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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대해서 인간의 체험으로 이해된 내용
Contents understood through human experience about God's justice and love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대해서 인간의 체험으로 이해된 내용
Contents understood through human experience about God's justice and love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의에 대해서 제가 느낀 것을 전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의 마음을 작은 짧은 세월을 사는 인간이 어찌 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정말로 그분의 은혜로 제가 직접 체험한 일로 전합니다. 성경에도 어떤 선지자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체험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정말로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이지만 망극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을 입은 자로서 온 세상에 전합니다. 저의 체험을 통해서 모든 분이 정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이 세상에서 정의롭게 그렇지만 사랑을 또 잘 실천하시는 모든 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를 통해서 제가 받은 은혜와 그리고 성경 정리 그리고 전도에 대해서 글을 올린 지 약 4년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80개국에서 약 30만 정도의 분들이 제 카페와 블로그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약 1년 전에 80개국이었으니 100개 나라는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제 글을 읽어 보신 분은 제가 처음과 지금의 모습이 다름을 알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서 세상에서 너무나 악을 많이 보았습니다. 청소, 생선, 과일, 야채 장사, 그리고 경비, 재활용품 수거, 농사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하려고 하지 않는 일들을 은행에서 나온 지 약 40년에 걸쳐서 했습니다. 물론 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행정 고시를 공부한 시간도 포함이 되지만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 전도하면서 옳고 그름이 분별이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때론 너무나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서고 격분하곤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직장이라 그냥 참고 사는데 속에서는 분이 넘쳤습니다. 부당한 곳에서 일을 하다가 잘리기도 하고 스스로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목사 안수를 받고 12년을 일반인과 같이 일을 하는데 제가 목사임에도 목사로 인정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냥 제가 하는 일을 숨기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모두에게 친절한 모습을 하는 교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지 저는 보았습니다. 물론 대부분 예의를 지키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법이 있는데 누가 마음대로 살면 법에 처촉이 되고 직장에도 직장의 규율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법을 어기지는 않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게 살다가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율법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신칭의에 대해서 개신교인이 접근하는 것과는 처음부터 약간 다른 자세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접근을 했으니 죄는 함부로 절대로 지으면 되지 않고 무제한의 용서는 없고 용서도 내가 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는 분의 뜻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아주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행정고시를 1차에 붙고 2차에서 1점 차로 떨어지게 하시고 신학을 하게 하신 연고로 국가나 법이나 혹은 경제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은 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정의에 정말로 갈급해 있었는데 모세 오경의 율법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경 정리를 통해서 모든 성경을 다 정리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모세 오경도 잘 읽고 이해를 해야 정리를 하기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법을 배우고 행정학을 대학원까지 나온 저도 레위기 등의 법은 접근하고픈 마음이 잘 생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을 읽게 되고 조금씩 접근을 시도해서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성경 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모세 오경을 그렇게 공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도 않고 세상의 사람과 똑같이 살면서 성경을 오랫동안 읽고 정리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을 것인데 이 모든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셨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미군 부대에 약 8년간 근무하면서 영어를 배워야 했고,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도 조금 생겼습니다. 김현철 예비역 대령님의 인도하심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령님의 노후가 더욱 풍성해지시고 모든 가족과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컴퓨터도 아내의 교통사고를 통해서 배우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즐거움을 하나님께서 늘 주셨습니다. 재미가 있는 일은 누가 말려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근 약 4년이 넘게 온 세계에서 많은 성도들이 저를 열심히 배우게 도와주셨는데 이곳을 방문하고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다 저를 응원해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한 분 한 분이 다 제게는 너무나 힘이 되었고 이렇게 글을 쓰는데 큰 즐거움을 늘 주셨습니다.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모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쉬지 않고 약 800편이 넘는 긴 글들을 단숨에 쓰게 된 것입니다. 제가 율법을 만났을 때 한줄기 큰 희망이 저를 감쌌습니다. 