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시리얼을 간단히 먹고 황지연못으로 이동했습니다. 황지연못에서 눈 조각을 30분 정도 구경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10분이었습니다. 회의했을 때 아이들이 눈 조각 구경하는 게 재미없을 거 같다며 10분만 보고 나오겠다고 했었습니다. 막상 거대한 눈 조각과 이글루에 들어가서 놀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어진이 제일 먼저 새해 소원 적는 곳에 가서 열심히 소원을 적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며 각자 소원을 신중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 오랜만에 본 듯합니다. 다 같이 눈 조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사진 부스 옆에 재밌는 가발과 머리띠, 선글라스가 있어서 하나씩 착용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애들아 소품은 너무 재밌는데 너무 꼿꼿하게 서 있다. 하나, 둘, 셋 할 테니까 재밌는 자세 취해봐!”
정한별 선생님의 재치 덕분에 재밌는 사진을 남겼습니다.
일정대로라면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배가 안 고프다며 점심을 안 먹고 눈썰매를 타러 가고 싶다 했습니다. 정한별 선생님과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점심을 안 먹고 가면 눈썰매를 타다가 분명 배가 고플 텐데 눈썰매장에서 점심을 먹기엔 가격이 너무 비쌀 듯했습니다. 아이들과 긴급회의를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밥을 안 먹고 싶다 하고 어떤 아이는 상관이 없다 하고 어떤 아이는 밥을 먹고 싶다 했습니다.
회의 결과 근처 분식집에서 간단히 김밥 한 줄씩이라도 먹기로 했습니다. 고봉민 김밥집으로 갔습니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핸드폰을 하는 아이들. 정한별 선생님께서 핸드폰을 걷었습니다. 핸드폰을 걷으니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막상 오니까 배고파요.”
라면, 김밥, 쫄면, 잔치국수, 돈가스를 시켜 먹었습니다.
“아, 오늘 저녁에 목욕탕 가려면 조금만 먹어야 하는데….”
원래는 간단히 먹으려 해서 김밥집으로 온 거였는데, 한 끼 두둑하게 먹고 갑니다. 황지연못에서 눈썰매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하도 안 와서 옆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니 배차 간격이 1시간이었습니다. 저희가 타야 할 버스가 10분 전에 지나간 듯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버스가 금방 와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50분이나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니. 아이들을 1분이라도 더 놀게 해주고 싶었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윤이와 사랑, 한별 선생님과 스무고개도 하고 쌔 쌔 쌔를 하며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정한별 선생님도 고대하던 눈썰매장에 도착했습니다. 눈썰매장이 버스 내린 곳에서 한참을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200개 계단을 오른 것 같아. 선생님 눈썰매 타기도 전에 힘 다 빠졌어요.”
“애들아 입구가 코앞이야! 선생님 손 잡아. 빨리 가서 놀자”
아이들이 계단에 드러누웠습니다. 대자로 누워있는 모습이 다소 웃기기도 합니다. 아이들이랑 있으면 웃음 잘 날 없습니다.
높은 눈 언덕을 보니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 올라갑니다. 힘없다던 아이들 맞나 싶습니다. 두세 번 썰매를 타더니 사랑과 다인은 덥다며 겉옷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탔습니다. 아이들과 둘이서 같이 타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하나둘셋 하면 뒤로 누우세요. 그래야지 빠르게 내려가더라고요.”
사랑은 몇 번 썰매를 타더니 빠르게 내려가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지윤, 다인, 어진, 사랑, 윤이, 윤선과 같이 썰매 탔습니다. 같이 타서 무거워지니 속도도 빨라져 아이들과 원 없이 소리지르며 놀았습니다.
