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쓸개 빠진 놈’의 유래
1576년(선조 9년) 6월 26일,
“배를 갈라 사람을 죽인 자는 해당 관청에서 서둘러 체포하라.”
이런 지시는 경연 자리에서 임금이 한 것인데, 그 무렵, 한양 사람들은 인육과 사람의 간담을 성병 치료로 사용해 흉악한 무리들이 어린아이들을 사람이 없는 곳에서 유괴하여 쓸개를 가져가는 일이 간혹 벌어졌다고 합니다.
경연자리에서 나온 말은 대강 이렇습니다.
“건장한 남자와 다 큰 여자라도 혼자 가는 길에 나타나 이들을 만나면 죽고 배를 갈라 쓸개를 꺼내고 땅에 파묻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쓸개를 팔면 많은 돈을 받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나무에 묶여 배가 갈라진 자가 산골에 잇달아 있어 나무꾼들이 무서워 나무를 하러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전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32년(중종 27년) 3월 18일, 임금은 사헌부가 사람들이 악질(惡疾)을 얻은 자가 산 사람의 간담(肝膽)과 손가락을 먹으면 곧 낫는다고 여기고 이런 일들이 있으니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반송방의 이미 죽은 관찰사 유세침의 10세 된 아이 종이 어떤 사람에게 유인돼 두 손가락이 잘리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온몸을 칼로 찔러 거의 죽게 되었다가 다행히 살아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풍습이 널리 퍼지고 있으니 한성부로 하여 염탐한 뒤 죄인을 잡아 엄히 죄를 묻게 하라고 임금이 지시했습니다.
1546년(명종 1년) 11월 25일, 한성부 남부 명철방 전 영춘현감 이성의 3살짜리 계집종을 이달 9일 진시에 잃어버렸다가 미시에 남학동 소나무 밑에서 찾았는데, 오른쪽 손가락 두 개가 칼에 잘려 없어졌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수령이 시체를 검시할 때 시체를 살펴보고 맞추는 일을 하는 오작인(仵作人)들이 위독한 병에 걸린 자들에게 후한 돈을 받고 아이들을 유인하여 쓸개를 빼가고 손가락을 잘라가는 일 있어 해당 관청에서 끝까지 추적해서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대비는 “매우 경악할 일이니 형조에서 반드시 이들을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1564년(명종 19년) 10월 15일, 경상도 관찰사 이우민은 상주에 사는 정은춘이란 자가 한동네 사는 나이 7∼8세 되는 아이를 꾀어 산속에 들어가 배를 갈라 쓸개를 꺼내놓고 살점을 베어내 구워 먹으려다가 발각된 일이 있다고 보고했는데, 임금은 참으로 흉악해서 귀를 씻어야 할 지경이라고 말하고 형조에 엄하게 다스리라 말했습니다.
1566년(명종 21년) 2월 26일, 사헌부에서 서울 사는 사람들 가운데 사람을 죽이고 쓸개를 빼가는 자들이 많아 이를 조사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서울 안의 동활인서, 보제원, 홍제원 등지에서 빌어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 가운데 벌써 4~5년 전부터 그들 사이 쓸개 빠진 사람들이 죽은 시체로 널 부러져 있어 조사를 해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빌어먹는 자들은 누구인지 조사를 해도 모르니, 그들을 죽이는 일은 쉽습니다. 또한 해가 어둑해지면 아이들이 없어지고 아이들 시체에서 쓸개 빠진 시신들이 발견되고 하니 풍속이 사나운 형국을 어이 합니까? 요즘 백성들이 계집질을 좋아해 음창(陰瘡 매독)이 심해 의원들 가운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 쓸개’를 얻어 치료하면 낳는다는 말이 있어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1607년(선조 40년) 5월 12일, 경연자리에서 사람의 쓸개를 빼서 중국에 판다는 소문이 있어 형조에 실상을 파악하여 만일 그런 자가 있으면 엄히 다스리고 그런 자를 신고한 자는 특별히 포상하게 하라고 지시하게 된 것입니다.