제가 그렇게 배운 자로서 세상의 밑바닥이라 할 수가 있으면 있는 곳에서 불의를 참으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이 살고 있었는데 성경의 율법은 이런 저를 너무나 크게 위로하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제가 겪은 불의한 세상은, 성경적으로 그리고 성령을 받고 초대교회와 같은 세상을 꿈꾸는 자로서, 자본주의 공산주의 미국, 중국 등 모든 나라와 함께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추구하는 나라는 너무나 질서가 있고 모든 사람이 살기에 좋은 나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정의롭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표현해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 세상에 주신 법이 율법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예전에 제가 만난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줄이면 법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고려대 법대 출신 성도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려 법을 주셨는데 그 법이 성경이다. 이 대답이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말인지 모릅니다. 저도 처음 그 목사님께서 제게 성경에 대해서 물으셨을 때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생각이 나서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그렸습니다. 그러자 답이 법이라 가르쳐 주시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하신 분이 딱 한 분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서울대를 나오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성경이 법이다 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그 목사님께 되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지나서 제가 율법을 배우니 정말로 그 말이 맞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약 25년 동안 정리하다 보니 다 했는데 모세 오경은 법임을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성도가 다 압니다. 그리고 그 법으로 이스라엘이 산 역사의 기록이 역사서입니다. 그 법의 규정에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게 되자, 남북 이스라엘이 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시가서는 이런 역사 속에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지혜의 말씀의 기록이고, 예언서는 오실 예수님과 그분이 세우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당시에 살던 사람들에게 주시는 이스라엘과 주변국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도 율법과 완전히 관계가 있으니 율법이 해이해지면 선지자들이 나와서 율법을 지킬 것을 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구약이 그렇다면 신약은 율법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신칭의를 논하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과 당시의 율법학자들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그 정신 즉 사랑과 신의와 그리고 정의를 생각하며 잘 지키는 율법학자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조문에 몰두해서 사랑을 하지 않는 율법학자와, 그리고 법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키길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결정적으로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자신이 율법을 없애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작은 조항이라도 지키면서 그 조항을 조항 조항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자 즉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잘 지키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아주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율법은 신약 시대에도 구약과 똑같이 분명하게 아주 중요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저도 율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자 곧 이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서 제가 이해한 것을 글로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기존의 이신칭의로 무장한 분들에 대한 공격도 심심찮게 했고, 특히 교회에서 학교를 세우는 일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했고, 이분들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개신교회에 대해서 너무나 그들이 과거의 이신칭의로 무장을 해 있기에, 제가 이해한 이신칭의와 너무나 달라서 그들을 비판과 비난과 그리고 심지어 정죄도 해 대었습니다. 제가 배운 지식과 율법을 보면서 율법을 어기고 사는 크리스천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그렇게 살면 천국에 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비난의 칼날을 세웠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에는 이런 글들이 다수가 있고 이미 읽으신 분은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가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 학교를 세우는 것도 싫었고,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낮은 자리에서 겪은 불의에 대한 울분으로 저는 이들을 성토하는 것으로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굳게 믿고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그 공격에 대상에는 제가 힘들 때 도움을 주신 분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무차별 공격했고, 그래야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 모든 글의 기조는 최근에 까지는 이러하였습니다. 저는 이신칭의의 새로운 이해에 대해서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캘빈과 루터도 공격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성경이 없던 시대에 살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세상을 사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그들보다 더 올바로 성경을 이해할 수가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게 된 새로운 이신칭의의 이해로 과거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외치고 있는 제게 큰 시련들이 닥쳐왔습니다.
대부분 장수하는 집안의 자손인 제가 혈압도 조금 높고 일을 하다가 넘어져서 인대가 두 대나 끊어져서 5개월을 수술받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아침에 쿵 하고 쓰러졌습니다. 부상에서 조금 회복한다고 생각이 들 즈음에, 이번에는 허리로 인한 통증이 허벅지와 종아리로 거쳐서 내려오는데, 거의 쉬지 않고 하루 종일 계속되기에 참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직장도 조금씩 쉬면서 근근히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강하시던 늘 제게 도움만 주셨던 어머니께서 소천을 하셨습니다. 장가를 가지 못하고 어머니만 모시고 살던 막내 동생의 덕분으로, 제가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았는데, 너무나 예고 없이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일생을 효도를 못했습니다. 상심한 제 마음도 채 추스르기 전에, 이번에는 잠잠하던 아내가 또 쉬지 않고 제게 덤볐습니다.
