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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추워야 제 맛이지!
겨울 글램핑 매력" 모락모락"
“미쳤어요? 한겨울에 캠핑?” 가고 싶지 않았다. 자칭 캠핑마니아라고 하면서도 겨울캠핑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10년 전 1월 1일 해맞이 캠핑에 나섰다가 얼어 죽을 뻔한 뒤로 절대 No다. 그런데 별 찍기 전문인 이윤상 작가 왈, ‘글램핑’이라 괜찮단다. 아무런 준비물 없이 방한복 차려입고 떠나기만 하면 된단다. 그 무서운 추위도 즐거울 거라나 뭐라나. 최고의 겨울여행으로 추천한단다. 그래요?… 좋다! 속는 셈치고 추위와 맞짱 뜨는 겨울여행 한 번 해보기로 한다. 못 견디겠다 싶으면 철수하기로 마음먹고 글램핑장으로 향했다.
‘텐트펜션’에서 호화로운 캠핑
글램핑장에 들어서면서 시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텐트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돌오돌 떨었던 10년 전 시설이 아니다. 온돌패널을 깐 따뜻한 바닥은 물론이고, 공기를 데우는 난방기구도 마련돼 있다. 침대에 전기요는 기본이다. 깨끗한 침구에 조리기구, 식기까지 다 있다. 먹거리만 챙겨 가면 된다.
우리가 찾아간 합천 ‘캠핑파라다이스글램핑’은 2종류의 글램핑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금 둘러본 모조리 다 갖춘 북유럽형 글램핑동과 침대, 온돌패널이 없는 텐트형 글램핑동이다. 텐트형에는 전기장판이 난방 시설로 제공된다. 침낭의 성능을 믿는 단호한 캠퍼들은 텐트형을 선호한단다.
추위와 맞붙을 자신이 없는 우리는 북유럽형으로 단장한 예쁘고 따뜻한 글램핑동으로 향한다. 글래머러스 캠핑(glamorous+camping=glamping), 말 그대로 화려하고 호화(?)로운 캠핑에 대한 기대로 나섰으니 당연하다. 캠핑용품 챙겨서 차에 옮겨 싣고, 내리고, 텐트 치고, 정리하고 등등 고단한 과정을 모두 건너뛰어서 너무 좋다.
겨울캠핑 왜? “추우니까 하지요”
폐교인 합천 용주중학교 운동장에 차려진 캠핑파라다이스글램핑에는 20동의 글램핑 동이 있다. 시설물을 운동장 가장자리에 빙 둘러 설치해 널찍한 운동장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잔디 깔린 운동장은 오후 5시 이후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런대로 온기가 남아 제법 움직일 만했다.
두 살배기 슬아를 데리고 글램핑에 나선 정경두(43) ·김가희(30) 씨 부부가 ATV전동차와 전기자전거 등 캠핑장이 제공하는 탈거리에 신나서 운동장을 달린다. ATV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하자 달리던 슬아네도 덩달아 신이 나 손을 흔든다. 그렇게 하룻밤 이웃들이 스스럼없이 가족처럼 어울린다.
겨울철 일몰은 오후 5시가 넘으면 금방이다. 불그레한 석양빛이 눈 깜짝할 사이 어두워져 버린다. 해가 지면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기온에 벗어뒀던 두꺼운 겉옷을 챙겨 입고 장작불 피우기에 도전한다. 장작은 대부분의 글램핑장에서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판매한다. 겨울 장작불은 바비큐용이기도 하지만 온기를 나누는 캠프파이어용으로 역할이 크다.
“이 맛에 겨울 캠핑하죠. 더울 때는 이 불맛을 몰라요. 추울 때 캠핑의 제맛이 납니다.” 장작의 불길을 키우며 정경두 씨가 겨울캠핑의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한마디 더. “재미있지예?”
‘불멍 때리기’ 최고인 겨울, 힐링캠핑
우리가 슬아네와 합석하자 초등학교 2학년 나래네가 다시 합석하면서 떠들썩한 캠프파이어장이 됐다. 곧이어 캠핑의 꽃인 저녁 식사다. 활활 타던 장작불이 맞춤하게 잦아들자 석쇠에 두툼한 고기가 올려진다. 고기 익는 냄새에 ‘반갑습니다’로 시작한 건배사가 점점 짤막해진다. 연신 ‘위하여’를 외치며 맥주든, 물이든, 탄산수든, 자기 잔을 들어올린다. 불향이 밴 고기는 그 어디에서 먹는 것보다 꿀맛이다.
거기다 집집마다 식재료를 내놓으면서 뷔페식 파티장이 된다. 프라이팬 좀 잡아봤다는 남자들이 나서자 국적 불문의 캠핑음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요리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는 “글쎄, 뭐라카더라?”가 대답이다. 다른 캠퍼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해 보는 거란다. 이름이 대수랴, 맛있으면 그만이지!
“찬 기운 탓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 것도 재미있죠. 바비큐 굽기용 장작불이지만 불멍 때리기에도 최고예요. 사람들 수다 떠는 모습 바라보는 것도 좋고, 멍하니 불멍 때리면서 겨울 적막을 즐기는 것도 좋아요.” ‘불멍’은 장작불 보면서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불멍을 예찬하는 김한영(41) 씨는 여럿 함께하지만 또 홀로인 듯한 느낌이 있어 겨울캠핑이 좋단다.
비싸다고? 일회성 캠핑족에게는 경제적
텐트, 조리도구, 테이블, 의자, 침구류 등의 준비물 없이 가볍게 나선 만큼 비싸지 않을까? 글램핑은 게으르고 돈 있는 사람한테 딱이라던데?
“글램핑이라는 게 사실 텐트로 된 펜션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게으른 사람한테 편리하긴 한데요. 돈 많은 사람만 즐기는 건 아닙니다. 특히 겨울은 캠핑 비수기여서 봄, 여름, 가을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요.” 캠핑파라다이스글램핑 김상환(42) 대표의 대답이다. 이 집의 겨울철 1박 요금은 일~목요일 9만8000원, 금요일 10만5000원, 토요일·공휴 전일 12만6000원이다.
“캠핑은 하고 싶은데, 일 년에 2~3번이 고작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경제적일 수 있어요. 각종 장비 구입해서 집안에 모셔두는 것보다 낫다고 봐요. 이것저것 고민 없이 캠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기 직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자신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사장님의 친구 조기현(42) 씨가 말한다. “그리고 여자분들, 벌레가 없어서 여름보다 겨울이 좋아요.” 조 씨의 촌철살인 마침표에 일동 동의의 박수가 터진다.
유쾌한 바비큐장 위로 찬 겨울 밤하늘이 쨍하게 펼쳐진다. 금싸라기처럼 흩어진 별들이 깜깜한 시골을 배경으로 반짝인다. 스타 사진가 이윤상 작가는 이미 별 바라기에 돌입했다. 먹고 떠들고 웃다 밤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불멍도 한 번씩 때리고, 잊지 못할 겨울캠핑의 밤이 흐른다.
촬영협조
캠핑파라다이스글램핑
합천군 용주면 고품길 42 ☎ 010-8212-8254
글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