놀다 보니 아이들이 출출한가 봅니다. 매점에 갔습니다. 컵라면 하나에 3천 원, 츄러스 하나에 3천 원 가격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하나씩 시켜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이 사진 너무 귀엽지 않나요..?ㅎㅎ)
아이들 8명에 컵라면 하나, 핫바 하나, 츄러스 하나, 구슬 아이스크림 하나. 점심도 많이 먹었는데 아이들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놀긴 놀았나 봅니다. 아이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먹기 위해 열띤 토론을 합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서로 배려하고 나누어 먹는 경험도 값질 듯싶어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티격태격했지만 결국 잘 나누어 먹기도 했고 부족해 보여 아이들이 원하는 라면과 구슬 아이스크림을 더 시켰습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라면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경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매점에서 배를 채우고 다시 놀기 시작했습니다. 눈썰매장 막바지가 되는 아이들도 하나둘 지치는 듯했습니다.
“노어진 선수! 더 놀 수 있습니까?”
“예 썰!”
“더 크게!”
“예 썰!!”
마지막 눈썰매는 민준과 해민, 저와 윤선, 어진과 지윤, 사랑과 다인, 한별 선생님과 윤이 이렇게 2명씩 짝을 지어 다 같이 시합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민준과 해민이 일등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놀았습니다.
철암도서관에 들러 샤워용품을 챙기고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애들아 우리가 가는 목욕탕은 주인이 없는 목욕탕이야. 마을 주인이 다 같이 사용하는 목욕탕이야. 돈도 안 낸단다. 이 말은 우리가 주인처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야. 우리가 사용한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 잘하고 해.”
정한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목욕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아이들과 목욕탕이라니. 민망하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실없는 웃음이 났습니다. 아이들과 목욕탕까지 가니 여행 온전히 즐기고 왔습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철암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우와 선생님 별 봐요!” 윤이가 별을 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선생님 서울은 미세먼지 때문에 별이 잘 안 보이는데 여기는 정말 잘 보이네요.”
윤이와 사랑과 한참 별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요리 담당인 해민과 다인 사랑이 저녁을 만들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 메뉴는 떡볶이와 김밥입니다. 먼저 밥을 안치고 김밥 속을 손질했습니다. 칼질을 처음 하는 해민이 처음에 무서워하는 듯하더니 나름의 요령을 터득해 칼질합니다. 사랑이 어머니가 주신 떡볶이 장을 풀고 떡을 불리고 어묵을 잘랐습니다. 밥이 다 돼서 해민에 밥을 솎아달라 했습니다.
“선생님 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뜨거울 거 같아서 무서워요.”
“해민아 괜찮아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줄게. 그냥 뚜껑 열고 주걱으로 밥 휘저으면 돼. 뚜껑 열 때 뜨거운 김 나오니까 그것만 주의하면 돼. 같이 해볼까?”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요.”
밥에 간도 하고 이젠 김밥을 말 차례입니다. 집에서 가지고 온 김밥 김이 좀 부서져 있었습니다. 다음번엔 김은 도착에서 사야 할 듯합니다. 그래도 김밥은 만들어야 하니 김밥을 말고 썹니다. 옆구리 터진 김밥이 속출했지만 이마저도 재밌습니다. 김밥을 거의 만들어 가서 준비해 두었던 떡과 어묵, 양념을 섞고 박미애 선생님께서 주신 당면도 함께 넣었습니다.
장작 1시간 반 넘게 걸렸습니다.
김동찬 선생님 댁과 아이들이 모여 9시쯤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후식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설거지 담당이 있었지만, 민준과 윤선이 나누어서 설거지했습니다.
“선생님 제 생애 첫 설거지예요. 설거지 15분 차 실력을 보여주지.”
민준이 장난기 섞인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쨍그랑!
그릇이 하나 깨졌습니다.
죄송해하는 민준에게 김동찬 선생님은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며, 괜찮다고 웃어주셨습니다. 밥을 처음 솎아보는 해민, 설거지를 처음 해본 민준. 이게 부모님 없이 떠나는 여행의 묘미라 생각합니다. 항상 부모님이 해주셨던 일을 여행을 계기로 스스로 해봅니다.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고생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요?
모든 뒷정리를 마치고 아이들을 쿡쿡방으로 불렀습니다. 불을 끄고 핸드폰 플래시 위에 포카리스웨트 올려 조명 삼아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아 지금 부모님 편지 읽는 시간이죠?”
