면 한 분 한 분을 찾아뵙는 것도 뜻 깊은 일이겠다.
강물에 빠진 불상은 어찌 되셨을까? 왕자는 불상을 되찾으려고 무던 애를 썼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잠수부를 수 백 명 동원했을 것이다. 강바닥을 샅샅이 훑었지만 찾지 못했다. 뻘 속에 파묻힌 것일까? 아니면 떠내려 간 것일까? 어찌되었건, 5000년을 더 살아계실 거라고 말씀하셨다니, 지금도 살아계셔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계실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현대식 장비를 갖춘다면 말씀하는 불상을 못 찾을 리도 없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부처님 말씀을 세상 어디에서나, 원하는 때에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절에서는 물론, 서점과 도서관에도 즐비하며, 지하철 벽에서까지도 ‘풍경 소리’라는 제목으로 읽을 수 있다. 각 가정에는 인터넷만 연결하면 아무 때나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다. 결국 말씀하시는 부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 모두의 곁에 와 계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 번만 두리번거려도 설법하는 부처님을 볼 수 있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