그렇게 마구 덤비는 제 아내에게 어머니 가신 것도 아직 내 마음에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제발 나를 좀 봐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리고 다리 통증은 거의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크게 쉬지 않고 지속이 되고, 이제는 고통과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감내가 가능한 고통의 끝이 보이는데 그것은 제가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겪는 고통을 넘어서는 도저히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경지를 보니, 저는 두려웠습니다. 절대로 그 고통의 상태는 죽어도 가기가 싫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저는 저를 심각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마침내 제가 제 생각과 다른 대상에 대해서 비난, 비판, 심지어 정죄까지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 로마서 2장 강의에서 바울 사도께서 유대인의 죄를 논하면서 비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너도 그렇게 비판을 받고 정죄를 받게 된다는 구절을 보면서도 저는 그렇게 해도 되는 선지자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여러 가지 고난을 동시에 겪으면서 저는 그 사명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멋대로 날뛴 모든 글들이 올바르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히 글들을 내리려 하니 너무나 글들이 많아서 우선 심한 글들은 내리고, 2023년 새해 인사를 하면서 제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율법을 알고 정의에 불탄 제 마음은 실상은 도를 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심히 싫어하심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정의로운 율법의 나라를 세우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시면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글들의 기조도 달라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제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은 보입니다. 누룩과 같고 겨자씨와 같아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어떻하든지 펴져 가고 있고 자라고 있으며 2000년이 지났으니 크게 자랐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물과 같다는 의미가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그물은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되는데, 물속에 친 그물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갇혀 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비난과 비판과 정죄는 어떤 인간의 몫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의 그런 모습은 잘못된 것이고 그리고 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사람이 어떤 판단도 때론 해야 되지만 사람에 대해서 절대로 올바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나도 너도 절대로 그런 일을 하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힘입어 이로부터 돌이키면서, 캘빈과 루터가 믿음에서 오는 이친칭의를 부르짓지 아니 했다면 아직도 어떤 세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위대함이 보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목회자와 교회가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음도 보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비록 율법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잘못이 아니라 그래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품고서 기다리면서 세워야 하는 분들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주변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을 세워라 세워라 명하시는데 저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어떤 사람이 생각나면 세우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의미를 모르고 마음으로 어떻게 그 사람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렇게라도 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우라는 말씀은 사람이 어떻든지 품고 사랑하면서 섬기라는 말씀임을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어떤 분의 잘못이 조금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고 해서 절대로 그분을 비판하고 고치려 말고, 있는 그대로 그를 품고 인내하면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세우라"는 말씀속에 있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 속에서 저의 그들에 대한 미움을 보시고 그렇게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임이 이제는 보입니다. 저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배웁니다. 율법을 통해서 정죄하던 곳에서 떠납니다. 무엇이 나와 틀리면 그것이 어긋난 것이라는 태도에서 이제 돌아서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들을 겪기 전에 저는 처음 결혼한 여인이 저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고 약 4년을 불면과 우울의 지옥과 같은 시간을 겪으면서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지 말고 정의롭게 살자 하고 나름대로 전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정리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 러시아 국적의 여인을 아내로 주셔서 아들도 낳고 저를 불면증과 우울증에서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해야지 하면서 쉬지 않고 전도하고 성경 정리하고 이렇게 글로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틀리는 곳이 없고 하나님의 도구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게 오는 고난과 고통은 인간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너무나 심한 것이었기에 저를 비로소 돌아보니 제가 옳은 일을 안하고 있으면서 정죄까지 하는 해서는 아니 되는 일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 제가 선지자나 된 것처럼 생각하고 겁도 없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약 1년 이상 보시다가 크게 징계를 내림으로 제 잘못이 보였고 제가 크게 잘못 나간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되니 즉 비판을 해서는 아니 되니, 그냥 그분들이 그렇게 사는 것도, 캘빈도 루터도 그냥 있는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말입니다.
정의의 칼이 하나님의 편에서 이렇게 작동하면 견딜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저보다 더 악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다 벌하고 싶은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더욱 그럴 수가 있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그 심판을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면 우리는 구원을 어떻게 받겠습니까? 주님이 오실 때 죄 중에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 정의의 칼, 심판의 검을 가지시고는 계시지만 휘두르지는 않습니다.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참으로 참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의 십자가와 보혈의 공로가 이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6절은 이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길이 참으시면서 간과하고 계심을 말씀하시는데 그 심정을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기가 쉽지 않은 우리의 죄를 그냥 보기만 하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피를 흘리게 하시고 또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십니다. 즉 인류의 죄에 대해서 대속의 제물로 예수님 즉 독생자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라고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용서를 받게 되어 과거에 내가 어떤 죄를 지었던 다 용서를 받게 됩니다.