여행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바로 알아챕니다.
“응 맞아. 우리 다른 친구 부모님이 써준 편지 읽을 때도 집중해서 같이 들어주자.”
감기에 걸려 제 목소리가 좋지 않아 정한별 선생님이 대신 읽어주셨습니다.
“가족끼리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래도 이런 좋은 기회가 있어 감사하구나. 올해에는 미리 돈도 모아두고 시간 내어 같이 여행 가자.”
편지의 세부내용은 각기 달랐지만, 이 메시지는 동일하게 쓰여있었습니다.
다인과 사랑은 눈물을 보입니다. 편지를 다 읽고 부모님께 답장을 쓸 때까지도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윤선은 아버지께 두 장이나 썼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장난치는 모습만 보다가 진지한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사뭇 달라 보입니다.
“선생님 편지는 어떻게 전해드려요?”
“각자 전해드리면 되지 않을까?”
“선생님 저번에는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수료식 날 드렸었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좋을 듯해요.” 사랑이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 그 방법도 좋다!”
“나는 별로인데. 그냥 집에 가서 각자 드려요.”
아이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애들아 그럼 선생님이 4분 줄 테니까 너희끼리 이야기해서 정해볼래?”
아이들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합의점을 찾길 바랐습니다.
“저는 수료식 날 드렸으면 좋겠어요. 각자 드리면 편지가 구겨질 수도 있고 부모님께 안 드리는 애도 있을 것 같아요.” 지윤이 제일 먼저 말했습니다.
“저는 각자 드리면 좋겠어요. 집에 가서 제가 직접 바로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요.” 다인은 지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선생님 그럼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어때요?” 어진이 이야기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똑같이 해야죠. 저는 수료식 날 드렸으면 좋겠어요. 수료식은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한 날 편지를 드리고 싶어요.” 해민이 다시 반박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수료식 날 못 오는 애는 어떡해요? 그냥 각자 드려요.” 윤선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의 이견은 좁혀질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그래도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합니다. 4분이 지나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너희들끼리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이견이 좁혀지지 않네. 우리 이 이야기를 너무 오래하면 놀 시간이 줄어드니까 선생님이 최종 결정을 내릴게.”
아이들이 긴장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수료식 날 드리는 게 더 좋은 방법 같아.”
“에이 각자 드리자고 한 사람이 더 많은데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죠.”
제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한 아이가 치고 들어옵니다.
“선생님 말끝까지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다시 이야기할게. 선생님은 수료식 날 드리는 게 더 좋은 방법인 듯한데, 각자 주고 싶다고 한 친구들이 2명 더 많으니까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해줄게. 수료식 날 주고 싶다 했던 친구들은 아쉽겠지만 양보하고 우리 놀러 왔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놀자! 어때?”
각자 드리고 싶다던 아이들이 환호합니다. 수료식 날 드리고 싶다 했던 아이들도 이내 수긍하고 게임을 하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의견을 잘 듣고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한 거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회의 때보다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첫댓글 황지연못에서 눈조각 구경하고 함께 사진 찍고 밥먹고 놀았군요.
버스를 놓쳐서 50분 동안 기다린 일도 여행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눈썰매장에서 신나게 놀았죠?
평일이라 사람도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타니 얼마나 신났을까요?
저도 함께 가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철암에서 바라보는 별.
조금만 산으로 올라가면 별이 더 잘 보이는데~
아이들에게 별보기도 좋은 추억이 되네요.
옆구리 터진 김밥.
그래도 내가 만든 김밥이니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생애 첫 설거지.
설거지를 처음하다니 놀라워요.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일상생활기술학교 과업과 같습니다.
첫 경험이 많네요.
아이들 편지 내용이 궁금하네요.
부모님께 어떻게 썼을까요?
지난 번엔 편지를 걷어서 코팅해서 나눠주었어요.
편지 내용을 보며 가족 관계를 떠올렸어요.
편지를 구실로 서로를 향한 마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따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