살인, 강간, 도적질, 상해, 간음, 불효 등 어떤 죄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이 사람에 대해서 죄에 대한 노함도 푸시고 심판의 칼도 휘두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벌도 없습니다. 죄의 용서와 함께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 받을 벌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식을 죽이는 낙태의 죄도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를 받습니다.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류의 죄가 극에 달하고 복음이 모든 나라 족속에 전해지면 하나님께서 더 죄에 대해서 간과가 없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분노의 심판을 견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경험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죄에 대해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 계시는 것이 즉 간과하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말씀을 드리고 이를 극복하고 사랑까지 하는 일은 더욱 쉽지가 않은 일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의로우시고 제가 생각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게 사랑이 크시고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작은 유한한 저 같은 인간과 하나님을 절대로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을 통해서 그분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악을 보시면서도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 땅에서 정의를 세우려고 악을 미워하고 그래서 정도를 넘어서 비판하고 정죄하고 살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혼나고 돌이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은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게 율법이 이 땅에 지켜지는 나라인데 이를 모르고 늘 죄를 짓고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외치면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참고 계시기가 어렵겠습니까? 그렇지만 성도도 성도가 아닌 분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면서 참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하는 일이 좋아서 참고 계심이 아니라 그분께서 사랑이시기에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하고, 믿는 우리를 참으시면서 올바른 길로 가기만을 간절히 바라시기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그렇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정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정의를 품고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이키게 하심을 통해서 과거와 달리 비판을 삼가고 그냥 볼 것은 보고 있는 그대로 마음이 아파도 보고, 그리고 복음도 전하고 성경도 읽고 정리하고 이 내용도 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땅에 속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박국의 정의로운 인내의 삶을 생각하며 견뎌야 할 것입니다. 제 삶을 지지해 주시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실상은 예수님을 믿고 너무나 큰 죄도 지었던 실로 별 볼일 없는 신앙인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용납해 주시고 용서 하시지 않았으면 벌써 여러 번 죽었을 사람입니다. 오직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이렇게 살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서받은 자로 자비롭게 모든 사람을 용납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 아니 되는 모습이 너무 강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의를 행하느냐 잘못을 말하고 바로 잡느냐 아니면 모른 채 참고 기다리느냐 이는 참으로 분별이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 속에 불의에 대한 미움도 있고 사랑 속에 듣기 싫은 말도 해야 됨이 있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비판과 비난과 정죄는 절대로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로마 병사가 왔을 때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병사의 귀를 자르자 예수님께서 잘려진 귀를 그 병사에게 붙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칼로 시작하면 칼로 망한다고 하면서 베드로를 바로 잡아준 내용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분이 나도 심판은 내가 행하면 되지 않고 인내하면서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실천해야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제 글들은 이제 모두 그대로 둡니다. 제가 얼마나 악이 싫어서 불의에 광분했고 그리고 이렇게 제가 바뀌게 된 내용과 사연을 모두에게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제는 비판과 비난과 정죄를 절대로 피하겠지만 제 눈에 보이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한 것은 제 잘못이 분명하게 맞습니다.
저는 두 번 결혼을 했는데 성경에 호세아 선지자가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그분과 비교를 할 수가 없는데 저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지었습니다. 첫 번 결혼 생활은 제가 너무나 능력이 없고 못 했습니다. 그리고 전처와의 헤어짐을 통해서 큰 고난을 겪고 분리의 고통을 뼈가 시리도록 맛을 보았습니다. 최근에 또 수 년에 걸쳐서 다양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 고난으로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제가 겪은 고난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직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새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도 성실하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새로운 내용을 알면서 도를 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과열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징계를 받았고 아직도 그 고난이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선 분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단절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난과 비판과 정죄는 분리와 단절의 선봉입니다. 비난과 비판과 정죄가 아니면 무엇입니다. 그냥 그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내가 어떻게 지금 여기에 있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조금 나와 다르더라도 다른 그분이 도리어 올바를 수도 있고, 또 그분들을 품고 기도하면 분명하게 그분들께서 좋아질 수가 있다고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분들에 대해서 참고 계시는데 사람이 나서서 설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방관도 아니고 그들의 죄에 대한 인정도 아닙니다. 참는 것이고 품는 것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섬기라고 제게 보내준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제가 할 일임이 보입니다. 저는 세상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교인에 대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저와 달리 이미 이렇게 온갖 성도와 세상을 품고 사랑하며 목회로 멋지신 성도를 키워내는 목자들을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견디면서 살다 보면 저도 언젠가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리고 세상도 제가 품고 기도하는 대상도 올바르게 바뀔 것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는 도구입니다. 도구가 너무 하나님 하시고자 하는 일에 말이 많으면 되지 않습니다. 빗자루는 자신이 망가지도록 주인이 쓸고자 하는 데로 땅의 쓰레기를 쓸면 되는 일입니다. 모든 세상의 도구는 주인에게 말이 없습니다. 저는 말이 많고 제 마음대로 하고자 했던 도구입니다. 모든 분이 저를 위해서 제가 정말로 능력이 있고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적재 적소에 잘 쓸 수 있는 도구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구인 제게 하나님께서는 고시 공부, 대학 대학원 8년 공부만 하도록 내버려 두셨고, 그리고 결혼도 두 번이나 허락하셨고, 그리고 제가 하고픈 세상일을 많이 하도록 하셨으니, 저는 하나님께 별로 좋은 도구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그냥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 이런 저를 위해서 그렇게 살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하나님의 좋은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늘 성경을 읽고, 늘 기도하고,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주변을 사랑하고 경건하고 멋있는 도구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같이 죄를 짓지 않고 일생을 주님의 신부로서 성결하게 거룩하게 멋있게 사시는 모든 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힘을 내시기 바라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와 같이 나약한 인생을 언제나 품고 사랑하시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 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늘 인도하심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주여!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